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2

[비이원시크릿] 확실한 '근거, 증거'를 원하는 인간 의식 ㅣ '과거'의 경험에 근거한 당신의 판단이 새로운 미래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Buddhastudy 2025. 2. 3. 20:23

 

 

오늘은 미래에 확신에 대한 이야기 두 번째 시간입니다.

이 시리즈 영상의 공통 주제는요.

소망을 이루려면 미래를 확신하라라는 가르침이었는데요.

 

첫 번째 영상에서는

이 가르침에 끌리는 숨은 이유에 대해 알아봤었죠.

자 그럼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미래에 대한 확신, 정말 좋은 이야기입니다.

저 가르침을 뒤집어 말하자면

미래를 확신하기만 한다면 소망을 이룰 수 있다라는 말이기도 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예요?

확신하고 싶어도 확신할 수 없다는 데 있는 거예요, 문제가.

 

그래서 저 가르침을 처음 대하고 시간이 조금 흐르면

마치 약 올리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뭐랑 같냐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들이 있어요.

이 새들이 육상 동물들을 보면서 말합니다.

더 멀리 더 빨리 가고 싶으면 날아가면 되는데, 왜 기어다니니?”

이렇게 말하는 것과 비슷해요.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

날아가면 당연히 더 빨리, 더 멀리, 더 자유롭게 볼 수 있고 뭘 살 수 있죠?

누가 그걸 모릅니까?

문제는 뭐예요?

날고 싶어도 날 수 없다는 데 있는 거죠.

 

미래에 대한 확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요 확신하고 싶어요. 정말 너무나 믿고 싶어요.

그런데 그게 안 되니까 속 터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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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미래를 믿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기 때문에 그래요.

 

근거가 없어서 못 믿는다는 이야기는

믿고 싶은데 믿으려면 증거가 필요하다라는 거죠.

그런데 만약 증거가 없다면 절대로 믿을 수가 없겠네요.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가져봐야 합니다.

-확신하기 위해서 증거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근거는 무엇인가?라는 의문하고요.

-지금 당장 구체적인 물증이 없다고 해서

가능성까지 부정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가?라는 의문이에요.

 

이 두 가지 의문에 해답을 내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능력하고 미래를 믿게 됩니다.

물증의 확인이 없이도 믿을 수 있게 돼요.

어떻게?

여러분의 사고방식, 전반적인 의식 구조가 바뀌는 거예요?

 

믿을 수가 없어에서

믿어도 되겠구나이걸 거쳐서

믿을 수밖에 없구나로 변합니다.

 

따라서 이번 영상은요.

이러한 변화의 과정을 일으키기 위한 마인드 세팅을 위한 시간입니다.

 

 

먼저 인간이 믿음을 가지는 방식을 알아보겠습니다.

눈치 채신 분들 계실 텐데요.

인간은 사실 믿기 위해서 반드시 증거를 요구합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인간이 의식 속에 존재하는 기준 정보와 대조를 통해서

눈앞의 대상을 분별하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눈앞의 대상을, 상황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심층의식 속에 있는 기준 정보의 대상을 대입해요, 상황을 대입해요.

그다음에 일치도를 판단한 후에

이것이다 저것이다, 이렇다 저렇다를 분별하는 겁니다.

이 과정이 순식간에 일어나요.

 

그렇다면 이 메커니즘은 왜 있는 건가?

사실은 생존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발달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있어 사회는요, 무한 경쟁의 무대예요.

즉 무엇을 하든지

남들보다 빨라야 생존확률이 높아지는 겁니다.

생각, 감정, 반응, 행위, 결정 등이

남보다 빨라야지만

눈앞에 나타난 대상하고 상황에서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를 하게 되겠죠.

 

그럼 빠르게 분별하기 위해선 무얼 활용을 하면 될까요?

바로 과거의 체험이나 기억

심지어는 무의식 깊은 곳에

이미 저장되어 있는 무의식적 정보를 활용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돼요?

처음부터 일일이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이

경험과 기억, 그리고 심층의식 속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정보를

상황 판단의 기준으로 활용을 하게 되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에너지 소모와 시간의 소비를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다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분별하고, 판단하고, 믿어야 할 때

마치 자동화 시스템처럼 학습된 기억이나

고정관념의 형태로 들어 있는 것들을 꺼내 쓰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매커니즘은

생존확률을 높이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몰라도

세상에 대한 해석 기준을 끝없이

과거의 체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라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요.

 

따라서 이 메커니즘에 따르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한 번도 성공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성공을 결코 확신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밖에 믿을 수가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반토막이 나고 말아요.

 

결국 끊임없이 과거의 기억과 해석만을 토대로 삼고 있기 때문에

체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게 됩니다.

그럼 결국 뭐예요?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무한한 미래의 가능성 앞에서

과거의 기억하고 해석에 부합하는 가능성만을 편식하듯이

골라 먹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이 편식이 굳어지면 뭐예요?

고치기 힘든 습관, 패턴으로 굳어지게 되고

이제 나는 이 패턴에 부합하는 현실만을 계속 되풀이하며 살게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진정한 믿음은요

보지 않고도 믿는 마음이에요.

 

생각을 해보세요.

사실 어떤 증거에 의해서만 무언가를 믿을 수 있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볼게요.

회사에서 오늘 점심 메뉴로 짜장면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내 눈으로 아직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걸 믿을 수가 없어요.

식당에 들어가서 그릇에 담겨 있는 짜장면을 본 이후에

, 오늘 메뉴가 짜장면이라더니 진짜였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자 그런데 이게 믿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게 믿음이에요?

이거는 사실 믿음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상황과 물건을 뭐 한 겁니까?

확인한 것일 뿐입니다.

 

인간이 체험하는 시간의 구조를 볼게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흘러갑니다.

인과의 구조 또한

원인에서 과정을 지나서 결과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하나의 원인은

반드시 과정을 거쳐 결과로 도달하게 되어 있고

하나의 과거는

반드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도달하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내가 확신을 하든 못하든 간에

어떤 미래 하나는 반드시 존재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지금 이 순간이 원인이나 과정이라면

지금 이 순간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어떤 미래, 결과로부터 펼쳐진 것이 되죠.

어떤 미래, 결과와 동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원인이나 과정은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 어떤 미래의 결과는

반드시 존재하는 거죠.

그러나 무한한 가능태로 존재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의존해서 미래를 해석하게 되면은

이 무한한 가능성이 제한된다라는 거예요.

나의 마음은 익숙하게 과거의 체험과 기억,

혹은 무의식 속에 주입되어 있는 관념 정보 속에서

미래의 결과를 제한적으로 예측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예측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일 뿐입니다.

이루어진 미래, 성공을 확신하기 위해선

이와 같은 사고방식 판단의 메커니즘을 바꿔야 해요.

 

지금 이 순간 어떤 미래의 결과는

전체성 안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어요.

그 결과가 없다면은

원인도 없고 지금이라는 과정도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믿음, 확신이란

마치 자동차 내비게이션과 같은 것이에요.

내가 도달할 목표점을 고정시켜 놓는 것입니다.

결과에 대한 확신을 통해서.

 

과거의 결핍된 체험이나

개인적, 혹은 사회적인 통념, 그 고정관념에 의존하지 말고

미래의 결과를 자유롭게 인식하고 확신하세요.

이것이 여러분이 도달하게 될 가능성을

현실로 고정시키는 힘입니다.

 

자 그렇다면 오늘의 영상은

이렇게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 같죠?

근데 듣기 좋은 말들 뿐이잖아요, 오늘. 웬일로 그렇죠?

희망적이고.

 

그런데 듣기 좋은 말이라고 반드시 진리가 아니에요.

저는 항상 이 반대쪽의 부분을 함께 말씀드립니다.

 

듣기 좋은 말의 반대쪽에

마음의 깊은 곳에 숨어 있는 또 다른 것들이 항상 있기 때문인데

이제 마무리하기 전에 그 부분 말씀드릴게요.

 

미래 결과를 확신하라고 하는 말 자체에

마지막 함정이 숨어 있어요.

미래 결과를 확신하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하냐면

, 지금의 내 마음이 입맛대로 만들어낸

겉으로 드러난 상황 자체

그것을 확신하라고 알아듣는다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근사한 펜트하우스에 살고 싶어요.

그게 내 소망이죠.

그래서 뭐를 확신해요?

내가 근사한 펜트하우스를 장만한 미래를 상상하고 확신합니다.

100억 부자가 된 나의 모습을 확신합니다.

천생연분을 만난 나의 모습을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장면을, 그것이 이루어진 상황 그 자체를

표면적인 상황 그 자체를

확신합니다.

 

자 그런데

이렇게 펜트하우스에 살고 있는 미래를 확신하고 있는 그 상상이

일종의 착각입니다.

그리고 이 착각 때문에 미래에 대한 확신이 배신당합니다.

시크릿이 실패하는 거죠.

 

이 같은 행태는 뭐냐면요.

작가의 그림 작품을 보면서

작가가 작품에 담은 의도나 메시지, 의미와 가치 등을 무시하고

오로지 선으로 그려낸 그림이라는

형태 자체만을 붙잡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 그림 자체가 나한테 무언가의 상징으로서

그 그림의 형태 자체를 원하게 만들고 있는 마음은 모르고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면

우리의 소망하는 마음은

지금 그 상상으로 그려내고 있는 미래에 대한 그림에게

배신당하게 됩니다.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