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고흥의 나로우주센터
조립동의 격납고 문이 열리면서 누리호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누리호는 우리나라 최초로 순수 국내 기술로 만든 우주발사체
즉 위성발사용 로켓입니다.
누리호 이전에 러시아와 국제협력으로 나로호를 발사한 적이 있지만
핵심기술 이전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엔진, 발사체, 시험설비 등 모든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이 누리호입니다.
누리호 발사로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의 도움 없이
우주발사체를 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중 1톤급 이상 실용위성을 쏠 수 있는 나라로는 일곱 번째입니다.
한국형 발사체 기술을 최종 시험하는 것
그리고 우주개발국가로서 첫 걸음을 시작하는 것이
바로 누리호 발사입니다.
누리호 발사는 누리호를 발사대로 옮기는 작업부터 시작됩니다.
조립동에서 발사대까지 거리는 약 1.8km
누리호가 무진동 이송차량에 실려 천천히 이동합니다.
조립동을 떠난 지 1시간 25분 만에 제2발사대에 도착했습니다.
초록색의 제2발사대는 2020년 초에 건설된 누리호 전용 발사대입니다.
나로호가 사용했던 제1발사대에 비해 1.5배 가량 크고 새로운 시설들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발사대 구조물 아래에는 52개의 방으로 이뤄진 지하 2층 규모의 시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사체를 세부 통제하는 일을 합니다.
제2발사대에 관여하는 원구원과 협력업체 인원만 60여 명에 달합니다.
누리호가 기립 장치에 실려 천천히 몸을 일으킵니다.
누리호의 총길이는 47.2m로 아파트 15층 높이와 맞먹습니다.
누리호는 아직 추진제 즉, 연료와 산화제가 충전되지 않아 가벼운 상태입니다.
그래서 자칫 강한 바람에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지상고정장치가 누리호를 꽉 잡아주어야 합니다.
네 개의 고리로 된 지상고정장치는 발사 순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엔진 연소가 시작되면 곧바로 발사체가 날아가려는 힘이 생기는데
이때 엔진이 정상 추력을 내는지 확인하기 위해 로켓을 잠시 붙잡아 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은 1.5초에서 5초 사이에 불과하지만
300톤급 추력을 견뎌야 하기 때문에 아주 튼튼하게 설계되어야 합니다.
발사 전날 오후, 엄빌리컬 타워 연결 작업이 시작됩니다.
엄빌리컬은 영어로 ‘배꼽의’ 또는 ‘탯줄처럼 연결된’이란 뜻입니다.
말 그대로 누리호에 탯줄처럼 연결돼서 추진제를 비롯해
전기와 가스 등의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누리호는 총 3단으로 이루어진 발사체입니다.
그리고 3단 모두 액체연료를 사용합니다.
고체추진로켓은 발사체 안에 연료와 산화제가 섞인 고체 추진제를 미리 넣어 놓을 수 있지만
액체추진로켓은 발사 직전에 액체연료와 액체산화제를 각각 주입해야 합니다.
누리호의 연료는 등유 계열의 케로신을 쓰고, 산화제로는 극저온의 액체산소를 씁니다.
산화제란 연료에 불이 붙게 하는 물질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장작이든 기름이든 공기 중에 산소 같은 산화제가 있아야 불이 붙죠.
로켓은 산소가 희박한 고도로 쏘아지기 때문에 동체내부에 산화제가 있어야 합니다.
누리호에도 각 단마다 연료탱크와 산화제탱크가 있습니다.
연료와 산화제가 연소실에 주입되면 불이 붙고
고온의 가스가 방출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로켓이 날아갑니다.
발사 시스템을 점검하는 사이
나로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에 해가 저뭅니다.
발사 여부를 결정하는 마지막 변수는 날씨입니다.
발사 당일에 강풍이나 번개, 고온, 다습 등의 기상이변이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가을 날씨는 이런 이변이 드물죠.
역사적인 날이 밝았습니다.
발사 전까지 해야 할 일은 점검 또 점검입니다.
발사체의 밸브나 센서를 점검하고,발사대 반경 3km 이내의 인원과 선박, 비행기의 접근을 통제합니다.
고공의 대기환경을 점검하기 위해 헬륨 풍선을 띄우고
공군 전투기도 누리호의 비행 궤적을 비행하면서 기상 상황을 전해줍니다.
날씨, 발사 시스템, 인원 대피, 모든 점검이 끝나야
누리호에 연료를 주입할 수 있습니다.
발사 2시간 전, 드디어 연료와 산화제가 탯줄을 통해 주입됩니다.
연료와 산화제를 주입하는 데만 2시간이 걸리는데, 특히 산화제 충전은 아주 까다롭습니다.
극저온의 액체산소는 주입 직후부터 증발되기 때문에
발사 직전까지 계속 보충을 해주어야 합니다.
발사 30분 전, 기립장치가 완전히 분리됩니다.
기립장치 분리는 모든 기기가 정상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발사를 위한 준비가 끝났음을 의미입니다.
발사 10분 전, 이제부터 누리호는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통제합니다.
압력, 온도, 습도부터 통신상태까지,
하나라도 이상이 발견되면 컴퓨터가 자동으로 발사를 멈춥니다.
그렇지 않고 모든 상태가 정상이면 1단 엔진이 스스로 점화합니다.
엔진이 점화하면 단 몇 초 만에 최대 추력 300톤에 도달합니다.
정상 추력이 확인되면 누리호를 잡고 있던 지상고정장치가 풀립니다.
이때가 발사카운트다운 0이 되는 이륙 순간입니다.
5, 4, 3, 2, 1
거대한 굉음과 함께 누리호가 하늘로 올라갑니다.
엄빌리컬이 회수되고
동체 바닥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옵니다.
이 연기는 엔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발사대 지하에서 뿜어주는 물과
엔진의 화염이 만나서 발생하는 수증기입니다.
3300도에 달하는 화염이 누리호로 역류하지 않도록 냉각수를 뿌려주는 것입니다.
누리호 1단은 75톤급 액체엔진 4개를 묶어서 300톤의 추력을 냅니다.
이렇게 개별 엔진을 묶는 방식을 클러스터링이라고 합니다.
클러스터링 기술은 우주발사체의 핵심기술 중 하나입니다.
부품이 늘어나 엔진 신뢰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대신 원하는 추력에 맞게 엔진을 추가할 수 있습니다.
스페이스X의 팰컨 나인은 75톤급 엔진 9개를 장착했습니다.
스타쉽은 무려 31개를 연결합니다.
클러스터링은 로켓 재활용에도 유리합니다.
엔진 중 하나를 착륙용으로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누리호의 75톤급 엔진은 2008년에 처음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엔진을 만들어 놓고도 성능을 시험할 설비가 없었습니다.
러시아와 유럽, 미국에 시험을 요청했는데 터무니없는 비용을 부르거나
기술 유출 위험이 있다며 사실상 거절당했습니다.
엔진의 성능을 시험하는 것 역시 로켓 개발의 핵심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시험 설비도 우리가 직접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덕분에 2008년에 만든 엔진을 2016년에야 처음 시험할 수 있었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적인 중대형급 액체 엔진 제조 기술과 시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습니다.
누리호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제조 역량의 집약체입니다.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기업만 300여개, 인원은 500명이 넘습니다.
누리호의 국산 부품 비율은 94.1%에 달합니다.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 2분 만에 고도 59km상공에 도달합니다.
연소를 마친 1단이 떨어져 나가고 2단 엔진이 점화하는 게 보입니다.
누리호는 이제 2단 로켓으로 비행하게 됩니다.
누리호 2단은 75톤급 엔진 한 대만 사용합니다.
하지만 발사체 무게가 가벼워지고 공기마찰이 줄어든 덕분에
1단 비행 때보다 속도가 2배 이상 증가합니다.
고도 191km 상공에서는 위성을 덮고 있는 패어링도 떼어냅니다.
누리호가 달성해야 하는 최종 속도는 초속7.5km, 목표 고도는 700km 상공입니다.
발사 4분30초 뒤, 2단 로켓이 분리되고 3단 엔진이 점화합니다.
누리호 3단은 7톤급 엔진 한 대를 사용합니다.
이 엔진으로 약 9분 동안 비행하면서 누리호를 궤도 속도인 초속 7.5km에 도달시켜야 합니다.
궤도 속도란 위성이 지구 궤도를 비행하는데 필요한 최소 속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지표면에서 어떤 물체를 수평으로 던졌을 때
초속 7.9km가 넘으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비행할 수 있습니다.
궤도속도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700km 상공에서는 초속 7.5km가 필요합니다.
참고로 궤도속도가 빨라지면 위성은 점점 타원으로 궤도운동을 하다가
초속 11.2km를 넘어설 때 지구를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초속 11,2km를 지구탈출속도라고도 합니다.
달 탐사선이나 태양계 탐사선에게 필요한 속도이죠.
발사 후 약 13분 만에 누리호가 700km 상공에 도달했습니다.
3단 엔진이 꺼지고 한 동안 궤도비행을 하다가 위성모사체가 분리됩니다.
이 위성모사체는 진짜 위성이 아니라 위성과 같은 질량을 가진 금속 물체입니다.
누리호 1차 발사는 우주발사체의 성능을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이기 때문에
진짜 위성은 실지 않았습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은 2022년 말부터 본격적인 위성 발사 임무를 시작할 계획입니다.
2027년까지 1~2년 주기로 계속 발사하다가
이후에는 발사체 기술을 산업체에 이전해서 상용화하게 됩니다.
이번 누리호 발사에서
위성모사체는 궤도에 안착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발사과정이 정상적으로 진행되었고
발사체가 목표 고도에 도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마지막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지는 못한 것입니다.
현재로선 3단 엔진의 연소시간이 모자라서
최종 속도에 조금 못 미쳤기 때문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 발사부터 위성 안착까지 성공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겠지만
발사체 시험이 성공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발사로 우리는 소중한 시험 데이터를 얻었습니다.
그동안은 남의 시험 데이터로 관련 연구를 해왔다면
이제는 우리가 만들고 우리가 시험한 데이터로 문제점을 분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첫 걸음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는 어쩌면 깔끔한 성공보다 개선해야 할 점을 스스로 알아내는 게 더 소중하지 않을까요?
내년 5월에 있을 누리호 2차 발사를 다시 기대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의 우주발사체 개발은 더디게 이뤄졌습니다.
우주발사체는 국가간 기술 교류가 거의 전무한 분야입니다.
자체 발사체를 가진 나라들은 자기들끼리 동맹을 맺고
다른 나라와 교류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한미 미사일지침으로 고체연료 개발이 제한돼 있었습니다.
탑재 중량과 고도도 제한돼 있었습니다.
1993년에 과학로켓1호를 발사한 뒤로
누리호를 만들기까지 거의 30년이 걸린 이유입니다.
하지만 지난 5월에 한미 미사일지침이 완전 폐지되면서
우리의 로켓을 개발하는데 아무런 제약이 없어졌습니다.
이제 우리가 만든 위성을 우리의 발사체로 우주 공간에 올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비록 후발주자이지만
우리도 그들만의 리그에 참여할 수 있는 기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누리호가 쏘아 올린 희망
앞으로 우리나라의 우주산업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핵심산업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까지 북툰이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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