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인간에 대한 탐구
4) 의식의 확장(2)
앞장에서 설명한 의식의 확장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추가로 설명해 보겠습니다.
저는 우리가 깨닫고 거듭난다는 것은
그 존재가 실제로 크게 변화한다는 얘기라고 했습니다.
자기에게 실제로 크게 변화하고 거듭남이 없다면
그것은 진짜 깨달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착각하고 있거나 또는 집단의 최면 속에 빠진 것입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이런 일이 아주 많습니다.
즉 어떤 수행단체가 있으면
그 수행단체의 내부에서는
엄청난 경지들을 얘기하고
누구누구가 그 경지에 도달했다고 서로가 인정하지만
그 경지가 바깥 사람들하고는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지식적인 측면의 대화가 아니라
인간적인 그릇의 크기로 인한
감화와 인격의 변화에 대한 얘기입니다.
그럴수록 그 단체 사람들은
그것을 바깥 사람들 탓으로 돌리고
자기들끼리 더 단결하고, 내부적으로 결속하는 계기로 삼지만
사실은 그것은
그 집단의 집단 착각이거나
자기 체면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바깥 사람들하고는 안 통하는 진리라는 게
따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진리란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라도 보편 타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람이 진리가 되었다면
그에게서는 진리가 된 사람에게서 나오는
아름다움과 평화와 사랑이 흘러넘쳐나기 마련이며
그 존재의 꽃 피어남에 대해
누구나가 다 인정하고
누구나가 다 그 능력에 큰 감화를 받기 마련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진리라고 정의하고
그를 달성하기 위하여 열심히 추구하는 수행들이
다 사실은 본질상
우리의 마음이 창조한 세계와 그 체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자리를 넘어선 끊어진 자리라 해도
그것을 느끼는 것은 역시 마음이므로
결국은 마음이 창조했거나
혹은 마음이 발견한 자리(마음을 넘어서 있는 자리라서
마음이 창조할 수 없다는 논리를 가진 분이라면
이런 표현이 더 알맞습니다)임에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수십 년간 장좌불와를 했다거나
수십 년을 생식을 하며 토굴 생활을 했다거나
혹은 참선을 했다거나 등등의 오랜 고행을 한 분을
존경하고 위대하게 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고행의 본질을 잘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그런 대단한 고행이 반드시 꼭 필요하다는 입장은 아니지만
그에 상응하는 내적인 폭발을 통한 거듭남의 계기는
꼭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그런 힘든 과정을 거치면서
그 수행자에게는 내면적으로 의식의 폭발이랄까
아니면 의식의 대지진이랄까
어쨌든 의식의 대변화를 통한 의식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는 이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다시 말하자면
내면적으로 크게 죽지 않으면
크게 도를 이룰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발적인 살인범이 아닌
고의적으로도 계획적인 살인자나 큰 사기꾼들에게는
남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내면이
사악한 측면 쪽으로 의식이 대폭 확장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정신세계는 보통 사람과는 상당히 다릅니다.
그들은 보통 사람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대범하고 끔찍한 상념들을
자기 안에 늘상 보유하고 있어
상념의 활동 진폭이 아주 넓다는 얘기입니다.
마찬가지로 큰 깨달음을 얻으려는 자는
적당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나
이와 같이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하며
진정으로 크게 자기를 놓아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의식의 활동은
그 진폭이 그리 넓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은 그 의식과 마음의 작은 진폭주기 안에서
똑같은 일상적인 일을 반복하며
실증도 내지 않고 잘 살아갑니다.
가끔 지루해지거나 실증이 나면
여행을 하기도 하며
자기 삶의 진폭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하되
좀 신선하게 재충전 해보려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종교적 천재들이나
일상에서 탈피하려는 영적 상승 욕구가 강한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일상적인 그 진폭을
완전히 다 깨고, 훌쩍 벗어나고 싶어 합니다.
그 욕구가 더 강렬한 사람은
마음속에서 세상을 다 버리고 다 떠납니다.
모든 작은 원한이나 시시비비를 다 버리고
큰 자비나 존재의 본질 속으로 자기 자신을 던져버립니다.
깨달음을 통하여
진실로 온 우주를 다 얻으려는 사람은
이처럼 자기가 가지고 살아온
자기 안의 전 세계를 다 버려야 합니다.
시시하게 이 작은 목숨 하나 갖고
꾸물거리고 구석에서 조물거리지 말고
전체 우주를 확 뒤집는 큰 의식의 확장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진실한 수행자는
그렇게 수십 년의 고행을 마다 않는 것이고
자기 목숨을 초개와 같이 여기며
자기를 지키고 위하는
아상의 마음을 원수같이 여기는 것입니다.
고행이란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런 남다른 절실한 체험을 통해
의식의 확장이란 열매를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진정으로 깨닫고 거듭나고자 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남다른 각오를 가져라]고 말입니다.
정말로 수십 년 장좌불와할 각오를 가져야 하고,
정말로 자기를 버리고 떠나서
자기 속에 당장 하나님, 부처님이 들어와 사실 정도로
완전히 변모하겠다는
반석 같은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겉으로는 평온할지 몰라도
내면으로는 내가 사는 이 세상과 이 우주가
두 쪽이 나고, 박살이 나야 합니다.
저는 한참 수행할 때
저를 못 버리는 저 자신에게 실망하여
일부러 저의 몸뚱아리를 깊은 산속에 갖다 버린 적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의식의 진폭 안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설사 무슨 일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찻잔 속의 태풍에 불과합니다.
찻잔 속의 태풍도 태풍이라 한다면
찻잔 속의 깨달음도 깨달음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진정한 의식의 확장
즉 수천, 수만 점의 찻잔이 깨어짐 없이는
그것은 진정한 태풍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 안에서 자기만 알고 살아온
이기적이고 못난 과거의 자기를 죽이는 살인범이 되십시오.
자기만 편안히 살겠다고 애지중지 꾸며온
내 집이나 내 회사나 내가 속한 세상을 몽땅 뒤집고 쓸어버리는
몰인정한 존재가 되십시오.
황산벌로 나가는 계백장군이
왜 제 손으로 자기 가족을 다 죽이고 나갔을까요?
나라 하나 살리고 지키는 데도 그런 각오가 필요할진대
우주를 하나 구하는 일에
과연 어떤 각오가 필요하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이
내 마음속의 진실한 의식의 확장을 얘기하는 취지를
잘 이해하여 주시기를 진정으로 바랍니다.
겉으로 대충 하는 척만 해서는 되지 않습니다.
내가 가졌던 내 안의 세계에 대한 집착이 말끔히 청소되지 않으면
나의 내면세계는 여전히 변하지 않습니다.
과연 지금 내가 무엇을 창조하고 체험하려 하는가?
그 시작부터 남달라야 합니다.
참으로 의식이 확장되지 않으면
현미경 속 아메바의 깨우침에 불과한 것이오
내가 붙들고 있는 내 마음 세계 안에서만의 깨달음이란
자기최면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다 생각이고 내가 창조한 것들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삶이 있는 이유는
바로 체험 때문입니다.
체험이 없는 삶은
살아볼 이유가 없는
결론이 이미 나버린 인생입니다.
논리는 논리의 세계에 던져두고
삶이란 이 실존의 세계에서
진실로 가장 큰 창조와 가장 깊은 체험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의식의 확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피올라정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7. 깨달음을 얻어서 법신불을 증득하면(깨달음의 기준) (0) | 2024.12.04 |
---|---|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5. 세상은 더 큰 나 (0) | 2024.11.28 |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3. 의식의 확장 (0) | 2024.11.21 |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2. 의식이란 무엇인가? (0) | 2024.11.20 |
(알라야 정견) 나를 깨우는 명상 #4-1 존재의 이유(인간이란 존재의 이해) (0) | 2024.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