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3)
우리가 어떤 사건,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머니가 시킨 심부름을 가다가. 즉 “기름을 사오라.” 하는 그런 심부름을 갔다 오다가 넘어져서 기름을 쏟아버렸어. 그러니까 어떤 아이는 “엄마, 넘어져서 기름 반이나 쏟아버렸어.” 이런 아이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엄마, 넘어져서 기름을 쏟았는데 그래도 절반이 남았어.”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는 거요. 똑같이 절반의 기름이 남았는데, 잃어버린 절반 때문에 우는 사람도 있고, 남은 절반 때문에 기뻐하는 사람도 있다. 이 말이오. 똑같은 절반인데 어느 쪽을 보느냐? 이런 얘기요.
또 우리 성가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어떤 노파가 딸이 둘 있는데, 시집을 보냈는데, 딸 하나는 짚신장수한테 시집을 가고, 딸 하는 나막신 장수한테 시집을 갔다. 짚신은 맑을 때 신고, 나막신은 비올 때 신는단 말이오. 그런데 비만 오면 짚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면서 운다는 거요.오늘 장사 안 될 거라고. 날만 맑으면 이젠 나막신 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며 운다는 거요. 장사 안 될 거라고. 그러니까 비가와도 울고 맑아도 우는 거요.
그래서 이렇게 스님께 상담을 하니까. 그 스님이 하는 말이 “비 오는 날은 나막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고, 맑은 날은 짚신장수한테 시집간 딸을 생각하라.” 그랬다는 거요. 그러니까 비 오는 날은 나막신 생각하니까 웃을 일이고, 맑은 날은 짚신 생각하니까 웃을 일이고. 그러니까 똑같은 일인데도 이렇게 관점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정반대가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본인이 질문한 것을 가지고 보면 어머니가 나를 지우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 부모가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 이렇게 섭섭할 수가 있는데,
어머니가 나를 지우려고 하다가. 즉 애들이 넷이나 되니까 지우려고 하다가 안 지웠다. 이렇게 한번 보면 어떨까? 지우려고 했는데, 지울 수밖에 없었는데, 딸이 셋이나 되니까 하나 지워야 되겠지? 보통 생각하면, 그지? 그래서 지우려고 했는데, 병원까지 갔는데, 차마 그래도 내 자식인데 안지우고 돌아왔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 자식이 여러 가지 형편을 보면 지워야 되는데, 그래도 내 자식인데 라는 그 사랑과 애정 때문에 안지우고 돌아왔다. 그래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마운 일이야. 어머니니까 안지우고 돌아왔지, 딴 사람 같았으면 어떻겠어요? 지웠을 거 아니오.
그런데 내 어머니니까 그래도 안지우고 돌아온 거요. 이렇게 지우려고 했다는 관점을 볼 거냐? 안지우고 돌아왔다는 거를 볼 거냐? 그런데 왜 지우려고 했다는 것만 자꾸 보느냐 이거야? 지웠으면 자기 이 세상에 없었을 거 아니야? 그지? 문제는 어쨌든 결과적으로 지웠다? 안 지웠다?안 지웠다. 그러니까 “어머니 감사합니다. 여러 가지 생활형편이 어려운데, 저를 낳을 조건이 안됐는데도, 이렇게 낳아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성질 같았으면 확 가서 지워버렸을지도 몰라. 그래도 “아이고 이렇게 감사합니다.” 이게 첫째 관점이오.
그래서 어머니께 감사하다. 안 지워진 거에 감사하다는 거고. 두 번째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면 여러 가지 장애가 있잖아. 그죠? 그 장애를 뛰어넘고 여기 온단 말이오. 그런데 장애라는 것은 못 뛰어넘고 그게 주저앉으면 그것이 큰 인생의 불행이지만, 장애를 뛰어넘어버리면 그 장애란 어때요? 나를 교육시키고 훈련시키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나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벌써 죽을 위험을 한번 넘겼지? 그지? 그러니까 오래 살겠어? 안 살겠어? 오래 살겠지? 뱃속에서 벌써 장애를 뛰어넘었단 말이오. 그러니까 액땜을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뱃속에 있을 때 아주 어릴 때부터 이미 죽을 고비를 넘겼어. 그러기 때문에 나는 오래 살 거야. 그래서 건강한 거요. 아니오. 정말이오. 보통 이렇게 지워버리려다가 막내 낳았는데, 대부분 그런 애가 잘못돼요? 잘돼요? 잘 되요. 이게 죽을 고비를 벌써 넘기고 온갖 액땜을 하고 나왔기 때문에 그래요. 질문하는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내 주위에도 그런 몇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다 괜찮아요. 다 지워버리려고 하다가 그냥 어떤 사람은 약까지 먹었는데도 안 죽고 낳았는데, 그 집에서 제일 효자고 예를 들면 제일 잘되고, 제일 건강하고 이래요. 그러니까 좋은 점이에요. 그게. 으흠.
한번 벌써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사선을 뚫고 나왔잖아. 그렇게. 아~ 나는 한번 죽을 고비를 넘겼기 때문에 딴 사람보다는 내가 벌써 그 만큼 강인하다. 이거야. 그래서 이렇게 당당한 거요. 그러니까 겁을 내서 두려워하는 거는 그 죽이려고 했을 때 생긴 심리현상이 남아서 그렇고. 거꾸로 당당한 거는 그것을 넘었기 때문에 또 당당한 거요. 이중성을 가지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자기가 죽을 고비에 처해서 그걸 뛰어넘기 전에 죽을 고비에 처했을 때 생긴 두려움이 남아있기 때문에 항상 매사에 망설이는 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마음은 그런 데도 마음은 당당한 거는 그걸 넘었기 때문에 그래. 그 고비를 넘겨서 나왔기 때문에 당당한 거요. 그래서 어떤 일을 할 때 딴 사람보다 더 망설이는 게 있고, 일단 하게 되면 딴 사람보다 더 당당하게 열심히 하는 거요. 그래서 그 앞으로는 이제 그런 마음이 들 때 아파트에 사람이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첫 마음이 일어날 때 “만나도 괜찮아.” 이렇게. 저절로는 안 만났으면 좋겠다고 마음이 일어날 때 나는 그것을 뛰어넘은 마음을 내요. 뭐라고? “만나도 괜찮아.” 이렇게. 어떤 일이든지. 늘.
두려움이 일어나는 거는 그 뱃속에 있을 때 무의식으로 생긴 거란 말이오. 그걸 내가 지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러나 나는 실제로 그것을 극복하고 이 세상에 나왔잖아. 그러니까 항상 만나지 말았으면 할 때 마음으로 “만나도 괜찮아.” 안했으면 할 때 “어, 할 거야.” 늘 거기에 대해서 한마음을 더 내서 나가면 문제가 없어요. 두 가지. 하나는 “안지우고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어머니에 대한 인사. 그다음에 두 번째는 “나는 이미 가장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나는 강인하고 건강하다.” 이런 마음을 내도록.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를 이 세상에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렇게 하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