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얼마 전 소개해 드린 칠레만큼
또 다른 흥미로운 남미 국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칠레와 비슷하게 엄청나게 한 지역의 인구가 모여 살고 있고
칠레와 함께 남미에서 가장 잘사는 국가 중 하나이며
또 백인의 비율이 높다는 공통점이 있는 이 국가는
바로 우루과이입니다.
--우루과이 기본 정보
그럼 본격적으로 우루과이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남아메리카의 남동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위치한 우루과이의 면적은
176,000㎢ 정도로 한국이 1.7배 정도 되고
인구도 340만 명 정도인 작은 국가라고 볼 수 있죠.
또 대부분의 남미 국가가 그렇듯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이할 만한 지리적 특성은
국토가 물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인데요.
660km의 동남쪽의 바다는 당연한 것이고
국경의 대부분을 둘러싸고 있는 강의 이름이
바로 우루과이 강이죠.
이곳도 감비아 강의 이름을 딴 감비아처럼
강에서 국명이 유래했다 볼 수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의문이 드는 게
남미의 강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사이에 조그마하게 존재하고 있어
남미의 독립 시기에
충분히 두 국가 중 한 국가에 편입될 법도 한 이 작은 국가가
어떻게 지금까지 독립을 유지해 오고 있을까요?
사실 우리가 우루과이에 대해 아는 게
축구 말고 많이는 없을 겁니다.
그래서 잠시 역사적인 부분을
핵심적인 부분만을 중심으로 간단히 살펴보죠.
--역사
대부분의 남미 국가가 그렇듯
1500년대 초, 포르투갈의 탐험대와 스페인의 탐험대가
이 지역을 탐험하게 됩니다.
이때 이 두 국가 간의 경쟁이 있긴 했지만
이 지역에서의 대규모 정착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이 지역이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의 주요 지역은 아니었다는 뜻이죠.
영구 정착지가 개발된 것은 한참 뒤인데요.
1600년대 현재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지역을
스페인이 점령하고 있었고
또 빠르게 성장해 오고 있었죠.
어느 지역이든 강은 단순히 경제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큰 강의 바로 건너편에 있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발전하는 것을 보고
포르투갈은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최남단 지역에 있는 큰 강의 통제권을 잃는 것을 경계한 포르투갈은
168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강 바로 건너편에
포르투갈 식민지와 요새를 세우죠.
그리고 얼마 후 포르투갈의 영향력이 약해지자
이를 기회 삼은 스페인은
1726년 현재 우루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 식민지를 세우게 되죠.
스페인도 마찬가지로 이 지역의 영향력을 확보하고
포르투갈과의 국경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이 지역에서의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크고 작은 분쟁을 지속하며
이 우루과이 지역에서
영향력 확보를 위한 경쟁 체제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어찌 보면 처음 이 지역을 발견한 1500년대부터
두 국가는 계속 경쟁해 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국가가 한꺼번에 무너지는
결정적 사건이 발생하게 되죠.
바로 나폴레옹 전쟁입니다.
나폴레옹은 유럽의 대부분을 정복했고
거기엔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포함되었죠.
당연히 두 국가의 힘은 약해졌고
그 상황에서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이어지며
유럽에 퍼진 혁명적 정신은 남미까지 흘러들어와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 지배국들의 독립 움직임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이 하나 있는데요.
1806년 당시 우루과이는 스페인에 속해 있었는데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사이에 라플라타 강 주변 지역을 두고
스페인과 영국이 다투게 됩니다.
영국은 두 차례 침공해 오지만
스페인, 정확히는 스페인의 정치 영토 기관으로 속해 있다 볼 수 있는
‘리오 데 라 플라타’ 군에 의해 영국은 물러나게 되죠.
당시 나폴레옹 전쟁의 바람이 유럽에서 불고 있어
스페인 본국의 지원이 매우 적었음에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영국을 막아낸 것이죠.
사실 이 시기에 나폴레옹 전쟁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이 중남미에서 약해지다 보니
중남미 전역 스페인 식민지에서 자유의 목소리가 높아졌는데요.
이렇게 혼란한 상황 속
본국에선 나폴레옹 전쟁으로 수탈만 행하고
지원은 받지 못한 상태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외부 세력의 공격을 막아내기까지 한 이 지역 사람들은
스페인 식민지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자 하는 움직임을 더 크게 가져갔습니다.
처음에는 말로 움직임이 있다, 점차 무게를 들게 되었죠.
결국 1810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일어난 5월 혁명으로
스페인 부왕령의 통치를 끝내고
현재 우루과이 지역이 포함된
‘리오 데 라 플라타 연합주’로 독립하는 선언을 하게 됩니다.
이때 우루과이의 건국의 아버지라 볼 수 있는
아르티가스가 활약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이 지역이 성장하는 것은
주변국들,
특히 브라질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던 포르투갈에겐 경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결과 포르투갈은 1816년 8월
현재 우루과이의 영토이자 당시 반다 오리엔탈이라 불린
‘라 플라타 연합주’의 동부 지역을 침공하게 되는데요.
현지 브라질군과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한 경험 많은 군인들로 구성된 포르투갈군은
1820년 타쿠아 램보 전투에서
아르티가스의 반다 오리엔탈군을 물리쳤고
이 지역은 시스플라티나 지방으로 불리며
브라질에 통합되었습니다.
우루과이 지역은 브라질에 편입되었지만
이전과는 달랐습니다.
자신만의 힘으로
영국, 스페인, 포르투갈과 수년간 싸우고 독립과 자유를 외쳤죠.
아르티가스는 전투에 패배하고 추방되었지만
그와 함께했던 우루과이인들의 정신은 남아 있었고
더 이상 그들은 스페인인도, 포르투갈인도, 아르헨티나인도, 브라질인도 아니었고
‘반다 오리엔탈’ 지역의 사람들
즉 우루과이인이었습니다.
포르투갈의 시스플라티나 지방으로 편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822년
브라질은 포르투갈로부터 독립을 얻어냈죠.
체제가 바뀌는 이 혼란의 시기는
우루과이의 기회였습니다.
그리고 1825년 4월 19일,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원을 받아
후안 안토니오 라바예아가 이끄는 33명의 동부인이
이 시스플라티나 지방을
브라질 제국으로부터 분리한다는 선언을 하고
시스플라티나 전쟁을 시작했죠.
독립한 아르헨티나의 지원을 받은 우루과이는
브라질에게 승리했고
결국 아르헨티나에 편입되기도 했는데요.
전쟁이 길어지고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것은
사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양국 모두에게 매우 힘든 것이었죠.
그렇다 보니 평화로운 해결에 대한 여론이 커지고
또 우루과이의 독립으로
이 지역에 봉쇄된 해상 무역을 뚫기를 원했던 영국이
중재자로 개입하며
1828년 8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우루과이를
그들 사이에 완충국으로 인정하는
몬테비데오 조약을 체결하며 이 전쟁을 끝내게 됩니다.
이런 과정으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라는
남미의 두 강대국 사이에
작지만 강한 나라 우루과이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죠.
--지리
이제 또 다른 질문인 우루과이인들이
수도에 매우 밀접하게 모여 사는 이유를 볼까요?
이 부분은 인구와 지리를 같이 보아야 할 것 같은데요.
먼저 우루과이의 고도 지형을 한번 보죠.
보시면 비교적 높은 산맥처럼 보이는 2개의 지형이 보이시죠?
우루과이 북서쪽에 ‘쿠칠라데 하에도’와
우루과이 동부의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가로지르는 ‘쿠칠라 그란데’가 있는데요.
보통 이런 형태의 산맥들은 매우 높은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이 두 지역의 최대 고도는 500m를 약간 넘길 뿐이죠.
그래서 이 두 지역을 산맥으로 혹은 구릉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쿠칠라 그란데’에 있는 세로 대성당이
우루과이에서 가장 높은 지역인데요.
고도가 513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루과이 지형의 대부분은 고도가 낮다는 것이고
언덕이 많은 지역조차도 고도가 200m를 넘는 경우가 거의 없는
평원과 언덕으로 구성된 지역이고
또 강과 바다 쪽으로 갈수록 평지가 많이 펼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후를 보면
전국 대부분이 습한 아열대 기후라 보시면 되는데요
전체적으로 온대 지역이라 볼 수 있지만
비가 많이 오고 국경 쪽뿐만 아니라 내륙에도
강과 호수가 상당히 많이 있는
물이 풍부한 습한 지역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은 덥고 습한 편이며 겨울이 추운 건 당연하지만
다소 불편할 정도로 습한 기후를 가지고 있어
온도가 더 차갑게 느껴지죠.
또 주변 환경에 영향을 크게 받는 지리적 조건이라 볼 수 있는데요.
우루과이는 높은 산맥이 없죠.
그래서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무역풍,
브라질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바람,
극지방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줄 방패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주요 특징은
남미의 주요 토네이도 발생지 중 하나란 것이죠.
아메리카 대륙에 딱 두 곳이 있는데
미국, 캐나다 남부, 멕시코 북부 지역이 한 곳이고
나머지 한 곳이 이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일부 지역이 포함된 곳입니다.
--인구
자 이제 다시 인구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아메리카의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엔
당연히 원주민들만이 있었겠죠.
하지만 우루과이 지역의 원주민은 숫자가 적었고
이 지역은 잉카나 아즈텍 같은 주요 문명들과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습니다.
지리를 보시면 됩니다.
대부분 평지이고
여름엔 덥고, 겨울에 추우며 습하기까지 합니다.
또 브라질의 아마존 같은 숲이 없다는 것은
숨을 공간도 적고
미국의 버팔로 같이, 사냥할 만한 거대한 동물 개체의 수도 부족했죠.
게다가 토네이도나 홍수와 같이 풍수해에 취약한 특성 등
여러 지리적 조건들이 원주민들이 선호할 만한 곳은 아니었죠.
과라니족이나 차루아족과 같은 원주민 민족들도 있었지만
메소 아메리카나 안데스 산맥과 같이
거대한 원주민 인구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유럽 세력이 들어온 후 수세기 동안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고 그 세력은 더욱 줄었습니다.
그리고 이 우루과이에 많은 유럽인들이 이민을 오게 되는데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외국에 나가면
함께 뭉치고 코리안 타운 같은 것을 만들잖아요.
그것처럼 그들이 최초로 우루과이 땅을 밟은 해안선
그중 수도이자 주요 항구 도시였던 몬테비데오에 대부분 정착을 하였고
그것은 경제, 상업, 무역 등의 발달을 만들고
점점 다른 지역보다 발전된 도시 환경, 서비스, 보건, 교육 등
더 높은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죠.
참고로 몬테비데오 강 건너에 있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도
당연히 항구 도시인데요.
과거엔 상업과 무역이 당연히 배로 대부분 이루어졌고
라 플라타강, 파라나강 우루과이강이
브라질,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까지 이동이 가능했기에
이 주요 두 항구 도시는
빠르게 성장하는 수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도 원주민이 적었는데 더 줄었고
유럽에서 온 이민자들이 많다 보니
특이하게도 우루과이는 다른 남미 국가들과 달리
대부분의 인구가 백인인 것이죠.
우루과이의 주요 산업인 농업이나 목축업에 종사하며
시골에 살았던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지만
점차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도시화율이 높아지고
우리나라가 그래온 것처럼 점점 시골을 떠나
가까운 해안선에 만들어진 발전된 인프라와 일자리에 기회가 많은
주요 도시들로 정착을 하는
농촌이탈 현상까지 더해져 가며
현재처럼 수도 몬테비데오와 수도권의 대부분의 인구가 모여든 것입니다.
--경제
조금 전 말씀드린 지리적 이점은
경제에도 영향을 주었는데요.
우루과이 전역은 구불구불한 언덕이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 경사가 완만한 평온으로 되어 있습니다.
숲은 2~3%밖에 되지 않지만
목초지는 국가 생산 토지의 90% 정도를 차지하고 있죠.
그렇다 보니 목축업이나 낙농업에 매우 유리했죠.
수출품목 분포도를 한번 보시면
우루과이의 주요 산업에 대해 이해가 되실 텐데요.
가장 많은 게 소고기, 연유, 우유, 버터, 치즈, 동물 가죽이나 털 등이 있고
목재 펄프나 목재 등 나무와 관련된 것들도 상당 부분 차지하죠.
또 콩, 쌀, 메가 등 농산물들도 일정 부분 차지합니다.
이를 볼 때 주요 산업은
목축업이나 낙농업, 종이목재업, 농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왜 그런지는 지리적인 부분과 연계하여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농업이나 목축업은 역사적으로
우루과이 생산의 기반 산업이라 볼 수 있는 반면
최근 수십 년 동안에는 다른 경제 부문의 비중이 커져갔습니다.
그중 하나는 금융 산업인데요.
우루과이의 투자 촉진법은
기업들에 대한 세금 인센티브를 상당히 주고 있죠.
기업에도 그렇지만 개인에게도 세금을 적게 내도록 하는
기본적인 정부의 기조가 있죠.
그래서 남미 지역의 외국인 투자자 혹은 불을 가진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루과이가 안전한 피난처였습니다.
주변에 거대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제적 안정성은 우루과이가 오히려 훨씬 높다고 볼 수 있죠.
아르헨티나도 분명 경제의 호황기가 있었지만
1950년대 이후 점차 경제가 붕괴되어
남미의 투자 수요는 경제나 정치가 안정적이고
세금도 낮은 우루과이로 모인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스위스 프랑처럼 강력한 통화까지는 아니지만
우루과이 패소는 남미에선 상당히 안정적 통화로 여겨지죠.
예를 들면
많은 부유한 미국인들은 세금을 아끼기 위해
파나마나 우루과이 같은 곳에 프라이빗한 계좌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남미의 스위스라 불리기도 하죠.
국가가 안정적이다 보니
우루과이의 여권이 칠레의 여권과 함께
남미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으로 여겨진다고 하네요.
또 앞서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우루과이강과 파라나강이 합류하며 형성되는 라플라타강에 위치한 우루과이는
2억 6천 명이 넘는 시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남미의 주요 수로 입구 쪽에 위치한 것이죠.
우루과이는 해안을 따라 8개의 항구가 있으며
남미 최고의 항구 도시 중 하나인,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는
매년 약 5천 척의 선박이 오가고
60만 개의 컨테이너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우루과이는 또 해안 근처에 자유무역 지대도 설정하고 있고
이 자유무역 지역은 지난 10년 동안
57억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습니다.
투자 인센티브와 좋은 지리적 조건은
실제로 국내외 기업의 많은 투자로 이어졌고
이로인해 우르과인 라틴 아메리카의 주요 산업 중심지 중 하나가 된 것이죠.
--정치, 사회
우루과이는 정치나 사회가 비교적 상당히 안정적이라 볼 수 있는데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주요 사건이나 지표만 몇 개 말씀드릴게요.
우루과이의 현대화를 이룬 인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호세 바틀레 대통령은
1903년~ 1907년까지 그리고 1911년~ 1915년까지
두 번의 임기로 대통령직을 수행했는데
당시 한국은 대한제국이었던
그 과거에 이미 실업 수단 보통 선거
하루 8시간 근무 무상 고등학교 교육, 여성에 대한 대학 교육 개방 등
상당히 진보적이고 광범위한 복지적 개혁을 행했죠.
이렇게만 말씀드리면
남미 국가들이 그렇듯 좌파적인 포퓰리즘 정책에 치우치지 않았나
생각하실 수도 있으실 텐데요.
한쪽으로 치우치지만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엔 산업에서 목축업의 비율이 지나치게 높았던 우루과이는
대공황 시기에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자
제조업 강화 등을 위해
수입 물품에 높은 관세를 부여하고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도 했죠.
또 최근엔 투자 유치를 위해 투자 촉진법을 시행하는 등
상당히 유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유연한 정책을 펼치기 위해선
정치적 안정성이 당연히 필요하겠죠.
많은 남미 국가들처럼 독재자가 권력을 휘둘렀다면
한쪽으로 치우쳤을 것입니다.
이것도 지리와 연결지어 본다면
엄청난 목초지란 좋은 지리적 조건이 있었지만
금광 같은 막대한 부를 주는 자원은 없었던 우루과이는
독립 당시부터 다른 남미 국가들보단
몇몇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부가 쏠리지 않았고
이는 오히려 탄탄한 중산층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 것으로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과거 일부 지도자들은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을 내려놓는 결단을 내리기도 하고
1900년대 초라는 이른 시기부터 보통 선거를 도입하다 보니
아주 옛날부터 우루과이 국민들은 정치 효용성을 느꼈고
투표 등을 통해 국민들은
독재를 견제할 수 있는 정치적 문화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던 것이죠.
실제로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11위로
남미 최고 순위인 것은 물론
24위인 한국보다 오히려 더 높습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부패 인식 지수도 세계 14위로
남미에서 가장 높으며 31위인 한국보다도 높죠.
정치 안정지수, 법치주의, 언론 자유 등
여러 사회 정치적 지수에서
남미 혹은 중남미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영상이 너무 길어져
여기까지 진행하고 이후 기회가 되면 또 다루어 보겠습니다.
작지만 흥미롭고 탄탄한 나라
우루과이에 대해 이해하시는 데 도움 되셨으면 좋겠네요.
시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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