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준에서 잘 키우는 거 까지 원해요? 못 키우지만 않으면 된다. 이렇게 생각해야 안 될까? 5살짜리한테 엄마가 신뢰가 깨졌다하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서 그렇게 돼요? 그러니까 첫째를 아끼고 돌보다가 둘째가 태어나서 둘째를 돌 봐서 첫째가 좀 상처를 입었다. 이거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거 자체는. 왜 그러냐? 이 아이가 세상이 다 자기만을 위해서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걸 어릴 때부터 배워야 되요. 아시겠어요? 모든 게 다 자기만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만 생각하면 나중에 커서 오히려 굉장히 또 부작용이 생겨요.
그런데 또 너무 팽개치면 어떠냐? 엄마로부터 버림받았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커서 사람을 못 믿어요. 엄마로부터 이렇게 버림받았다. 이런 사람, 엄마가 예를 들면 이혼이라든지 또는 이런 문제인데, 엄마가 자기를 떠날지도 모른다. 이런 상처를 입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도 연애든 결혼이 다 원만하지 못합니다. 항상 상대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불안심리가 늘 내재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엄마가 둘째를 돌본다고 첫째 조금 소홀 할 수는 있어요. 그건 누구나 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움이에요.
그런데 자기가 첫째한테 짜증낸 거는 그건 잘못된 거요. 그런데 3살짜리한테 무슨 싸울 일이 있어서 그래 짜증을 내요? 그러니까 내 성질대로 안 된다고 짜증을 낸다면 맞지가 않잖아요. 왜냐하면 그 아이는 어리니까 그렇게 행동하지, 우리말에 어리다는 말이 무슨 뜻이에요? 어리석다는 말아니오. 어린백성이 어리석은 백성이 아니오. 그죠? 그런데 그 아이에게 너무 과다한 요구를 하는 거 아니오. 그리고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짜증을 내면 그 아이는 심리가 억압이 되죠. 자기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데 엄마가 요구를 하니까 심리적 억압을 받게 되니까, 그건 굉장히 상처가 되죠.
그러니까 작은 아이를 돌본다고 큰 아이에게 조금 소홀했다. 그래서 큰 아이가 약간 질투를 하고 이런 문제는 그것도 상처가 되지만 그러나 우리는 일정한 상처는 우리가 안고 살아야 됩니다. 왜? 그래야 이게 남을 배려하거나 세상을 배우게 된다는 측면이 있다는 거요. 그러나 자기가 짜증을 내는 거는 백해무익한 행동이오. 그건 딱 고쳐야지.
많이 깨졌는지 적게 깨졌는지 어떻게 알아? 5짜리 심리분석해서? 그건 조금 지나치다. 그러니까 너무 거기에 의존하지 말고, 많이 깨져서가 문제가 아니라, 아, 내가 엄마로서 못쓸 짓을 했구나하면 후회하는 게 핵심이 아니고, 앞으로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조건 잘해주는 게 핵심이 아니라 우선 못해주는 거를 멈추어야 된다. 잘은 못해주더라도 못해주지는 마라. 즉 짜증은 내지마라. 이거야. 잘해주는 거 까지는 원하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짜증내고 이렇게는 하지마라.
그리고 그 기본은 자기가 자랄 때 부부간에 엄마아빠의 갈등이 자기에게 상처가 되었다면 자신도 화를 블록블럭 잘 내거나 또는 부부간에 갈등이 있거나하면 아주 어린애의 무의식세계에 굉장한 상처를 주는 거요. 그러면 주로 엄마아빠가 많이 싸우면, 애들이 마음속에 나는 결혼 안할 거야라든지 이런 게 있어서 인간이 나중에 커서 연애까지는 하는데 상대가 결혼하자면 이유 없이 겁이 덜컥 나는 거요. 미래가 두려워지고. 그래서 이게 자꾸 중간에 관 둬버려요. 이유도 별로 없이. 그럼 상대편은 굉장히 황당하죠.
뚜렷한 이유도 없이 도망가 버리는 거요. 그러기 때문에 그것은 아이들에게 불행을 준다. 그러니까 뭘 입히고, 뭘 먹이고, 이런 건 사실 아이한테는 중요 안 해요. 엄마자기 만족이지. 그건 자기만족으로 애를 키우면 안 돼요. 그러니까 아이한테 가장 중요한 거는 엄마의 따뜻한 사랑이다. 그러니까 아이를 직장 때문에 애를 버리고 직장 다닌다. 그러면 상처가 돼. 엄마한테 버림을 받기 때문에. 그런데 애기를 등쳐 엎고 직장 다닌다. 이건 아이한테 전혀 상처가 안 돼요. 그러니까 그 성격이 달라요.
직장을 다니지 마라가 아니라, 어떤 이유로든 아이보다 더 우선한 가치를 두지마라. 이런 얘기요.
우선 자기로서는 그 스트레스의 핵심이 뭐, 이 때문에 있다하지만 근본은 자기의 업식에서 나오는 거고, 두 번째 현상적으로는 남편한테서 주로 받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남편한테 자기가 늘 남편을 이해하는 마음을 내고, 내가 짜증이 나면 내가 본 측면이니까, 남편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내 요구에 안 맞는 거잖아. 그죠?
우리가 보통 이렇게 결혼 생활해서 이혼하거나 연애하다 그만두거나 직장에서 나쁜 놈이라고 내보내거나, 그런데. 내가 발로 찬 남자를 또 다른 여자가 데려가요? 안 데려가요? 데려가죠. 이 여자가 차면 저 여자가 데려가고, 또 차면 또 저 여자가 데려가고. 여자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사람 자체는 좋고 나쁜 게 없어요. 자기 기호나 요구에 안 맞는 거지, 그건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요. 그런데서 나를 돌이켜보는 자세. 이게 참회죠. 참회를 하시면 그냥 내가 죽을 죄를 지었다. 이런 뜻이 아니에요. 내 생각 내 요구 내 기호를 지나치게 내세웠다.
그리되면 상대가 나쁘게 보이는 거요. 그러면 내가 이제 화가 나는 거요. 이거를 참회를 해야 돼. 그래서 항상 저럴 수도 있겠구나. 늦게 오면 늦게 올 수도 있겠구나. 한잔했으면 한잔 할 수도 있겠구나. 살다보면. 남편이 화가 나면 나는 화가 안 나지만 그 사람이 날 때 “아, 저 사람은 저런데서 화가 날 수도 있겠구나.”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내가 편안해지는 거요. 실제론 그렇게 현실에서는 안 되죠. 업식이라는게, 알아도 꼬라지만 보면 이게 팍~ 나도 모르게 나가니까. 그래서 그걸 알아차리고 이제 참회하고 다시 발원하고, 또 실패하고, 또 도전하고, 이러면서 이제 자기를 개선해 나가는 게 수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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