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주 목요일에 있었던 수능을 치른 재수생입니다.
저는 짧지만 20년 인생을 돌아보면 꽤 잘나갔던 것 같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하고, 전교 1등도 해보았으며
중학교 때는 전교 부회장을, 고등학교 때는 전교 학생회장을 맡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 제가 원하던 대학교에 떨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제 인생에 처음으로 큰 실패를 겪었고,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느꼈습니다.
저는 매사에 최선을 다했고, 그때마다 항상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작년처럼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올해 수능 성적은 잘 나왔어요?
성적이 잘 나왔으니까
작년보다 더 점수가 높아야 들어갈 수 있는 학교를 지망하고 싶겠네요?
그러다가 또 떨어지면 이제 삼수를 하게 되겠네요.
원래 등수라는 건 없어요.
등수는 상대적인 겁니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한 사람이 앞서서 가고
다른 사람이 뒤에서 가면,
앞에 가는 사람은 뒤에 오는 사람을 보고
‘뭐 하니? 빨리 좀 오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앞사람은 뒷사람이 늦는다고 생각하겠지만
뒷사람은 뭐라고 할까요?
뒷사람은 ‘뭘 그리 서두르나?’ 이러겠죠.
저도 오늘 숙소에서 출발하는 시간을 5시 50분으로 정하고
그 시간에 차를 타고 기다렸어요.
그런데 50분이 돼도 같이 가기로 한 사람이 안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기다리지 않고 빵빵하고 경적을 울렸죠.
그때 제 마음이 어땠을까요?
‘50분에 가기로 했으면 50분에 나오지, 왜 미적거리는 거야?’
이런 생각에 빵빵거렸겠죠.
그럼 안에 있던 사람은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스님은 참 성질 급하다. 좀 기다리면 되지, 뭘 그렇게 빵빵대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했겠죠.
이처럼 사람은 항상 자기를 중심으로 사물을 봅니다.
그것은 우리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잘못했을 때는 가능하면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만약 내가 100% 잘못했어도, 아예 시치미를 뚝 떼고 있든지
아니면 10%쯤 잘못했다고만 말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잘한 일은 어떨까요?
10%쯤 해놓고 100%쯤 했다고 알리고 싶어 합니다.
사람의 심리가 다 그렇습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우리 모두 다 그렇습니다.
또한 내가 피해를 입은 일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아이들은 엄마가 언제 나를 야단쳤는지를 다 기억하고 있죠.
그런데 엄마에게 물어보면 그런 일은 기억도 못 합니다.
설령 기억을 했다 하더라도
‘다 너를 위해서 한 거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야기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바람을 핀 남편은 겉으로는
‘여보, 잘못했어. 한 번만 용서해줘’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바람을 필 수밖에 없었던 자신만의 이유를 찾으면서
합리화를 합니다.
겉으로는 죄송하다고 말해도,
속으로는 ‘나는 이럴 수밖에 없었어. 내가 뭐 잘못했는데?
당신이 잔소리를 안하고 애교를 부리는 성격이었으면
내가 바람을 피웠겠어?’ 하고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넘깁니다.
하지만 말로 그걸 밖으로 꺼냈다가는
상대방이 난리를 치고 화를 낼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겉으로는 잘못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인간이 나쁘기 때문도 아니고
잘못한 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뇌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핸드폰에 특정 어플리케이션이 깔려 있듯이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변명하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한다’, ‘예쁘다’ 이런 칭찬을 받고 자라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가장 공부를 잘하고, 예쁜 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인 환경에 들어가게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방에서 고등학교까지는 항상 1등을 했을지 몰라도
전국에서 학생들이 모이는 대학 시험이나 경쟁이 치열한 환경에서는
자신이 예전처럼 잘한다는 말을 듣기가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죠.
이렇게 되면 열등감이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공부를 중간 정도만 해도
열등감을 크게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서울대학교와 같은 곳에서는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만 모여 있기 때문에
열등감을 더 많이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성형을 누가 더 많이 할 것 같나요?
우리 같이 평범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이 할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란 사람이
성형을 더 많이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저 사람은 이미 예쁜데, 왜 성형을 하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더 예뻐지기 위해서 성형을 합니다.
왜냐하면 배우나 모델 같은 사람들과 자신의 얼굴을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눈이 조금 작다고 느껴서 눈 수술을 하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코가 조금 아쉽다고 느껴집니다.
그래서 또 코를 수술합니다.
코를 수술하고 나면
이번에는 턱이 조금 튀어나와 보인다고 생각해서
턱을 깎아야겠다고 결심하죠.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성형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예쁘다’, ‘공부 잘한다’ 하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들이
오히려 인생에서 불행을 느낄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특히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그렇습니다.
어릴 때 아이돌 가수로 성공해서 유명해질수록
크면 더 불행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유명세를 얻은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에 묶여
평생을 불행하게 살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도 지금 그런 위험에 처해 있을 수 있습니다.
지금 좋은 대학에 가고, 거기서 또 성공을 거듭한다고 해도
결국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는 좌절을 경험하게 될 수 있습니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대학 시험에서 떨어진 일은 잘된 일일까요, 잘못된 일일까요?
이런 좌절을 인생 후반에서 경험하게 될수록
개인이 느끼는 불행의 크기가 더 커집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느끼는 좌절을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좌절을 맞본 경험 덕분에
‘내가 남의 시선만 의식하면서 환상에 젖어 살았구나!’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남의 평가와 시선에만 의존하며 살아왔구나!’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시험에 떨어져서 실패했다고만 볼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자각하고 돌아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만약 기독교 신자라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만 하나님의 진정한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잘 나갈 때는
자만에 빠져서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마련입니다.
지금의 경험을 나를 제대로 아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이번 수능을 잘 봤다고 했으니
더 높은 학교를 목표로 하면
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실패를 ‘좌절’로 느끼기보다는
‘괜찮다, 이 학교에 다시 도전하겠다’ 하는 마음가짐으로
밀어붙여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는 ‘굳이 재수를 한 번 더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면
목표를 약간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중요한 것은 균형을 잘 잡는 것입니다.
안전한 지망을 중시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전공을 포기해서도 안 되며
더 좋은 학교를 가고 싶다는 선호만을 고집하다가
안전을 무시해서도 안 됩니다.
대학에 한 번 떨어져 봄으로써
이런 인생의 경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반드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실패라는 이름으로, 또는 재앙이라는 이름으로
복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우리가 재앙을 복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 순간 더 이상 두려워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외도를 하게 되면
처음에는 분하고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너무 나만 생각하며 살아왔구나.
남편의 허전한 마음을 내가 충분히 살피지 못했구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경험이 큰 복이 됩니다.
반면에 원망과 분노에만 휩싸여 있다면
제2, 제3의 재앙을 스스로 불러오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것을 깨닫고 자각해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실패했다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고
오히려 나를 돌아보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시험에 한 번 떨어진 게 지금은 큰일처럼 느껴지겠지만,
30년 후에는 재수한 게 큰일일까요?
아무 일도 아닐 겁니다.
제 친구들 중에도 재수, 삼수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때는 정말 큰일처럼 느껴졌어도
30년이 지나고 난 후에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잠 못 자고 큰일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고 10년, 20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것도 별일이 아니게 됩니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을 별일로 만들 것이냐,
아니면 별일 아닌 것으로 만들 것이냐 하는 겁니다.
그 선택은 결국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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