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세계사

지식줌) 세계에서 가장 날씬한 국가 베트남, 왜 영토마저 길쭉할까?

Buddhastudy 2025. 2. 27. 20:15

 

 

지난번에 세계에서 가장 좁고 길쭉한 나라

칠레에 대해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엔 또 다른 아시아의 길쭉한 국가, 베트남입니다.

 

인도차이나 반도 동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베트남은

중국, 라오스,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고

바다는 통킹만, 타이만, 남중국해를 접하고 있죠.

 

면적은 33정도로, 한국의 3배 정도가 되는 크기인데요.

1,650km 정도의 남북길이를 생각했을 때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좁은 동서 간 거리를 가진

중부 지역의 길쭉한 형태의 지형 때문일 것 같은데요.

 

가장 좁은 부분의 넓이는 약 50km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거의 1억 명에 육박한 인구의 절반 이상이

북부와 남부 지역 쪽에

각각 10% 정도밖에 되지 않는 지역에 모여 살고 있는데요.

 

보통 수도 근방에 집중된 현상이 나타나지만

베트남은 그 분포가 양쪽 끝으로 나뉘어져 있고

오히려 남쪽의 호치민과 그 주변 지역이 인구가 더 많죠.

 

왜 이런 독특한 인구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또 영토는 유독 왜 이렇게 긴지를 포함하여

베트남에 대해 특이할 만한 부분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역사

 

먼저 역사를 볼 텐데요.

현재 베트남의 수도는 북쪽 하노이에 있는데요.

수도가 있는 것처럼 사실 역사적인 중심 지역은 북쪽이라 볼 수 있습니다.

 

베트남이라는 말은

사실 일본식 발음이고 정확한 발음은 비엔남인데요.

또 다른 말로는 월남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여기에서 비엣과 월은 같은 뜻인데요.

고대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존재했던 월, 혹은 유에라고 부르기도 하는

국가의 이름을 뜻하죠.

이 월나라를 뜻하는 유해가 비엣으로 발음이 되었고

비엣의 남쪽에 있는 나라라 하여

비엣남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죠.

 

이 고대의 남월은 기원전 111년 한 왕조의 침공으로

중국의 속국이 되고

이후에도 여러 중국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중간중간에 쯩자매의 반란과 같은 몇 차례의 독립 움직임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인 역사로 보면

기원 후 10세기까지

중국의 통치, 혹은 강한 영향력 하에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기원후 938

14명의 베트남 국가 영웅 중 1명인 응오꾸옌이

박당 전투에서 중국의 남한군을 물리치며

거의 1000년에 걸친 북방 지배를 종식시키고, 베트남의 독립을 이끌었죠.

 

하지만 천 년 정도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다 보니

독립 후 곧바로 안정을 찾기 쉽지는 않았겠죠.

응오꾸옌이 사망한 후 권력 다툼이 일어나다 보니

응오 왕조부터 시작하여

세계의 왕조가 짧은 기간 동안 바뀌긴 합니다.

 

그러던 중 귀원 후 109년 독립된 왕조로는 처음으로

200년 이상 장기간 이어지는 리왕조의 초대 황제로 즉위한 리태조는

즉위 1년 후인 1010년 수도를

기존 호아루에서 현재의 수도 하노이의 위치로 옮기게 됩니다.

그리고 리왕조의 세 번째 왕인 리성종은

1054년 왕위에 오른 직후

국명을 다이비엣, 즉 대월국으로 바꾸죠.

그리고 이 다이비엣이라는 국명은 15세기 호 왕조를 제외하고는

1804년까지 이어진 모든 왕조들이

독립된 베트남 민족 군주제 국가의 국명으로 사용하였고

하노이도 1789년까지 수백 년 동안 다이비엣의 수도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리고 현재도 베트남의 수도로 있죠.

 

 

--지리

 

그렇다면 그 많은 북부 지역 중

왜 하노이가 수도로 선택되었는지 알기 위해

잠시 베트남의 지리를 보겠습니다.

 

위쪽의 최북단부터 보자면

이곳은 동남아시아 중앙 산괴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산악 지역으로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높은 판시판 산이 북서쪽 끝에

3,142m까지 솟아 있고

여러 개의 고원이 있으며

그 고도와 형태가 불규칙하여 험준하다 볼 수 있죠.

그래서 이 지역엔 주로 소수 부족이 거주하고 있고

또 북서쪽을 둘러싼 높은 산들로 인해

다른 지역과 베트남을 구분하는 장벽의 역할을 했죠.

 

중부 지역으로 넘어갈 텐데요.

서쪽인 북쪽부터 시작하여 아래로 길쭉하게 이어지는 가장 높은 지점은

2,819m에 이르는 안남산맥이 이어져 있어

라오스, 캄보디아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죠.

 

그리고 동쪽엔 해안평야가 있습니다.

또 지도를 보시면

중앙에 좁은 해안선을 따라 산맥에 수많은 돌출부가 나 있는 지역이 있죠.

이런 지형적 특징은

수세기 동안 베트남의 남과 북의 연결을 어렵게 만드는 역할을 했죠.

 

하노이와 호치민이 있는 북부와 남부가 아닌

이 중앙 지역의 주요 산업은 무엇인지 궁금하실 것 같아

농업을 제외한 지역별 주요 산업만 잠시 말씀드리면

중북부 쪽엔 특히 석회석이 많아

광산 산업과 건축, 자재 생산이 가장 주요한 산업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남부 지역엔 새우나 어류가 많은 해변이 있으며

특히 단항의 호앙사에는 대규모 어장이 있죠.

 

그리고 이 지역엔 구불구불한 해안만이 많다 보니

심해안 건설에 유리한 부분이 있어

다낭과 꾸이년 같은 지역은 베트남의 주요 해상 교통 허브로 있으며

또 여러 해변과 멋진 풍경

북부와는 다른 다양한 문화, 참파의 역사적 유물 등이 있어

관광 산업이 번창하고 있죠.

 

그리고 중부 고원 쪽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사실 사회 경제적 여건이 어렵긴 한데요.

그래도 이 지역은 천연자원 측면에선 이점이 있는 지역입니다.

 

이곳은 최대 200만 헥타르,

베트남 전체 현무암 토지의 60%를 차지하는

비옥한 현무암 지대를 가지고 있고

또 커피, 코와 후추, 뽕나무, 차 등

고원의 지리적 조건을 활용한

산업용 작물 재배에 유리한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세계 2위의 엄청난 규모의 커피 생산 국가인

베트남 커피 생산의 80% 이상이

이 중부 고원 지역에서 생산됩니다.

 

...

 

--북부의 발전

 

다시 이야기로 돌아가

북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위쪽으로 가보죠.

 

하노이는 높은 산과 바다라는 지리적 장벽이 있고

또 당시, 리왕조 영토의 중앙에 있었기도 했지만

수도로 선택된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홍강의 존재인 것 같습니다.

 

이 홍강도 다른 강들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높은 산맥 쪽에서

동쪽의 바다로 흐르는 형태라 보시면 되는데요.

홍강은 1,149km에 이르는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큰 주요 강으로

하노이는 이 강의 서쪽에 붙어 있어

또 다른 내부적인 장벽의 역할을 해주었죠.

 

그뿐만 아니라 홍강은

농업과 어업의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유리한 환경적 조건이었는데요.

이 강은 중국 윈난성 다리시, 남쪽의 산맥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흘러

베트남 북부의 라오까이 지역

이후 수도 하노이를 거쳐 통킹망까지 흐르게 되는데

중국의 산맥에서부터 퇴적물이나 모래 등을 품고

긴 길을 내려오다 보니 강의 영양이 풍부했습니다.

 

그리고 이 홍강은 주변에 수백 개의 작은 강을 낳게 되고

당연히 이 강들 역시

모래와 퇴적물이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영양분이 풍부한 강이죠.

특히 홍강과 타이빈강이 합류하는 이 지역엔

15000의 평평한 삼각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곳은 최대 고도가 해발 3m가 채 되지 않으며

대부분은 1m도 안 되는데요.

그렇다 보니 홍수나 범람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강물이 땅 위로 올라오며

수천 년에 걸쳐 쌓인 강의 막대한 퇴적물들이

주변의 땅들에게까지 전해져

삼각주 지역 전체가 매우 비옥한 땅이 되었죠.

 

이 홍수 기간은

다량의 퇴적물들이 강에서 내려오다 보니

강의 색이 붉게 변했는데

여기서 홍강의 이름이 유래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홍수는 사회에 많은 피해를 주죠.

그래서 점차 베트남인들은

홍수를 통제하고, 삼각주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하기 위해

광범위한 중국식 제방과 운하시스템을 건설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농업도 더 발전하고

그에 따라 당연히 인구도 더 늘어나고, 사람들도 모였던 것이죠.

 

또 강은 동쪽 바다로 이어지는데

영양이 풍부한 강과 바다는 수산업에 매우 유리한 조건이죠.

또 바다와 닿아 있다 보니

풍부한 농산물이나 해산물을

해상을 통해 운송이 가능하고

또 바다는 관광 개발에도 유리한 환경입니다.

또 평지 얘기에 여러 가지 사회 기반 시설이나

공장과 같은 산업용 건물을 건설하기에도 유리하죠.

 

이것은 베트남의 석탄 매장 위치를 나타내 지도인데요.

대부분이 북부 쪽에 위치하고 있죠.

실제로 전체 매장량의 90% 이상이 이 북부 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고령토, 석회석, 갈탄 등

여러 광물 자원들에 대한 접근권도 북쪽이 높다 볼 수 있죠.

 

이런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에

거의 천 년 전부터 이 지역은

베트남의 수도이자 가장 발전한 지역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살아왔던 것이죠.

 

자 이렇게 북쪽이 왜 베트남의 중심이고

하노이 주변에 왜 사람들이 모여 사는지 보았는데요.

이번엔 어떻게 베트남이 이렇게 길어졌는지 알기 위해

다시 역사로 돌아가 볼게요.

 

 

--베트남의 영토 확장

 

독립 베트남의 안정을 찾은 리왕조는

1174년 중국의 남성으로부터 안남 국왕으로 책봉받아

더욱 확실히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인정받게 되죠.

 

다이비엣은 리왕조의 200년이 넘는 기간의 통치가 끝난 후

쩐왕조, 호왕조, 레왕조, 막왕조, 응우엔왕조 등 여러 왕조들로 이어지며

베트남 북부를 중심으로 180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는데요.

그동안 중국엔 조공을 바치기도 하고

공격을 하기도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아의 대국이었던 북쪽으로의 진출은

현실적으로 베트남에겐 어려운 일이었죠.

그리고 남쪽엔 참파가 있었는데요.

참파는 2세기부터 베트남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갔는데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워

농업과 유교 중심의 국가였던 다이비옛과는 다른 특성을 보였습니다.

 

또 중국과는 직접 맞닿지 않았고

해상 무역이 활발하다 보니

인도나 아랍 등 다른 문명들의 영향을 많이 받아

불교나 힌두교가 주요 종교였죠.

 

또 천파 시대에 발달한 도시로 다낭, 호이안 등이 있다 볼 수 있는데

해상 무역이 활발했다 보니

지금도 호이안에 가면

과거 중국인 지역과 일본인 지역을 연결했던 일본식 다리가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다이비엣은 지도에 보시는 것처럼

점차적으로 남진을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때로는 참파족에 대한 학살 같은

폭력적이고 잔인한 부분도 있기는 하였죠.

 

결국 참파는 1832년까지 유지되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남은 참파인들은 베트남에 동화되거나 주변 국가들로 퍼져 나갔습니다.

지금도 다낭의 미선 유적이나 나트랑의 포 나가르 사원

여러 참파 시대의 유적들을 볼 수 있죠.

 

그리고 1835년 베트남은 현재 호치민을 비롯한

가장 극남쪽 지역의 영토까지 확보를 하게 되는데요.

사실 그 지역은

현재의 캄보디아로 이어졌다 볼 수 있는 크메르 제국의 땅이었습니다.

 

이 땅을 확보하는 과정에선

태국의 전신인 시암과 캄보디아, 베트남

3국 간의 관계에 대해 볼 필요가 있는데요.

1623년 당시 캄보디아의 왕 체이 체타 2

시암이 위협적으로 다가오자

이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다이비엣의 응우옌 왕조에게 지원을 요청합니다.

 

다이비엣은 이에 응하고

대신 다이비엣 인들이 크메르의 프레이노코르

즉 현재 호치민 지역에 거주하고

다이비엣이 세금을 징수할 수 있도록 세관을 세우는 것까지 허용했죠.

 

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곳은 넓은 평원이 있는 지역이며

홍강 삼각주와 같이 메콩강 삼각주가 있는 비옥한 지역입니다.

 

점차적으로 베트남인, 즉 다이비엣 인들은

이곳에 더 많이 정착을 해 갔으며

또 중국 청나라에게 나라를 잃고

다이비엣으로 망명한 일종의 난민이 된

명나라 출신 관리나 군인, 그리고 시민들을 이 지역으로 이주시켰죠.

중국의 인재들과 군인, 그리고 베트남 중국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급격히 이 지역을 개발할 수 있었는데요.

 

예를 들면

꾸 라오 포같은 지역은 처음엔 숲이었는데

명나라에서 삼성 장군까지 지내다 부하들을 이끌고 이곳에 내려온

쩐트홍 수엔이 지휘력을 발휘하여

이 원시적인 땅을

점차 무역 및 국제 거래의 중심지인 상업 지역으로까지 만들었죠.

 

1600년대 말이 되자

현재 호치민 바로 옆에 있는 꾸 라오 포’, ‘미토같은 지역이 먼저

남부에서 가장 큰 상업 중심지가 되었고

1700년대 말 혼란과 전쟁으로 인해

상인들은 점차 현재 호치민 지역으로 이주하며

이 사이공 지역은 점차 베트남 남부 최대의 경제 중심지가 됩니다.

 

이렇게 발전을 시켜 나가던 중

1690년대가 되자 다이비엣은

이곳이 자신의 영토라 주장하기 시작하는 한편

캄보디아의 영향력은

북쪽의 시암과 남쪽의 다이비엣 사이에서 점차 약해져 갔는데요.

 

그러다 1833년 지역의 경쟁자였던 시암은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의 영향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육로와 해상으로 캄보디아를 침공하게 되고

시암은 쉽게 캄보디아를 점령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34년엔

더 아래로 내려가 베트남과 싸우게 되는데

메콩강 쪽의 밤나오(강 명칭)’ 전투에서 시암군은

베트남 군에 패하게 되고 후퇴하게 됩니다.

 

이렇게 베트남은 시암의 공격을 막아내고

이듬해 1835년엔 다이비엣은 쯔엉 민장을 캄보디아 지역 총독으로 앉히고

이곳을 베트남의 한 지역으로 편입시켰죠.

 

이렇게 하여 현지와 비슷한 형태의 영토 확장이 이루어졌는데요.

아마 그대로 계속 있었으면

캄보디아 왕국은 아예 사라지고

그 지역을 태국과 베트남이 나눠 가지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때 예상치 못한 제3의 세력이 나타나죠.

바로 프랑스입니다.

 

이 이후에 비교적 근대적인 베트남의 역사 부분은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길게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남부의 발전

 

아무튼 이후에 베트남에선

외세라 할 수 있는 프랑스의 식민통치나 미국의 점령 기간이

사이공이라 불렸던 현재 호치민시에는

어느 정도의 발전 기회가 되기는 했습니다.

 

물론 이미 이곳은 홍강 삼각주처럼

티베트 고원에서부터 내려오는

메콩강을 통해 만들어진 메콩강 삼각주가 있었기에

농사와 어업이 잘 되니

인구와 식량 모두 충분했으며

또 베트남에서 가장 큰 평지를 가지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이기에

도시 형성과 발전을 위한 환경적 조건은 갖춰져 있다 볼 수 있죠.

 

프랑스는 사이공을

인도차이나 연방식민통치의 중심지로 삼고

프랑스식 총독 관저, 법원, 상업지역, 시장, 종교시설, 주교, 궁전 등을 만들죠.

프랑스는 사이공을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려 하고

이곳에 극동의 진주라는 별명까지 붙이지만

사실 이는 소수의 상류 프랑스인에만 해당되는 것이었습니다.

즉 넓은 건물과 도로, 쾌적한 환경에선 프랑스인들이 생활을 하고

오히려 기존의 베트남인들은 사이공 중심지 밖으로 밀려나

좁고 비위생적인 곳에서 생활을 해야 했죠.

 

베트남인들은 착취를 당하고, 때론 목숨을 잃는 등

그들에겐 전혀 진주가 아니었습니다.

또 프랑스가 떠난 후 남베트남엔 미국이 들어왔는데요.

착취의 중심지로 삼던 프랑스와는 달리

미국은 사이공을 매력적이고 도시화된 멋진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상당한 지원을 했죠.

마치 북한의 공산화에 대항하기 위해

남한의 민주주의 정부가 세워지고 미국이 지원을 했던 것처럼

북베트남의 공산화의 바람이 불자

미국은 이 바람을 막기 위해 남베트남을 지원했고

그 남베트남의 중심 도시가 사이공이었습니다.

 

아무튼 이 외세 간섭 시기에

프랑스와 미국이 이 사이공 지역을 개발하고

돈을 사용하고 도시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특히 미국 지원 시에 문화와 오락적인 부분들까지 발전했죠.

 

외국인들이 사용한 돈도

사이공 지역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공장이 생기다 보니

수만 명의 시골의 농부들이

일자리나 돈을 벌기 위해 사이공으로 몰려들었죠.

 

그리고 남베트남, 북베트남 간의 전쟁이 확대되며

베트남 남부 지역의 시골에선 수많은 전투들이 일어났는데요.

이에 따라 시골 농촌의 사람들이

보다 안전한 사이공으로의 이주를 더 확대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이공, 즉 현재의 호치민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전히

동남아 내륙과 도서 지역, 말라카 해협, 동아시아까지 이을 수 있는

해상 무역에 유리한 위치를 가지고 있고

또 문화적으로도 베트남에서 가장 다른 지역의 사람들과 교류가 많았으며

외세의 영향도 받다 보니

사람들이 더욱 개방적이고 역동적이고

보다 대담한 행동을 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기술이나 문명을 성공적으로 수용하는 바탕이 되죠.

 

이런 여러 가지 조건이 작용하여

남부 지역의 인구는 늘어났고

특히 이 호치민 지역은 더욱 그랬습니다.

 

이렇기에 인구 변화에 대한 통계 자료만 보아도

그 변화를 아실 수 있겠죠?

그렇다 보니 수도 하노이보다 반대쪽 호치민의 인구 밀도가 더욱 높고

지금도 베트남 경제의 중심지로 성장해 있습니다.

 

남부에서도 호치민이 있는 남동부는

수출, 외국인 직접 투자, GDP 생산이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지역으로

건설, 중공업, 경공업, 식품 가공 등

산업적 생산이 균형적으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베트남에서 석유가 난다는 사실을 모르시는 경우도 많으실 텐데요.

지도에서 보시는 것처럼 남부 연안에 석유가 개발되고 있으며

아시아 네 번째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재 호치민은

경제, 금융, 문화, 관광, 교육, 과학 및 기술 중심의 도시이며

바로 옆 동나이는 3개의 대규모 산업 지역이 있는 산업 도시죠.

또 빈즈엉도 동나이와 함께 외국 자본 유치에 역동적인 도시입니다.

 

그리고 남서쪽엔 메콩강 삼각주가 있어

다른 천연자원이 많지는 않지만

농업과 어업 생산량이 매우 높아

둘 다 전국 생산의 50% 정도를 차지하죠.

 

 

 

요약해 말씀드리면

하노이는 여러 지리환경적 이점으로

1000년 전부터 베트남 왕조의 수도이자 중심 도시로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았던 곳이라면

호치민은 베트남이 점령한지 불과 3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전쟁이나 경제적 원인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어 급격한 인구 증가가 나타났다 보시면 됩니다.

 

 

--경제

 

베트남은 미국과 중국에 이어 한국과 가장 교역이 많은 국가이기도 하고

한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해 있기도 한데요.

베트남은 한국 기업들처럼

외국 자본들이 최근 들어 더욱 많이 들어가

급속히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최근 미-중 갈등이 심해지며

주요 생산기지였던 중국의 리스크가 높아지자

해외 기업들이 중국에서 발을 빼고

대체 생산기지를 찾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데요.

그 움직임에 가장 큰 수혜자가 베트남이라 볼 수 있죠.

 

이것은 베트남 주요 수출 물품으로

쌀이나 커피 같은 농작물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실은 외국 자본을 통한 제조업 제품들이 가장 많습니다.

한국의 삼성이나 LG의 전자 제품도 여기에 포함되겠죠.

또 좋은 지리와 기후적 조건이 있고

또 물론 대학까지 나온 인력의 비율은 적지만

한중일,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유교 기반의 국가이다 보니

산업 활동을 위한 적절한 능력이 있으며

또 인건비는 저렴한 산업 인재들을 육성하는 능력이 있죠.

 

인구도 1억 수준으로 상당한 규모입니다.

그리고 공산국가라 공권력이 지나치게 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정치적 시스템과 안정성을 갖춘 국가이기도 하죠.

 

이런 이점들로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 리스크도 있기는 합니다.

지나치게 외국 자본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죠.

 

 

잠시 베트남의 삼성이라 불리는 빈그룹의 주가를 보여드리죠.

거의 6년 내에 최악의 주가를 보이고 있는데요.

최근 진행한 스마트폰이나 전기차와 같은

미래를 위해 투자한 사업들의 실패 혹은 부진과

앞으로의 부정적 전망 등

여러 가지 뜻이 담겨 있는 수치일 것입니다.

 

빈그룹은 자회사까지 포함하면

베트남 전체 주식시장의 약 20%~ 25% 정도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는데

빈그룹이 내수에서 강력하다고 볼 수 있지만

글로벌 경쟁력은 사실 높다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진정한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한국의 삼성이나 현대, 혹은 일본의 도요타나 소니

대만의 TSMC처럼

국제적 경쟁력을 갖 기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지금은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와 성장하고 있지만

어떠한 리스크로 갑자기 자본들이 빠져나가게 된다면

경쟁력을 엄청나게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지금 외국 자본이 많이 들어온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 나갈지

향후 몇 년간의 움직임이 매우 중요할 것 같습니다.

 

중국과 인도에 이어 아시아에서

한국과 가장 많은 교역을 하고 있는 베트남이기에

서로 윈윈하는 형태로 상호 발전해 나가면 좋지 않을까 싶네요.

 

오늘 영상을 통해

베트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시청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