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에 그리 관심이 없거나, 삼국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삼국지라 하면
유비, 관우, 장비 그리고 제갈량을 떠올리기 마련입니다.
의형제로 맺어진 유비 삼 형제가
천재 전략가 제갈량을 만나
어지러운 천하를 바로잡는 데 일생을 바치고
유비는 숙적인 간사한 조조를 물리쳐야 할 것 같은
그런 이야기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삼국지에 깊은 관심을 두고 삼국지를 읽어본 독자들은
유비 매니아 혹은 조조 매니아로 크게 두 부류로 나뉘게 됩니다.
간혹, 손견 손책 손권 세트인 손씨 패밀리를 선호하는 경우도 있죠.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초반 전개는
십상시가 나라를 어지럽히고 그에 따라 황건적의 난이 일어났고
유비 삼 형제가 도원결의 한 후에, 의병을 모집하는 내용으로 펼쳐집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황건적의 난이라는 큰 사건이 일어나기 전
조조의 성장기 시절을 먼저 다루어 보겠습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은 원래 한나라 개국공신 하후영의 자손으로
성이 ‘조’씨가 아닌 ’하후‘씨를 썼다고 합니다.
이런 이유로 조조와 거의 평생 함께한 사촌들인 하후돈, 하후연이
조조의 사촌 형제였습니다.
조조의 아버지 조숭은 당시, 궁궐에서
최고의 권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환관인
조등의 양자로 들어갑니다.
조등은 어린 황제가 성인이 되며 외척과의 세력싸움을 하는 데 있어
황제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 포상으로 양자를 들일 수 있었습니다.
십상시가 눈에 띄기 전 시절.
조등은 황제를 곁에 모시는 환관 중에서
그 권위가 가장 높은 수준이라 할 수 있었는데
동시에 덕도 많아 쌓아서 늙어서도
주변에서 쉽사리 해를 가할 수 없는 환관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조등의 양손자가 된 조조는
성장기 때부터 일상생활에서 거의 모든 걸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란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조조가 이렇게 유리한 인생의 위치에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원소나 원술처럼 배경이 더 좋은 인물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조 역시 삼국지 인물들의 목숨을 건
치열한 경쟁의 중심에 놓여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어린 시절부터 총명하기로도 유명했으나
인성은 좋지 않았고
학업에는 큰 관심 없이 덕행도 쌓지 않은 아이였습니다.
비단, 조조뿐만 아니라, 훗날 대립 관계에 놓이는 유비도
어린 시절에는 역시 공부에 큰 흥미가 없었습니다.
둘의 차이를 비교하자면
조조는 병법이나 고전 연구에 많은 업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으로는 손자병법에 주석을 달아
현대인들도 읽기 쉽도록 정리하였습니다.
조조는 유교 사상과 맞지 않았을 뿐
자신만의 방식으로 지식탐구를 이어가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집안 형편이 넉넉지 못했던 유비는
집안 친척이 유비의 장래를 생각하여
학자이자 장군이었던 노식에게서 배우라며 경제적 지원을 했습니다.
유비의 집안에서는 유비에게 기대를 품었지만
유비는 공부랑은 거리가 멀어 친구들과 곧잘 사냥을 하러 다녔습니다.
조조는 성장기 동안,
자신이 좋아하는 문무를 익혀가며 여자도 많이 밝히고,
놀기도 좋아하면서 자유를 만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조조의 행실이 점잖지 못하자,
그의 숙부는 이를 두고
여러 차례 조조의 아버지인 조숭에게 일러바칩니다.
이에, 하루는 조조가 숙부를 길에서 만났는데
입을 삐뚤게 한 채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심한 풍병’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숙부는 평소처럼 이 사실을 조숭에게 알렸고
조숭은 아들이 풍병에 걸렸다는 사실에 깜짝 놀랍니다.
조숭은 얼른 조조를 찾았는데, 조조의 얼굴이 멀쩡한 걸 보며
“니 숙부가 풍병에 걸렸다고 하던데, 다 나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조조는 애시당초 풍에 걸린 적도 없는데
숙부가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답변을 합니다.
이때부터 조조에 관련된 숙부의 이야기는 조숭에게 신뢰를 잃게 되었고
다음부터는 숙부가 말을 해도 조숭이 이를 믿지 않으니
조조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이 가는 데로 성장기 시절을 보냈습니다.
집안의 권력과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조조는
청년 시절, 다른 모범 자제들과는 달리
불량스러운 청년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조는 타고난 암기력으로
수많은 병법서를 외우고 무예를 익혀가며 문무를 겸비했습니다.
그는 도덕성과는 거리가 멀어,
할아버지가 돈으로 아버지의 관직을 샀는 일에 대해서도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서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는 식의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했습니다.
그에게 있어 세간의 시선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불량 무리들과 어울리는 데 있어,
우두머리 역할로 청년들을 이끌며 방탕한 생활을 즐긴 조조는
춤 솜씨도 뛰어나 화려한 생활을 이어가니
사람들은 조조를 둘러싸고 부풀린 소문도 만들어가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거리의 불량배들을 이끌었던 조조는
훗날, 삼국지에서 가장 세력이 큰 위나라를 만들어 갈 때도
이 시절에 같이 활동했던 동료들의 의리가 평생 동안 이어지게 됩니다.
조조와 어울렸던 의협심이 강한 청년 시기의 초기 동료들은
주로 싸움에 능한 사촌들이었습니다.
조조의 친척들은 하후연, 하후돈
그리고 조홍과 조인, 조순 형제가 있었는데
하후연과 하우돈이 가까운 형제 관계,
조인과 조순이 형제 관계
조홍은 약간 더 먼 친척 정도의 관계라 할 수 있었습니다.
이 다섯 명 중 조순만이 유일하게 무력보다는 학문을 갈고닦았습니다.
일찍 부친을 여읜 조순은 학문을 좋아하고 도리를 잃지 않아
향리 사람들이 그를 두고 인재라 여겼습니다.
조순은 주변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인재이긴 했지만
난세에서는 존재감이 없어, 그리 두각을 드러내진 못했습니다.
나머지 4명의 친척인 하후연, 하후돈, 조인, 조홍은
조조의 친척 장수 4인방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젊은 시절부터 조조와 함께하며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참고로 조조의 친척이
왜 하후씨도 있고, 조씨도 있냐는 궁금증이 들 수 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저도 정확히 모릅니다.
조조의 성이 원래 ‘하후’씨 였던만큼
하후돈과 하후연만 사촌이라 하면
조인, 조홍, 조순은 어떻게 된 건지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는 부분은 양해바랍니다.
하후돈과 하후연은 조조 매니아들에게도 인기있는 하후씨 장군들로
삼국지연의에서 둘은 형제 관계로 묘사됩니다.
하지만, 정사 삼국지에서 둘의 관계는
집안 친척 중에 가까운 형, 동생 사이라고 나타납니다.
하후돈은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여포의 공격으로 인해
왼쪽 눈을 다쳤을 때
자신의 눈을 뽑아 먹었다는 설정으로 무서운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지만
이 역시 극적인 묘사를 위한 창작에 불과합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악역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하후돈은 눈이 한쪽 없는 외모를 내세운
흉악한 행동대장 역할을 담당했던 겁니다.
하후돈은 삼국지연의나 게임에서는 막강한 전투력을 앞세워
최전방에서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정사의 기록에 의하면 전투를 담당했다기 보다는 되려
후방에서 체제를 안정시키며 민심을 달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눈을 먹기까지는 않았으나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하후돈의 별명은 ‘맹하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별명을 싫어해서 거울 보기를 꺼려했는데
그럼에도 평소 부하들에게 있어 너그러운 상사로서
아랫사람을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삼국지의 배경이 고대사회라 할 수 있는 서기 200년 전후의 시대인만큼
이들의 협객 기준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하후돈은 10대 시절 누군가 자신의 스승을 모욕하자
그를 찾아가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금 시대에 이런 일은 범죄가 되지만
당시에는 악플을 제거한 정도의 일로 여겨 협객 문화라 칭하였습니다.
정사에서의 하후돈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바와는 달리
군사적 능력이 무능한 인물에 가까웠습니다.
하후돈은 전투에서의 실적이 조조 휘하의 다른 장수들보다 떨어지는데도
장료, 서황, 하후연 등을 넘어서
낙하산 형태의 대장군직을 맡았습니다.
전투적으로는 눈에 띄지 않았던 하후돈은
조조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부하 장수이자, 친척이었습니다.
이는 조조 세력이 갖고 있던 상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가난한 자들을 돕겠다는 목표로 뭉친 유비의 연대의식이나
대를 이어 내려온 뼈대 있는 가문의 손권과 비교해 볼 때
조조의 세력은 다양한 공동체로 구성되었습니다.
조조는 헌제를 모시는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만들어 온 공동체뿐만 아니라
헌제의 조정이 같이 공존하여
내부에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조조는 자신이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인사 카드가 필요했고, 이는 친인척 인사들로
군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헌제를 둘러싸고 내부적 갈등이 있었던 조조 세력이었던 만큼
조조는 절대적으로 자신이 믿을 수 있으며
동시에 부하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는 장수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하후돈이 세력의 전체 분위기를 아우를 수 있는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어
조조는 하후돈을 대장군으로 임명하게 됩니다.
하후돈은 대장군의 직책을 맡고 있었지만
전방에서의 전투를 소화하지 못하는 데는
아무래도 한쪽 시력을 잃은 눈이
전투능력을 불안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장수는 말을 타고 다녀야 하는데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방향전환이나 원근감을 잃어버리기 때문이었습니다.
하후돈이 눈을 잃어버리게 된 이유로는
실제로 화살을 맞아 눈을 잃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합니다.
만약, 화살이 눈에 정확하게 꽂힌다면
시신경이 뇌와 연결되어 있어 그 자리에서 즉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살에 정통으로 맞지 않더라도, 위생이 철저하지 않았던 고대 사회에서는
전투 중에 눈 주변을 다쳐
감염 등에 의해 시력을 잃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하후돈의 시력 감퇴는
전방에서의 역할이 어려웠고
후방을 책임지는 자리가 적합했다고도 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삼국지 두 번째 시간으로 조조의 유년기 시절과 친인척들.
그 중 하후돈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삼국지의 고수분들이 많은 만큼 부족한 영상이 되었더라도 양해 바랍니다.
개인적으로 취미 삼아 정리를 하는 영상이며
시간이 나는 데로 연재를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끝까지 시청해주셔서 감사드리며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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