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의 조상인 히브리인들은
구약성경 이집트 탈출기인 출애굽기에 따르면
모세를 따라 이집트를 떠났는데요.
모세가 죽고 난 이후, 지난 영상에서
후계자인 여호수아가 예리코의 전투를 거쳐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면서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했습니다.
12지파는 고대 이스라엘의 12개 부족으로
야곱과 요셉의 후손들을 의미하는데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 지파 등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유다 지파가
가나안 남부에 정착하면서 훗날 유대인이 되죠.
가나안은 시나이 반도와 아나톨리아 사이에 있는 해안지역을 말하는 옛 지명이며
일반적으로는 성경에서 말하는 요단강,
즉, 요르단 강 서부지역을 뜻합니다.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 정착하게 된 배경으로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가나안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여러 종족들이 문명을 이루고 살고 있었습니다.
기원전 3천 년부터 기원전 1500년경에 이르는 청동기 시대 무렵부터
셈족 계통의 아모리족들이 살았는데
아모리족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바빌로니아를 세워
함무라비 법전으로도 유명한 종족이었죠.
그 외 이집트인들과 힉소스인들이 조금씩 이 지역으로 왔고
후기 청동기 시대인 기원전 16세기에서 13세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나톨리아의 히타이트족이 공격해 오기도 했지만
주로 이집트가 통치하게 되죠.
이러한 배경에서 여러 민족들이 함께 살고 있는데
구약 성경에서는 이곳에 살고 있는 민족들을
가나안 족속들이라고 호칭합니다.
기존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던 이집트인들과 여러 민족들도
외부에서 쳐들어오는 잦은 약탈자들에게 시달렸는데
그 약탈자들은 히브리인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하피루인이었습니다.
그러다 기원전 13세기 말에 가서는
이집트의 지배력은 약화되고
히타이트족은 당시 온갖 지역을 침략하던 바다 민족에게
거의 몰살 당하게 됩니다.
바다 민족은 남유럽과 에게 해에서 발원하여
지중해, 아나톨리아, 가나안, 이집트 등
약탈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문명을 파괴하고 다니던 민족이었죠.
그들은 이집트와 가나안도 공격을 했으며
이집트는 람세스 2세 시절과 람세스 3세 시절
바다민족의 거센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으나
군사력과 국력을 많이 소모하게 됩니다.
결국 이집트의 지배는 바다 민족 중 하나였던
블레셋인이라 불리는 필리스티아인들에게
남가나안의 거주를 허용하게 되는데
대신 다른 바다민족들을 쫓아내달라고 요청했죠.
필리스티아인은 그렇게 이집트의 지배하에 터를 잡는가 싶더니
얼마 후부터는 ‘여기는 원래부터 우리 땅’이라는 것 마냥 지내게 되고
이집트는 더 이상 가나안 남쪽 지방과
북쪽 산지 영역까지 관리할 힘을 잃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히브리인들은
가나안 북쪽 산지에 정착하기가 용이했고,
필리스티아는 남부 연안에 5개의 도시국가로 연합체를 결성하죠.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에 자리잡은 히브리인들은
추후 사울왕이 히브리 민족의 통합된 나라인 이스라엘을 세우면서
필리스티아인들과 잦은 갈등을 빚게 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었던 여호수아가 죽고 나서는
히브리인들은 가나안에 정착하며
유목민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하는데요.
이스라엘의 왕정이 시작되기 전에는
새로운 정착 생활을 하며 종교상의 문제라든가
이민족들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그때마다 영웅처럼 민족을 구해내는 판관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출애굽기 이후에 여호수아기를 지나
다음으로 나오는 사사기에 해당하는데요
개신교에서는 사사로 번역되는 판관들은
하나님의 사명을 받은 자들로
평화로운 시기 때는 최고 재판장의 역할을 맡아 하고
이스라엘 민족이 위기에 처해지면
그 상황을 구해내는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서는 판관기에 해당하는 내용들에 대해서는
모두가 사실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성서학자와 역사학자들간에 논란이 있는 부분이죠.
역사학자들도 성서중에 사실이라고 보는 부분은
모세 이후에 여호수아의 행적부터 인정을 하는 편이며
이 또한 이스라엘이 왕정이 시작될 때쯤의
다윗왕의 시절부터 인정하는 터라
판관기에 대해서는 종교적인 교훈을 주기 위한 이야기가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즉, 히브리인들이 이집트를 빠져나온 후
가나안 정복전쟁을 치루면서
히브리인들과 기존의 토착 종족들이
섞여살게된 연맹국가 체제로 생각하고 있죠.
이스라엘 왕정기가 시작되기전인 판관기의 구조는
일정한 패턴으로 나타나는데
여호수아 사후부터 사울이 이스라엘 초대 왕이 되기까지
약 400년 동안 7번 정도의 비슷한 패턴이 나타납니다.
주요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바알 신이라든가 다른 우상을 섬기게 되고
이런 상황에, 하나님이 화가나서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죠.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고,
그에 맞춰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나타납니다.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는가 싶다가
다시 또 민족 내에 누군가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면서
강도가 한층 강화된 악행을 삼으면
또 다시 하나님은 다른 민족이 이스라엘인들을 공격하게 하죠.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은 기도를 드리고
그에 맞춰 민족을 구원하는 지도자가 나타나는 일정한 패턴이며
악행의 강도는 세지는 구조입니다.
이는 판관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고, 왕이 통치하는 사회에서도
똑같은 흐름을 보이다가 바빌론 유수로 이어지고,
점점 타락하다가 오랜 침묵시대를 가지고서는 예수가 등장하죠.
즉, 구약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이 모세의 탈출 이후
여호수와기를 거쳐 판관기로부터는
이러한 타락과 구원의 반복성을 보이고 있는데요.
기독교에서는 성경을 구약과 성경으로 나누지만
유대교에서는 구약만을 성경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유대교에서는 자신들의 유일한 성경에 대해
오래되었다는 의미의 ‘구약’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에
율법과 예언을 뜻하는 ‘타나크’라고 부르죠.
유대인 역사에서 판관기는 고고학적인 증거를 찾기는 어려우나
이스라엘 왕국 건설 이전의 정복사, 사회적 여건 등을 연구하는데 주요한 자료로 쓰이기도 하는데요.
판관 중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판관이라 하면
초인적인 힘을 지니고 있으며
헤어스타일 변화의 비극적 인물로 알려진 ‘삼손’이 있습니다.
삼손의 이야기 속에는
인간의 욕망과 폭력, 배반 등의 내용들이 아우러져 있어
현대 사회까지도 영화나 소설로 제작되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판관기에서는 삼손이 죽고 난 이후에도
거침없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담겨 있죠.
삼손의 시대인 판관기 13~16장에서 이후에는
가장 대표적으로 혼탁했던 사회를 반영하는
19장에서 ‘레위인과 그의 첩’이라는 사건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와 베냐민 지파에 관한 사건인데
어떤 레위 사람이 여행을 하다가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서 벌어진 사건이죠.
산지 깊은 곳에 사는 레위인은 집안에서 자신의 첩과의 불화가 있었고
첩은 화가 난 나머지, 다른 남자를 찾아나서 집을 4달간 비우게 됩니다.
하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레위인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 그녀의 행실을 탓하지 않고
마음을 열고서는 화해를 하며 다시 찾으러 가는데요.
친정에 가 있던 아내와 장인을 만나서는
장인에게서 딸과 헤어지지 말라는 의미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레위 일행이 돌아오던 길은 녹록치 않았는데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서 불량배들을 만나게 되죠.
그들은 성경에서는 비류라고 표현이 되어 있지만
이는 다른 말로 ‘벨리알의 아들’.
소위 말하는 사탄의 아들이라는 뜻이었죠.
비류들은 남녀 가리지 않고, 문란한 자들이었으며
이에 레위인에게 몸을 요구하며 데려가려 했으나
레위인은 그들에게 본인 대신 자신의 첩을 내주게 됩니다.
아침에 돌아온 첩은 죽음을 맞이하고
남편은 이를 두고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죠.
그리고는 비류들에게 복수하려면
이스라엘인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켜야 된다고 생각해서
시신을 열두 토막을 내서는 12지파에게 각각 한 조각씩 보냅니다.
이스라엘인들은 분노하게 되고
사건의 발상지가 베냐민 영토였던 만큼
베냐민 지파 사람들에게 비류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지만,
베냐민 사람들은 되려 같은 땅에 사는 그들을 옹호했죠.
이에 다른 지파들은 베냐민 지파의 배신이라 여기고
이스라엘 종족의 내전이 발발하게 됩니다.
숫적으로는 2만 5천명의 베냐민 지파의 군대보다
이스라엘 전체의 군대가 10배는 더 많았지만
베냐민 지파의 군대는 당시 전투 기술인 돌팔매질 스킬이 뛰어나서
두 차례 전쟁에서 이스라엘 군사들이 40,000명이 죽게 됩니다.
돌팔매질은
기원전 10세기 이전에는 전투 기술 중 하나였는데
시간이 지나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릴 때도 활용되었죠.
전쟁에서 불리해진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결국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에게 승리하게 되는데
베냐민 지파는 600명의 남자들 만이 살아남게 됩니다.
이 전쟁 이후로 다른 지파들은 절대로 자신의 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시집보내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죠.
하지만, 같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생각에
또 다시 하느님께 후회의 기도를 올리며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도 결혼을 시켜야겠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자신의 딸들은 시집보내지 않겠다 맹세를 했고
베냐민 지파가 존속해야 하니
베냐민 남자를 어떻게 결혼시킬까 고민을 합니다.
여기서, 생각해낸 고안책은
베냐민 지파와의 전쟁에서 모이지 않았던 족속을 체크하다 보니
‘야베스 길르앗’에 사는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에 이스라엘 인들은 이들에게 죄를 물게 됩니다.
자신들의 12지파를 유지하기 위한 베냐민 지파의 아내가 될 사람들을
야베스 길르앗에서 얻기로 결정하죠.
그리고는 야베스 길르앗에 가서는 처녀만 제외하고는 모두 멸족시키고서는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과 결혼 시키게 됩니다.
이러한 예제처럼
사사기라 일컬어지는 판관기에서는
이스라엘 왕정이 일어나기전에 대혼란의 사회상을 다루고 있으며
타락과 구원의 반복으로 혼탁한 세상을 보여주고 있죠.
성경에서는 이 시대에 이스라엘 인들이 왕국을 세우기 전,
과도기적인 시대로 왕이라는 구심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음대로 행동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역사학자들은 판관기의 해당하는 부분은 모두 사실이라고는 판단하기 어려우나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고부터
기원전 11세기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질 때까지는
혼란한 시대가 이어졌다는 정도로 보고 있죠.
오늘은 유대인 역시 3번째 시간으로
영상 초반부에는 고대 이스라엘인들
즉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을 차지하게 된 국제적 정세를 다루보았는데요
이집트인들을 포함해 여러 토속 민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블레셋이라 불리는 필리스타인들이
가나안을 공격하면서 남부에 자리잡게 되었고
이집트의 지배력이 약해진 상황을 틈타
히브리인들이 정착하기에 용이한 상황이었습니다.
영상 후반부에는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지기전인
판관기 시기에 대한 특징과 예제를 정리해 보았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판관기에서 가장 유명한 판관으로 알려진
삼손 이야기를 다루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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