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언제든지 원인과 결과가 있어요.
있는데 인과가 없으면 불교 아니거든요, 연기법이기 때문에.
그런데 시상불을 말씀하는 그런 시기에는
인과라고 그럴 때, 삼세인과를 얘기를 해요. 삼세인과.
삼세는 과거세, 현재세, 미래세 해서 삼세인과거든요.
과거세에 지어서 현재세에 받고,
현재세에 지어서 미래세에 받고.
이게 삼세인과 거든요.
요것이 초기에 부처님을 볼 때 시상불, 상을 보이는 부처님을 보는 그때의 가르침이에요.
그런데 금강경에 오면 깊을 심, 둘을 써서 심심인과라 그럽니다.
금강경을 세친보살이 해석한 론이 있는데
금강경은 심심인과다. 깊고 깊은 인과다, 이래요.
그러면 왜 깊은 인과냐?
금강경은 수행을 할 때도 무주상 수행을 해요.
상에 머물지 않는 수행을 해요.
그래서 인이 깊어요.
그러면 성불을 하면 무슨 성불이라고 있죠?
상을 여의는 성불을 해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도 머물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상을 여의고, 보살이라는 상을 여의고, 부처라는 상을 여의고, 중생이라는 상을 다 여의고.
다 일체상, 중생상 보살상, 부처상,
일체 상을 다 여의면 이 일체제상이 증명제불이라 이렇게 나온단 말이에요.
일체제상을 여읜 것을 부처라고 한다.
과가 깊은 거예요. 과가.
그래서 인심과심이라.
수행을 할 때는 상에 머물지 않는, 상에 집착하지 않는 무주상 수행을 하니까
인이 깊죠.
성불을 해서는 또 상을 다 여의는 성불을 하니까 과가 깊잖아요.
그래서 그것을 심심인과라고 그럽니다.
깊을 심, 2개, 깊고 깊은 인과다. 이런 말이에요.
어렵습니까?
잠 오세요? 설마 오전이니까 잠은 안 오겠지~
잠이라는 게 재미없으면 오거든요.
아무리 피곤해도 재미있으면 잠 안 와요.
그런데 아무리 쉬워도 재미없으면 잠 오거든.
이런 법문을 듣고 잠오는 건 반성해야 해요. ㅎㅎ
그말했다고 박수 치시는 거예요?
화엄경 인과는요, 원만인과에요. 원만인과.
원만이란 뭐냐?
인원과만이라고 그래요, 화엄학에서.
인이 원만하고 과가 원만하다. 그래서 인원과만이에요.
인원과만이라는 게 뭐냐?
대방광불화엄경, 이거 경 제목 한 번만 읽어도 그게 전부 지혜의 표현이기 때문에 모자라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그게 인원이에요.
그래서 처음 초발심 보살이라고 그래서 모자라는 게 없어요.
또 최상성불을 했다고 해서 남는 게 없어요.
그래서 인이 원만하고 과가 원만해서
순서는 있되 그 순서마다 다 원만해요.
이래서 화엄경 인과는 원만인과입니다.
시작이라도
마지막 도달한 거와 다르지 않아요.
그걸 원만이라고 그래요.
마지막 도달한 종점이라도 출발점과 다르지 않아요.
그걸 원만이라고 그러거든요.
그래서 그걸 불종불과로 설명하는데요
각지종자, 깨달은 지혜의 종자가 불종이거든요.
또 각지의 결과를 이룬데 그게 불과거든요.
그러면 그 종자를 처음에 심을 때, 그 씨앗을 가지고
싹이나도 그 종자가 그대로 보이지는 않아도 있는 거예요.
싹 속에 있어요.
저는 고향이 충청도인데, 충청도에서는 버릇 없으면 싸가지 없다고 그래요.
싸가지 없다는 그게, 종자가 싹에 잘 보여야 하는데, 싹이 잘 안 보인다 이거죠.
그런데 사실은 있는 거예요.
싸지가 없는 게 없죠. 경책한다고 하는 거지.
그럼 좋은 종자를 심으면 그 싹이 나도 거기에 종자가 있어요.
또 줄기가 자라도 줄기 속에 거기 종자가 있거든요.
그럼 나중에 꽃이 피어도 꽃 속에 종자가 있어요, 안 보여서 그렇지.
나중에 열매가 탁 맺지 않습니까.
그러면 최후에 맺힌 열매나 최초에 심은 종자나 똑같은 거예요.
그래서 이걸 불과라고 그래요.
그래서 최후에 성불한 것이 불과를 이룬 거고요
최초에 발심한 것이 불종을 심은 거거든요.
그러면 이런 화엄경을 듣고
“아, 대방광불화엄경” 하면 그건 불종자를 심은 건데
그 심은 것이 나중에 성불했을 때와 똑같아요.
이게 원만인과에요.
하, 이렇게 재미있는 법문이 어디 있나, 진짜로.. ㅎㅎ
그러니까 이 화엄이 완전히 불교의 최정점이고, 대승의 꽃이에요.
그래서 요 일성 하나밖에 없다,
부처님의 그 해인삼매, 각지, 각체, 각용, 이것밖에 없는 거예요.
대방광각채록, 화엄의 각용을 펼치는 것이 이게 화엄인데
처음 시작도 원만하고, 끝도 원만하고, 중간도 원만하고
다 원만한 거거든요.
그걸 보는 거예요.
자~~ 그다음에 화엄경 본문, 조금만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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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에 세존께서 마갈제국아란야법보리장에 계시면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고
보광명전에서 연화장사자의 자리에 앉으셨느니라.
묘오가 개만하니 이행이 영원히 끊어졌으며
무상법을 통달하셨으며
부처님의 머무는 세계에 머무시며
불의 평등을 얻으시며
장애 없는 세계에 도달하시며
말할 수 없는 법을 말하시며
행하는 바가 걸림이 없으며
불가사의한 법을 세우시며
과거현재미래 삼세를 널리 보시었나니라.
나무아무타불//
화엄경은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에서부터 출발을 해요.
그 깨달은 내용 그것밖에 없어요.
첫 번째 제1회 처음시작도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니’ 여기서부터 출발하거든요.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니 어찌 되었냐?
그 깨달은 지혜의 몸이 삼세에 다 들어간다, 이게 지입삼세에요.
지혜가 삼세에 들어간다.
이 말은 시간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그 지혜의 바다에 비추어진 그림자인 거예요.
아, 이걸 못 깨달아서 중생이에요.
시간은 없는 거예요.
시간은 그 지혜의 바다에 비친 그림자이니까
일찰나의 그림자나 무량겁의 그림자가 똑같이 바닷물이지
그림자는 물 밖에 없거든요.
그러니까 일념이 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인 건 당연한 거예요.
그리고 뭔 말이 있느냐 하면..
[기신이 충만일체 세간이라]
그 부처님의 지혜의 몸이, 지신이거든요.
그 몸이 충만일체세간이요, 일체 세간에 가득한 거예요.
그러니까 부처님의 몸이 온 시방세계에 가득하고
부처님의 지혜가 온 시간 속에 꽉 차서
그걸 시방삼세라고 그러잖아요.
시방삼세가 다 부처님의 지혜 속에 비추어진 그림자인 거예요.
그래서 항상 불지, 불신, 이런 걸 얘기하거든요.
부처님이 지혜를 얻다,
화엄경은 그 깨달은 지혜몸을 이야기하는 거지
상을 보인 그런 시상불, 언제 어디서 태어나서 언제 어디서 돌아가시고
이걸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 깨달은 지혜몸을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여기 두 번째에는 역시 또 깨달은 내용부터 출발하거든요.
[이 때에 세존께서 마갈제국아란야법보리장에서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시고]
그다음 법문은 두 번째 법회를 보광명전에서 하시는데
처음에 정각을 이룬 법보리장이 한 걸음도 옮기지 않고 고대로 보광명전인 거예요.
그래서 이 보광명전이 어디냐? 이게 말이 많거든요.
이게 딴 데가 아니고, 처음으로 정각을 이루신 법보리장이 고대로 보광명전이예요.
보광명이라는 것은 환희 비춘다.
법보리장이라는 것은 깨달음을 얻었다 이 말이거든요.
환희비추는 것이 지용이거든요.
그 깨달음을 얻은 것은 지체인 거예요. 몸이란 말이죠.
이런 몸이 있으면, 이런 그릇과 같은 몸이 있으면 쓸 거 아니에요.
체를 해인삼매라 그러고, 용을 황엄삼매라 그러거든요.
부처님의 불화엄이잖아요, 그 화엄삼매인데
그 화엄삼매는 자제덕용이라, 자유자재하게 그 덕작용, 만덕의 그 작용을 일으키는 걸 화엄이라 그러죠.
대방광이라는 건 지혜의 체이기 때문에 이건 해인이요,
일체 것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그게 대광방각체거든요. 그걸 해인이라 그래요.
그래서 부처님의 그 깨달은 몸을 말하는 것은 해인이고
부처님의 그 깨달은 몸이 온갖 공덕을 드러내는 것은 화엄이다, 이거예요.
그래서 화엄경에는 본삼매가 해인삼매고, 그 주삼매가 화엄삼매입니다.
그래서 해인삼매, 화엄삼매가 기본이 되는 거죠.
여기서도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는데
[보광명전에서 연화장 사자의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처음 부처님 설명하는 내용이 묘할 묘, 깨달을 오,
묘오, 묘가 다 충만하다 이렇게 나와요.
그럼 묘오한 깨달음이다, 화엄가에서 설명하기를
묘를 바를 정, 깨달을 각, 정각이라고도 번역을 하고
착할 선, 깨달을 각, 선각이라고도 번역을 한다.
정각, 선각, 묘오, 뭘 깨달았느냐?
일체 세계 법계가 자기 마음의 바닷물에 비추어진 그림자다, 이걸 깨달은 거예요.
마음뿐이지, 말하자면 각지, 그것뿐이지
거기에 비추어진 내용은 없는 거예요. 그냥 그림자인 것 뿐이에요.
그래서 만날 보면 불신에 대한 설명이 그렇게 많아요.
불신이 충만어법계라. 부처님 몸이 온 세계에 가득하다, 이런 말이 있고요
‘부처님의 공덕이 종종무신이다’ 이런 말,
불신이 충만법계하고 불덕이 종종무진이라, 이게 화엄이에요.
그래서 불덕이 가지가지로 끊이 없는 것은 화엄삼매고
불신이 충만법계한 그것은 해인삼매인 거예요.
화엄경에서는 부처님 깨달은몸을 이야기하는 거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런 형상몸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어렵다고 그래요.
깨달은 몸을 자꾸 형상몸으로 알려고 그러니까 마구 어렵죠.
그런데 알고 보면 아주 쉬운 거예요.
전부가 부처님몸인데
이 그릇이 비추어진 모양인데, 이게 그대로 우리 마음의 비추어진 그림자이지.
이 자체가 없는 거죠.
우리 몸이 전부 마음에 비추어진 그림자이지 자체가 없는 거죠.
그런데 미했다라는 것은
마음은 미하고 형상만 알아서 그걸 미한 거라 그래요.
법계를 모르고 세계만 안다,
세계는 몸이다. 물질이다. 이 시간 속에 공간 속에 있는 게 세계거든요.
세는 시간이고, 계는 장소에요. 세계 계.
세계만 알고 법계를 모른다. 법계는 지혜거든요.
그러니까 일체세계가 다 지혜법계에 비추어진 그림자예요.
그래서 지혜만 알면, 큰 거나 적은 거나, 오랜 거나 짧은 거나,
자제무해한 거에요.
요게 해탈이거든요. 화엄해탈이에요.
그래서 가도가도 처음인 거예요.
한국은 화엄이 참 멋진게 아주 잘해놨어요.
약찬게만 외우면 화엄경에 구성체계를 환희 알게 되어 있구요.
어떻게 구성되었다라는 게.
또 법성게만 외우면 화엄경의 그 원리를 고대로 아주 손바닥에서 유리알 보듯이 해놨어요.
최상지혜를 얻으면 궁과실제 중도상인데
제상지혜를 부처님같이 얻는 것에요.
실제중도상, 진실세계, 중도의 자리에 궁극적으로 딱 도달하면
그다음 마지막에 뭐죠?
구래부동명위불이라,
아, 이거 멋있는 거예요.
가도가도 지혜를 다 얻으면
본래 지혜자리에서 한티끌도 움직이지 않은 거예요.
그걸 아는 걸 불이라고 그래요.
자기가 그대로 원만불이고, 원만세계에 있었다.
그래서 그 원만불, 원만지, 원만각행에서
한 티끌도 움직이지 않았다라는 걸 딱 알았을 때
그게 미묘한 깨달음이 완전히 만족하다 하는 거죠.
오전에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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