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호리호리한 거 좋아하지만
몸 이거요. 순전히 온갖게 모여서 된 거예요.
대변소변이 몸에서 다 빠져나가면 죽어요.
그러니까 좋은 거든 나쁜 거든 몸에는 뭐가 붙어 있어야 해요.
나보고도 몸이 늘어나는 거 같다고 그러는데
나는 은근히 ’난 더 빠지면 안된다‘ ㅎㅎ
더 마르게 될 생각을 안 해요. 쪽 빠지면 죽는 거예요.
아니에요? ㅎㅎ
일부러 살 빼려고 하지 말아요.
이 몸이 뭔가가 여러 가지가 여기에 있어야 몸이지.
몸 형태가 있어야 한단 말이죠.
그다음에 숨 쉬어야 해요.
그다음에 감정, 의식이 있어야 한다고. 있는지 없는지 모르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몸만을 위해서 산다는 게 너무 허망한 거고.
사람도 그렇지, 자기 생각대로 좋아하다가 금방 싫어하기도 그러는데
사람얻으려고 그냥 애를 쓰고 그러면 되요?
그래서 사람을 좋아하되, 좋아하는 건 좋은데
자기 뜻을 가지고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게 무주상 보시입니다.
자식을 키우되 자식이 나한테 효도를 하든,
효도 안하는 게 요즘에는 먹고 튄다고 먹튀라고 그러거든요. ㅎㅎ
효도를 하든 먹튀가 되든, 거기에 전혀 관계하지 않고
“나는 오로지 부모로서 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으로서 내 만족을 삼는다.” 이러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게 뭐를 해주기를 바랬는데 안 해주면 속이 상하고 그러면
그때는 어떤 심정이냐 하면 이런 거예요.
나중에 더 많이 쓸려고 은행에다가 저금을 많이 해 놨는데,
그 은행이 부도가 나서 망해버렸어.
그래서 한 푼 못 받게 됐단 말이에요. 이런 심정이예요.
그러면 자식을 키우되 자식으로부터 뭘 바라고 키우는 것은
부모의 마음이 아니라 은행에다가 저금하는 마음이거든요.
’나는 받으려고 줬는데 네가 먹고 튀었다.
은행이 폭삭 망하니까 한푼도 못 받는다‘ 그럼 얼마나 손해보고 얼마나 억울한 거예요.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재물도 나 죽으면 끝이에요.
임자없는 재물이라는 건 아무 의미 없어요.
내가 아무리 많은 재물을 모아 놨다 하더라도 내가 죽은 다음에는 그건 아무 의미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깨달음이에요. 깨달음.
그래서 마음이 넓어지고 마음이 깊어지고 마음이 밝아지는 것이
그것이 최고로 중요한 건데요.
그걸 수행이라고 그러거든요.
수행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을 넓게 하는 것이고,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이고, 마음을 깊게 하는 거예요.
그게 수행이에요.
부처님은 그런 수행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게 시성정각이거든요.
시성정각을 했을 때, 딱 나타나는게 ’시방삼세가 일각소현이다.‘
요거 딱 오늘 외워요. 오늘 오전 법문 뭐였냐?
“시방삼세 일각소현. 아, 이거 되게 어렵네. ”
예불할 때 보면, 시방삼세 제망찰해, 상주일체 불타여중, 이런 말이 있거든요.
시방삼세에 부처님이 항상 계신다, 이거거든요. 이게 상주거든.
그런데 왜 그러냐 그러면 시방삼세가 없는 거예요.
한 깨달음에게 비추어진 그림자다.
이게 일각소현이라고 일각에 나타난 바다, 이거거든요.
시방삼세가 일각소현이다.
그러면 시방이라는 건 우주인데요, 시방은 다른게 아니고 양변입니다. 두 양, 가 변
양변이 시방인데, 시방은 동방 서방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서방변, 동방변,
동방으로 동방으로 가면 동방의 끝이 있는 게 동변이거든요.
서방으로 서방으로 가면 서방의 끝이 있는 게 서변일 거 아니에요.,
동방으로 아무리 가봐야 동변이 없어요.
서방으로 아무리 가봐야 서변이 없습니다.
그러면 상변 하변, 위로위로 올라가도 올라가도 없어요. 상변이. 위에 끝이 없어요.
아래로아래로 내려가도 아래 끝이 없습니다.
전변 후변, 앞으로 앞으로 가도 앞의 끝이 없는 거예요.
이게 시방은 양변인데, 양변이 깨달음 떠나서 자체적으로 있는 게 아니다.
그게 일각소현이다, 한 깨달음의 나타난 바다, 마음의 나타난 바다.
그다음에 삼세, 과거현재미래가 삼세거든요.
삼세도 마음 떠나서 없는 거예요. 마음 떠나서 과거가 있냐? 없어요.
마음 떠나서 현재가 있냐? 없어요.
마음 떠나서 미래가 있냐? 없어요.
미래나 과거가 내 마음의 그림자인데, 그 자기 마음 찾는 일은 안 하고‘
미래에 쫓아가서 헤매고 과거에 쫓아가서 괴롭고, 이게 전도몽상이거든요.
시방삼세가 따로 없다. 내 마음의 그림자다.
마음이 어두워져서 그림자를 쫓아가는 미혹중생은 마음 밖에 시방삼세가 있는 줄 알고 헤매고 살고
처음으로 정각을 딱 이루는 순간에
... 들리는 소리도 따라가보면 마음 뿐이거든. ...
과거현재미래가, 이게 각소현이요, 각소현.
우리 정각, 우리 본각, 그게 본각 시각 정각 무슨각 무슨각이 많은데 이게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한 일, 일각이다.
일각에 나타난 그림자가 삼세요, 시방이에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는 순간에 해인삼매로 시방삼세가 쫙 바다에 비춘 그림자처럼 보였다 이거죠.
그래서 세계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이 맑을 때 콱 나타나는 세계하고
내 마음이 맑지 않을 때 나타나는 세계하고 전혀 달라요.
세계를 가서 더듬는 건 미혹한 거고,
마음이 깨끗하면 세계는 깨끗하게 되어 있어요.
마음이 넉넉하면 세계는 넉넉하게 되어 있어요.
마음이 예쁘면 세계는 예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내가 예쁜 마음을 가지면 누구를 봐도 예쁜 거예요.
남편이 참 못생겼다, 자기 마음이 못 생긴 거예요. 남편이 왜 못생겨.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불교에요.
심정토정이라. 마음이 깨끗하면 국토가 깨끗하다.
이거거든요.
그래서 꿈꾸다가 꿈을 꾸면 꿈의 세계가 보이는데
꿈에서 깨어나면 깨어난 세계가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부처님이 딱 깨달은 순간에 그 펼쳐진 세계가 화장차례이고,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지혜로서 나타난 바고, 부처님의 원력으로 타난나 바고, 부처님의 공덕으로서 나타난 바다.
이걸 설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세계라고 하는 것은 그런 거와 같은 거예요.
물이 이렇게 흐르면, 개울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물이 흐를 뿐이에요.
개울은 따로 없는 거예요. 물이 흐르는 것만큼 개울이 된 거거든요.
물 흐르는 거 외에 개울이 따로 있는 거 아니에요.
개울을 경상도에서는 거랑이라고 그러더라고. 맞죠? ㅎㅎ
물이 흐르면 거랑이 생기는 것에요.
물 떠나면 거랑도 없어요. 물 없는 거랑 보셨어요?
그래서 물이 보이면 바다가 되는 거고요.
물이 모이면 강 되는 거예요. 그게 세계입니다.
그리고 풍행초원이라고
물 흐르면 거랑된다는 것은 수도거성이라고 그래요.
물이 도달하면, 도랑 거, 도랑이 이루어진다.
이건 다 문자가 있는 말이에요. 설명 안해도 되는데, 이거 아는 거 자랑하고 싶어서 그런 말 하거든요.
그리고 풍행초원이라는 건 바람이 휙 지나가요, 바람 풍. 지나갈 행.
바람이 휙 지나가다 보면, 풀이 쏴악 누워요. 경상도 말로 풀이 누워버려. 눕는다고.
그러면 바람이 지나갈 뿐이에요. 그런데 풀은 따라서 눕는 거예요.
이렇게 내 마음이 맑아지는 만큼 세계는 달라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세계에 쫓아가서 사는 것은 마치 그런 거와 같다.
내가 그림을 그렸는데,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좋아하고,
또 내가 그린 그림을 내가 무서워하는 거나 똑같아요.
내가 보기 좋게 생긴 사람이라고 그릴 수도 있고
보기 싫게 생긴 사람이라고 그릴 수도 있는데
다 자기가 그린 거거든요.
그래놓고 한 그림은 좋아서 죽어요. 늘 품고 자고.
또 한 그림은 막 미워서 죽는 거예요.
이게 어리석잖아요. 다 내 마음에서 나온 건데.
그래서 이걸 일각소현, 시방삼세가 일각_ 한 깨달음이 나타난 바다.
생사고락이 전부 일각 소현이에요.
지옥아귀축생 우주만물이 전부 일각소현이에요.
이게 화엄경이에요.
자, 법문 시간 다 마쳐야 하는데
오전에는 다른 순서도 와서 내가 10분 더 안해도 되게 되어 있거든요.
굳이 자기 시간 다 찾아먹고 내려갈 필요가 없어. 시간에 내려가면 되는 거니까요.
그게 또 화엄경이에요.
일각소현이라, 한가지 비유나 하나 더 들고 내려갈 참인데요
그림을 그리는데 여러 가지 그림이 있을 거 아니에요.
산도 있고 사람도 있고 뭐 인물화도 있고, 여러 가지가 재색.. 있잖아요.
그림이 다 있는데, 그건 그림 형상으로 다 볼 수가 있죠. 으흠..
그런데 안 보이는 게 있어요.
작품전시회를 가서 볼 때, 작품은 다 보이는데, 작품의 보이지 않는 게 하나 있어요. 그게 뭘까요? 모르시겠어요?
잘 들으세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마음, 그게 그림 속에는 안 보여요. 맞죠?
그런데 알고보면 그 그림이 전부 화가의 마음입니다.
푸른 것도 화가의 마음이고, 붉은 것도 화가의 마음이고, 집을 그려도 화가의 마음이에요.
그런데 화가의 마음은 안 보이는 거예요.
이것이 깨달음이에요.
하아, 이럴 때 박수를 한번 치지 ... ㅎㅎ
컵 보세요, 이렇게 보면 차가 그렇게 좋은 차가 아니에요. 부러워하지 마시고 ㅎㅎ 보통 차에요.
이렇게 보면 그릇이라고 다 보잖아요.
그릇인 걸 보죠.
그런데 이게 하나 못 보는 게 있어요.
그릇이라고 보는 나의 마음을 지금 못 보고 있는 거예요.
이게 내 마음에 나타난 그림자인데, 요거를 보는 순간에 요것만 집착하고 자기 마음을 놓치는 거예요.
그래서 작품을 볼 때, 작품만을 보고 그 작품을 그린 화가의 마음은 놓친다.
그걸 깨닫게 깨달음이에요.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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