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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4대 문명] 무신론자 관점 유대인 역사 1 - 이집트 모세, 세계사

Buddhastudy 2023. 5. 18. 20:20

 

 

 

지난 영상까지 고대 이집트 역사를 12 회에 걸쳐 업데이트했는데

람세스 2세 편에서 모세 이야기를 잠깐 언급한 적이 있어

이번 영상에서는 유대인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람세스 2세의 재위는

기원전 13세기의 이집트를 거의 독차지 하였으며

히타이트와는 잦은 분쟁을 치러다가

결국에는 히타이트 공주와 결혼을 하며, 평화 시대를 보내게 되었죠.

 

당시의 히타이트가 영향력이 쎈 강국이었지만

세월이 지나 기원전 1170년대에 이르러 히타이트는

동지중해 민족인 바다 민족에게 파괴되며 크게 분열하게 됩니다.

 

바다 민족은 이집트도 공격하였으나

람세스 3세에 가로막히게 되었고

진로를 바꿔 가나안을 침입했는데

바다민족은 그 곳에서 유대인과 싸우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현대 사회에도 세계 곳곳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데

유명인으로는 스칼렛 요한슨, 데이비드 베컴,

다니엘 래드클리프, 제이크 질렌할 등이 있는데요.

 

유대 민족에 대해 기원을 알아보자면

유대인은 서쪽 셈족 출신의 유목민으로

기원전 2천 년경 아브라함이 이끄는 히브리인들이 가나안에서 생활했지만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 나일강 하류로 이주하게 됩니다.

 

그런데, 유대인이라는 명칭과 히브리인, 이스라엘인들은

같은 민족인 듯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 헷갈리기도 하는데요

제가 신앙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대략적인 구분을 해보겠습니다.

 

우선, 유대인들의 고대 사람들을 가리키는 히브리라는 단어는

구약 성경 창세기를 참고하자면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인 아브라함과 그 민족을 부르는 이부리라는 명칭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부리이동하여 다니는자‘, ’가로지르는 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원래 유목민었던 생활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데요.

유대인들이 지니고 있는 철학 중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있었던 곳은, 내일 내가 있을 곳이랑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유대인은 정착생활이 아닌 항상 이동하면서 다녔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주 위치가 자주 바뀐다는 말이었죠.

하지만, 이러한 위치 변화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부분에도 적용을 하게 되는데

유대인들의 삶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 하기도 합니다.

오늘 내가 겪은 어려움이, 내일도 계속 이어진다면

외적인 것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건 모두 본인 탓이다.’

 

그래서인지, 세계적으로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대체적으로 이전보다 더 발전된 사람, 더 성공한 사람의 이미지로

발전지향적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기도 합니다.

 

가로지르는 자라는 의미를 지닌 이부리또한

신분이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옮길 수 있는 자를 뜻하고 있기도 하죠.

히브리인은 이부리라는 말에서 나오게 되었고

초기 유대인들은 방랑을 하다,

이집트에서는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하고는

이집트에서 벗어날 때부터는

이스라엘의 자손이라는

브 나이 이스라엘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됩니다.

 

이후 세월이 지나면서, 유대민족 국가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왕국으로 나뉘어 존립하다가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하고 유다왕국만이 남게 되어

남은 민족에 대해 유대인이라는 편리한 호칭으로 부르게 되었죠.

, 고대에는 히브리인과 이스라엘인과 같은 의미로 쓰이다가

시간이 지나며, 이스라엘 12지파 중 유대인이 있었고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되면서

유대인들만이 남게 되었던 겁니다.

 

 

 

유대인들에게 아브라함이 시조라면

이들에게 최초로 집단적 주권의식을 인지시키고

자립의 길을 걷게 한 인물은 모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집트의 람세스 2세 시절

혹은 다른 파라오 치세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나

어쨌든 그들을 핍박했던 이집트를 탈출해서

가나안 땅으로 향한 유명한 지도자이죠.

 

모세라고 한다면, 세실.B.데밀 감독의 1956년작

찰턴 헤스턴, 율 브리너 주연의 영화 십계가 떠오르는데

헐리웃 대작 사극의 전성시대를 상징하는 영화이기도 합니다.

무려 런닝 타임이 220분으로 3시간 40분짜리 영화로

작품을 감상하려면 탄탄한 체력이 필요하겠죠.

 

이집트에서 살아가던 소수 민족 유대인은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나자

다수의 저항세력이 생겨날까 두려워했던 통치자 파라오가

유대인 말살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악랄했던 방법으로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그대로 두지만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없애라고 했었죠.

 

이러한 말살 정책에 대해서는 성경을 근거로 두고 있지만

그 진위여부에 대해서는 여러 학자들이

사실이다 아니다논란거리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잘 알려진 모세의 탄생 신화가 나옵니다.

오래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아카드 제국의 왕이었던

사르곤 1세의 탄생신화와 비슷한 구도를 지니고 있지만

오늘은 모세 이야기이니, 모세 신화로 풀어보겠습니다.

 

유대인 일족에는 레위 가계의 아므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신의 고모의 딸인 사촌 요게벳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갖게 되는데, 그중에 셋째가 모세였죠.

 

남자아이가 태어났으니, 이집트 정책에서는 이를 가만두지 않았고

부모들은 모세를 살리기 위해 나일강으로 흘러보냅니다.

그리고는 강에서 목욕을 하던 파라오의 딸이 아기를 구하게 되고

자신의 아들로 키우게 되죠.

 

이렇게 나일강에서 발견했다는 이야기로 알려져 있지만

성경의 출애굽기에서는 모세를 강에서 건졌다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이를 두고, 원문 번역서에 있는 부분을 다시 정리하자면

레위 가문에 한 남자가 있었는데, 아내를 맞이했고

사내아이를 낳았더니 너무나 잘 생겨서 3달 동안 숨겨서 길렀죠.

 

그러다 점점 숨길 수 없게 되니, 왕골 상자에다가 역청과 송진을 발라

그 속에 아기를 두고는 강가 갈대숲에 두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아기의 누나가 멀리서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마침 파라오의 딸이 목욕을 하러 강에 나온 거죠.

파라오 딸이 목욕을 하다 상자를 발견하고는

시녀에게 가져오게 한 다음,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울고 있었던 겁니다.

아니, 이 아기는 생김새가 히브리인 같은데.” 하고 동정심을 느끼는데

숨어있던 꼬마. , 아기의 누나가 나타나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려면 유모가 필요하실 것 같은데

잘 아는 히브리인을 하나 소개해줄까요?” 라고 묻죠.

이를 승낙한 파라오의 딸은 유모를 소개받았지만,

실은 아기의 어머니였던 거죠.

파라오의 딸은 기뻐하며, 유모에게 돈까지 얹어주며,

이 아기에게 젖을 먹여 길러달라 부탁합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게 되면서

공식적으로는 파라오 딸의 아기가 되어

이집트의 왕자로 살아가게 되죠.

이로써, 아기는 물에서 건져냈다는 뜻을 지닌

모세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스토리로 모세를 갈대밭에서 구해냈다고 하며

이슬람교에서는 모세의 이름에 좀 더 의미를 부여해서

바구니가 강물에 던져졌다고 해석하고 있죠.

 

그런데, 이 모세라는 뜻은 이집트 단어로는

낳다’, ‘자녀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어

이집트식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요

가령 신왕국 시절 초반부를 이끌었던 투트모세 1, 3세도

투트 신의 아들이라는 투트-모세였으며

람세스의 이름도 라-모세-수로

태양신 라가 그를 낳았다 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이집트의 왕자로서 살아가다가

히브리인이 이집트인에게 학대를 받는 장면을 보고서는

분개하여 이집트인을 살해하고는 암매장을 하는데요.

정작, 다음 날에는 히브리인끼리 싸우는 것을 말리려고 했다가

되려 그들은 모세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그래서 우리도 죽일꺼냐고?” 하는 반문을 듣고서는

모세는 전날 저지른 죄가 탄로날까 봐 모든 것을 뒤로한 채,

현재 사우디 북서쪽의 미디안 땅으로 도망을 가게 됩니다.

 

 

 

미디안 땅으로 도망간 모세는 그곳에서 가족을 꾸리고는

80세가 될 때까지 양치기하며 살고 있다가

이집트에서 핍박받고 있는 히브리인의 민족해방을 위해 이집트로 돌아갑니다.

 

그리고는 많은 사람들을 이끌며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향하게 되는데

탈출을 하는 과정에서 10대 재앙과 모세의 기적이라는 일이 발생하죠.

10가지 재앙이라는 것은

이집트 역사에 대해 정면으로 부정하는 대표적인 사례인데

세계 역사를 정리하다보면

각기 자신의 민족의 정당성이나 유리한 지점을 주장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됩니다.

마치, 현대 사회에서도 각 나라의 언론사들이 자신의 민족이 정당하고

다른 민족의 단점을 부각하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출애굽시에 동원되었던 10대 재앙은

여호와가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10명의 이집트의 신들에게 심판을 내용입니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1재앙은 나일강의 신 하피에 대해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오염되게 하였고

2재앙은 다산의 신, 부활의 신 헥트에게

개구리가 사방에 뒤덮여 큰 고통에 처하게 했다거나

6재앙에서는 의술의신 이모텝에게 악성 종기가 나게 하는 등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부분에서는

가장 임팩트가 담겨있는 10번째 재앙인

생명의 신 이시스와 사망의 신 오시리스에게 내린 재앙으로

이집트의 모든 사람과 짐승의 첫째 자식에게 죽음을 내린다는 내용입니다.

 

이러한 내용에서 볼 때, 당시 히브리인들의 이집트에 대한 원한이 담겨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네요.

10가지 재앙 이후에 모세를 따르던 군중은 시나이 지역으로 향하는데,

이집트의 파라오가 전차부대를 동원해 계속해서 잡으러 쫓아옵니다.

 

바닷가에 이르러 군중은 갈 곳이 없어 머무르게 되었지만

구름이 시야를 가려 이집트의 전차부대를 막는 동안에

모세가 기적을 일으켜, 바다가 갈라지면서

사람들은 바다를 건너는 데 성공을 하게 되죠.

 

이렇게 바다가 갈라지는 기적의 현상을 두고

성서학자와 고고학자 간의 견해는 다른데

종교적인 섭리와 과학적인 논리 간의 관점이 다른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적인 해석으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바닷길을 열게 하였으며,

-과학적인 접근 방법으로는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은

조수 간만의 차이를 이용했다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1975년 피에르 랑디 주한 프랑스 대사가 진도로 놀러 갔다가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을 목격하고 놀라서는

프랑스 신문에 소개한 적이 있었죠.

 

진돗개로 유명한 전라남도 진도군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초쯤에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열리는데

여기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설 이야기에서는 단골로 등장하는 동물인 호랑이가

옛날 옛적 회동마을에 자주 나타났는데요.

회동마을 사람들은 호랑이를 피해 바다를 건너 모도로 피했는데

뽕할머니만 마을을 빠져나가지 못했던거죠.

혼자남은 뽕할머니는 매일 용왕님에게 기도를 올렸고

그러한 바램은 섬과 육지 사이를 잇게 하는 바닷길이 열리게 된 겁니다.

모도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이 길을 건너와 뽕할머니를 만나게 되었지만

기력을 다한 할머니는 세상을 떠나는 이야기죠.

뽕할머니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바닷길 또한

조수 간만의 차이로 해마다 며칠씩만 모습을 드러내는 길이라고 합니다.

 

옛날 이야기에서 만날 수 있는 모세의 기적은

요즘 시대에는 도로 위에서 뛰어난 한국의 성숙한 시민의식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는데요.

차들이 꽉 막힌 도로에서, 응급차가 지나갈 때는

마치 바다가 갈라지듯이 차들이 옆으로 바짝 붙으며

응급차가 지나갈 수 있는 상황을

모세의 기적이라 표현하기도 합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으로 향하던 도중에 시나이산에서

여호와로부터 십계명을 받았다고 구약 성경에 나오는데요

원래는 전체적으로 10가지가 넘었지만

간추려서 10가지로 구분되어 십계명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주요 내용들은

하느님 이외에 신을 섬기지 말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 강도는 하지말라는 등의 내용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도망쳐나온 히브리인들은 여차저차 가나안에 도착했지만

정작 모세는 가나안에 도착하기 전에 죽게 됩니다.

 

일반적으로는 모세가 젊은 시절

이집트의 왕자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이를 두고도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 등의 몇몇 학자들은

다른 식으로 해석을 하기도 하는데요

모세는 신왕국 이집트 시절의 아톤 신앙을 따르던 이크나톤 치세 때의

귀족이나 사제라고 추측하고 있기도 합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랫동안 다신교 신앙을 이어 왔는데

인류 최초의 종교 개혁이라 하는 이크나톤의 일신교 체제에 있다가

이크나톤이 죽고 나서, 이집트의 정치체제는 다시 다신교로 돌아가게 되었죠.

 

이에 모세가 일신교 체제가 아니라는 것이 불만을 품고

히브리 노예 집단을 선동해 반란을 일으키고는 이집트를 빠져나와 가나안에 정착시켜서

유일신 신앙인 유대교가 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해석도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이집트 역사 후반에 잠시 나온 유대인들에 대해

모세의 이야기와 함께 정리해 보았는데요.

히브리인과 유대인에 대한 명칭

모세의 탈출기에서 나온 10재앙에서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바라보는 생각

바다가 갈라지는 현상에 따른 종교적 관점과

과학적 관점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