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름 투성이의 중학생 빌 브라이슨은
어느날 생물 선생님에게 다소 충격적인 얘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5달러쯤 들고 철물점에 가면
사람을 만드는 데 필요한 화학 물질을 모두 살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선생님 말씀은
원소를 조합해서 무언가 만들 수 있다면
사람은 거의 비용이 안 드는 재료로 구성되었다는 뜻이었습니다.
감수성이 풍부한 필은 자신이 그렇게 하찮은 존재라는 사실에 낙담했습니다.
정말일까?
정말로 우리가 그 정도 가치밖에 없는 것일까?
빌 브라이슨의 의문은
오랜 시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가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야 풀리게 되었습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서는 매년 4월에 케임브리지 과학 축제가 열립니다.
2007년부터 시작된 케임브리지 과학 축제는
과학, 기술, 공학, 예술, 수학을 아우르며
과학자와 일반인이 다 함께 토론하고 즐기는 행사입니다.
2013년 축제 때는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객원 감독으로 참석했는데
이때 영국의 왕립화학협회는 빌 브라이슨의 의문을 풀어줄 흥미로운 주제를 던졌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똑같이 한 명 더 만드는데 필요한 원소들을 사 모은다면
모두 얼마의 비용이 들까?
키 181에 몸무게 78kg인 사람의 몸.
그 안에 들어 있는 원소의 종류와 양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 원소들을 구입하는 비용을 계산해 보자는 주제였습니다.
빌 브라이슨의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주제입니다.
물론 원소를 다 사 모은다 해도 컴버배치를 똑같이 만드는 일은
아직 과학이 아닌 마법의 영역이겠지만요.
그럼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마법처럼 복사하는 프로젝트를 한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왕립화학협회는 먼저 사람을 만드는 데 총 59가지 원소가 필요하다고 파악했습니다.
그 중 산소, 탄소, 수소, 질소 칼슘, 인은 우리 몸의 거의 99%를 차지합니다.
나머지 1% 중에서도 칼륨, 황,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의 5가지가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이 11개를 제외한 48개 원소들은 모두 합쳐도 마그네슘의 질량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미량만 들어 있습니다.
옛날에 ‘산소 같은 여자’ 라는 광고문구가 인기를 끈 적이 있는데
사실 61%는 과학적인 문구입니다.
산소는 사람 몸에서 가장 많은 원소이며 몸의 61%를 차지합니다.
그런데 약 3분의 2가 산소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풍선처럼 가볍지 않은 이유는
그 산소가 대부분 수소와 결합해서 물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매자 입장에서 보면 산소와 수소가 무척 싸다는 점이 다행입니다.
할리우드 배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산소는 11달러어치만 사면 되고 수소는 20달러어치만 사면 됩니다.
질소는 좀 더 비싼 편인데 그래도 2.6% 만 차지하고 있어서 0.34달러면 됩니다.
탄소부터는 가격이 꽤 올라갑니다.
왕립화학협회는 컴버배치를 만드는데 약 14kg의 탄소가 필요하며
그만큼 구입하려면 55,175달러가 든다고 보았습니다
가격이 비싼 이유는 순수하게 정제된 탄소를 기준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보급형 컴버배치를 만들고 싶다면 불순물이 섞인 싸구려 탄소를 사도 되겠습니다.
싸구려든 명품이든 생명체를 만들기 위해선 반드시 탄소가 필요합니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탄소 기반의 유기화합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람과 흙의 성분이 놀라울 만큼 비슷하다고 주장하는데
지각의 주요 원소에는 탄소가 극히 미량 만들어 있습니다.
물론 토양의 종류에 따라 탄소가 더 많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이는 대기와 물의 탄소 순환과 죽은 유기체로부터 유입된 것이지 원래 지각에는 탄소가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지각의 주요 원소는 규소와 알루미늄인 반면
사람의 몸에는 규소와 알루미늄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흙에 탄소가 많다고 주장한다면
몸에 실리콘 보형물을 지닌 사람도 규소 성분이 많다고 해야겠죠.
칼슘과 인 그리고 칼륨은
우리 몸의 약 2.5%만 차지하는데도 비용이 많이 나갑니다.
역시 순수하게 정제된 것으로 사람은 58,530달러나 필요합니다.
나머지 원소들도 대부분 단위부피 당 가격이 비쌉니다.
그래도 아주 미량 만들어 있어서 돈이 거의 들지 않습니다.
토륨은 1g당 거의 2,500달러이지만
우리 몸의 0.0000001%만 차지하므로 0.26달러어치만 사면 됩니다.
주석은 0.5달러
지르코늄과 나이오븀은 각각 0.25달려면 됩니다.
나머지 원소들은 워낙 미량이라서 가격을 매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철물점에 가서
“사마륨 0.001센트 어치만 주세요” 하기는 곤란하겠죠.
어쨌든 왕립화학협회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똑같은 인간을 만드는 총비용을
정확히 96,546.79파운드로 계산했습니다.
달러로는 약 122,500달러, 원화로는 거의 1억5천만 원입니다.
1억5천만 원입니다.
5달러보다는 확실히 큰 돈이라서 빌 브라이슨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소중한 우리 몸의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1억5천만 원은 결코 비싼 금액이 아닐 겁니다.
우리 몸의 가치를 조금 더 알아보겠습니다.
59개 원소가 모두 우리 몸에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확실하게 이로운 것도 있고 뻔히 해로운 것도 있습니다.
이로울 수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이로운지 잘 모르는 것도 있습니다.
의외로 몰리브덴이나 아연, 구리, 망간, 코발트 같은 금속성 원소들도 우리 몸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입니다.
확실하고 불확실하고 의외의 원소들이 우리 몸 안에서 새로운 세포로 조합되고 분해되기를 반복하면서
생명이란 특별한 활동을 수행합니다.
방금 저를 보셨던 1초 동안 여러분의 몸은 적혈구를 백만 개나 만들었습니다.
다시 몇 초가 지났으니
그 적혈구들은 혈관을 따라 바쁘게 돌면서 세포에 산소를 전달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몸속을 약 15만 번쯤 돈 뒤에 낡아서 쓸모가 없어지면 조용히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약 3백 종류로 추정되는 면역세포들은
우리 몸과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찾아내어 죽이는 일을 합니다.
그외 셀 수 없이 많은 세포들이 24시간 풀가동하면서
피부와 털을 만들고 호흡을 하고 소화를 하고 정보를 처리합니다.
처리된 정보들은 오랜 세월 동안 세포 속 유전물질에 기록되어
또 다른 몸을 만들기 위한 설계도가 됩니다.
이런 일을 하는 동안 우리 몸은 간혹 유별난 행동을 합니다.
시원한 산들바람을 느끼면서 농담을 주고받고
붉어지는 저녁 노을을 감상하면서 사랑도 나눕니다.
힘든 일을 겪는 다른 원소들에게는 자신의 원소를 희생해가며 도움도 줍니다.
우리는 이런 유별난 행동에 재료비보다 훨씬 더 큰 가치를 매기는 원소들입니다.
이 모든 활동이 70억 곱하기 10 곱하기 10억 개의 원자의 조합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자들의 조합이 어떻게 생명으로 작동하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인류는 지난 수천 년 동안 자연의 경이를 마주할 때마다
초자연적인 것에서 답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초자연이 아닌 자연에서 답을 찾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 풀지 못한 답이 많지만
그만큼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누릴 기회도 많습니다.
발견의 기쁨을 누릴 줄 아는 원소들 가격이
고작 1억 5천만 원이라면
대단히 수지맞는 장사가 아닐까요?
이상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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