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5)

[법륜스님의 하루] 왜 정토회에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나요? (2025.02.27.)

Buddhastudy 2025. 3. 4. 19:45

 

 

수행자는 제각기 독립된 존재입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두가 평등합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다만 역할이 다를 뿐이지 평등한 관계입니다.

수행자들과의 관계는 주종 관계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는 남을 고용해서도 안 되고, 고용되어서도 안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계급 차별과 성차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수행자들의 모임인 상가 안에서는

어떤 차별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문밖을 나서면

누군가에게 고용되기도 하고 누군가를 고용하기도 하지만

이 법 안에서 만큼은 고용 관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 안에서는 각자가 수행자로서 평등해야 합니다.

부부가 정토회에 왔다면

이 안에서까지 남편이라고 챙겨주고 시봉을 해 주면 안 됩니다.

그렇게 행동하면 둘 중에 한 사람은 독립된 수행자가 못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정토회에서는 사람을 고용하지 않습니다.

 

만약 스님이 운전기사를 한 명 고용했다고 합시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스님이 스님으로 보일까요? 아니면 사장으로 보일까요?

자기의 생업과 관련된 사장으로 보이겠죠.

그렇다면 이 사람이 일을 함에 있어 부당하다고 여겨진다면

노동 쟁의를 할 수 있습니다.

법에 보장된 권리니까요.

 

근무 시간부터 소소한 인권 문제까지 다 제기할 수 있습니다.

만약 수행자가 고용 문제로 고소를 당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에 부합할 수 있을까요?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관계를 그렇게 맺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가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있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원봉사 시스템은

사람을 고용하는 것에 비해서 굉장히 비효율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라는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만 단체를 운영하는 것입니다.

 

고려 시대나 신라 시대에는

그 당시 사회에 존재했던 계급제도를 불교 안에서도 용인했습니다.

당시에는 왕이 절에 땅을 하사하고 노동력도 하사했습니다.

노비를 주었던 겁니다.

이들을 사노(寺奴)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절에서는

노비들이 밥을 짓고, 농사를 하고, 청소를 한 것입니다.

스님들은 그 토대 위에서 수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당시의 스님들을 수행자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신 종교 지도자나 학자라고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 지도자나 학자는

사회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부처님이 왕자일 때는

여러 명의 종을 거느리며 살았던 것과도 유사합니다.

말을 모는 종, 잠자리를 봐주는 종, 음식을 만드는 종, 옷을 갈아입혀 주는 종 등

여러 명의 하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출가하신 이후에는 열반에 드실 때까지

단 한 번도 종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수행자 중에서 역할을 분담하여 아난다가 시봉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은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관계였기 때문에

강제로 맺어진 주종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이렇듯 부처님이 하셨던 수행자로서의 삶과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승들의 삶은

그 모습에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부처님은 당시의 시대적 한계

즉 사회에서 성차별과 계급 차별이 이루어질 때

그 한계를 뛰어넘어 평등성을 유지하는 수행 단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름이 알려진 고승들은 대부분이

그 당시의 제도 안에서 살았습니다.

공산주의가 되면 공산주의에 맞게 살고,

왕조 시대에는 왕조 시대에 맞게 살았던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왕조 시대에 사셨지만,

왕궁에 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식사를 대접받기는 했지만, 왕궁을 출입하지는 않으셨어요.

 

그래서 정토회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을 따라

우리가 수행자라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사람을 고용하지 않고

자원봉사로 운영하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앞으로 정토회가

이 원칙을 얼마나 지킬 수 있을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죽을 때까지는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죽고 나서는 조금 어려울 거예요.

왜냐하면 효율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효율을 중시하면 원칙을 지키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어떤 일이 수행의 원칙을 지키면서 도저히 할 수 없다면

그 일을 하지 말자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정토사회문화회관 건물을 원칙을 지키면서 운용할 수 없다면

이런 건물은 갖지 말자는 거예요.

움막 치고 살면 되지, 공연히 건물을 크게 지어서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살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곳에 출입하는 여러분들도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합니다.

청소든 식사든, 안내든

고용되어 일하는 직원이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