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알고 있는데 무슨 얘기를 해. 몰라야. 앞에서 저 보살님처럼 몰라야 얘기를 하지. “자기 잘했다.” 이러니까 남편한테 참회기도하라. 뭐~ 알았습니다. 이렇게 하지. 자기는 뭐, 엄마 미워하는 거 자기가 아는데 나한테 물을게 뭐가 있어요? 그런데 생각은 불법 공부다하고 하면서 엄마 미워해봐야 내 손해다. 이거 아는데, 실제 현실에 부딪치면 안 된다. 꼬라지만 보면 나도 내가 통제 안 될 만큼 미움이 든다. 이건데, 이건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받은 상처인데, 그럼 이 상처를 엄마가 줬느냐? 내가 어리석어서 상처를 입었느냐? 이거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엄마가 나한테 내가 엄마로 인해서 상처를 입었는데 이게 엄마가 준거냐? 내가 입었느냐? 이런 얘기요. 내가 산을 보고 “아~ 참 산 좋다.” 단풍을 보고 “아 단풍 예쁘다.” 꽃을 보고 “꽃 예쁘다.”할 때 이 예쁜 마음을 꽃이 나한테 줬느냐? 내가 꽃을 보고 그렇게 느꼈느냐? 이 문제거든요. 꽃이 나한테 준 게 아니고, 산이 나한테 준 게 아니에요. 내가 내 마음이 그렇게 그린 거란 말이오. 그런 것처럼 누구를 미워하는 것도 그 사람이 나한테 준 게 아니라, 내가 그렇게 내 마음을 그린 거다. 이런 얘기요. 내가 그렇게 그린 거다. 이 거요. 으흠.
그러니까 엄마는 애들이 이렇게 싸우면 그냥 시끄러우니까 그냥 생각나는 데로 어때요? 어떤 때는 언니보고 야단쳤다가, 어떤 때는 동생보고 야단쳤다가. 그럴 때 무슨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려는 게 아니라 싸우니까 싸우지 마라는 뜻으로 둘 다 야단쳤다가, 언니보고 야단쳤다가, 동생보고 까불지 마라 그랬다가, 언니보고 동생하고 싸운다고 큰 게 뭐한다고 그랬다가. 어마는 이렇게 얘기하지만 아이들은 맨날 엄마는 나보고 야단친다. 이렇게 받아들일 때 그 상처는 자기가 만든 거다. 이거야. 자기가. 그러니까 내가 엄마에게 상처를 입은 건 맞는데, 그건 엄마가 줘서 입었느냐? 그건 아니다. 이거야. 내가 만든 거다.
그러니까 이건 그럼 어떻게 왜 만들었느냐? 주지도 않았는데 나는 받았다. 이 말이오. 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받을 수 있느냐? 내가 어리석어서 만든 거다. 어리석어서. 그러니까 여기서 뉘우쳐야 할 거는 내 어리석음을 뉘우쳐야 된다. 아~ 내가 어려서 어리서다는 건 어리석다는 거요. 어려서 어리석어서 내가 주지도 않은 선물을 내가 받았다. 이거야. 주지도 않은 상처를 내가 입었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이 어리석음을 내가 깨우치면, “아~ 내가 어리석었구나.” 이럴 때 이 상처가 치유 되는 거란 말이오.
그러니까 기도를 항상 아침에 일어나 108배하면서 “어머니 감사합니다.” 부모라는 것은 낳아준 것만 해도 일단 감사 안 해요? 뭐 사생아로 낳았든, 낳아서 고아원에 갖다 버렸든 그게 중요해요? 어떻게 생각해요? 그것도 낳았으니까 살 거 아니오. 이렇게. 그래서 낳아준 거, 그게 뭐~ 아버지 없이 낳았니 이혼을 했니 그건 다 쓸데없는 생각이요. 일단 낳아준 거, 어떻게 낳았든. 뭐~ 인공수정을 했든지 뭐~ 바람을 피워서 낳았든지 뭐 그게 뭐 그리 중요한 문제요. 으흠. 첫째 낳아줬다. 그래서 내가 살고 있다. 고마운 일이에오.
두 번째 생모가 키웠든 생부가 키웠든 아니면 딴 사람이 키웠든 키워줘서 내가 컸지 내가 나 혼자 큰 거 같지만 다 그래도 한 아무리 지가 지 혼자 컸다고 해도 한 7~8살까지는 다 누군가 키워줬어요? 안 키워줬어요? 키워줬을 거요. 그런데 자식은 자기가 어릴 때 잘 키워준 건 기억도 별로 안 난단 말이오. 이제 자기가 중학교 때 가서 아르바이트하고 살았던 고생했던 하면 다 지가 큰 거 같아요. 지 혼자 큰 거 같아.
해준 거 뭐 있노? 내가 내혼자 컸지. 이래 생각을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키워줬다 이거요. 그 키워준 거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껴야 된다. 낳아주고 키워준 거에 대해서 고마워해야 되요. 그런데 딴 집에는 대학 보냈는데 난 대학을 안 보냈다. 딴 집에는 고등학교 보냈는데 난 고등학교도 안 보냈다. 이렇게 얘기하는데 그러면 고등학교 안 보내 준 사람이 우리 엄마만 안 보내줬어요? 이 세상사람 다 나 고등학교 안 보내주고. 대학 안 보내줬잖아. 왜 우리 엄마만 미워해? 딴 사람도 좀 미워하지. 그러니까 낳아주고 키워줬는데 그 이상 뭘 안 해줬다고 미워하니 이게 인간의 심리란 말이오.
그래서 제가 언제 이런 얘기했잖아요. 제가 인도에 학교 지어가지고 애들 공부 가르치는데, 애들이 커서 스님한테 고마워할까? 미워할까? 다 고마워할 거라고 생각하잖아. 그렇지 않다. 미워하게 되어 있다. 왜? 아예 안했으면 안 미워해요. 그런데 초등학교를 가르쳤기 때문에 얘들은 초등학교 졸업하면 중학교 가고 싶어요? 안가고 싶어요? 가고 싶은데 중학교 안 가르쳐주면 섭섭하겠죠. 그 정도면 섭섭한 선에 끝나는데 얘를 중학교 보냈으면 고등학교 가고 싶은 생각이 더 클까? 안 클까? 크겠죠. 고등학교 졸업하면 대학교 가고 싶은 마음 더 크겠죠.
그런데 그걸 안 해줬다. 그러면 원수 되는 거지 뭐. 지금 여러분들이 여러분들 부모를 원수로 삼는 게 다 그런 거라니까. 유산을 안줬다. 오빠는 많이 주고 난 적게 줬다. 안준 사람은 안 미워하고 그 줬는데도 적게 줬다. 이거 갖고 미워한단 말이오. 적게 줬다. 이거. 그러니 이건 어디서 생긴 거냐? 이런 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그래요. 으흠. 이렇게 은혜를 원수로 갚으니까 반드시 내 자식도 나한테 은혜를 원수로 갚을까? 안 갚을까? 갚겠죠. 똑같이 반복되는 거요. 으흠.
그러니까 아까 여기도 내가 남편을 미워한 것만 해도 애들한테 내가 남편을 미워해서 이혼한 것만 해도 애들한테 아빠를 상실한 엄청난 죄를 지었는데 이제 애가 다 커서 성년이 돼서 제 아빠 만나겠다는데도 못 만나게 한다. 그건 굉장한 죄란 말이오. 여러분들 이산가족 만나는 거 보셨죠? 눈물 흘리고. 그죠? 그런데 그 자기 아빠를 못 만나게 하면 이게 죄란 말이오. 이게. 천륜을 끊는 죄란 말이오. 아들이 자기 엄마한테 돈 주는 것도 못주게 하면 이것도 천륜을 끊는 죄란 말이오. 이렇게 못된 생각만 했으니까 어떻게 인생이 풀리겠어. 잘 안 풀리지.
애가 안 만나겠다고 해도 그렇지 않다. 나하고 그 사람하고 안 좋은 거는 우리 부부문제고, 그래도 너는 뭐다? 그분이 누구다? 너의 아빠지 않으냐? 그러니까 아빠한테 잘해라. 아빠가 그래도 너를 낳아주고 그래도 다 키워줬지. 우리 부부 사이에 뭐 내 불만이 좀 있는 것뿐이지. 그래서 내가 남편한테 참회를 해야 그 남자가 괜찮은 사람이고, 그 남자가 괜찮은 사람이라야 애 아빠가 뭐다? 괜찮은 사람이 되니까 애 아빠가 괜찮아야 누가 괜찮다? 우리 딸도 괜찮다. 이렇게 된단 말이오. 그 인간 그거 인간 같지도 않은 거 이렇게 되면 그 인간하고 사는 나도 인간 같지 않은 여자고, 그 인간 밑에서 낳은 딸이니까 이것도 인간 같지도 않게 된단 말이오.
그래서 참회하라는 거요. 그것처럼 부모를 미워하면 그런 부모의 딸이기 때문에 내가 내 자신에 대한 자긍심이 없어지는 거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인생을 살아간다. 이 거요. 자기자식이 부모 미워하고, 부모가 자식한테 뭐 하는데 자식이 부모 말 듣는다고 그거를 질투하고, 부부가 행복하게 사는데 그걸 부모가 보고 “네가 뭐가 부족해가지고 그렇게 사나?” 이렇게 부부간의 금을 갈라놓고, 이 천년을 끊는 행동을 우리가 하고 산단 말이오. 제 딸은 귀여워하면서 그 딸의 아빠는 나쁜 놈이다. 그러면 그 딸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겠어.
이런 식으로. 이건 왜 그러냐? 그러면. 어리석다. 쥐가 쥐약을 먹듯이,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듯이 몰라서 이렇다. 그래서 이런 거를 깨달아야 된다. “아~ 이게 바로 나를 헤치는 행위구나. 이게 바로 나를 헤치구나.” 엄마를 미워하면 이건 곧 나를 헤치는 거요. 내가 미워함으로 해서 엄마에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오. 그건 피해가 그렇게 큰 게 아니라 가장 큰 피해는 누구한테 있다? 자기한테 있다. 그래서 살아서는 미워한다고 괴롭고, 그런 엄마 자식으로서 자긍심이 없고, 죽고 나면 이젠 불효라고 또 어때요? 후회해야 되고. 이런 바보 같은 짓을 계속 한다. 이 말이오.
그러니까 부모한테 감사기도를 매일 해라. 감사기도를 하고 그런 미운 마음이 들 때마다 아~ 내가 어릴 때 어리석어서 생긴 습관이 아직도 이렇게 버리지를 못하구나. 이렇게 해서 결국은 내가 나를 헤치는구나. 이거를 자각해서 “어~ 내가 또 바보 같은 생각을 일으키구나.” 이렇게 자각을 해서 그런 마음이 안 일어나야 된다고 이게 안 일어나는 게 아니잖아. 이미 습관화되어 있으니까. 그걸 자기가 볼 때마다 “어~ 또 바보 같은 생각을 하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자각하고 자각하면 이게 자꾸 약해진다 이 말이오. 으흠. 자각을 할 때마다 참회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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