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불교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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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한 여자와 살면서
그를 아내라 부른다.
그대는 한 남자와 살면서
그를 남편이라 부른다.
그대는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진정으로 아는가?
그대에게서 태어난
자녀에 대해서 진정으로 아는가?
그들의 눈을 침묵 속에서
들여다 본적이 있는가?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안녕하세요. 정목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당신 누구세요” 라고 묻는다면 우리는 보통 관계나 이름을 이야기 하죠. 우리는 어디서 어디까지 일까요? 진정으로 관계와 이름이 나일까요? 가까운 관계에 부모님이나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와 지인들. 우린 그들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는 거 같지만 사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닌지요. 가끔은 잠시 멈추어서 서서 자신을 향해 “나는 누구인가?” 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나무아래 앉아서 오늘 첫 곡은 하얀불탑으로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여러해 전에 몽골에 갔을 때 구입한 음반인데요, 굉장히 음악소리가 좀 애잔하지요. 마두금이라고 하는 악기입니다. 말머리 뼈에 줄을 달아서 연주하는 건데, 몽골 사람들은 말과 함께 태어나서 말과 함께 죽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말과의 관계가 아주 보통이 아니죠? 그 뼈에다 줄을 달아서 연주를 함으로서 말과에 대한 어떤 우정, 가족과 같았던 것을 애도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티베트불교의 영향을 받은 몽골에는 라마불교라고 하죠? 그래서 흰불탑들이 사찰주변에 가면 있어요. 하얀색으로 탑을 칠을 해서 여러 개 층층이 있기도 하고, 그런 곳에 모여서 기도도하고, 뭐~ 이렇게 탑돌이 같은 걸 하면서 염불을 하는 거를 본적도 있어요.
으흠. 몽골은 지금도 물이 풍족하지는 않은 나라이죠. 물이 얼마나 소중했으면 징기스칸의 대법령, 그 대법령을 자사크라고도 부릅니다만 법령에 보면, 물과 재에 직접 오줌을 누는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 이런 말이 있을 정도에요. 얼마나 물이 귀했으면 흘러가는 강물에 소변을 본다할지라도 사형에 처하겠다라는 법령이 정해졌겠습니까? 그 뿐만 아니라 징기스칸의 법에는 보면, 물에다 직접 손을 씻을 수도 없어요. 바가지나 이런 그릇에 물을 담아서 손을 씻고. 그리고 또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이 옷을 입어서 때가 꼬질꼬질 해야 그때한번 빠는 거지 아무 때나 세탁을 해도 안 돼요.
백의민족인 우리나라로서는 이 옷이 너덜너덜해지고 누더기가 될 때까지 까맣게 때가 탈때까지 빨래를 못한다. 그러면 백의민족도 아니겠지만 징기스칸의 법령으로 보자면 우리는 거의 중형을 받게 되는 거죠? 중죄를 저지른, 그리고 아마 사형에 처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2100년이 되면 지구의 많은 부분들이 사막화가 된다고 그래요. 그만큼 건조하고 물이 없어진다는 뜻이지요. 사실 우리가 펑펑 흘리면서 쓰고 있는 물, 그 물 한방울 기름 한 방울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우리는 이렇게 풍풍 흘려서 쓰고 있는 물이 지구촌 어딘 가에서는 피보다도 소중한 것인지를 생각하다보면 꼭 징기스칸의 법령이 아니라 해도 물 쓰는 태도와 습관, 기름을 쓰는 태도에 대해서도 좀 더 생각해 보게 됩니다.
추석이죠. 8월 한가위, 고향에 가는 것. 우리나라 사람들은 8월 한가위가 되면 풍요로움과 풍성함을 먼저 떠올리지 않는가 싶어요. 오늘은 그렇게 마음속에 둥근 보름달이 떠오르기를 바라는 마음 담아서 음악을 보내드릴게요. 컴실버문.Come silver moon
..
보름달이 이렇게 두둥실 떠서 강물에 비치면 은빛물결처럼 이렇게 찰랑찰랑찰랑하죠. 그 풍경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음악이었죠? 컴실버문이었습니다. 사실 추석이라고 그러면 우리는 설 때에 그 명절느낌보다는 오히려 오곡백과의 풍성함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이 추석이어서 아무래도 마음까지도 더 풍요로워지고 보름달이 둥실 떠오를 거 같지 않나요? 모든 과실들, 모든 그 열매, 매달리는 것들이 가장 많이 매달리는 때가 9월, 가을이기도 합니다. 가을이 주는 그 풍요로움의 느낌이 아니라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삶이 더 팍팍할까? 그런 생각도 해보게 되네요.
바랑속의 책한 권, 지난시간에 들으셨죠. 그런데 바랑 속에서 어떤 책이 나올까? 매시간 궁금해 하실 거 같아요. 오늘은 어떤 책을 읽어드릴까? 정말 많이 고민하며 이책 저책 놓고, 이걸 할까? 저걸 할까? 좋은 책이 워낙 많으니까요. 그렇게 고민하다가 오늘 이 가을에 왠지 열반하신 법정스님의 그 칼칼한 목소리가 좀 듣고 싶어졌어요. 스님은 무소유라는 책을 통해 일반대중에게 엄청난 파급효과로 스님들의 삶과 불교 삶을 전하셨죠? 오늘은 스님 떠난 뒷자리. 그러나 왠지 거기에 오두막이 있을 거 같고, 스님께서 우리에게 날려 보내주시는 오두막 편지를 목소리를 다시 한 번 생생하게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두막 편지>
진정한 만남은 상호간의 눈뜸이다.
영혼의 진동이 없으면
그건 만남이 아니라 한때의 마주침이다.
그런 만남을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끝없이 가꾸고
다스려야 한다.
좋은 친구를 만나려면
나 자신이 좋은 친구감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친구란
내 부름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이다.
이런 시구가 있다.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 사람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사람한테서 하늘냄새를
맡아 본적이 있는가?
스스로 하늘냄새를 지닌 사람만이
그런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권태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함께 있으면서 부딪친다고 해서
생기는 것만은 아니다.
창조적인 노력을 기울여
변화를 가져오지 않고
그저 맨날 비슷비슷하게 되풀이 되는
습관적인 일상의 반복에서
삶의 녹이 스는 것이다.
생각과 영혼에 공감대가 없으면
인간관계가 투명하고 살뜰해질 수 없다.
모처럼 친구끼리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인 지적 관심사가 없기 때문에
만남 자체가 빛을 잃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은 저마다 따로따로
자기세계를 가꾸면서도
공유하는 만남이 있어야 한다.
칼릴지브란의 표현을 빌자면
‘한 가락의 떨면서도
따로따로 떨어져있는 거문고 줄처럼
그런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거문고 줄은
서로 떨어져 있기 때문에 울리는 것이지
함께 붙어있으면 소리를 낼 수 없다.
공유하는 영역이 넓이 않을수록
깊고 진하고 두터워진다.
행복은 더 말할 것도 없이
절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지나친 것은 행복을 침식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에도
이런 절제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따뜻한 마음이 고였을 때,
그리움이 가득 넘치려고 할 때,
영혼의 향기가 배어있을 때,
친구도 만나야 한다.
습관적으로 만나면
우정도 행복도 쌓이지 않는다.
혹시 이런 경험은 없는가.
텃밭에서 이슬이 내려앉은
애호박을 보았을 때,
친구한테 따서 권해주고 싶은
그런 생각 말이다.
혹은 들길이나 산길을 거닐다가
청초하게 피어 있는 들꽃과 마주쳤을 때,
그 아름다움에 설레임을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은
그런 경험은 없는가.
이런 마음을 지닌 사람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함께 할 수 있어 좋은 친구일 것이다.
좋은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보배이다.
친구를 통해서
삶의 바탕을 가꾸라.
...
귀에 상당히 익숙한 음악이죠? 젊은 수도사가 무용가 타이스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열정적으로 수행한다는 그런 내용이 담긴 종교적인 음악입니다. 마스네의 타이스의 명상 들어보셨습니다.
...
편찮으신 어머니에게 내가 살아생전 무엇을 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면 딸이 저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사실은 이 학생의 간절한 편지를 받고 제가 병실을 다녀왔습니다. 제가 병실에 찾아가 뵈었을 때, 어머니는 온 몸의 호수를 끼우고 전신을 움직일 수가 없었죠. 그런데 저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면서 얼마나 기뻐하시던 지요. 그래서 함께 잠시 기도하고 인생에서 이렇게 활짝 웃어본적이 언제일까? 싶을 만큼 그렇게 즐거운 짧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통증이 힘들다해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처님을 생각하는 그 마음을 잊지 않으시기 바란다 했더니 그것만큼은 자신이 꼭 지니고 가겠다. 그것만큼은 잊지 않는다.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돌아온 뒤, 며칠 뒤에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당도했을 때에도 일념으로 부처님의 명호를 잊지 않고, 정진하는 그 마음 고스란히 가지고 떠나다 보면, 분명히 그분은 극락정토에 탄생하지 않겠습니까? 극락왕생을 다시 한 번 발원하는 마음 담아 어머니가 살아생전 그렇게 아픈 순간에도 ‘바람 부는 산사’가 나오면 따라 부르셨다하니 오늘 제 노래를 영전에 공양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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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때 죽을 것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걸림 없이 사는 삶이 얼마나 더 중요한 일이겠습니까. 오늘 잡보잠경 ‘걸림 없이 사는 삶’ 이 시간 마지막 순서로 들려드려야 겠네요.
<내 마음의 성소> 잡보장경 (걸림 없이 사는 삶)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자기가 아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여
주고받는 말마다 악을 멀리 해
듣는 이에게 편안함과 기쁨을 주어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해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히 행동하라.
제 몸을 위해 턱없이 악행하지 말고
핑계대어 정법을 어기지 말며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고
성내거나 질책하지 말라.
이기심을 채우고자 정의를 등지지 말고
ㅋ원망을 원망으로 갚지 말라.
위험에 직면해 두려워 말고
이익을 위해 남을 모함하지 말라.
객기를 부려 만용하지 말고
마음이 허약하여 비겁하지 말며
지혜롭게 중도의 길을 가라.
사나우면 남들이 꺼려하고
나약하면 남이 업신여기게 되니
사나움과 나약함을 버리고 중도를 지켜라.
바위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흰 눈처럼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 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를 낮추어라.
임금처럼 위엄을 갖추고
구름처럼 한가로우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려라.
때로는 마음껏 여유를 즐기고
사슴처럼 민첩하고 조심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용기 있고 당당하라.
때와 처지를 살필 줄 알고
부귀와 쇠락이 교차함을 알라.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삶이니라.
잡보장경 이대로만 산다면 사는 것도 걱정할 것 없고, 죽음 또한 걱정할 게 없겠죠? ‘걸림 없이 사는 삶’, 우리 그렇게 함께 정진하기로 해요. 나무아래 앉아서 오늘 순서 마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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