저는 올해 20년 차 광고 프로덕션 PD입니다.
20년 동안 PD로서 많은 역할을 수행해 왔는데
일반적인 PD는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스태프들과 소통하며,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조율하는 역할을 주로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외에도 기획부터 실행까지
여러 가지를 직접 진행해 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고 경험이 쌓일수록 더 빠르게 일하게 되고
상황 판단도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래서 일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진행될 때
빨리 정리하고 결단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의 이런 방식 때문에
함께 일하는 팀원들이 점점 역할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주변에서는 이제 제 연차쯤 되면
일을 조금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여 그렇게 해봤지만
일이 잘 안 돌아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주변에서는 계속 일을 내려놓으라고 하는데
정작 내려놓아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과연 일을 내려놓아야만 하는지 고민이 됩니다.//
일을 안 내려놓아도 돼요.
내려놓아야 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어요.
내려놓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윈윈이란 말처럼 일을 같이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혼자 하는 게 더 효과적이면 혼자 하는 것이고
같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면 같이 하는 거죠.
같이 하는 게 혼자 하는 것보다 능률이 안 좋다면
같이 할 이유가 있나요?
(팀으로서 같이 하는 일이긴 하거든요.)
정토회는 일이 많아 자원봉사자가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실무자들 사이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해서 함께 일하는 것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자원봉사자를 받지 않겠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원봉사자가 와도 처음에는 일을 할 줄 몰라
업무에 실제로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원봉사자들을 훈련시키다 보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실무자들이 고유 업무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니까
오히려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훈련된 자원봉사자가 잔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일을 잘 모를 때는 잔소리를 하지 않다가
일이 조금 익숙해지면
‘이건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저건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하며
잔소리를 늘어놓아
실무자들이 곤란해진다는 것입니다.
반면, 자원봉사자를 받는 것에 찬성하는 쪽에서는
지금 당장은 업무에 익숙하지 않더라도
자원봉사자들이 훈련을 거쳐 힘을 합치면
장기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꾸준히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여
일을 해 나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더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크게 보면 많은 사람을 훈련시켜 함께 일하는 것이 좋지만
일의 특성과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미 개척된 일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종류의 일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지(衆智)를 모은다’ 하는 말처럼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일을 하면
뛰어난 한 사람의 능력보다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반면, 어떤 분야를 새롭게 개척할 때는
뛰어난 개인이 혼자 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또 혼자서 일을 해야 성과를 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특정한 분야에서는 혼자 일하도록 내버려두어야
그 사람의 재능이 살아납니다.
자꾸 ‘윈윈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여러 사람과 함께 일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나
아이디어를 내어서 계속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일은
재능 있는 사람이 혼자 마음껏 일할 수 있도록 두는 것이 더 좋습니다.
넓게 보면 일을 할 때는
서로 협력하며 윈윈하는 것이 좋지만
일의 특성과 개인의 성격에 따라 같이 일하는 것이
반드시 좋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나이가 어렸을 때는 눈치를 보지 않았는데
나이가 드니까 독단적으로 일하는 것이 눈치가 보입니다.)
나이가 들면 눈치를 봐야 합니다.
사회 초년생과 비교해 연차가 쌓일수록
주변에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어릴 때는 혼자이기 때문에 독불장군처럼 행동하고
상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에서 독선적으로 행동하면
전체가 어려워집니다.
또한 사람들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주로 하기 쉽지
특수한 상황에 딱 맞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은 부드러워야 한다’, ‘일은 서로 협력해서 해야 한다’
같은 일반론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지만,
환경과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하는 일의 특성과 성격을 스스로 잘 살펴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결정해야 합니다.
몇 가지 선택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은퇴해 버리는 것입니다.
질문자처럼 독불장군같이 행동하면
친구도 없어지고, 후배도 없어져서, 나중에 외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 일을 20년 정도 했으니 그냥
‘이 정도면 됐다. 너희들끼리 알아서 해라!’하며 내려놓고
깔끔하게 은퇴하는 길이 있습니다.
둘째, 후배를 키운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의 성과, 작품의 질, 매출 등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놓아버리세요.
누군가가 무엇을 잘하려면 연습 과정이 필요합니다.
처음부터 완벽한 작품이 나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매출이 떨어지든, 상사에게 욕을 먹든 상관하지 말고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고 격려하면서 키워보는 것입니다.
셋째, 그냥 내 성질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회사에 이야기해서
질문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겠다고 담판을 짓는 것입니다.
회사에서 이런저런 문제 제기가 들어오고 말이 많아진다면
그때는 그만하라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은퇴해도 됩니다.
중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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