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대학 출신이래서 질문도 달라요. 중도라는 것은 극과 극을 삼가한 자리를 중도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극과 극을 삼가 하는 자리. 그러니까 오늘날 이 사회 현상을 봐도 중도를 잊어버리기 때문에 이 사회가 지금 어지러운 거 같아요. 너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에요.
중도가 뭐냐 하면 옛날에 제가 2대 정종스님을 가깝게 모시고 있었어요. 수많은 대중이 있죠. 우리 지금 천태종단의 불자만 250만의 불자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고, 구인사에 머물러 사는 수백 명 스님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스님들이 모여 사는 이 공간을 승가라고 이야기 합니다. 승가. 승가라고 하는 것을 다른 말로 화합중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부처님의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 모여 사는 무리를 승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아무리 부처님 진리가 좋아도 그 수백 명이 모여 살다 보면 가끔 다툼의 현상이 일어날까요? 안 일어날까요? 안 일어난다는 것은 거짓말이죠.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형제지간에도 질투를 해요? 안 해요? “왜 언니만 예뻐하고 막내만 예뻐하고 나는 뭐야?” 이런 쪽으로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한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서 그 어머니가 고른 사랑을 나눠줘도 불평하고 불만스러운 게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부분입니다.
가끔은 내입에 있는 혀두 물어뜯어요? 안 뜯어요? 가끔은 내 입에 있는 혀를 내가 물잖아요. 그래서 이런 모든 모습을 봤을 때, “아, 세상은 다투지 않고 살기가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제가 큰스님을 모시고 있다 보면 그 수백 명의 스님들이 모여서 사는 과정에서 다툼이 있어요.
그런데 그 다투는 분들이 다 잘하려고 다투죠. 그냥 포기하는 사람은 다퉈요? 안 다퉈요? 다툰다는 얘기는요, 사랑한다는 얘기거든요. 다툰다는 얘기는 뭔가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여러분, 가정에서도 부부가 다투는데 그 다투는 것을 보고 왜 다퉈요? 잘하려고요.
이게 답인데 네가 이것을 답이라고 우기니까 싸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한쪽에서는 그냥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하는데, 한쪽에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되든 말든 네 말대로 해.” 그럼 절대 싸움이 일어나지가 않습니다. 서로가 잘하려고 하는 목표가 같은데, 그 목표를 향해가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다툼의 현상이 일어나는 겁니다.
조직에서 다툼이 있다는 얘기는 건강하다는 얘기에요. 다툼의 합의점을 만들어내는 게 중도입니다. 중도는 이쪽도 극이고 이쪽도 극이에요. 그런데 그 극과 극이 만나서 그 중간선을 잘 정하는 것이 그게 중도입니다. 어려운 거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옛날 큰 스님을 모시고 있다면 그 당시에 집행부에 있는 스님들이 서로 회의를 하는 거예요.
회의를 하다가 의결이 통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큰스님한테 헐레벌떡 올라와요. 올라와서 A라는 사람 욕을 막 해요. “그 스님이요 정말 못됐습니다.” 막 얘기를 하면 그것을 다 들어주세요. “그래. 그래.” 그러면 A라는 사람이 올라와서 B라는 사람을 막 뭐라고 그랬을 때 제가 옆에서 이렇게 앉아있거든요.
그러면 속으로 생각하기를 “너 이제 B 올라오기만 하면 죽었다.” 왜? A가 와서 B의 잘못된 것을 이야기 하니까 분명히 B가 올라오면 분명 혼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여러분, 묘한 게 있어요. 그 옆에서 있어보면요, 그거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그러면 저는 A라고 하는 사람이 본인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나가면 저는 기다리는 거예요. B는 언제쯤 오나하고, 그러면 B혼나는 것을 기다렸는데 큰스님이 오셔서 그 사람이 와서 인사를 드리고 이야기를 하면 또 그 이야기를 다 들어주세요. 그럼 B는 와서 A가 잘못된 걸 다 이야기를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나는 분명히 혼날 거를 기대했는데, 그냥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가니까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B가 왔다가고 난 뒤에 큰 스님에게 여쭈어요. “큰스님, A도 그렇고 B도 그런데 왜 큰스님은 분명히 어떤 쪽의 편을 주지 않으십니까?” 라고 이야기를 하면, “그것도 답이고 그것도 답이니까.”
큰스님이 보신 관점은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은 거예요. 너도 종단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쓰고 있었고, B도 종단을 위해서 애를 많이 쓰고 있었구나. 그런데 너희들이 그와 같은 생각으로 가다보면 합의점은 저절로 이루어질 거다. 그래서 제가 “왜 가만히 계십니까?” 하니까 나보고 “네 말도 맞다.” 그러시더라고요. 그게 세상인 겁니다. 이게 중도에요.
그러니까 중도라고 하는 것은 다시 학문적으로 설명을 드린다면 우리가 삼제원흉이라고. 삼제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하면 공, 가, 중을 이야기 합니다. 첫째 이 세상을 우리가 가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제. 우린 이 세상이 영원한 게 없습니다. 고정불변한 것은 한 가지도 없거든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사살은 다 거짓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월도스님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지금 스님도 정말 진짜일까? 아니오. 요게 때 되면 죽어요. 이게 영원히 과거부터 있었느냐? 아니오. 우리 어머니 우리 아버지가 나를 만들어주셨어요.
그리고 이게 지금 뻘뻘 거리고 다니는 거예요. 지금은 전국에 있는 방송들이 월도스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만, 언젠간 꼴까닥 갈 거거든요. 그러니까 잠깐 동안 존재하는 것이지 영원한 존재가 아니에요. 이것을 가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거짓으로 있는 거예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가제입니다. 실질적으로 존재하는 것 중에 영원한 존재는 없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그러셨어요? 제행무상이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고정불변하게 그렇게 있는 것이 없다. 앞에 있는 탁자에서 부터 모든 것을 다 만들어놨는데, 언젠가는 이것이 다 녹아서 없어질 때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연히 녹아서 없어지는 그 형태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니까 고정불변한 존재가 없기 때문에 거짓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그것을 가재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이것을 가제라고 이야기는 하는데, 눈에 보여요? 안 보여요? 지금 보이잖아. 월도가 보이잖아. 그런데 어떻게 없다고 이야기를 해? 이것을 어떻게 없다고 이야기를 해? 존재를 하는데.
그러니까 이것은 영원하지 않은 것이면서 거짓으로 존재하지만, 그렇다고 눈에는 보여 진단 말이죠. 바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것을 우리는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중재라고 얘기를 합니다. 영원히 존재하지는 않지만 눈에는 보여지기 때문에 이것은 중제. 아까도 얘기했던 중도라는 설명도 됩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영원하지 않고 언젠가는 다 이와 같은 모습이 일시적으로 보여 지는 이것을 중제라고 이야기를 하고, 이것은 언젠가는 없어지는 단계까지 가는 것을 공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것을 공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공-가-중이 사실은 동시에 머무르는 겁니다. 우리 착각으로서 지금 있다-없다-중도다 이런 것을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은 이 부분이 이론상으로 삼제가 원융하다. 삼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거죠.
어느 중간선이라고 하는 것이 나타났을 때 중도고, 어느 쪽으로 치우쳤을 때 공이 되고 가제가 되는 것이니만큼 이 세상의 삶은 견고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에요. 그래서 우리 생활 속에서도 어느 것으로 치우쳐 살 것이 아니고 바로 중도의 삶을 통해서 살다보면 그렇게 싸울 일이 없어요.
막 독을 쓰고 싸우고 난 다음에 보면 다 무상한 거잖아요. 다 허정재배란 말이죠. 그래서 여러분, 부부싸움을 할 때도 이것을 반듯이 때가 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는 쪽으로 생각을 하면, 조금 여유로운 생각이 만들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중도를 실천할 수 있는 멋진 불자들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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