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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다윗 vs 압살롬

Buddhastudy 2023. 6. 15. 19:52

 

 

 

다윗과 골리앗으로 유명한 다윗은

많은 전투에서 공을 세워

후일 이스라엘 2대왕에 오르게 됩니다.

 

다윗의 통치 초기에는

이스라엘을 튼실한 나라로 잘 키워나가고 있었으나

부하장수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에 반해

그녀를 궁으로 데려와 강제로 취하였으며

그에 더불어 모략으로 우리야를 살해하기에 이르죠.

그리고는 밧세바와 결혼까지 하게 되는데

이러한 행보로 인해

다윗의 집안에는 칼날이 멈추질 않게 됩니다.

 

다윗의 큰 아들 암논은 배다른 여동생 다말을 겁탈했으며

이에 분노한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이

암논에게 복수하며 목숨을 앗았는데요.

 

다윗은 자식들의 싸움에 충격을 받았지만

암논의 잘못이 본인의 행적과 비슷하다는 생각에

압살롬에게 이제 그만 화를 풀어라면서 사건을 넘어가려고 합니다.

 

하지만, 압살롬은 암논이 여동생을 범했을 때

아버지가 왕으로서 암논에게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분노를 느끼게 되며

아버지에 대한 마음속 분노는 커져가고 있었죠.

 

암논이 죽고 나자

다윗왕 다음 왕으로의 제1왕위 계승자가 된 압살롬은

왕을 대신해서 백성들의 송사를 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왕이 맡을 정도의 재판은 보통

신분이 높은 사람들의 사건을 맡는 경우가 많아서

이러한 과정에서 압살롭은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 세력들을 은밀하게 모을 수 있게 되었죠.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들을 다수 모은 뒤

아버지인 다윗 왕에게

제사를 지내러 간다는 핑계로

예루살렘 이전의 거점이었던 헤브론으로 가서

다윗의 책사 아히도벨을 포함해

많은 유다 지파의 세력자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아히도벨은 머리가 비상하여 다윗 왕정에서 책사로 일했는데

그는 밧세바의 할아버지이기도 했죠.

원래는 다윗을 도와준 인재였지만

손녀딸을 강압적으로 데려간 다윗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상태였습니다.

 

압살롬은 많은 세력자들을 초청한 후

그 자리에서 자신이 헤브론의 왕이라고 선포하게 됩니다.

압살롬의 선포와 함께 지략가인 아히도벨이 함께 손을 잡았다고 하자

점점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는데

무엇보다 다윗의 정치 기반이었던 유다 지파가 등을 돌린 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였죠.

 

본래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는 과정에 있어서

유다 지파의 지지를 받은 과정이 있었지만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면서

그들의 유대 관계도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는데요.

 

1대왕 사울 시절의 타 이스라엘 지파와

새롭게 강해진 세력인 유다 지파와는

그리 잘 어울리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다윗 왕정의 2인자 요압은

타 이스라엘 지파를 완전히 물러나게 하고

유다 지파만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하자고 했으나

다윗은 사울 왕의 혈족 므피보셋을 보살피느라 그렇게 할 수 없었죠.

 

다윗이 1대왕 사울에게는 평생 쫓기는 몸이었으나

그의 아들 요나단과는 절친 사이였고

므피보셋은 요나단의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이었습니다.

 

므피보셋은 전쟁통에 두 다리를 쓰지 못하게 되었는데

고대 사회에 장애인 인격 대우는 당연히 없었으며

모두가 인간 취급을 하지 않는데도

다윗은 요나단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아들인 다른 왕자들과 함께

밥을 먹으라는 등 각별한 대우를 해주었죠.

 

이런 식으로

사울 왕의 잔당들과 유다 지파들을 잘 섞이게 하면서

함께 어울리는 나라를 이끌어가고자 했으나

세상은 그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았고

유다 지파로서는 우리가 나라를 세워졌는데

왜 우리를 챙겨주지 않는지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습니다.

 

그런 와중에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이야기가 들리자

유다 지파는 새로운 군주를 찾아나서게 된거죠.

 

압살롬이 스스로 헤브론의 왕이라 칭한 사건은

금새 다윗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이에 요압을 포함한 장수들은 반란임이 명백하다며

압살롬을 먼저 공격하자고 주장했지만

다윗은 현재의 병력으로는 압살롬에게 밀릴 것이라 판단했죠.

 

그리고 자신의 충신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빠져나왔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모욕을 받고

돌을 던지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도망감으로써, 예루살렘은 큰 피해가 없었으며

압살론은 손쉽게 수도를 차지하게 되는데요.

 

예루살렘을 손에 넣은 압살롬 진영에서는

책사인 밧세바의 할아버지인 아히도벨이

다윗왕권과 압살롬을 저울질하던 귀족들을

확실히 압살롬의 편으로 만들고자, 한 가지 계략을 세웁니다.

 

그 계략은 자신의 손녀딸이 당했던 일로써

압살롬에게 대낮에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다윗의 후궁들을 범하라는 이야기였죠.

 

이는 왕의 소유인 후궁을 압살롬이 취함으로서

압살롬이 왕이 된다는 걸 의미했습니다.

 

압살롬은 자신의 동생이 끔찍한 일을 당한 사건을 계기로

이렇게 반란을 일으키게 되었는데도

결국 자신도 똑같은 짓을 해버리게 되었죠.

 

그리고, 아히도벨은 압살론에게 다윗이 세력을 모으기 전에

추격군을 편성해서 완전히 토벌해야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이에, 아히도벨과는 다른 의견을 낸 후새라는 부하가 있었는데

후새는 다윗의 현재 상태가 굉장히 분노해서

평소보다 더욱 힘을 발휘할 것이고

주변에는 강한 병력들이 배치되어 있으니

우리도 좀 더 전열을 제대로 갖춘 뒤에

천천히 완벽한 승리를 이끌어야 된다고 했죠.

 

하지만, 후새는 사실

압살롬이 예루살렘에 입성 할 때 환영하는 척 받아주었지만

그는 다윗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에 남아있었던 스파이였던 겁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는동안 병력은

수도 예루살렘에만 있던 것이 아니라

12지파의 각 지방에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윗의 사람들이 도와주러 오기에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 후새의 설득력으로 인해

압살롬의 공격을 늦추게 됨으로써

전국의 병력을 다윗 중심으로 모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다윗은 요단 강을 건너 마하나임에 도착하였고

요압을 중심으로 제대로 병력을 갖추기 시작하자

전국의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에서 다윗을 구하기 위해 군대가 합류했죠.

 

다윗은 평생동안 자신과 함께한 전투 명장들인

요압, 잇대, 아비새 등을 모아 반란군 토벌을 명했고

그런 와중에도 자신의 아들 압살롬은 봐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한편, 압살롬은 군대를 이끌고 자신만만하게

에브라임 수풀로 진격하여

다윗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게 되는데

요압이 평소에는 압살롬에게 왕자님 하면서 굽신대는 모습만 보였지만

전장에서는 요압을 상대할 자가 없을 정도로 명장이었죠.

 

다윗에게는 요압뿐 아니라

실전 전투를 겪은 장수들이 한가득 있었고

전략적으로도 늪지를 활용하며 우위를 점하며 벌인 싸움인 터라

기세만 등등했던 압살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2만 명의 군대를 잃게 됩니다.

 

뒤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압살롬은

다윗의 군대가 막강한 것을 경험하고 놀라서는

노새를 타고 도주하게 되는데

평소 그가 자랑스러워하던 긴 머리칼 때문에 봉변을 당하게 되죠.

 

빠른 속도로 도주를 하다가

긴 머리칼이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리는 바람에

노새는 혼자서 달려나가고 자신만 나무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이를 지나가던 한 병사가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압살롬을 발견하고서는

그대로 요압에게 달려가 압살롬이 저기 있다고 보고를 하는데요.

그러자, 요압은 병사에게 요압을 죽였다면 1계급 특진을 시켜줬을 텐데

왜 죽이지 않았냐고 문책을 하고서는

직접 상수리나무로 찾아가

압살롬의 심장을 찔러버리죠.

 

다윗이 살려달라고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요압의 판단은

반란의 주동자를 살려두었다가는

훗날 다시 복수의 칼을 들 것이라 생각하여

압살롬을 찌른채로, 부하들과 함께 그를 쳐 죽여버립니다.

 

그리고 수풀 가운데 구멍을 파서 시체를 던지고

이스라엘 저주의 상징인 돌무더기를 쌓았죠.

 

압살롬을 잃게 된 반란군은

싸울 수 있는 구심점을 잃게 되면서 뿔뿔히 도망치게 됩니다.

 

 

 

요압은 반란군을 제압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소식병을 보냈고

승리의 소식을 전하러 간 병사는

다윗의 질문을 받게 되는데요.

 

요압과 압살롬의 전투는 어떻게 되었냐는 다윗의 질문에

병사는 압살롬의 사망 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다윗은 병사들이 모두 보고 있는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서

아들의 죽음에 대해 크게 슬퍼하며 통곡하였죠.

 

너무나도 크게 우는 소리에

병사들은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슬금슬금 왕의 눈치를 보며, 조용한 분위기를 유지했습니다.

 

다윗에게 돌아온 요압은

이 모습을 보고서는

오늘 모든 우리 백성들이 다윗 왕을 위해 싸워서 힙겹게 이기고 돌아왔는데

왕이 반란군을 위해 울고 있으면

우리 백성들은 뭐가 되냐고 면박을 줍니다.

 

요압이 왕보다 계급이 낮은데도, 서슴치 않게 면박을 주는 건

그만큼 이스라엘에서의 요압의 입지가 컸다는 것을 의미하게도 했죠.

 

다윗은 요압의 말을 듣고서는

반란군 토벌에 성공한 병사들을 고생했다며 치하하였습니다.

 

그리고, 반란군에 가담했던 자들은 용서하는 유화책을 펼치지만

다윗은 자신의 아들을 직접 죽인 요압에 대한 마음의 앙금은 풀리지 않아

군대 사령관인 요압의 지휘를 박탈하게 되죠.

 

다음으로는 요압의 사촌인 아마사를 군대사령관으로 임명하였고

이는 반란군의 주요 세력이었던 유다 지파의 마음을 돌리며

동시에 요압의 입지를 좁히려는 계산도 함께 깔려 있었습니다.

 

압살롬의 반란은 국정의 문제뿐 아니라

가정적인 문제에서도 그 원인을 꼽을 수 있었는데

자식을 위하는 마음에 무조건적인 용서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사례를 보여주었죠.

 

 

다윗의 첫째 아들인 암논이

이복 여동생에게 강제로 욕보였다는 것은

그 시대상의 기준으로도

처녀를 건드리는 자는

돌로 쳐 죽여야된다는 기준이 있었습니다.

 

또한, 이집트의 왕족 근친혼의 기준과는 달리

이스라엘의 율법에서는

근친상간은 돌로 쳐 죽이는 죄목이었고

여성의 동의도 없었으니, 암논은 사형에 마땅한 죄였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첫째 왕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처벌도 내리지 않았으니

이에 암논의 친오빠인 압살롬과 앙금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다윗은

압살롬에게 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하고서는

막상 궁에는 들어오지 못하는 2년을 보내게 했더니

압살롬은 자신을 더더욱 무시하는 아버지라 생각하며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죠.

 

다윗은 젊은 시절 인기 많은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으나

지난 영상 다윗과 밧세바 편에서 언급했듯이

왕이 되고서는 부하의 아내를 빼앗고

그 일을 덮기 위해 부하를 죽음에 빠뜨리기도 했죠.

 

이러한 다윗의 행보는

자식교육도 전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여러 면에서 자신의 업보를 스스로 쌓아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서는

다윗 내의 세력간의 대치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는데요

다윗이 왕이 되던 시절부터, 이스라엘 민족의 조화를 위해

여러 이스라엘 지파를 챙겨주었던 행보로 인해

개국공신이었던 유다 지파의 반발이 커져갔고

이는 압살롬이 반란을 진행할 수 있는 결정적 보탬이 되었죠.

 

하지만, 압살롬이 죽고 나서는

다윗은 그동안 서운해하던 유다 지파에게 손을 내밀어

더더욱 신경 써주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이 서서히 불만들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모든 세대의 정치라는 것이 다 마찬가지지만

한쪽 편을 들어주면, 다른 한 쪽편이 불만이 쌓이고

반대 편의 손을 들어주면, 또 다시 다른 편의 불만이 쌓이는 거죠.

 

유다 지파와 가까워진 것을 검증이라도 하듯

전쟁을 마치고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복귀를 했는데

유다 지파가 단독으로 다윗을 환영하게 되었고

이에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은 격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다 지파들은

압살롬에게 붙어서 반란을 일으켰고

이를 제압한 것은 전국에 있는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이었는데

다윗은 이들을 포용한다는 이유로 유다 지파들만 챙겨준 상황이었죠.

 

 

오늘은 지난 세계사 영상에 이어

다윗과 압살론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던 시절부터 유다 지파의 지지를 받았으나

이후 타 이스라엘 지파와의 유화 정책에서

성공적인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했으며

자식 교육의 실패가 같이 겹치게 되면서

결국 왕위 계승을 이어받을 두 아들을 잃게 되었죠.

 

또한, 평생을 동고동락하면서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요압과의 관계에서도

압살롬을 죽였다는 사실에 그의 계급을 박탈함으로써

사이가 멀어지게 됩니다.

 

이는 자신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군 전체의 노고를 헛되게 만든 것으로

왕에 대한 충성심을 떨어뜨리게 되는 처사이기도 했었죠.

 

이로써, 압살롬의 반란뿐 아니라

또 다른 반 다윗 세력들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