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하겠습니다.
황량한 흑백의 도시에 남겨진 노란 관람차 하나가 있습니다.
1986년 노동절에 맞춰 개장을 준비하던 공원은 개장일을 꼭 닷새 앞둔 새벽에, 사고를 당합니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시작된 체르노빌 원전폭발 사고(1986년 4월 26일 오전 1시 24분).
개장하지 못한 공원의 관람차가 움직였던 것은 그 때 단 한 번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사고현장에 출동한 헬기근처로 몰린 아이들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지요.
단 한 번의 운행을 마친 관람차는 버려진 도시를 상징하는 듯 정지해 있었고 남은 것은 여전히 삑삑 소리를 내며 울어대는 방사능 측정기의 소리뿐…
그러나 이 도시에도 봄이 오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돌 틈 사이 피어난 들꽃과, 유영하듯 날개를 흔드는 나비.
호기심 어린 여우의 눈빛.
자연은 천천히, 그리고 끈질기게 인간이 만들어낸 재앙을 극복해가고 있었습니다.
"오목오목 흐르던 풍계천의 맑은 물과
맨발에 저적저적 밟히던 송이버섯의 부드러운 촉감
송이를 태우던 송송한 향기와 자작나무 연기 내음"
- 김평강 < 풍계리 >
탈북작가 김평강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평화로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했습니다.
그의 기억 속에 남은 풍계리는 계곡에는 칠색송어가 가득하고 버섯의 송송한 향기가 가득했던 푸른 숲.
그러나 거듭된 핵실험으로 인해서 산과 계곡은 누더기가 되었고 풍계리는 핵의 두려움을 품은, 죽음의 마을로 변모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머리 위에도 체르노빌의 공포는 항상 존재해왔던 셈이지요.
오늘 지난 10여 년간 여섯 차례의 핵실험이 진행되었던 풍계리 핵실험장이 폐기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이 망가뜨린 그곳 풍계리에도 언젠가 꽃은 피어날 수 있을까.
"수십만 명의 인간들이…
땅을 황무지로 만들고, 생명체라고는 그 어떤 것도
자라지 못하도록 돌더미로 뒤덮고…
나무를 베어내어 금수들이 떠나게 만들었다… "
레프 톨스토이는 작품을 통해서 인간이 망가뜨려 놓은 세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에도
봄이 오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 톨스토이 < 부활 >
그러나 소설의 제목은 역설적으로 < 부활 > 이었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저작권: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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