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치기 소년 출신의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쓰러뜨린 계기로 인지도가 상승하기 시작하여
후일 유다 지파의 지지를 얻으며 이스라엘 2대왕에 오르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은
여부스 인의 영토였던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다윗성을 쌓아 올리고 성궤를 옮겨와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게 되죠.
다윗은 튼튼한 군사력으로 대제국을 형성하고
평화로운 통치는 이어가는 듯했으나
인기 절정의 군주 다윗은
왕이라는 권력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부하장수와 그 가족에게 나쁜 죄를 범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주변 암몬족의 왕이 바뀌게 되어
선왕을 조문하기 위해 사신을 보냈는데
암몬족은 사신을 조문객이라 여기지 않고, 정탐하러 왔다 생각하여
이스라엘 조문객들을 잡아다가 수염을 깎고
엉덩이 부분만 옷을 찢어 모욕으로 되갚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에 다윗은 자신의 조카이자 군대 사령관인 요압에게 명령을 내려
암몬 정벌 전쟁을 벌이게 되죠.
요압은 그동안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배력을 넓히기 위한 일등공신이었으며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의 공로를 인정받아 명실상부한 이스라엘의 2인자였습니다.
요압의 군대가 출동할만큼 큰 규모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시기
궁에서 편안히 낮잠을 즐기고 있던 다윗은
개운하게 한숨 자고 일어난 후
산책하다 궁에서 목욕하던 여자를 발견하게 되죠.
그녀는 요압 군대의 전투를 잘하기로 소문난
히타이트족 출신의 전사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다윗은 매혹적인 모습의 밧세바를 강제로 취하였고
이에 밧세바는 다윗의 아이를 임신하기에 이릅니다.
이를 두고 겁탈이었다
혹은 밧세바도 원했기 때문에 간통이었다 하는 논의들이 있지만
어쨌든 다윗으로서는 그간 쌓아올렸던 덕망도 한순간에 날아가며
유능한 부하장수와의 관계도 무너지는 사건이었죠.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자신이 행한 일을 감추기 위해
한창 전쟁터에서 싸움을 하고 있는 우리야에게 특별 휴가를 줍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의 동침을 가지게 하여
밧세바 뱃속에 있는 아기의 원인을 덮으려 했죠.
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강했던 우리야는
전우들이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혼자서 편하게 아내와 집에서 보낼 순 없다며, 휴가를 거절합니다.
다윗은 몇 차례 집으로 돌아오라고 권유했으나
우리야는 자신의 부대에서 벗어나질 않았죠.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른 다윗은
총지휘관인 조카 요압에게 밀서를 보내
우리야의 불충에 대한 내용을 담아 전쟁터에서 죽게 만들라는 명령을 내리고
이에 요압은 밀서의 명령을 수행하게 됩니다.
암몬 성의 가장 공략하기 어려운 곳을 골라 우리야의 부대를 투입하였고
우리야는 부대원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다 전사하게 되죠.
요압은 성을 공격하다 전멸당한 우리야의 일을 다윗에게 보고하였고
다윗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왜 함부로 요새 공략을 시도했냐고 질책하면서도
전쟁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으니, 다음에는 잘해라며 요압을 격려합니다.
충직한 부하를 자신의 욕망으로 적군의 손을 빌어 살해한 다윗은
우리야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밧세바를 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로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나서
예언자 나단이 등장하여 다윗에게 이런 말을 하는데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 날 손님이 오자
부자가 자신의 남아도는 양과 소 대신에
가난한 사람의 하나뿐인 어린 암양을 잡아다 손님에게 대접했다.’
이야기를 듣던 다윗은 펄쩍 날뛰면서
그 부자를 잡아다가 4배를 배상해줘야 된다고 하니
나단은 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합니다.
부하를 속여 아내를 빼앗고는 결국 부하까지 죽였으니
이제부터 칼이 당신 집안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라 예언을 합니다.
다윗과 밧세바에 관한 영화로는
1951년작 그레고리 펙, 수잔헤이워드 주연의 ‘다윗과 밧세바’가 있습니다.
그레고리 펙은 오드리 햅번과 로마의 휴일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이며
수잔 헤이워드는 다수의 작품에서 연기하여
50년대 골든 글러브 여우주연상과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였죠.
다윗은 부하장수 우리야를 죽이고
결국 밧세바를 얻으며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나
밧세바와의 관계에서 생긴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죽게 됩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위로하였고, 둘은 다시 아기를 가지게 되는데
두 번째로 태어난 아이가 바로 솔로몬이었으며
그는 어려서부터 다재다능한 영특함을 지니고 있었죠.
하지만, 영특한 솔로몬의 탄생과는 별개로
이스라엘은 혼란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다윗이 헤브론에 있던 시절 낳았던 장남 암논과
이복 형제인 셋째 아들인 압살롬은
왕위 계승문제로 서로 사이가 좋지만은 않았는데요
둘째 아들 길르압은 어릴 적에 죽었기 때문에
장남과 셋째가 왕위 계승 서열의 우선 순위였습니다.
압살롬에게는 친동생 다말이 있었는데
암논이 평소 연정을 품고 있었고
암논은 사촌인 요나답과 상의를 해서는 다말을 꾀어내게됩니다.
지금 자기가 아픈데, 누이동생이 직접 주는 음식을 먹고 싶다고 꾀병을 부려
자신의 침실로 유인하는데 성공하죠.
아픈 이복 오빠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갔지만
암논은 그 자리에서 다말을 범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남자가 여자를 욕보였을 때
아내로 삼게 하는 방법으로 명예를 구제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암논은 그 조차도 실행하지 않고서는
종들을 시켜 다말을 질질 끌어내 집 밖으로 쫓아내버리죠.
다말의 친오빠 압살롬은 하염없이 우는 여동생의 모습을 보고 놀라서는
자초지종을 알게 된 후,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우선은 다말에게 지금은 잠잠히 있으라고 합니다.
압살롬은 이 상황을 두고 직접 암논을 찾아가거나 분노 표출을 하지 않았는데
이 사건에 대해서 왕인 아버지 다윗이 어떠한 처리를 하는지 상황을 주시했죠.
또한, 이에 대해 다른 분석으로는
압살롬은 왕위 계승권 후보자로서
암논을 제치고 자신이 다음 왕이 되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기 때문에
타이밍을 보고서, 암논의 명예를 손상시키기 위해
이 사건을 스캔들로 활용하기 위해 참았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암논과 다말의 사건에 대해 소식을 알게 된 아버지 다윗 왕은
충격을 받아 심하게 노여움을 표출했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윗 자신도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빼앗았던 전례가 있어
자신의 아들을 징계할 명분이 부족했으며
암논을 후일 왕위를 물려줘야 할 장남으로 인식하고 있어
이번 일은 큰 실수 정도로 넘어가게 되었죠.
암논에게 아무런 징계와 처벌도 일어나지 않게됨을 확인한 압살롬은
가엾은 여동생을 자신의 집에서 보호하며
속으로는 제대로 칼을 갈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2년 후, 암논과 다말의 사건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잊어버린 듯 묻히게 되었을 때쯤
압살롬은 자신이 소유한 목장에서 큰 잔치를 열게 됩니다.
양털을 깎는 파티 날이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목축이 주요 산업이라
양털 깍는 날은 다 같이 기뻐하는 날이었죠.
압살롬은 형제들을 모두 초대하였고
암논 또한 2년간 그 일에 대해 별 반응들이 없자
아무런 의심 없이 잔치를 즐기러 파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압살롬은 여동생의 일에 대해 그동안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이복 형에게 복수하는데 있어
전혀 죄책감을 갖지 않고 부하들을 시켜 형의 목숨을 빼앗게 되죠.
암논이 살해당하자 다른 왕자들은 무서워서 집으로 돌아갔고
다윗은 압살롬이 모든 왕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옷을 찢으며 통곡을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왕자가 죽었다는 소식은 정정되고
암논을 제외하고는 모두 무사했다는걸 알게 되었고
암논을 죽인 압살롬은 그대로 외할아버지인 그술 왕 탈매에게로 도망가
3년동안의 도피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압살롬이 예루살렘을 떠나 도피생활을 한 지도 3년이 지났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압살롬을 잡아 처벌을 해야만 할 것 같은데
문제는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원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거기다 다윗은 자신의 뒤를 이어받을 첫째 왕자가 죽고 나서는
그다음으로 왕위 계승을 이어받을 자가 압살롬이란걸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심 아들인 압살롬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시절 이스라엘에서는
처녀를 욕보인 사내는 돌 맞아 죽는 율법이 있었는데
암논은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으니
압살롬의 행동이 율법을 대신해서 집행한 부분도 있었죠.
이렇게 첫째 왕자는 죽고, 다음 왕자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다윗 왕의 조카이자 이스라엘의 2인자 요압이 나섭니다.
그는 여인 하나를 불러다 과부처럼 위장을 시키고는
다윗에게 보내고는 연기를 시키는데요
여인의 대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한테 자식이 둘 있었는데, 둘이 싸우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죽여버렸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동네에서 살인자가 났다고
사람들이 살인자를 죽이려고 하는데
저는 그 아들마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요.’
이렇게 속이 빤히 보이는 연기를 하고나니
다윗은 요압이 보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서는
집 나간 압살롬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을 내리죠.
요압은 그 길로 그술로 가서는 압살롬에게
아버지가 그리워한다고 설득하였고
압살롬은 짐을 싸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아들을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다윗은
막상 압살롬이 돌아온다고 하니
당분간은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게끔 조치를 취하며
예루살렘에서는 지내지만, 왕궁에는 출입을 못하게 하였죠.
왕족이 왕궁 출입을 허가받지 못했다는 것은
사회적으로 왕자의 체면을 땅으로 떨어뜨리는 일이었고
동시에 죄인으로 취급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그래도 아들이 이복 형제를 살해한 것에 대해
반성하는 기색을 어느 정도 보이고 나면, 궁에 들어오게 할 생각이었는데
압살롬 입장에서는 예루살렘에 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집에도 못 들어가게 하는 푸대접인지 섭섭함이 쌓여갔죠.
압살롬이 예루살에 돌아온 지 2년이 지나도록 궁에 출입을 못하자
자신을 설득했던 요압을 찾아가게 되는데
요압 역시 아버지처럼 그와 거리를 두게 됩니다.
점점 인내심의 바닥을 드러낸 압살롬은
결국 자신의 분노를 요압의 밭에다 불을 질러버리는 것으로 보이게 됩니다.
아버지에게 뺨 맞고 화풀이는 요압에게 하는 형국이죠.
밭이 불타오르자 재빨리 나타난 요압은
‘왕자님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따져들었는데
압살롬은 더더욱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유령취급할꺼면 뭐한다고 나를 다시 불러들였나’는 주장을 하게 되죠.
일이 이쯤 되니, 다윗은 아들을 불러들여서
너가 형을 죽인 걸 눈감아줄 테니,
너도 이제는 얌전하게 지내라면서
과거에 있었던 일을 마무리하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암논과 다말의 사건이 있고 나서
7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대화가 부족했던 다윗 부자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어가고 있었는데요.
다윗은 압살롬의 행실을 용서했다고 했지만
압살롬이 지닌 아버지에 대한 마음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죠.
이러한 둘 사이의 관계를 중간에서 중재한 자는 요압이었는데
그가 압살롬에게 지니는 감정은 호감이 있는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암논이 사망한 현 시점에서 유일한 왕위계승자였던 압살롬이
다른 세력과 결탁할 것을 경계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스라엘 내부에서
슬슬 반 다윗 세력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압살롬과 다윗왕의 불화는 반역으로 이어질 수 있었고
이에 요압은 국가 분열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해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의 마음속 반항은 커져가고 있었고
왕을 대신해서 백성들의 송사를 대신 들어주던 일을 맡고 있었던 압살롬은
그 과정에서 자신을 추종하는 세력을 모으고 있었는데요
과연, 압살롬은 다윗에게 반기를 들게 될지는
다음 시간에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유대인 역사 8번째 시간으로
다윗과 밧세바
그리고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해보았는데요
젊은 시절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해 영웅으로 추앙받던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왕이 되었지만
왕의 자리에서는 유능한 부하의 아내를 탐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밧세바를 빼앗기 위해
그의 남편을 위험한 작전에 투입해 목숨까지 앗았죠.
다윗의 아들인 암논은 아버지의 여색을 닮아
이복 누이동생인 다말을 범했으며
이에 다말의 친오빠인 압살롬은 완벽한 복수를 위해
2년간 숨죽이고 있다가 암논을 제거하기에 이르죠.
하지만, 다말 사건에 있어 아버지의 미적지근한 태도는
압살롬에게 분노를 심어주게 되었으며
압살롬의 주변으로 세력들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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