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거를 분석해서 뭐할라 그래요? 헛거구나 이러면 돼요. 헛거네. 이러면 돼지. 헛건 줄 모르는 사람이 분석을 하지 헛건 줄 아는 사람이 어떻게 분석을 해요. 수행자는 꿈을 딱 눈뜨자마자 첫 번째 소리가 “아이고 깜빡 속을 뻔했잖아. 진짜 인줄 알고.” 그죠? 진짜가 아니고 가짜지. “아이고 속을 뻔 했네. 아이고 헛거네.” 이러고 딱 끊어 져야 돼. 그 뒷말이 붙으면 안 돼. 깔끔해야 돼.
사람도 인간관계를 맺으면 좋아했으면 좋아하고, 서로가 뜻이 안 맞으면 헤어지고. 그래 인간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려고 만났던 거고, 서로에 도움이 안 되면 그 동안에 도움이 됐던 걸 고맙게 생각하고 “안녕히 계십시오.” 하면 되죠. 그죠? 그런데 이게 무슨 엿 붙었듯이 끈쩍끈쩍 찐득찐득해서, 요새 나오는 쌀 과자 있잖아. 입에 넣으면 바삭바삭한 거, 관계가 바삭바삭 해야 돼. 아시겠어요? 그래 화를 냈을 때는 어! 또 내가 화를 냈구나. 이러고 딱 끝나야 돼. “저짓하는데 내가 어이 화 안 낼 수 있노?” 이건 아직도 미친 상태가 덜 깨진 거요. 아시겠어요?
또 반대로 “아니고 바보같이 내가 또 화냈네. 내가 수행자가? 뭐 이런 게 있노.” 하나는 남을 미워하는 거고 하나는 자기를 미워하는 거요. 남을 미워해도 안 되고 자기를 미워해도 안 되고, 남을 탓해도 안 되고 자기를 탓해도 안 되고. 그냥 다만 인식할 뿐. “오! 화를 냈잖아. 아이고 잘못했잖아.” 잘못한 줄 알면 고치면 되지. “앗 잘못했네.” 이러고 딱 끝내야 돼. 뒤가 깨끗해야 돼. 딱 넘어지면 어떻게 해야 된다? “아! 넘어졌네.” 일어나면 돼. 그런데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 하면 “이게 무슨 자전거가 이런 게 다 있노.” 자전거를 발로 차는 사람, 남을 탓하는 사람이고. “딴 사람 다 타는데 나는 와 못 타노?” 이건 자기를 또 학대하는 사람이고.
다만 넘어지면 어떻게? 일어나면 돼. 일어나서 다시 한 번 해. 어쩌면 꿈도 꿈속에서 헤매다가 눈을 딱 뜨니까 꿈이야. “어! 꿈이잖아.” 이렇게. 두 번째 왜 그런 헛 거를 내가 보게 됐느냐? 이 질문인데. 이건 또 그대로 질문이 돼. 꿈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이런 것은 의미가 없어. 헛건데 무슨 의미가 있어. 왜 그런 헛거를 보게 됐느냐? 이런 건데. 우리는 눈으로 보고 사물을 인식합니다. 귀로 듣고 인식을 해요. 코로 냄새 맡고 인식을 하고, 혀로 맛보고 인식을 하고, 손으로 만져보고 인식을 하고. 또 머릿속으로 통 밥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해서 뭔가 법칙을 만들어 내죠.
내가 거사님 떡~ 보는 거는 눈으로 보고 아~ 저렇게 생겼구나. 소리를 귀로 듣고 어~ 저렇구나. 손으로 만져보고 이렇게 아는 게 있지만은. 성격이 좀 급하겠다. 이건 눈에 보이나? 안보이나? 안 보이죠? 소리를 딱 들어보고 안다 해도 소리에 쓰여져 있는 게 아니잖아 그죠? 그럼 그건 뭐냐? 이 우리들의 의식이 바로 그 법칙을 그러한 원리를 알아낸 거요. 이거를 우리 몸의 그것을 감각하는 기관을 안이비설신의라고 하고. 그 대상을 색성향미촉법이라고 말한다.
이럴 때 눈으로 봐서 아는 거를 안식이라 그러고, 귀로 듣고 아는 거를 이식. 그 다음에 비식, 설식, 신식, 이것을 전5식이라 그래요. 그리고 이 의식이 알아내는 거를 제6번째 식이다 해서 제6식이라 그래. 제6식을 의식이라 그래. 그럼 이것밖에 없느냐? 그렇지가 않다. 이렇게 해서 인식이 된 이 정보가 이건 마치 테이프에 녹음이 된 것과 같은 거에요. 이것이 우리들의 이 뇌에 그 정보가 다 컴퓨터에 정보가 저장이 되듯이 이 안에 다 저장이 되어 있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다 이게 기호화 되어 0101 요즘 컴퓨터는 그렇게 기호화 하지 않습니까? 그죠? 이런 식으로 다 저장이 되어 있어요.
일체가 다 저장이 되어 있는 곳, 그 저장이 바깥으로 드러나야 우리는 그것이 바깥으로 나와야 화면에 떠야 알지 저장이 되어 있는 상태로는 알 수가 있어요? 없어요? 없어. 디스켓 보고 그 안에 무슨 정보가 들었는지 알아요? 몰라요? 몰라. 집어넣어서 두드리면 화면에 뜨면 어때요? 뭐가 들었는지를 안다 이 말이오. 그 저장이 되어 있는 그 디스켓 같은 거, 그거를 아뢰야식이다 그래. 뭐라고? 아뢰야식. 제8식. 함장식_모든 걸 다 포함하고 있다. 우몰식_없어지지 않는 식이다.
거기에 다 들어있는데 그것을 이 컴퓨터 화면에 뜨면 우리가 거기 뭐가 들어있는지 알죠? 그것이 다시 이렇게 떠오르는 게 뭐냐? 우리가 말하는 의식의 세계. 우리가 안다는 게 의식이란 말이오. 의식의 세계. 눈, 귀, 코. 이거는 생방송. 바깥의 정보를 받아들이는 거고. 또 바깥에서 직접 이렇게 눈에 이렇게 거사님 얼굴이 내 눈에 들어와서 내가 ‘거사님 저기 있구나.’ 이래 알기도 하지만은 이 안에 있던 정보가 이 의식을 통해서 일어나면 눈감고 있는데도 저 거사님 얼굴이 환히 보인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것을 이렇게 되살려. 그러니까 마치 그것은 방송국에서 직접 방송을 하면 녹화가 나오는, TV가 나오는데. 그 녹음해 놨던 거, 비디오 집어넣어도 똑같은 게 나오죠. 그러니까 비디오를 보고 있을 때, 화면을 보고 있을 때 녹화된 건지 생방송인지 아나? 모르나? 몰라. 그러니까 그 숨겨져 있던 것이 의식의 세계로, 의식의 화면으로 나오는 거를 우리가 기억한다. 상상, 생각한다 그래. 기억해 내고, 생각, 여러분 생각하는 건 다 있던 것이 도로 나오는 거요. 아시겠어요.
그러면 이 안에 포함 되어 있는 게 다 나오나? 아주 일부만 나오나? 일부만 나오는 거요. 일부만 내가 기억한다고 없어진 게 아니에요. 다 거기 있는데 그 중에 아주 일부만 이렇게 바깥으로 드러나게 되요. 그러니까 의식의 세계를 드러내는 게 생각이다. 이거야. 그런데 이 의식과 이 잠재의식 사이에 소위 말하는 제7식이라는 게 있어. 이 잠재된 의식으로부터 이 함장식, 이 아뢰아식으로 부터 의식은 이게 우리가 인식, 지금 하고 있는 세계고, 이 사이에 제 7식이라고 하는 게 있다. 그것은 안에 있는 정보가 바깥으로 일어나.
그러니까 우리는 8식은 인식할 수가 없어. 그러나 이 7식은 우리가 깊이 자기 체면에 들어가면 7식은 알 수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첫 째는 의식이, 6식이 잠들었을 때 그것이 바깥으로 드러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꿈은 거의 생각하고 비슷한 거예요. 그러니까 여기 내가 딱 보니 보살님이 참 예쁘고 마음에 들어. 손도 한번 잡고 싶은데 중이 그러면 되나? 안 되나? 중이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안 돼. 이거는 우리들의 의식이 한단 말이오. 아시겠어요? 그러나 기껏 마음에는 잡고 싶어. 그런데 이 꿈에서는 어떨까? 꿈에서는 잡아. 아시겠습니까?
의식이 뭐하기 때문에? 잠들어 있기 때문에. 이 잠재의식은 그냥 그 마음 따라 그냥 가버리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솔직하다 할 때 마음에서 일어나는 걸 드러내면은 솔직하다. 이렇게 보통 표현하는데. 그렇다면 이 사람의 의식보다는 잠재의식이 더 솔직한 편이지. 꼭 그렇게만 말할 수 없어. 층이 달라.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나타난 꿈이야. 그래 꿈은 비디오테이프를 튼 것과 같은 거요. 그러니까 꿈속에 있을 때는 그게 생방송인줄 착각해. 깨보면 그건 생방송이 아니고 뭐다? 환상이오.
그런데 이 직접 보는 거 같아. 여러분들이 이 손으로 어떤 여인을 만졌다 하면 손에 감각이 있어? 없어? 부드러운 감각이 있지. 그럼 꿈속에서 여자를 만지면 꼭 같은 그런 부드러운 감각이 있어. 그런데 눈을 뜨고 보면 손은 그냥 가만히 있어. 아무것도 안 만졌어. 그런데도 똑같은 감각이 일어나. 왜 그러냐? 이 뇌에 뭐가 기록이 돼 있다? 그 감각이 다 기억 돼 있다. 이 말이오. 그것이 꿈이다 이거야. 그러니까 꿈이 생시와 같은 줄을, 꿈속에 꿈을 꿀 때는 꿈 인줄 몰라. 꿈인 줄 알면 누가 도망을 가며 누가 두려워하겠냐 이거야. 그게 생시 인줄 아니까 착각하니까 두려움이 생기지.
그래 꿈이 꿈인 줄 알면 어떨까? 도망을 갈라 그럴까? 눈뜰라 그럴까? 눈뜰라 그러지. 누가 도망갈라 그러겠어. 여러분들도 악몽 여러 번 꿔보면 어느 정도 영리한 사람은 악몽을 꾸고 막 괴로워하다가 아이 꿈일 줄 모른다. 이런 생각 들 수 있지. 그럼 눈을 뜰라 그래요? 도망갈라 그래요? 눈을 뜰라 그러겠지. 눈꺼풀이 억수로 무거워. 안 떨어져. 그래 눈을 딱 뜨면 아무 일도 없죠. 그래 꿈은 우리가 기억하든, 깨서 꿈이 기억이 되든, 꿈이 기억이 안 되든 꿈은 늘 꿉니다.
다시 말하면 생방송이 꺼지면 뭐가? 재방송이 저절로 돌아가는 거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눈을 딱 감고 참선을 하면 망상이 많이 생겨요? 안 생겨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도 없는 거 같다 조금 있으면 망상이 많이 생기죠? 당연한 거요. 왜? 이 바깥에 들어오는 정보를 멈추면 재방송이 돌아가는 거요. 그러니까 자면 자연적으로 꿈이 나와 가지고 도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들어온 정보가 혼재가 되니까 외간남자하고 만나 데이트를 하다가 보니까 나중에 제 남편이고.
강아지를 안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뭐다? 애기고. 애기라고 안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뭐고? 강아지고. 이렇게. 이 혼재가 되가지고 나타났다 이 말이오. 혼재가 돼서. 그런데 여러분 생각도 마찬가지요. 꿈만 그렇게 좀 뒤죽박죽이 아니라 여러분들 생각도 그래요. 여러분 내 이렇게 법문을 듣고 있는 동안에 내가 여자 얘기를 하는 동안에 귀는 듣고 있고 눈은 보고 있는데 그 생각하고 이 연관이 되가지고 옛날 자기 애인을 생각해. 아시겠어요? 내가 만진 손끝에 감각이라 하니까 또 만지던 생각해.
그걸 만일 입으로 다 내 놓는다 하면 뒤죽박죽이 될 거 아니오. 정신병자라는 게 바로 그런 생각을 입으로 다 말해버리니까 이 말 했다 저 말했다, 이 말했다 저 말했다. 하니까 듣는 사람이 뭐가 된다? 뒤죽박죽이 되는 거요. 꿈은 그런 거요. 그런데 우리가 보통 기억하는 거는 어떠냐? 꿈을 꾸다가 딱 꿈을 꾸다가 어떠냐? 꿈을 깊은 잠에 딱 들어갈 때는 이 얕은 잠, 여러분들이 잠을 많이, 잠을 너무, 예를 들어 5시간만 자고 깨야 되는데 잠을 몸이 불편하다고 10시간쯤 잤다. 하루에 15시간쯤 잤다. 그러면 꿈을 많이 꿔요? 적게 꿔요? 적게 꾸지. 눈만 감으면 온갖 망상이 일어나잖아 그지? 움직이는 거를 자기가 인식을 하니까 꿈을 많이 꾸는 거요.
그런데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잘 때는 어떠냐? 이 잠이라는 것은 이렇게 우리가 꿈의 상태로 파장이 일어나다가 아주 짧은 시간 이렇게 뇌가 영~ 쉬다 시피 합니다. 아시겠어요? 이런 작용을 많이 쉰다 이 말이오. 쉬었다가 다시 또 이렇게 이렇게 꿈의 상태가 되면 또 잠시 숙면에 들다가, 또 나타났다 이런단 말이오. 그러니까 그전에 꿈꾸면 숙면의 상태에서 필름이 다 지워지기 때문에 기억을 할 수가 없어.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몰라.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숙면이 안 된 상태에서 깨면 꿈이 다 금방 기억나는 거요. 꿈이라는 거는 그 순간에는 다 기억날 거 같은데 깨어가지고 5분만 있으면 무슨 꿈 꿨는지 아무것도 기억이 안나.
그 다음에 두 번째 꿈을 가지고도 그러면 헛거지만 헛게 왜 보이냐? 이런 걸 가지고 자기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여러분들이 어떤 무당을 찾아갔는데 무당이 딱 보자마자 “조실부모했구먼!” 이래. 그럼 깜짝 놀라죠. 아니 내가 어릴 때 어머니 돌아가신 걸 어떻게 아냐? 자~ 일곱 살 때, 열 살 때, 열다섯 살 때, 스무 살 때 부모가 돌아가시면 마음의 상처가 클까? 적을까? 크겠지. 그러니까 이 안에 아주 한이 깊이 맺혀 있어. 그런데 어머니가 80에 돌아가셨다. 그러면 돌아가셔서 슬프긴 해도 별로 한이 있을까? 없을까? 없겠지. 그러니까 그게 그냥 그 강도가 약해. 가슴에 깊은 상처, 잠재의식에 대한, 바깥으로는 같은 죽었다 하는 인식은 같지만은 안에 있는 상처는 달라. 그 강도가.
그러기 때문에 이 무당이라는 건 자기 체면이 든단 말이오. 무당이 쉬~ ~ ~ 할 때 체면에 딱 들어가. 체면에 들어 간 다음 의식이 쉬어 버려. 체면 상태는 의식이 쉬는 상태다 이 말이오. 아시겠어요? 잠재의식의 상태에서 나의 잠재의식이 교감이 일어나는 거요. 그러다 내 속에 맺힌 한같이 아주 강력한 파장이 읽힌단 말이오. 그래서 얘기 하는 거요. 이 자기가 생긴 게 점잖은 거 같은데 꿈에 보면 별로 안 점잖아. 스님도 내가 점잖은 거 같지만 꿈속에서 가만 내 하는 행동들 보면 안 그래. 누가 어렵다고 빌려달라고 그러면 자비롭게 ‘그러세요’ 하고 보통 하지만. 꿈에서 보면 누가 빌려 달라 그러면 안 빌려주고. 줄려면 안주고, 성질 박박 내고. 그런 걸 내가 꿈속에서 가만 보면 보여. 아시겠어요?
그건 뭘 말한다? 내가 이렇게 내 의지로 이 모든 ‘이러면 안 된다.’ 상당부분 조절을 해도 아직도 내 선천적인 그 어릴 때의 그 성격은 그대로 아직 많은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니까 아~ 내가 아직 내 이 잠재된 이 내부의 잠재의식 상태가 어떤가를 꿈을 통해서 자기가 짐작할 수가 있다. 그럼 그것도 도움이 되나? 안되나? 도움이 되죠. 내가 어려운 사람이 있어 민중을 위해서 일한다. 그런데 꿈에 보니까 놀기를 좋아한다. 그러면 뭘 말한다? 좀 일은 의무감에서 하고 심리, 깊이는 이런 걸 덜 한다. 그러면 이 잠재의식하고 의식하고 사이에 갭이 생기지. 갈등이 생기지. 그런 사람은 얼굴 표정이 밝지가 못해.
그러니까 이거를 노력을 해서 한단 말이오. 노력을 해서. 그래서 그걸 통해서 자기 상태를 점검할 수 있어. 누가 나보고 욕을 해도 까딱없었는데. 어떤 욕을 하니까. 뭐 니가 돈을 떼먹었니? 어쨌니? 뭐 이런 욕은 해도 괜찮은데. 어떤 어떤 계통의 욕을 하면 사람이 성질을 팍 내는 경우가 있잖아. 그죠? 성질을 냈기 때문에 공부가 된 게 아니라 아~ 내가 어떤 부분에 아직도 집착을 하고 있다는 그런 잘못이라 그럴까? 실패라 그럴까? 실수를 저지른 것이 꼭 나뿐 게 아니라 그걸 통해서 자기 상태를 뭐 할 수가 있다? 점검 할 수가 있는 거란 말이오. 그것처럼 꿈은 집착할 바가 못돼. 꿈은 분석 할 가치도 없어. 수행자는.
그러나 그 꿈을 통해서 배울 수도 있어. 그런데 여러분들은 꿈을 통해서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계기로 배우는 게 아니고. 오늘 좋은 일이 생길까? 오늘 나쁜 일이 생길까? 그게 무슨 꿈일까? 이런 생각을 한다. 그걸 통해서 자신을 점검하는 것으로 **한다. ‘아~ 나에게 아직 이런 게 있구나. 아 내가 요즘 심리상태가 이쪽으로 좀 기울고 있구나.’ 이렇게 자기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을 수가 있다. 또 보통 성격이 약간 예를 들어 우리가 보통 말하면 초기 정신질환의 증상이 있다.
정신 질환이라면 꼭 정신질환이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요즘 말하는 피해의식이 아주 깊어요. 실패를 하고 남한테 사기를 많이 당해서 피해의식이 가득하면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납니다. 매사에 피해의식이, 상처가 심하다 이 말이오. 상처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심하면 신기가 생깁니다. 그래서 꿈같은 것이 많고. 꿈같은 것이 선명하고, 꿈이 잘 맞는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뭔가 예시, 예감. 여러분들 피해의식이 많으면 벌써 상대만 봐도 저게 뭐할까? 이렇게 짐작을 합니까? 안 합니까? 하지. 피해의식 없는 사람은 이런 짐작 같은 거를 잘 안 해.
피해의식이 많을수록 직관, 딱 보고 저게 나를 어떻게 해칠까? 자기 직관을 많이 믿어요. 감을. 그래 보고 역시 처음 볼 때 그 놈의 시끼 그렇더니 그렇더라. 피해의식이 없는 사람은 어떠냐? 저 사람이 이랬든, 저 사람이 저렇든 그걸 갖고 그렇게 의미 부여를 안 합니다. 욕하면 욕하는가 보다. 칭찬하면 칭찬하는가 보다. 이래 지나가지.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은 긴장을 하고 딱 보자 저게 또 어떻게 어떨지 모른다. 이런 생각하다가 그게 맞으면 어때요? 봐라. 틀림없지. 이렇게 된다. 사실은 잘 따지고 보면 다 맞는 건 아니에요. 열 번의 3번만 맞아도 그 맞는 거에 대한 의미를 엄청나게 부여하게 된다.
그래서 그런 신기가 약간 완전히 무당까지는 안 가더라도, 신내림을 안 받더라도, 약간 그러면 꿈이 보통 정확하다. 용하다. 이런 생각도 들고. 무슨 일만 있으면 꿈에서 미리 해몽을 해 주더라. 이렇게 얘기가 된다. 신통은 도가 아니오. 그래서 부처님이 해탈의 길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지. 그런데 우리는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그게 마치 본 것처럼 생각을 한다. 나쁘다는 뜻은 아니에요. 됐습니까? 헛 거요. 그것 역시.
그래서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안 됩니다. 잠을 너무 많이 자면 우리의 머리가 아프고, 몸이 나른해지고 더 나빠진다. 그러기 때문에 잠을 너무 안 자도 그렇지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잠을 안자고 한 이틀쯤 밤샘 하다가 잠시 자면 어때요? 조금만 자도 아주 개운해지는 거 경험해 본적 있어요? 그러니까 조금 몸이 피곤하도록 해서 짧은 시간 푹 자는 게 건강에도 좋습니다. 그냥 게을러서 오래 누워있으면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늘 머리가 맑지 못하고, 또 자고 싶고, 또 자고 싶고. 잠 버릇이에요. 그건 잠을 자는 게 아니에요. 사실은.
우리 몸에 필요한 숙면의 시간은 얼마 안 됩니다. 다 만약에 20분, 20분, 20분, 합하면 한 시간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사람이 닥 그래만 될 수 없으니까. 그걸 잘하면 2시간만, 3시간만 자도 된다잖아요. 나폴레옹 같은 사람은 말 타고 가다 잠시 졸고 졸고 해서 하루에 두 시간씩 자고 살았다 이러죠. 우리 서울 절에도 한 법우님은 거의 하루에 3시간씩 자도 끄떡없어요. 낮에 졸지도 않아요. 나도 옛날에는 하루 3시간 이렇게 자고 내~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몸이 지쳐 아프니까 몸 때문에 쉬어야 된다. 그래가지고 요즘은 잠이 많이 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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