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근_육조단경

[육조단경19]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라 | 나는 이대로다

Buddhastudy 2024. 7. 11. 19:30

 

 

의식이라고 하는 인화지 위에 쏘아서 지금 이렇게 나타났다 이거예요.

그러면 저는 여러분의 인화지 위에 나타난 그냥 상이에요.

이거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참 귀신같이

인간이라고 하는 이것은 아주 예민한 기계라서

이렇게 보면 상이 맺히는데

맺힌 걸 보는 게 아니라

다시 투사해서

이 세계 자체가 이 인화지에요.

 

내가 과학적으로 말을 하고 있잖아요.

망막에 맺힌 상 자체를 보는 게 아니고

이거를 순간적으로 동시에 투사를 해서 인화지에

지금 인화를 해서 보고 있는 중이에요.

 

그럼 인화지가 뭐냐? 이거예요.

눈에는 안 보이지만

눈앞의 세계 자체가 의식의 장이다.

칠판 같은 거다.

칠판 같은 거 위에

인간 같으면 색수상행식의 5가지 몸이 이렇게 펼쳐져 있다.

 

근데 그것이 우리가 집착을 해왔기 때문에

몸도 어딘가에 막혀 있고

색신도 사람마다 기능이, 소통이 안 되고 좀 막혀 있고

감정의 몸도 감정이 좀 뭔가가 하여튼 막혀 있고

생각도 굳어서 고정관념, 선입견 이런 편견들이 군데군데 뭉쳐서 있고

욕망도 이지러져서 욕망도 식색명이라고 하는 쪽으로 쏠려서

욕망도 왜곡돼 있고

그리고 거기에 따른 온갖 정보도

지금 뭔가가 하여튼 왜곡된 상태로

5가지 몸이 깨끗하지 않고 나름대로 왜곡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어서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는 것이

지금 모든 고통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이건 충분히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런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나하나를 고치는 게 아니고

색신 하나하나를 들어가서

막혀 있는데 뚫고 뚫고 뚫고 그게 아니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불교적인 방식은

일반적인 명상은 세밀한 부분을 가서 하나씩 고쳐나가는 방식이에요.

시간이 엄청나게 걸리는 거지.

그런데 이 깨달음이라고 하는 불교

깨달음의 종교에서 보는 방식은

조견_ 5가지 몸을 조견오온

인간의 5가지 바디를

이 피지컬 바디, 이모셔널 바디, 멘탈 바디, 디자이어 바디, 그리고 인포메이션 바디

식까지 모든 것을 비춰 봤더니

조견오온을 봤더니 모두 현상이더라.

생멸하는 현상으로서 이거는 꿈과 같더라.

 

지금 공이라는 말이

보통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냥 쉽게 꿈 같더라고 하면

현상이다 이 말이죠.

현상이더라

 

그러면 현상의 법칙은 찰나에 생멸하기 때문에

본질의 입장에 딱 서버리면

꿈속의 일이더라 이거죠.

 

그래서 꿈에서 깨면

꿈에서 깬다이것이 지금 불교의 핵심인 거죠.

현상에서 깬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5가지 바디의 온갖 고통이

알고 봤더니 이게 지금 꿈이더라.

 

그리고 나는 누구냐?

이 모든 것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있는

텅 비어 있지만

지금 생생한 지금 의식으로, 빛으로 꽉 차 있는

지금 이게 나의 본래 모습이더라.

그러니까 지금 요 오온이라는 것이

인간의 5가지 몸, 5가지 바디 라는 것만 알아도

이 육체에, 색신에 집착해서 사는 것이 훨씬 더 줄어들죠.

 

여러분하고 저가 색신은 따로 있죠.

근데 벌써 수신만 가도 서로 겹쳐 있고ㅎㅎ 겹쳐 있어.

상신으로 들어가면 더 겹쳐 있고.

 

서로의 오라들이, 에너지장들이 서로 이렇게 겹쳐 있어요.

그래서 공업이라고도 하잖아요.

서로 간에 이렇게 겹쳐서 중중무진으로 지금 겹쳐있어, 이미 겹쳐 있어.

근데 그것이 현상으로서도 그런데

본질로 들어가면 이거는 더 정말 한이 없이 겹쳐져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 공부가 굉장히 스케일이 좀 커져야 돼요.

지금 모든 이야기들의 핵심이

현상만 해도 이렇게 기가 막힌데

본질까지 깨닫게 되면

본질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 모든 것이 지금 찰라생멸이에요.

찰라생멸이라는 말만 좀 우리가 실감을 해도

금방금방 방금 점심 먹은 거 점심 먹고 차 한잔 한 거

그때 나누었던 대화들 싹 싹 지나갔잖아요.

기가 막히게 지나간다는 거죠.

 

이렇게 기가 막히게 지나가는

가서 이것이 실상이 아니다는 요 감각이

또 우리는 육체에 얼마나 집착하는지 몰라요.

육체에 집착하고 있거든요.

근데 육체만 바디가 아니라

내 몸이 육체만 바디가 아니라

감정체가 있고, 생각체가 있고, 욕망체가 있고

그리고 이 불교에서 식이라고 하는, 유식이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이 식의 세계까지

다 내 몸인 걸 안다면

이 색신에 대한 집착이 훨씬 더 줄어든다 이거죠.

 

그래서 이것들이 내외가 명철하다, 이 말은

이것들이 여기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면

이게 뚫려서

모든 것이 다 뚫려서

본질과 현상

현상 안에서의 이 세계들

이것이 모든 게 다 뚫려버리는 것

그러니까 참 우리가 그런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공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 사고방식을 깨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고방식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불교를 안 지도 10, 20, 30년 됐는데

내가 왜 변화가 이렇게 작은가? 따지고 보면

사고방식이 안 변해서 그래요. 아주 간단해.

사고방식이 안 변해서 그래.

사고방식을 바꿔야 돼요.

 

그러면 사고방식을 바꾼다, 이 말은

사고방식의 가장 핵심이

색신을 나라고 하는 것이 가장 기저에 깔려 있어.

 

근데 이거를 한번 깨는 데는

색신 안에 수상행식이 있는 게 아니고

수상행식은 이쪽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인간 인간, 한 명 한 명은 굉장히 자이언트예요.

자이언트.

 

그러니까 이거를 그 작은 데 대한 집착이 모든 고통이죠.

그렇지 않나요?

작은 것에 집착하고 있는 게 모든 고통의 내용이에요.

 

근데 내가 본질까지 안 가더라도

그리고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내 색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에너지장들이 내 밖에.

 

사진 찍으면 그렇게 찍히더라니까

여러분을 에너지 카메라로 찍으면

여러분 주변에 오라가 이렇게 확 이렇게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봤잖아요. 그런 걸.

 

그러니까 이런 걸 도움을 받으면

내가 보는 모든 시야 안이 나야.

그것이 바탕으로서는 보이지 않는 본질로서는 전체고

그리고 감각되는 색수상행식으로서는

사이즈들이 좀 다양하게 지금 있는 거죠.

 

그래서 일단은 지금 이 색신에 대한 집착부터 깨나가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그러니까 색수상향식에 대한 해석을

다른 시선에서만 봐도 훨씬 더 달라진다.

 

저도 처음 해본 소리예요.

오온을 이런 식으로 해석을

저도 처음이야. 저도 처음 해보는데

근데 맞는 것 같아, 이게.

그렇잖아요.

내면이라는 게 몸 안에 어디 있는 게 아니야.

이게 지금 나의 내면이야.

상황 이해되세요?

그게 맞아.

그렇게 우리가 봅시다.

다음에 넘어가서

 

/본질인 평상심은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것을 두고 따로 청정심을 선정삼매 등에서 찾는 것이 병이다./

 

이 말도 굉장히 중요한 대목이에요.

의식이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자기를 찾잖아요.

자기는 현상의 나본질의 나가 있어요.

현상의 나는 색수상행식, 몸과 마음, 이게 현상의 나예요.

근데 그 모든 현상의 나

모든 사진은 인화지 위에 나타나지

인화지가 없으면 사진 이미지로 나타날 수가 없죠.

 

이건 과학이잖아요.

과학적으로 이 원리만 알아채도

내가 보고 있는 모든 이미지는 인화지 위에 나타난 거다.

그 인화지가 나의 본질로서의 의식이다.

 

인화지가 칼라가 있으면 안 되잖아요.

인화지 자체가 칼러가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걸 청정하다고 그래.

컬러가 있으면 왜곡되지.

완전히 투명하게 텅 비어 있어야

모든 현상의 모든 컬러를 완전히 드러낼 수가 있잖아요.

 

그렇다면 내가 보세요.

오늘의 주제는

하나는 오온이 나의 바디를 말하는 거다.

5가지 바디

색신, 수신, 상신, 행신, 그리고 식신

이렇게 5가지 바디로 이해를 하면

이 세계 자체가 내 몸이 돼버리니까

현상으로서의 내 몸

그리고 이 전체가 다 또 이거 위에 나타나는

그런 본질로서의 몸.

 

이렇게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우리가 나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중요한 점

오늘 주제

[나는 이대로다]예요.

[나는 이대로다]

이대로다 에서 이대로가

이대로의 내용이 본질하고 현상이죠.

오케이 맞아요.

 

나는 이대로다할 때

이대로의 내용은 본질하고 현상이다.

본질은 불생불멸이라서 불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지금 나를 불생불멸의 나가

이미 이렇게 되어 있어서

이거 위에 찰나생멸로

온갖 바디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면서 변하고 이렇게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나는 이대로다에서

이 불멸의 바디를

내가 본래 있는 거예요? 새로 얻어야 하는 거예요?

이 불멸의 인화지를, 모든 지금 사진이 드러나고 있는 이 인화지 자체가

본래 있는 거예요? 아니면 새로 얻어야 되는 거예요?

 

공간으로 이미 있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대로다이 말은

공간으로서 이미 있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되면

현상은 그 위에 인연 따라 다양하게 지금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러면 이렇게 큰 것이 이렇게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게 다 내 속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거잖아요.

 

그럼 이대로를 두고

내가 어떤 경지를 가서 뭔가를 해야 될 거냐 이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가 나를 찾을 때

이대로인 것을 깨닫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어떤 노력을 통해서 어떤 경지에 가서

그때 미처 몰랐던 나를 발견할 것인가?

어떤 것이 맞겠어요?

 

그래서 우리 마음공부에서는

찾는 순간 틀려버려.

찾는 순간 이대로를 배신해 버려.

 

이대로라는 말은

본질은 본질로서 본래 청정해서 완벽하고

보리자성이 본래 청정하다 했잖아요.

그리고 단용차심이다 했잖아요.

 

그리고 모든 것이 다만

청정한 것이 위에 이렇게 변화로 나타나는 것이라서

우리가 이대로다

이대로 줄인 말인데

보통 사람들은 있는 이대로를 많이 쓰지.

 

있는 그대로를 줄이면

이대로죠.

본질도 이대로고, 현상도 이대로라서

여기에 내가 개입을 해서

무언가를, 내 딴에는 더 좋게 만든다?

뭐 더 깨끗하게 만든다?

이런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 하는 자각이 필요한 거죠.

마음공부할 때는.

 

그래서 마음공부는 항상

내가 기존에 나름대로 마음공부도 하고 수행도 해왔는데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알아차려야 돼요.

무엇을 잘못했는가.

 

무엇을 잘못했느냐 하면 이대로를 배신했어.

이대로를 두고 내 딴에는 뭔가를 구했어.

뭔가를 막 이렇게 했어.

그게 잘못이라는 걸 빨리 깨닫는 것이

공부의 터닝포인트예요.

 

지금 우리 마음공부에 가장 중요한 게

이대로를 두고

이 우주까지 포함하고 있는 이 엄청난 스케일의

이 지금 본질과 현상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는 이거를 두고

이 조그마한 육신을 나인 줄 알고

이 색신을 나인 줄 알고

이걸 움직여서 뭔가를 이렇게 해보려고

그리고 내면은

여러분 고깃덩어리 속에 무슨 내면이 있어요

근데 이 내면을 조작해 보려고 이렇게 했다 이거죠.

 

그게 아니라

실상, 실제로 나의 내면은 이 세계가 나의 내면이야.

그러니까 이런 상황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알아챈다면

우리 마음공부는 잘못한 것을 알아채고 바로 잡는 거다.

 

바로잡는 것은

잘못한 것을 놓는 거다 이거예요.

왜냐하면 이대로가 저절로 돌아가고 있어서

이대로가 저절로 돌아가고 있어서

정말 무위자연이에요.

동양적인 언어가 참 좋아.

무위자연이에요.

이대로 무위자연이에요.

 

그런데 여기를 내가 달려들어서

나의 그 쪼잔한 욕망 가지고

이거를 막 왜곡하려고 한 것이 전부 고통이었다.

그게 지 마음대로 안 되는 게 그것이 고통이었다.

이 내용을 알아채면

이제 많이 묵었다 아이가, 이제 그만하자.

 

그러면 뭘 잘못했는가를 알아야 돼.

이게 핵심이야.

여기서 더 나은 무언가를 아는 게 아니에요.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배우는 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내가 지금 어떻게 잘못해 왔는가

그 핵심은

이대로가 진리인데

이것을 우리들은 만족 못 하고

그러니까 이걸 만족 못 하는 것을

현실을 만족 못 하고

이대로의 다른 말은 현실이라고 해요.

 

이대로의 다른 말이 현실이야.

근데 우리는 지금까지 교육이

현실은 잘못되었다고 교육을 받아온 거예요.

그래서 인간 이성으로 이 현실을 나은 사회로 바꿔가야 한다.

더 진보해야 되고, 진화해야 되고 해야 한다고 하는

그 이상주의에 계속 속아왔던 게

지금 우리의 잘못의 핵심이에요.

 

이상주의가 고통을 만드는 거예요.

마음공부조차도 이상주의로 하려고 해왔다.

그래서 하여튼 어디가 지금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는 게 핵심이야.

 

그래서 보세요.

어디가 잘못되었는 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찾았다는 것이 문제였어요.

가장 중요한 우리들의 방향이 틀렸어.

마음공부의 방향이 틀렸어.

 

지금까지는 찾았어.

그럼 찾았다는 것이 틀렸으면

안 찾아야 되잖아요.

안 찾는다 이거를.

 

사마타 위빠사나

지관, 멈추면 본다.

보는 건 뭘 봐요?

안팎으로 본다할 때 안팎은 뭐예요?

밖은 물질세계고 안은 마음의 세계인데

그 마음의 세계는 이 쪼잔한 육체 안에 있지 않아요.

이 자체가 지금 물질세계이면서 마음의 세계야.

 

그런 식으로 본다면

본질과 현상의 이겹살인데

현상은 다시 몸과 마음의 세계,

물질과 마음의 세계로 또 이것도 나눠진다고 할 수 있네.

상황 이해돼요?

 

그러니까 인수분해도 잘해야 돼.

미분도 하지만 또 적분도 해야 돼.

통틀어서 본질과 현상인데

이게 지금 하나로 딱 이렇게 되어 있어.

눈앞에서 지금 하나예요.

 

이렇게 마음이 돌아온다면

마음공부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서 얻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내가 잘못해 왔다는 것을

그 방향성이 틀렸다는 것을

먼저 알아채야 된다.

 

그 방향성의 핵심은 뭐냐?

찾았다 이거예요.

찾았다 혹은 구했다.

찾았다 구했다, 이 말 이해되세요?

 

그러면 실제로 우리가 찾는 게 어디 있는가?

우리가 찾는 것은 본질이잖아요.

그 본질이 어디 있는가?

본질 속에 들어앉아 있어.

한 번도 본질을 떠난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 순간에 찾으면

찾는 놈이 본질이에요.

절대 주체야.

본질은 절대 주체야, 절대 주체.

 

그러니까 절대 주체를 확인하려면

찾으세요.

찾는 순간

찾고 있네하고 자기가 확인이 돼.

 

주체를 확인하는 법

자기도 모르게 찾아.

그 순간 , 찾는 이놈이네.”

이해되세요?

 

요약을 하면

지금 첫 시간을 요약을 하면

공부는 여러분도 열심히 하시겠지만, 저도 열심히 해요.

저 공부량 엄청나게 많아요.

 

그러면 계속 따져보는 거예요.

계속 이 원리에 의해서

따지고 따지고 따져보는데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문제는 돌아서면 까먹어버려요.

 

이 말은 돌아서면 과거의 압력에 의해서

또다시 뭘 찾고

하여튼 과거의 업력에 의해서

제일 업력 중에 큰 거는 분별식이에요.

식 중에서 제일 큰 거는 분별식이에요.

다시 분별해 버리는 거야.

그러니까 본질을 놓친다.

이 한마디로 말해서.

 

이렇게 같이 모여서 함께 본질을 딱 함께 깨어 있으면서

본질에 대해서 깨어 있다가

돌아서면 또 이걸 까먹고 현상계로 떨어지고

현상계에서는 분별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 버리는

그거 반복하죠?

 

그래서 제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마음공부라고 하는 것은 화두예요.

딱 화두 하나 드는 거예요.

아무리 제가 고민을 해봐도 까먹으니까.

안 까먹으면 화두 들 필요 없어요.

 

본질을 안 까먹는 사람이라면

그냥 언제나 본질의 자각 속에서 살아.

근데 본질에 대한 자각이 화두예요.

그러니까 일반인한테는 본질을 자각하는 것이 화두야.

 

지금 상황 이해되세요?

자각 속에서 사는 것이 답인데

그 자각이라는 말을

일반인들은 뭘 어떻게 할지 모르니까

화두를 가지고 이 자각 속에서 살도록 만드는 것.

 

늘상 드리는 말씀인데

화두는 도다.

 

동양에서는 도를

형수파리形守破理의 원리로 도를 닦았다.

그러니까 화두는 도다.

그리고 이 도를

_ , 가다 일본 발음으로 가다.

가다를 잡아서

_ 수없이 반복을 해서

그 가다를 익히는 것

가다는 뭐예요?

자각이에요.

자각의 다른 말은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

 

본질이 자기가 본질임을 의식한다.

자각, 의식이 의식을 의식한다.

이 본질에 대한 자각을 우리가 확보를 해야 돼요.

형을 얻어야 돼.

폼을 얻어야 돼.

폼을 얻는다, 이 말 이해되세요?

 

하여튼 저는 먼저 배워야 된다. 이거죠.

폼을

그러니까 폼을 얻는다, 이걸 방점을 찍는다는 거야.

 

, 이게 자각이구나.” “이게 의식이구나하는 그걸 한번 얻어야 돼요.

폼을 배워야 돼.

 

그래서 하여튼 저 같으면

대학교 시절에 두 가지 운동을 열심히 했어요.

하나는 테니스를 쳤고 하나는 수영을 했어요.

테니스 칠 때도 테니스장에 안 들어갔어.

테니스 배울 때 안 들어갔어요.

더 이상 안 들어가고 밖에서 폼을 배웠어.

그래서 수없이 섀도우, 모션을

정확하게 폼을 배우고.

 

폼이라는 거는 뭐냐 하면

테니스 칠 때 이렇게 치는 게 가장 잘 맞더라, 라는 게 폼이에요.

수많은 경험을 통해서 정해진 그 폼이라는 게 있다 이거예요.

그걸 먼저 배워서

그래서 섀도우를

섀도우복싱하는 것처럼 이렇게 쳐보는 거 아세요?

수없이 쳐봤어.

그래서 처음에는 없이 해보고 다음에는 라켓 가지고 해보고

집에서도 하고 뭐 틈만 나면 이걸 했어.

그래서 어느 정도 몸에서 어느 정도 가다가 나오더라고요.

그러면 테니스장에 들어가

그러고 쳐요.

 

그러면 어떤 형태로 공이 일방적으로 오지는 않아요.

이리 봤다가 저리 봤다가 하잖아요.

그때 배운 게

진정한 폼은 다리구나.”

폼 대로 하려면 빨리 끝까지 가야 돼.

그러니까 테니스는 손으로 치는 게 아니구나.

다리가 그 자리에 빨리 가 있어야지, 그 폼대로 칠 수 있어요.

안 그러면 폼을 놓쳐.

 

그러니까 폼대로 친다, 이 말은

굉장히 다양한 형상이 있어요.

 

그러니까 테니스 그렇지

수영도 자유형, 자유형폼 있잖아요.

되게 수영장 가서 수영하는 사람 보면

폼 안 배우고 친 사람은 바로 알아.

허부적거려 그냥.

근데 폼대로 하는 사람은

모양도 예쁠 뿐더러 정말 아름다워요.

이게 지금 이해되세요?

 

그러니까 하나의 폼을 배워서

수없이 반복을 해서 완전히 딱 익히면

몸에 완전히 익힌다, 지킨다.

폼을 얻어서 지키면

 

, 어느 순간에 이제는 폼이라고 하는 그게 없어져 버려.

폼이라고 하는 생각이 없어.

그전까지는 끊임없이 폼을 계속 생각하면서 해야 되고

어느 순간 가면

도의 세계가 나타나는 것은 파부터

몸에 배어 있어서 아무리 해도 폼대로 해

아무리 해도 폼대로 하고 있는 것

그게 파, 폼이 깨지는 때가 와요.

그다음부터는 자유자재인 거예요.

 

폼대로 하는데 폼대로 안 해.

이게 자유자재야.

이거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라는 건 이해되죠.

도의 세계.

 

제가 하여튼 요 며칠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동양에서 도를 중시하는 이유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이해를 해도 몸에 익히지 않으면

까먹어버린다는 이 사실.

 

그래서 자각이라는 것이 이렇게 법문 들을 때는

, 이거구나하고 와도

몸에 익히지 않으면 가버리는 거예요.

허무하게 가는 거 이해하시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그래서 화두라는 걸 만들었어.

그래서 이 화두를 가지고 화두는 뭐냐 하면

자각 자체예요. 자각 자체

의식, 이 의식하는 거.

의식이 자기를 의식하는 거.

 

그러니까 그거를 끊임없이 일상에서

행주좌와 어묵동정의 화두 들기

딱 이거 하난 거예요.

 

그래서 완전히 익으면

그다음부터는 화두도 사라져

자유자재가 될 때까지.

 

그러나 그때까지는

이거 하나를 철저하게 철저하게 해나가는것

이게 공부예요.

공부의 다에요, .

제일 요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