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0)

즉문즉설_법륜스님(제270회) 유산

Buddhastudy 2010. 4. 2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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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한 40, 50대 되시는 여성분들. 제가 잘은 모르지만은 아마 다수가 다 한 번씩 낙태를 한 경험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그 전 세대 60,70대 되시는 세대 분들은 애기를 5,6,7 이렇게 다 낳았단 말이에요. 요즘 젊은 세대는 또 한 둘 밖에 안 낳는단 말이오. 요 중간에 애기 둘 낳기 운동, 피임 뭐 이런 여러 가지 산하제한 운동을 하면서 좀 무리하게 그런 좀 강제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었죠. 산하제한이. 그러다 보니까 심하신 분은 34번 이렇게 낙태 하신 경험들도 있고, 이런 과정을 우리 세대가 겪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펴봐야 될까 어떻게 이걸 봐야 되느냐? 첫째는 우리가 중생이다 하는 것을 아주 적나라 하게 보여주는 태도가 아닐까. 다시 말씀 드리면 우리는 굉장히 자기가 선한 척, 착한 척, 바른 척,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 행동을 가만히 보면 나나, 너나 할 것 없이 바르다고 할 수도 없고 착하다고 할 수가 없어요. 자기 목숨은 천근 같이 여기고 자기 손가락에 피나는 것만 해도 큰 일이라도 생긴 척, 같이 하는 그런 우리들이 자기 이 혀 끝에 좀 달콤하게 느껴지기 위한 그 한가지 이유로 다른 생명을 죽여서 그걸 아주 맛있게 먹잖아요. 그냥 먹는 것도 아니고 생 걸로 회 떠먹기도 하고, 불에 다 구워 먹기도 하고, 삶아먹기도 하고, 지져먹기도 하고, 온갖 방법으로 해가지고 남의 살코기를 먹지 않습니까? 그것도 부위별로 나눠가지고 맛을 논하면서. 만약에 입장을 바꾸어서 어떤 다른 큰 생명의 존재가 우리인간을 그렇게 한다고 한 번 생각해보세요. 내 자신을 그렇게 한다. 아니면 내 자식을 그렇게 한다. 내 형제를 그렇게 한다. 내 부모를 그렇게 한다고 한 번 생각해 보세요.

 

그냥 잡아먹는 것만해도 억울한데 날 걸로 떠 먹고, 불에 구워먹고, 삶아먹고, 지져먹고, 볶아먹고 그런다면. 그런데 우린 그런 생각 전혀 안 하죠. 내 입맛에 집착을 하면 그 다른 생명이 어떤 고통을 당하느냐 이거 전혀 생각 안 해요. 특히 자기가 아는 사람, 부모나 형제나 누가 돌아가셨다고 울고불고하면서 그 돌아간 날 다른 생명을 죽여가지고 먹잖아요. 장래식 날 소를 한 마리 잡든, 돼지를 한 마리 잡아야 되잖아. 제삿날 닭이라도 한 마리 잡아야 되잖아. 왜 우리는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인연이 다 돼서 죽은 것도 슬퍼하면서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느냐 이거요. 또 자기 아들이 태어났다고 태어남을 기뻐하는 날 또 다른 생명은 죽이잖아요.

 

평소에는 그렇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태어난 날 또는 내 자식이 태어난 날, 태어났다고 기뻐하는 그 날 만큼은 적어도 다른 생명을 해치지 말아야 되겠다. 죽었다고 슬퍼하는 그 날만큼은 다른 생명은 해치지 말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을까. 죽었다고 슬퍼하면서 다른 생명을 해치고 태어났다고 기뻐하면서 다른 생명을 해친다면 이 슬픔과 기쁨은 오직 자기식이다 이거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도 또한 그렇게 생명이 해쳐질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들이다 이거요. 이런 우리가 고상한 척, 착한 척, 바른 척하는 게 과연 옳으냐 이거야. 그럼 스님 까발려 놓고 아예 깡패처럼 나쁘게 살까요? 그게 아니라 우리가 아무리 착하게 산다 하더라도 그건 우리끼리 얘기지. 평균적으로 보면 착한 존재는 아니에요. 바른 척 하지만은 그건 자기 생각이지.

 

다른 존재까지 겸해서 보면 바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연과보에 따르면 우리는 과보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이거야. 그러니까 여러분들 인생을 살아가면서 이런 저런 과보를 받더라도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런 일을 당해야 되느냐. 이렇게 억울해 하거나 분해하지 말라 이런 얘기요. 자기 한 짓을 모르기 때문에 억울해 하고 분해하지. 자기가 한 짓을 다 알면 자기심보 쓴걸 다 자기가 알면 자기 말한 걸 자기가 다 기억하면 어떤 일을 당해도 감사합니다. 아이고 돌아 올 과보는 100인데 10밖에 나에게 책임을 묻지 않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받아야 돼. 이걸 더 적나라 하게 알 수 있는 내가 얼마나 내 중심적이냐 하는 것을 적나라 하게 알 수 있는 게 제가 볼 때는 낙태라고 생각해요.

 

내 뱃속에 있는 내 자식도 내 눈에는 보입니까 안보입니까? 안보이죠. 그죠? 내 눈에 안보이면 그냥 아이고 우리 두 남녀는 결혼을 안 했으니까 이걸 알면 세상 사람들이 날 뭐라 그럴까? 자기 체면 때문에 자기 자식도 죽여버리잖아요. 그 땐 내가 어리석어서 내 자식까지도 버릴 수 밖에 없는 중생이었다면 이젠 내가 지혜로워져서 버려진 남의 자식을 데려다 키울 만큼 내가 지혜로워졌다. 이렇게 될 때 내 자식을 버린, 내 자식을 낙태시킨 것이 나쁜 과보로 나에게 돌아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크게 깨닫고 뉘우침으로 해서 더 많은 생명을 살리고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보는 좋은 일을 하는 인연이 된다 이거야. 그래서 좋은 과보가 돌아오도록 해라. 이것이 방생기도며 이것이 낙태에 대한 진정한 참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