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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줌) 남미는 왜 북미보다 가난할까?

Buddhastudy 2024. 10. 30. 19:43

 

 

북미와 남미

같은 대륙임에도 확연한 차이가 느껴질 겁니다.

도대체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혹시 여러분들 아셨나요?

원래는 남미가 훨씬 부유했다는 것을요.

 

--남미의 식민지화

콜럼버스의 신대륙 탐험을 시작으로 스페인은 남미와 북미 모두 발견했습니다.

지금은 땅이 매우 중요하지만

당시에 유럽인들이 원한 건

큰 땅보다는 유럽에 가져갈 수 있는 금, 은과 같은 자원들이었죠.

 

그런 의미에서 초기 정복자인 스페인은

많은 자원, 노동력, 멋진 문명, 농업을 하기 위한 따뜻한 기후 등이 있는

중남미를 선택했습니다.

 

이후 1519년 코르테즈의 아즈텍 문명 정복 등을 비롯하여

중남미를 장악해 나갔는데요.

현재를 알기 위해

남미 초기 식민지 확정 과정이 어땠는지 알아볼 텐데

여러 사례 중 잉카문명 정복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5321115

30, 정복자 160명 정도를 이끄는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비사로는

잉카제국의 황제 아타와파에게 통역사와 신부를 보냅니다.

 

스페인의 신부가 성경을 아타우알파에게 전해주자

아타우알파는 성경책을 던져버렸고

이를 신성 모독으로 여긴 스페인의 군대가 공격하여

많은 잉카인을 죽이고 아타우알파를 포로로 잡습니다.

 

포로로 갇힌 아타우알파와 동료들은

스페인의 요구에 따라

방을 금과 은으로 가득 채워주었지만

스페인인들은 결국 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아타오아르파와 동료들을 목 조르거나 산채로 불태워 죽였습니다.

 

총칼과 말, 전염병 등을 가진 스페인군은

학살과 가까운 정복으로

결국 잉카제국을 멸망시켰습니다.

 

노예가 된 원주민들의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여

유물이나 금을 녹여 금괴로 만들고

은을 비롯한 귀중한 자원들을 채취하여 스페인으로 운송하고

이를 스페인 왕정에 바쳤습니다.

 

착취의 구체적인 예로는 포토시 지역을 들 수 있는데요.

1545년 안데스산맥에서 스페인 왕국은

은광석이 있는 산을 발견하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은을 품은 이 산은

이후 200년 동안 전 세계의 은의 80%를 생산했는데요.

스페인은 매장된 은을 최대한으로 착취하기 위해

이 지역에 포토시시를 세웠고,

성인 원주민 남성들을 포토시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이때 채굴된 은으로 엄청난 부가 발생했지만

이 부는 스페인 정복자들에게 돌아갔습니다.

 

채굴에 동원된 수많은 원주민들은

높은 세금, 낮은 임금, 중노동, 수은 중독 등으로 고통을 받았죠.

결국 이 지역의 은은

채굴량이 줄어 쇠퇴되었고

결국 이 지역의 엄청난 경제적 잠재력은 파괴되었습니다.

 

중남미의 식민지 정조국인 스페인, 포르투갈은

이런 시스템으로 유럽에 팔 수 있는

, , 목재, 설탕 등의 자원을 얻기 위한 생산기지로서

중남미와 북미 일부 땅을 중심으로

식민시대를 확장한 것이죠.

 

반면 북미는 기존 식민제국들에게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금은 같은 자원은 물론, 노동력도 적었습니다.

기후도 남미처럼 따뜻하지만은 않아

농사짓기도 어려워

초기 개척자들은 실제적인 굶주림과 추위, 죽음에 대한 공포를 겪은 곳이었죠.

 

미국의 식민지배국이었던 영국은 1607

현재 버지니아주의 최초의 식민지인 제임스 타운을 세우고

남미 형태의 착취 시스템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자원, 기후, 노동력 모든 면에서 부족했기 때문이죠.

 

착취할 원주민 노동력이 제한적이었기에

식민지 정착민

즉 영국에서 이주해 온 개척인들에게서 착취해야 했지만

남미와 같은 형태는 어려웠습니다.

 

강제 노동을 하거나 착취를 하면

정착민들은 차라리 개척되지 않은

다른 북미 지역으로 스스로 개척하여

그곳에 정착하는 게 오히려 나았죠.

 

결국 영국은 이익을 얻기 위해

식민지 주민들의 의욕을 올려

스스로 열심히 일하고 투자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식민지에 이주한 주민들에게

토지를 제공하고 세금을 거둠과 동시에

자유, 집회, 발언, 투표권을 주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개인의 부에도, 국가에도 도움이 되는 미덕이었습니다.

 

한편 영국은 미국 식민지화 초기

미국보다는 아시아 식민지에 더 열을 올렸습니다.

1600년에 동인도 회사를 세우고

인도와 아시아 지역의 향신료 생산기지화에 대한 우위를 점하기 위해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경쟁하고 있었죠.

 

종주국인 영국이 미국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는 동안

미국인들은 스스로 경제적 자유를 누리며

정치적인 자치를 통해

나름대로의 질서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함을 통해

소수가 아닌 다수가 권력을 가지는 형태를 갖추었죠.

 

1700년대 영국은 아시아에서 우위를 점하고

산업혁명을 위한 농협개혁 등으로 비교적 여유가 생겼고,

1720년에는 정치적으로도 민주주의가 발전하여

최초의 내각책임제 정부가 성립되었습니다.

 

종주국인 영국의 영향을 받은 미국도

민주주의 기반의 자치적 성격의 정치가 발달되어 갔습니다.

집회와 의회는 독립을 위한 대륙회의까지 이어지고

결국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며

영국으로부터 독립까지 이루어 냈습니다.

 

영국 왕정으로부터 독립을 얻어낸 미국은

당연히 독재나 왕정처럼 집중된 권력보다는

권력의 분배를 중요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권력을 다수에게 분배하고

헌법을 통해 개인들의 권리를 보호했습니다.

 

재산에 대한 권리 역시 보호받았으며

사람들은 재산을 모아 투자하고

그 결과에 대한 인센티브는 개인이 가져갔습니다.

 

사람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여 특허를 냈고

특허에 대한 권리를 보호받았기에 새로운 발명이 일어났으며

그것이 또 부로 이어졌습니다.

발명왕 에디슨, 괜히 나왔을까요?

 

반면 중남미는 정반대였습니다.

스페인, 포르투갈과 같은 왕정 국가는

땅을 주민에게 나누어 주지 않고

중세의 봉건제도와 같이 땅에 선을 그어

지역 영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영주들은 다시 특정 이해집단에

자신들의 땅에 대한 권력과 이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이해집단은 식민지 주민들의 노동력을 이용하여

부를 만들어

그 부를 영주에게

영주는 다시 왕정에 전달하는 형태로

상업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쉽게 세금과 자원을 거둬들이는

관료적인 통제가 강한 형태였죠.

 

새로운 투자, 발명, 혹은 혁신

부를 독점하고 있는 지배 엘리트층이 그것을 두고 볼까요?

혁신이 일어나지 않도록 방해하지 않으면 다행이었죠.

 

종교 또한 영향을 주었다 할 수 있는데요.

애초에 일할 사람들이 없었기에

오히려 토지를 제공하고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며

부의 창출을 독려했던 북미대륙에게는 기회

즉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세계 각지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왔습니다.

 

그 결과 영국에서 박해를 받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천교도인 뿐만 아니라

13개의 각 주마다 다양한 종교

같은 종교라도 다른 종파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기에 미국이 독립선언을 할 때는

종교 자유의 보장을 명확히 했습니다.

 

반면 중남미는 왕정 국가의 국교인 가톨릭만을 인정했는데요.

만약 이민을 오는 사람들 중 가톨릭이 아닌 사람이라면

중남미보다는 북미를 택할 확률이 높겠죠.

종교문화적인 영향력이 노동력의 차이로도 이어진 것입니다.

 

북미의 독립과 성공적인 발전에 영향을 받은 남미도

독립에 대한 요구가 강해져 갔습니다.

1800년대가 되어 프랑스 혁명이 성공하고

나폴레옹이 스페인을 침공했고

종주국인 스페인의 힘이 약해진 상황이었습니다.

 

군주제는 무너지고 불안한 상황에서 남미의 기득권 군벌 세력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모든 주가 함께 독립한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위해 나뉘어졌죠.

 

이것이 이어져 지금도 20개 정도의 국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독립 후에도 남미 시민들은 여전히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엘리트 계층들이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 기존 시스템을 유지했고

시민들도 스스로 민주주의와 자유를 얻기 위한 시스템으로 바꾸어 나갈

경험과 힘이 적었습니다.

 

기존의 식민지 시스템에서

각 독립국가 엘리트층에 의해 착취당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었습니다.

 

각각의 독재 정권은 감시권력이 적었기에 부패하기 쉽고

그것을 바꾸기 위한 방법으로

민주적 절차보다는

쿠테타와 같은 폭력적 방법들이 주가 되었죠.

 

이것은 또다시 불안전성을 높였습니다.

그래도 남미의 많은 자원과 기본적인 노동력, 좋은 기후가 있는데

그 장점을 활용할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죠.

 

맞습니다.

그런 장점을 활용하여

베네수엘라는 석유, 아르헨티나는 식량, 브라질은 커피, 칠레는 구리 등

국가별로 주력 산업들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도 식민지배, 독재정권의 영향으로

해당 산업의 접근권이 거대 기업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풍부한 자원과 독점적 기업운영으로

단기간에 엄청난 부를 창출하지만

그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오거나

다른 산업과의 불평등이 생기고

다른 산업의 기반이 약해지며

지속적 소득 창출에 실패하고

믿었던 중심 산업마저 무너지는 등

경제적 안정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많은 약점들도 나타났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경제 성장기에 대기업을 중심으로 급속히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것은

우리나라는 제조업 중심의 기술을 활용한 형태로 성장했다면

남미는 단순히 농산물이나 지하자원을 수출하는 형태였고

이는 훨씬 취약한 구조인 것이죠.

 

대표적인 예가 베네수엘라로

석유 가격이 비쌀 때는 엄청나게 흥했지만

저유가 시대가 오면서

지금은 국민 대부분이 가난한 국가가 되었죠.

 

이런 자원의 저주는

대부분의 남미 국가에서 나타났습니다.

 

 

 

지금까지 남미가 왜 북미보다 더 가난한지에 대해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종교, 문화적인 부분들까지 알아보았습니다.

 

여러 요소들에 영향을 주어

북미는

자유, 책임, 권리가 보장되며

경제적 성장에 대한 인센티브가 있는 경제구조가 만들어져 왔지만

 

남미는

과거의 유산이 비교적 현대까지 이어져

그런 유인책이 있는 경제구조의 정착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강조드리고 싶은 부분은

게으름, 능력 등과 같은 개인적 차원이 아닌

사회구조적인 차이라는 인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