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역사/전우용 사담

전우용의 사담 정설남녀 7화 - 3.1 운동과 최초의 여학교 사이의 관계는?

Buddhastudy 2019. 5. 15. 20:30


3.1운동과 최초의 여학교의 연결고리는?

191931일 서울에서 3.1운동이 시작돼요.

1919227일 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보성사 인쇄소의 옛자리입니다.

이 곳에서 인쇄된 독립선언서는 전국 각지로 배포되었죠.

 

드디어 역사적인 그날, 31일에 민족대표 33인 중 참석자 29인은 이곳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어요.

학생들은 탑골공원 팔각정으로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죠.

3.1운동은 민족대표 33인과 학생대표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죠.

 

1960년대 이화여고 강연 육성 정재용 선생

바지춤에 주머니 속에 넣어 두었던 종이를 꺼내어

조선독립선언서 하니까 조선독립만세!”

 

하지만 3.1운동이 지방 곳곳으로 퍼져나갈 수 있던 동력에는 각 지역 최초의 여학교들이 존재합니다.

3.1운동을 능동적으로 이끈 여학교 학생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볼까요?

 

먼저 서울의 이화학당입니다.

이화학당의 학생이었던 유관순열사와 그 친구들이 함께 이곳에서 달려 나가 시위에 참여한 곳이죠.

 

서울의 3.1운동 소식은 지방의 여학교 학생들에게도 전달되었습니다.

1900년 개교한 기전여학교는 전라도지역의 최초의 여학교입니다.

기전여학교는 항일비밀 여성단체 송죽회의 3대 회장이었던 박현숙 선생이 재직하며 3.1운동을 이끌었습니다.

이에 313일 열린 전주 3.1운동에서는 기전여학교 학생들이 대활약하게 됩니다.

 

기전여학교 박현숙교사

신대한의 애국 청년 끓는 피가 뜨거워로 시작하는 열성가를 부르며

여성 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전라도 지역에서는 3.1운동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학교가 한 곳 더 있습니다.

바로 광주 최초의 여학교인 수피아여학교입니다.

광주 3.1운동 당시 수피아여학교 전교생과 교사가 참여했다 교사와 학생 23인이 일경에 체포되었다.

 

특히 수피아여학교의 박애순 교사는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어요.

그 결과 광주 부동교 및 작은 장터에서 열린 3.1운동에 시민들이 모여들었고,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은 시민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주며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뒤에는 수피아 학생단이며 북문통으로 들어오는 것은 농학생 단체라...

자매의 만세성은 애원성이 완연하다

-조선독립신문, 1919311일자

 

그렇다면 영남지역 3.1운동의 효시가 된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여기, 대구입니다.

대구지역 최초의 여학교인 신명여학교는 191938일 서문 외장터에서 열린 3.1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습니다.

신명여학교의 졸업생이자 교사 임본선과 이선애는 재학생들과 태극기를 준비하고 서문 외장터로 달려나갔습니다.

학생들은 일본 기마대를 뚫어가며 만세행렬을 이끌었죠.

 

상황은 부산 역시 비슷했습니다.

이곳은 부산 지역 최초의 여학교인 일신 여학교, 현재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죠.

일신여학교 학생들은 주경애 교사, 박시연 교사의 주도로 기숙사에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태극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태극기를 들고 기숙사에서부터 좌천동 거리까지 뛰어나가며 대한독립만세를 부르죠.

그러자 수백 명의 군중이 시위에 동참했죠.

학생들이 일으킨 이 태극물결은 부산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3.1운동의 중심에는 그 지역 최초의 여학교들이 있었다는 것은 명실공해 보입니다.

독립운동 당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