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2)
맞습니다. 내가 괴로워서 남에게 가서 막~ 남편 흉을 보거나, 시어머니 흉을 보거나, 자식 흉을 보거나 이런 거는 좋은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걸 꾹~ 속으로 누르고 있으면 누가 병든다? 내가 병든다. 내가. 옛날에 다 그런 얘기 다니면서 하지 말라는 거는 아내야 병들어 죽든지 말든지 남편 체면 때문에 그런 거요.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치료를 해야 돼. 지금. 내 이 가슴에 쌓인 이 답답한 응어리를 치료를 해야 된단 말이오. 그러려면 뭔가 이거에 대해서 드러내놔야 치료가 되잖아요. 병이 있으면 말을 해야 의사가 치료를 하잖아. 이걸 드러내 놔야 된단 말이오.
그런데 아무에게나 드러내 놓기가 어려운 그런 것도 물론 있을 거요. 저는 많은 사람을 상담하다 보니까 여러분들이 상상도 못할 그런 일들도 많이 있어요. 여러분들이 듣는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러겠죠. 그런데 스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있을 수 있는 일이죠. 왜?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일어났겠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겠어요? 안 일어난단 말이오. 그것이 어떤 일이든 있을 수 있는 일이기에 일어난 거요.
그것을 특별한 것으로 보지 않죠. 그런 비율이 좀 적다 뿐인 거요. 특별한 거는 비율이 적으면 특별한 게 되는 거요. 희소성이 되니까. 여러분들이 겪는 대다수의 일들은 자기는 자기만의 고민인데 얘기를 나눠보면, 그런데 인간 사는 데 있어서 누구나 다 겪는 일이에요. 누구나 다. 그래서 그런 것은 도반 사이에 내놓고 나눠보면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도반들 중에 너무 많고, 그런 병을 현재 앓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전에 앓았는데 지금 치료한 사람들도 있단 말이오.
첫째 내가 먼저 내놓으면, 내 놓는 게 치료의 절반입니다. 이걸 어떻게 내놓나. 입에, 목구멍에 말이 나올까 말까? 나올까 말까? 이러다가 거의 껴안고 가잖아요. 한번 탁 내놔버리면 별거 아니오. 그래서 내놓으면 벌써 울고불고하면서 내놓는다 할 때 이 병은 절반은 이미 치료된 겁니다. 자기가 이미 절반 치료한 거요. 내놓을 때까지 오는데 이미 절반 치료된 거요. 그다음 내놓게 되면, 내놓으므로해서 후련해지고, 아무도 답을 안 줘도. 두 번째 내놓게 되면 다른 사람도 거기에 동조. 나도 그랬다. 할 때 위안이 따르죠. 또 나도 그랬는데 나는 이래이래서 이 문제를 풀었다. 할 때 나에게 희망이 생기죠. 나도 저럴 수 있겠구나.
이렇게 해서 해결해 나가면 돼요. 그런데 여기 지금 얘기하듯이 ‘집안일 남에게 하지 마라.’ 이런 게 걸리죠. 그런데 구애받을 필요가 없어요. 우선 내가 답답하니까 내 문제부터 풀어야죠. 그죠? 불평불만으로 내가 가서 얘기하는 게 아니고,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 하는 거요. 나를 치료하기 위해서. 대신에 나누기를 할 때 이걸 듣고 남에게 가서 얘기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게 이제 우리가 어느 좀 신뢰가 형성 안 되니까 어려운 거요. 이거는 그냥 하나의 소재, 우리가 마음 나누기를 할 수 있는 하나의 소재에요.
예를 들면 여러분 중에 여자분 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있는데도 불구하고, 애인이 하나 생겼다. 그 사이에서 내가 정신적으로 갈등하다가 노이로제 증상이 됐다. 내놓기 어렵잖아. 내놓으면 다 뭐라고 그래요? 저 여자 미쳤다든지 소문이 나겠죠. 그런 일이라 하더라도 우리가 들었을 때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잘했다는 게 아니라고 내가 늘 얘기하죠.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받아들이고, 그의 고뇌를 들어주고, 그가 그런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된단 말이오. 그것은 더 이상 이 나누기 장 밖에 가서 얘기할 거리가 아니에요.
얘기를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자꾸 이런 생각이 있어서 안 나오는 거요. 말문이 막히고 엉뚱 얘기하는 거요. 진짜 고민은 안 꺼내놓고 그냥 별 얘기 아닌 걸 꺼내 가지고 하게 된단 말이오. 그래서 물론 뭐 뭐든지 다 얘기한다고 다 꺼내 놓을 수도 없죠. 왜냐하면, 사람이 그래 안 되잖아요. 주위를 신뢰를 못하니까. 다 내놓을 수는 없지마는, 여러분들의 인생사라는 건 못 내놓을 거 같지만 내 놓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정토회에서 오래 다녔던 분들은 어지간히 일은 다 내놔요. 흉이 안 돼.
남의 얘기를 들을 때는 ‘아~ 저런 고뇌가 있었구나.’ 이렇게만 받아들여야지. ‘야~ 제가 저럴 수가 있느냐?’ 이렇게 받아들이든지, 그 장 밖에 가서 그 얘기를 또 하든지 하는 거는 예의가 아니에요. 그러면 이 도반 관계가 성립이 안 돼요. 자~ 그래서 집안일 남에게 하지 마라 하는데 너무 구애받지 말고 그냥 고뇌가 있으면 얘기를 하시면 돼요. 그렇게 해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 그러고 뭐~ 그런 거 정도는 혼자서 능히 이겨낼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뭐 자기가 그냥 정진하면 돼요.
말 안 하고 참회 정진을 깊이 하면 스스로 다 뉘우치고 깨우쳐져요. 그렇게도 되고. 또 이렇게 드러내놔서 살펴보기. 혼자서 하는 거는 객관적으로 점검이 잘 안 돼요. 자기가 자꾸 합리화를 하니까. 드러내 놓으면 아주 예리한 비판을 받죠. 내가 나를 합리화하는 거에, 내 생각의 모순을 예리하게 지적받을 수가 있죠. 좀 따갑죠. 그걸 받으면. 그런데 양약이 뭐다? 입에 쓰다. 이런 것처럼 좀 따가워야 되요.
늘 우리는 자기를 합리화시키면서 살기 때문에. 막~ 그냥 면도날로 딱~ 자르듯이, 자기의 합리화하는 것을 딱~ 지적을 받아야, 오히려 자신에 대해서 개관성이 딱 정립이 되고.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