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영상에선 이슬람 국가들이
더 가난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 볼 텐데요.
종교적인 부분을 기준점으로 삼기 때문에
좀 더 민감한 주제이긴 하죠.
특정 종교를 비판할 생각은 없으며
현재 20억 명 정도에 달하는 이슬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몇 가지 시각으로 접근해 보려 합니다.
여러 통계와 논문을 참고했는데
자료 출처도 영어 자료가 대부분이다 보니
아무래도 서방의 시각이 더 담겨 있을 수 있는 부분까지 참고 부탁드리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죠.
우선 제기한 의문점에 대한 팩트부터 체크를 해보겠습니다.
2021년 ‘이슬람 협력기구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GDP 중 이슬람 협력기구 국가들의 GDP는
세계 GDP의 8.2% 정도만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이슬람 협력기구 국가들의 총인구는
세계 인구의 약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비교하면
인구의 비율 대비 GDP는 약 3분의 1 수준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를 더 명확히 비교해 볼 수 있는 건, 1인당 GDP일텐데
이슬람 국가들의 1인당 GDP는 평균 3,700달러 정도로
세계 평균인 11,000달러 정도에 비해
무려 ,7000달러 이상 더 적다는 것이죠.
또 세계 주요 산유국들이 모여 있는 곳이
이슬람 국가들이 모여 있는 중동입니다.
자원적으로만 보면
일종의 유전 프리미엄까지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비교되는 것을 보면
그 차이는 분명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차이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과거엔 이슬람 경제가 약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세계 최고 수준이었던 적도 상당 기간 있었죠.
특히 이슬람 국가가 생겨난 후
발전과 영토 확장을 거듭하였기에
상당 기간 분명 유럽보다도 더 발전했습니다.
이슬람은 대략 기원후 900년~ 1,000년 전후로 황금기를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번영했다고 볼 수 있는데요.
세계적 명성이 있는 상업의 중심지를 보유하고
무역에서도 세계 중심에 있었으며
생활 수준도 유럽에 비해 더 발전했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이유들로 인해
이후 유럽은 급속한 발전에 성공했고
이슬람은 그 기회를 놓치며 현재와 같은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죠.
자, 그럼 그 원인들을 하나씩 살펴볼까요?
--이슬람 규율
우선 이슬람의 문화적인 부분을 볼게요.
일단 개인의 영역에서 적용되는 대표적인 관습을 본다면
이슬람 순례와 라마단 기간 동안의 금식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런 관습들은 단순히 보면
경제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는 것 같지만
또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 게
단식이나 순례길에 오르면서
개인적인 행복
즉 정신적인 부분이나 웰빙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이런 부분에서 원인을 찾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럼, 이번엔 이슬람 쿠란 규율에서
실제적으로 경제와 연관이 있는 부분을 보죠.
첫 번째 볼 부분은 상속 규칙입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고인의 직계, 가족과 부모,
그리고 특정 조건에서는 먼 친척들에게까지 유산을 분할해야 했습니다.
특히 농경이 아닌 유목사회였기에
약탈이나 더 나은 땅을 두고 일어나는 다툼이 많다 보니
그 과정에서 많은 남성들이 사망했고
그에 따라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죠.
이슬람 율법에 따르면
남성은 최대 4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아내가 늘어날 때마다
당연히 상속받는 자녀의 수도 함께 늘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기업의 규모를 키우는데 크게 제약이 되는 부분입니다.
대규모의 자산이 있더라도 기업주가 죽으면 분열이 되다 보니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어려운 것이죠.
상속이 일어나는 순간, 사업의 규모가 N분의 1이 되어버리니
다시 규모를 키우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물론 당시의 사회에선 이런 평화롭고 평등한 분배가
이슬람 세계의 안정적인 성장과 번영을 가져왔겠지만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맞지 않습니다.
자, 이렇다 보니 이슬람 세계에선 투자자들도
대규모 투자를 하는 경향이 적었습니다.
어차피 상업 기업의 대표가 사망하면
투자한 것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 상속인들과 합의를 해야 하는데
복잡하게 얽힐 가능성을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죠.
반면 서구에선 상속이 있더라도
다소 덜 평등한 시스템으로 상속이 일어나
상업 기업들이 여러 세대에 걸쳐 생존해 나갔고
점차 대규모 기업으로 확장될 수 있었기에
규모가 크고 장수하는 상업 기업들이 늘어갔지만
중동에선 그런 발전이 일어나지 않았죠.
특히 산업혁명 시기 이후에
새로운 기술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면
더욱더 규모가 크고 자본과 노동력을 오랜 기간 동안 결합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기업이 필요했는데
중동의 상업 구조로는 이런 변화에 적응하기 매우 힘들었죠.
한마디로 요약해서
이슬람 상속 규칙의 적용을 받으면
굳이 기업을 키워야만 하는 인센티브가 매우 적어진다는 것이고
이게 낮은 발전으로 이어진 것이죠.
...
--이자 금지 문화
또 다른 경제와 관련한 이슬람 문화는
거래에서 이자를 금지한다는 것인데요.
금융 산업의 발전에 있어
대출을 통해 이자를 얻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죠.
금융은 경제 발전 전체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금융 산업의 핵심인 이자를 금지한 것이죠.
사실 이자를 죄악시한 건 이슬람뿐만 아니라
기독교도 마찬가지였는데요.
다만 기독교에선 이슬람에 비해 비교적 세속화가 나타났고
또 종교개혁, 르네상스 등으로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근세로 이어지는
탈종교 세속화가 가속된 시기도 있었습니다.
또 기독교권에서 배척을 당했던 유대인과 같은 민족들이
기독교에서 불경시하던 고리대금업에 종사하는 등의 모습도 있었죠.
이 고리대금업은 십자군 전쟁 등으로 더욱 성장하기도 하였고
이후엔 교황까지 배출하고 교황청 전담은행이 되고
여러 사회 문화적 후원을 통해
르네상스 시기의 발전을 견인한 그 유명한 메디치 가문이 나타나며
중세금융업의 성장이 절정에 이르렀죠.
영국, 벨기에,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등
주요 유럽 국가들에 메디치은행의 해외 지점을 설치하게 되는데요.
이를 통해 또 중세 시대에 놀라운 발명품 중 하나인
환어음이 나오게 됩니다.
메디치은행이 이탈리아에도 영국에도 있으니
이탈리아에서 물건을 사지만
바로 돈을 지불하지 않고 환어음을 통해
종이에 서명하는 것만으로도 그 보증이 되고,
이후에 돈을 찾아 런던의 롬바드 스트리트에 있는 메디츠은행에서
그 값을 지불할 수 있었던 것이죠.
메디치은행은 이 계약을 이행하며 이윤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버는 것이고
상인이나 기업가들은 금과 같은 현물을 들고 다니지 않고도
자본을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상인들뿐만 아니라 순례자들과 같은 일반인들도 환어음을 이용하며
현대의 금융 시스템과 같은 계약 문서를 통한 거래 시스템이
유럽 사회에 뿌리내리게 된 것이죠.
즉 문서 계약을 통한 국제적인 금융 네트워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반면 이슬람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1299년부터 1차 세계대전 이후까지 600년이 넘는 기간을 유지한 오스만제국은
1800년이 되어서야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이자를 공개적으로 허용하게 되었는데
이는 중세보다 몇백 년이나 늦었고
그만큼 현대의 신용 기반 금융 시장 시스템이 늦게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상업조직은 그 시대에도 여전히 작고, 수명이 짧았으며
사업은 주로 지인들 사이에서 이루어졌죠.
서구는 서류를 통한 문서화된 시스템 속에서의 거래가 자리를 잡았는데
이슬람은 여전히 사람 간의 관계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다 보니
외부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은 것이죠.
100마디의 구두로 한 약속보다
한 장의 정확한 계약서가 더 확실하잖아요.
이렇게 문서화된 시스템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법 집행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7세기 이스탄불에 있었던 상업 및 금융 거래와 관련한 법 집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법적 분쟁에서 원고와 피고, 둘 다 문서를 첨부하지 않으면
원고의 승소율은 60.3%였지만
원고가 문서를 제출하면 승소율은 83.9%로 올라갑니다.
반대로 피고만 문서를 제출하면 원고의 승소율은 7.2% 뚝 떨어지죠.
문서는 17세기 이슬람 국가에서도
법 집행에 중요한 증거로 채택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1개 이상의 문서가 제출된 재판이
고작 15.2%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 말인즉슨 문서가 법적 도구로 명확한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계약이
개인적 관계 수준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그에 따라 문서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상업 부문에서
문서화 수준이 낮았고
이는 저개발된 경제적 시스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은행에서의 사례
이런 이슬람권의 금융에서의 제약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사례를 하나 들어볼게요.
1990년 튀르키예에선 신용카드가 도입되었는데요.
당시 이슬람주의 은행과 이슬람주의자들은
이 신용카드가 ‘이슬람적이지 않다’라고 비난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었죠.
결국 이슬람은행은
거의 10년 정도 후인 1998년 비이슬람적이지 않은 신용카드를 만들어내고
2002년이 되어서야 할부결제 기능을 도입하게 됩니다.
또 당연히 지불연체에 대해 이자를 부과하는 것은
비난받을 일이기에
이슬람은행은 연간 수수료나 ‘돈을 빌리는 것에 대한 이자’가 아닌
‘인플레이션 조장에 대한 이자’와 같이
이자와 비슷하지만, 비이슬람적이지 않은
변형된 형태로 신용카드를 공급하는 것이죠.
즉 현대에 와서도 이슬람주의 은행에선
금융 상품들이 이슬람화되어 공급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복잡성과 비효율성은
금융에 대한 접근성도 낮추는데
이슬람 협력기구 국가들의 경우
평균적으로 성인 1000명당 금융 계좌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약 435개가 적고
은행 같은 금융지점은, 성인 10만 명당 12개가 적다고 보고 있죠.
현대에서도 이슬람 문화가
금융 발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정일치
자, 그럼 여기서 드는 의문은
왜 이슬람은 변화하지 않을까인데요.
이슬람 국가들은 기독교 국가들이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벤치마킹을 하기보다
오히려 더 종교적 색채가 강해졌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여러 이유들이 많을 텐데
근본적인 부분을 본다면
기본적인 이슬람의 신정일치의 교리가 있다 생각됩니다.
비교를 위해 기독교를 본다면
신약 성경에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가이사, 즉 ‘로마 황제의 것은 로마 황제에게’라고 적혀 있는데요.
이 말처럼 기독교는 신과 인간을 어느 정도 분리하고 있고
역사 속에서 점차적으로 종교와의 분리가 이루어졌죠.
반면 이슬람은 하나님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은
구분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를 국가에 대입해 보면
정치와 종교도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현재도 그렇죠.
시아파를 대표하는 이란은
우리나라처럼 투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지만
그 위에 이슬람 성직자인 라흐바르라는 종교적 최고 지도자가 있고
대통령 취임도 라흐바르의 동의를 받아야 하죠.
그리고 대통령은 임기가 있지만 라흐바르는 종신직입니다.
또 수니파의 종주국 사우디는
국왕이 정치 지도자이자, 또 최고의 종교 지도자이자, 최고의 족장이기까지 한데요.
완전한 신정일치의 존재인 것이죠.
또 헌법도 존재하지 않고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가 헌법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문자
종교와 사회가 분리되는 기독교 쪽과는 달리
종교의 힘이 유지되거나 오히려 강화가 되었던 현상은
이슬람 국가의 진보에 있어선 장벽으로 작용했는데요.
그런 현상이 있었던 특이할 만한 두 가지 부분을 보겠습니다.
첫째는 과학입니다.
현대의 기술이라 할 수 있는 과학의 중심은
과거엔 이슬람이었습니다.
중세 시대 이슬람은 의학, 수학, 과학, 천문학, 물리학 등
광범위한 범주에서 과학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이야기를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슬람 과학은 점차 쇠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슬람 과학 선구자 백과사전에 포함된
위대한 이슬람 과학자들의 시간적 분포를 보시면
1250년 이전엔 64%가 있었고
1250년~ 1750년 사이 36%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1750년 이후엔 전혀 없죠.
또 하버드 도서관에 있는
1850년 이전에 이슬람 작가들의 도서를 바탕으로 통계가 있는데
900년~ 1100년 사이의 도서 중 12%가, 과학적 주제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비중은 1700년에 가니 2%로 뚝 떨어졌고
반대로 종교적 주제는 900년~ 1100년 사이엔, 도서의 30%를 차지했는데
1700년이 되니 오히려 40%로 올라갔죠.
두 번째는 문자와 도서의 보급으로 1440년경 유럽에선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발명되며
인쇄술이 크게 증가하고, 책도 많이 보급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글을 읽고, 기술과 지식을 전수 해 갔고
이는 당연히 사회와 경제 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슬림을 위한 최초의 인쇄기는
거의 300년 이후인 1727년에 사용됩니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역시 이슬람 종교 기관이나 성직자들의 저항인데요.
책이 보급되게 되면
지식을 전하는 성직자들의 독점권이 줄어들기 때문이죠.
이것은 유럽과 이슬람권 주요 국가들의 문해율을 비교한 것인데요.
단적으로 비교해 보면
튀르키예의 1970년대의 문해율이
네덜란드의 1600년대, 프랑스의 1800년대 수준인 것이죠.
그 차이가 놀랍지 않으신가요?
--식민지의 유산
마지막으로 볼 것은 식민지의 유산입니다.
오스만 제국이 붕괴되면서 1920년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중동지역의 지배권을 가지고, 산 레모 회의가 열렸는데요.
회의 결과
시리아, 레바논 등의 북쪽 지역은 프랑스가
팔레스타인, 요르단, 이라크 등의 남쪽 지역은 영국이 가져가게 되며
중동 땅을 갈라먹게 되었죠.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과 프랑스가 해당 국가에서 나오며
여러 국가들이 독립을 하게 되었지만
이때에도 서구 열강이 개입하다 보니
민족, 종교 정체성이 다른 세력들이 억지로
한 국가로 합쳐져 독립을 하게 되었고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여러 분쟁의 원인이 되었죠.
당연히 이런 내전은 경제 발전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줍니다.
지금까지 왜 이슬람 국가들이 더 가난한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슬람의 내외부적인 요인들을 보았는데요.
워낙 방대한 주제이기에 이게 정답은 아니지만
세계 인구의 4분의 1 이상에 달하는 이슬람인들과
이슬람 국가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되셨으면 좋겠고
또 다른 여러 요인들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긴 시간 시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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