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공부를 시작할 때 마음을 좀 고요히 가지고 법문을 들을 준비를 하고, 법문을 듣고 들은 거를 다시 마음에 새기기 위해서 잠시 명상을 하는 거거든요. 그 명상이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집중된 훈련을 위한 명상이 아니고, 수업듣기 전에 법문 듣기 전에 법문 들은 후에 명상은 그러니까 법문 들을 준비를 하는 거고, 법문 듣고 나서 그 소중함을 조금 더 마음에 간직하기 위해서 하는 거지, 그 자체는 명상을 전문적으로 하는 화두를 든다든지, 호흡관을 한다든지 하는 그런 명상은 아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마음을 조금 가라앉혀서, 그러니까 법문 듣기 전에 명상할 때는 호흡을 관한다. 둘숨과 날숨을 관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의미이고 정에 들기 전에. 정에 든다. 그리고 법문을 듣고 난 후의 명상시간에는 오늘 들은 법문을 다시 한 번 새겨본다. 요런 의미로 그건 받아들이시면 되요. 전문적으로 우리가 선정을 닦아서 명상에 든다하는 것은 그런 뜻은 아니에요. 아시겠습니까? 그러면 첫 번째가 뭐였죠? 그거는 꿈에서 나타났다 하는 건 뭘 말하냐 하면 스님이 거기간적도 없고, 앞에서 말했지만 여기 있는 법륜 스님은 좋은 사람도 아니고 나쁜 사람도 아니에요. 그래서 공이라 그래.
그런데 여러분들이 마음으로 “아, 법륜스님 참 좋은 사람이다.” 할 때는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법륜스님은 좋은 사람이오? 나쁜 사람이오? 좋은 사람이오. “아이고 중이 뭐 저래.” 이렇게 생각하면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법륜스님은 나쁜 사람이오. 그러면 이 법륜스님은 여러분들 마음 밖에 이렇게 있는 거 같지만 실지론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아는 법륜스님은 여러분들 마음속에 있는 법륜스님이지, 여기에 있는 법륜은 아니다. 이걸 알아야 되요. 만약에 내가 법륜스님을 너무너무 좋아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떡~ 보니까 법륜스님이 어떤 여자하고 손잡고 가고 있어요.
법륜스님한테 실망을 탁 했다하면, 그럼 밖에 있는 법륜스님은 어제 본 법륜스님이나 오늘 본 법륜스님이나 다른 사람이오? 같은 사람이오? 같은 사람이오. 그런데 내 마음속에 있는 법륜스님은 어제 법륜스님과 오늘 법륜스님은 다른 스님이오.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니까 이게 다 마음의 작용에 불과한 거요. 그러면 꿈속에서 법륜스님이 나타났다 하는 것은 여기 있는 법륜스님은 아니에요. 어차피 지금 여러분들이 나를 보고 있다하더라도 여러분들은 법륜스님을 보고 있는 게 아니고 자기 법륜스님을 보고 있는 거요. 이해하시겠어요?
그러면 꿈에서 법륜스님을 봤다하면 그것도 마음이 짓는 바에요? 밖에 있는 법륜스님이 오는 거요? 자기 마음의 법륜스님이잖아. 그지? 그러면 그건 헛 거냐? 아니에요. 지금 여러분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은 그렇게 따지면 헛 거요. 우리는 실제의 법륜스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이라는 거요. 그러니까 우리가 법륜스님이라는 거는 다 무엇이 그려낸 법륜스님이다? 마음이 그려낸 법륜스님이다. 그러니까 오늘 법문을 들은 법륜스님이나 꿈속에서 만난 법륜스님은 다 누가 자기 마음이 그려낸 뭐다? 법륜스님이오.
그러니까 오늘 법문 듣고 감동하듯이 꿈속에서도 지시도 자기에게는 법륜스님이 지시한 거요. 나한테 와서 했냐하면 “내가 한 적이 없다.” 이러지만, 자기 속에서의 법륜스님, 자기가 그려있는 법륜스님이 자기에게 가르침을 준거다. 이 말이오. 그러면 법륜스님을 자기가 만약에 존경한다면 그 가르침에 대한 믿음이 깊겠어요? 얕겠어요? 깊겠죠. 혼자서 금강경 10회 독송해야지 하는 거 하고 법륜스님이 나타나서 “너 이거 10회 하라.”고 하는 거하고, 만약에 좋아한다면 믿음이 달라지겠죠?
그러니까 그 법륜스님의 계시를 받아서 자기가 그것을 행하게 되면, 믿음이 깊은 상태에서 자기가 시작하기 때문에 그것의 독경의 효과는 공덕은 크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그렇게 만약에 독경을 해서 기적이 나타났다 하더라도 법륜스님이 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누구 법륜스님이었다? 나의 법륜스님이 했다. 그러니까 내가 관세음보살을 지극정성으로 불러서 영험이 있었다 하면 그것은 나의 관세음보살입니다. 아시겠어요?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지극정성으로 불러 기도했다 해도 누구의 하나님이다? 나의 하나님이다. 불교입장에서 볼 때는 그래요.
그거는 너의 마음이 짓는 바다. 이렇게 보고,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면 그건 밖의 하나님이에요. 그건 마음 밖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요. 제가 옛날에 어떤 병이 있었어요. 치료해도 잘 안 낫는 병이었어요. 그런데 정진을 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꿈속에서 내가 어디로 갔냐?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 갔더니 평소에 의사선생님이 안계세요. 딴 의사 선생님이 계세요. 그래서 “어, 의사선생님 어디 가셨어요? 원장선생님이 어디 가셨어요?” 하니까 어디 갔데. 그래서 자기가 대신 치료해주겠다는 거요. 그래서 대신 치료를 받았어요. 그리고 눈을 떡~ 뜨니까 꿈이오. 그런데 안 아파.
그래서 얼마 있다 병원에 가서 검사했더니 다 나았어요. 아무 아상이 없데요. 그러면 이게 뭐에요? 가피를 받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스님이 그런 얘기를 안 하는 이유는 어디 있을까? 그거는 증명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거는 나의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지, “그러니까 너도 한번 기도해봐라.”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엔 진리의 가르침이니까. 그럼 이거를 우리가 굳이 해석한다면 뭐다? 우리의 몸의 내부의 기관의 움직임은 의식에서 통제가 되요? 무의식에서 통제가 되요? 무의식에서 통제가 되요. 의식이 통제 안 해요. 심장 멈추란다고 멈춰요? 안 멈춰요? 안 멈춰.
장 멈춰라 한다고 안 멈춰. 오줌 걸림 자..이런 다고 안 해요. 그런데 내가 무의식의 세계가 이 내분기관, 자율신경을 통제하기 때문에 내가 만약에 기분이 굉장히 나빴다. 그러면 위가 작동을 멈춥니까? 안 멈춥니까? 멈춰요. 이게 무의식이 통제를 한다. 이 말이오. 그런데 꿈속이라는 건 무의식의 세계에요. 그러니까 무의식의 세계에서 일어나면 어떤 것이 일어나면 그래서 여러분이 꿈이 가끔 어떻다는 거는 꿈이 맞고 안 맞고가 아니에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거기 때문에 자율신경에 어떤 변화가 온다. 이런 얘기요. 그래서 그것이 우리가 세상에서 말하는 병이 나았다든지, 뭐가 어땠다든지 하는, 영험 있었다든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요인이 있다. 이 말이오.
그래서 본인이 그랬다면 거기 따라해 보는 건 좋아요. 그러나 그것에 있어서 어떤 바람이 크면 마찬가지요. 이것도 그러니까 부처님이 꿈에서 관세음보살이 현몽을 해서 하니까 그냥 해보는 건 좋은데, 그래도 병이라는 건 나을 수도 있고, 뭐하다? 안 나을 수도 있는 건데, 그걸 갖다가 그러면 낫는다든지, 그래서 나았다고 반드시 그러면 된다든지. 이렇게 우리가 단정적으로 얘기하면 안 된다. 그럼 뭐에 빠진다? 신비주의에 빠진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 법륜스님 강의 듣고 유투브에서 보고, 뭐 보고, 부부관계가 좋아졌어요, 어디가 좋아졌어요. 병이 나았어요. 이런 얘기를 스님한테 많이 합니다.
그러면 법륜스님이 한 걸까? 아니에요. 법륜스님이 했다고 내가 착각을 하면 그럼 안한 사람은 누가 못한 거다. 법륜스님이 못한 거요. 그럼 책임이 누구한테 있다? 법륜스님한테 있는 거요. 그러니까 그게 내가 한 공덕이라고 하면 내가 손해요. 사실은. 아시겠어요? 다 누가 한 거다? 자기가 한 거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해서 공덕이 생긴 거요. 그 말을 듣고 자기가 안 해서 공덕이 안 생긴 거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그렇게 아시고 기도를 하시면 되겠고.
이렇게 부처님의 법이라고 하는 것은 꼭 뭐에요? 이래라 저래라가 아니라, 근본정신은 우리 중생이 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래서, 자유롭게 살기를 바래서, 어떻게 마음을 쓰면 좀 더 행복하나? 좀 더 자유롭나? 이런 걸 가르치는 거요. 그래서 이 법문이라는 것은 아까 얘기한데로 이쪽면만 보든 걸 저쪽면도 볼 수 있도록 해서 지혜를 증득하게 하는 거요. 깨닫게 해준다. “아, 이렇게 살면 더 낫겠구나.” 깨침을 주는 거고, 그런데 “아, 남편이 술 먹는 거, 그래. 그 인간 그럴 수도 있겠네.” 전에는 먹으면 안 된다 했는데, 오늘 법문 듣고 나니까 “그래, 그 사람은 그 사람 인생이니까, 내가 꼭 간섭할 일이 아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훨씬 같이 사는데 도움이 되요? 안 돼요? 도움이 되요. 법문만 들어도 도움이 되요. 그런데 딱 술 먹고 취해서 하는 꼬라지면 고 때는 안 돼요. 아시겠어요? 머리는 되는데, 마음이 안 돼. 기분이 팍~ 나빠지고, 그러면 생각이 “저 인간이 또 처먹고 오네.” 이렇게 꽉 해서 화가 확 나오는 거요. 이럴 때 공부하는 방법은 두 가지요. 하나는 그럴 때 확~ 저 인간이 문제라고 나가는 게 지금가지 행동이라면 이제는 “오, 내가 또 내 생각만 하구나. 내 업식이 일어나구나.” 이렇게 자기 쪽으로 탁~ 돌이키면 화가 확 올라오다가 어때요?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이게 갈등이 조금 해소된다. 그래도 이게 잘 안 된다. 그것도 잘 안 된다. 그럴 때는 이제 엎드려서 수행을 해야 되요. 기도를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기도를 “우리남편 술 안 먹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할 게 아니라, 우리 남편 직장 다니면서 스트레스 받고 이런 사람은 술 한 잔 먹고 하는 게 내가 볼 때는 안 좋지만, 그래도 자기한테는 그게 뭐다? 하나의 보약역할을 하는 거요. 그래서 내가 “아이고, 저 인간한테는 술이 보약이다.” 이렇게 자꾸 기도를 하면 딱~ 기분 나빴다가도 “아이고, 그래 보약이지. 그래도 보약이 몸에 좋아.” 이렇게 생각이 탁 바뀌는 거요. 그래서 기도가 필요해요? 안 해요? 필요해.
이 업식은 이게 알아도 금방 안 바뀌어. 그래서 그 업식을 바꾸는 노력이 뭐다? 수행이고, 기도요. 요렇게 기도를 해야 기도의 영험이 있는 거요. 제 말 이해하시겠어요? 저 인간 술 안 먹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 영험이 잘 안 생겨요. 그래서 우리가 첫째는 불법을 깨쳐서, 진리를 깨쳐서 바르게 알아야 되는 게 있고, 두 번째는 아는 것만 갖고 안 돼. 반드시 요렇게 수행을 해야 되요. 연습을 해야 된다. 이 말이오. 그렇게 해서 이걸 바꾸어야 되요. 다생겁래에 지은 업을 소멸시켜요. 바꾸어야 돼.
항상 부정적으로 사고하는 이걸 뭐라고? 긍정적 사고를 바꾸어 주어야 되요. 그래서 수행이 필요한 거요. 그러려면 첫째 이런 얘기라도 매주 매일 듣는 게 어때요? 도움이 되요. 듣기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를 해야 돼. 으흠. 그래서 요 모임 같은데 가가지고 계속 이렇게 법문을 정기적으로 듣고, 두 번째는 꾸준히 집에서 기도를 해야 되요. 그러니 저 총각이 스님이 얘기하는 거 듣고 알은 거 같은데, 이거는 오늘 뿐인고, 문 열고 나가면 없어져요. 그래서 아침에 딱 일어나서 108배 절을 하면서 어때요? 자꾸 이걸 되풀이 하면, 생각에 덜 빠져들고, 이 생각이 자꾸 맑아지면서 판단이 또렷이 서요.
그래서 내가 스님이 결혼하라 마라, 결정을 해주는 게 아니고, 자기가 정진을 하다보면 아, 해야 되겠다. 안해야 되겠다는 자기 식이 맑아져서 판단이 스스로 서게 된다. 이런 얘기요. 그럴 때 가피가 거기 따른다. 이렇게 말을 하는 거요. 그래서 두 번째 조건은 반드시 정진을 해야 된다. 알았어요? 애기 키우는 엄마들은 반드시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를 해야 되요. 그럼 애기가 이렇게 눈뜨고 이렇게 껌껌한데 보면 엄마가 조용히 앉아있거나 절을 하고 있는 거 보면 애기 마음이 편안해 지는 거요. 그래서 기도하는 엄마가 키우는 애 하고, 그렇지 않는 애하곤 차이가 납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셔야 되요. 그러면 지금보다는 좀 나아질까? 안 나아질까? 나아져요. 행복해집니다. 아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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