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정견을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느냐라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요.
첫 번째로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이
내어맡기라고 하니까
세상살이도 내어맡긴다고 그러고
직장도 안 나가고 아유
먹여 살리겠지 뭐
기독교에서 이런 식으로 주로 합니다.
하나님한테 다 내맡겨라.
목사들이 잘못 안내하시는 분들이
가끔 이런 분들이 있어요.
뭐 성경에 보면
저 들판의 백합도
저렇게 아무도 기싸움을 안 해도 스스로 저렇게 아름답게 피고 잘 사는데
왜 하물며 인간인 너희를 하나님이 그 소홀히 하시겠느냐
걱정 말고 내어맡겨라
이런 예수님 말씀이 있어요.
그러니까 아 그렇겠지 뭐 내가..
그러다 굶어 죽어요
또 병에 걸렸는데
아이 내 아낀다고 뭐 믿음이 약해서 치료 가는데
그러다 죽은 사람 한 둘이에요?
내 친구가 저 강북 삼성병원 암 병동 원장인데
자기한테 와서 암 진단받고
위암이든, 유방암이든, 간암이든 간에
“난 믿음의 힘으로 반드시 살아낼 테니 원장님 두고 보세요”라고 한 놈치고
하나도 살아온 놈이 없다는 거예요.
100명 이상이 다 죽었다는 거예요.
왜 그런지 아세요?
그 믿음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방향이 잘못된 거예요.
내어맡길 게 따로 있지.
근데 그렇게 잘못 안내하고 있다는 거예요, 진리를.
그게 문제야.
자기도 모르면서 소경이 소경을 안내하니까.
자, 세상사의 일은 내어 맡기면 안 되죠.
자기가 할 일은 자기가 해야지.
먹고 사는 일도 열심히 해야 되고
몸에 병 생기면 병원 가서 치료도 해야지
뭘 내어 맡기느냐?
이 진리 탐구에 있어서 내어 맡기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출세간의 도리에서 내어 맡기라는 거지
세간법을 내어 맡기라는 게 아니야.
근데 왜 저 가끔 나한테 와서
아 자기는 뭐 다 내어 맡겼는데, 왜 이렇게 잘 안 풀리냐고.
뭘 내어 맡기셨는데?
그랬더니
아유 뭐 그냥 직장도 그렇고 뭐..
자기 아무것도 안 해, 내어 맡겼기 때문에.
그래 놓고 무슨
인과법이 엄연히 있는데
세간법은 인과법 속에 있는데
아무것도 씨도 안 뿌려놓고 내어맡겼다고 잘 되길 바라고 있으면
어떡하냔 말이지.
그런 게 내어 맡김이 아니에요.
마음공부에 있어서
우리가 그동안 너무 식스존에 빠져서 살아왔기 때문에
안이비설신의를 나로 삼고 있어요, 우리는
그죠?
그러니까 안이비설신의를 제발 좀 쉬고
이 자리에 내어 맡기라는 거야.
그래야 이 자리가 서서히 강화되고 드러날 거 아닌가, 그죠?
그걸 내어 맡기라는 거예요.
그러면 정견이 어떻게 하는 거냐?
정견은
누가- 무엇을- 어떻게-
이런 식으로 하시면 안 돼
그건 이미 정견이 아니야, 사견이야.
누가도 없고, 무엇을, 어떻게도 없어.
왜?
그건 다 생각이니까.
안이비설신의 중에 의가 벌써 설치고 있는 거야.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정견입니까?
그럼 벌써 생각에 빠진 거예요. 안 그래요?
근데 정견의 본질이 뭐야?
오온개공 아닌가? 그죠?
오온을 공하게 보라는 건데
이미 생각이 오온인데
생각에다가 이미 공이 아니라 색을 만들어 버렸어.
그래 놓고서 정견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정견이 안 되지.
그러면 정견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
생각을 쉬면 안이비설신의, 전오의식만 있잖아요.
여러분이 아무 생각 없이 이렇게 있어도
잘 보이고, 잘 들리고, 냄새나면 냄새 맡고,
바닥에 몸이 발이 닿아 있는 느낌 느끼고
다 느낍니다.
찬 바람이 불면 춥다 느끼고
안 그래요?
그게 전오식으로 있는 거예요.
그냥 이 자리로 여여하게 있는 게 그거라고.
그거를 자각하는 게 정견이에요.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그 말이야.
있는 그대로를 보고 자각하고 있는 게 정견이에요.
생각에 따라다니면서 놀지 말고.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아, 그럼 무념무상으로 있으라는 얘기군요.
성성적적하게 있으라는 얘기군요.”
이게 벌써 다 생각이거든요.
무념무상도 생각이야.
진짜 무념무상은 무념무상이라는 것 자체도 몰라야 돼.
그게 진짜 무념무상이야, 안 그래요?
어느 조사한테 제자가 와서
“제가 성성적적한데 여기서 어떻게 더 해야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조사가 뭐라는지 알아요.
“이놈아, 좀 내려놔라.”
뭘 내려놓으라는 걸까요?
“제가 성성적적한데”
이 자체가 벌써 분별 아니오.
성성적적하다라는 것 자체, 그 말의
‘의’에 벌써 떨어져 있기 때문에 성성적적이 아니야, 이거는.
지가 그 생각과 그 감각에 빠져 있는 거야.
그만치 우리가 안이비설신의에 놀아나고 있어요.
이 말은 정확히 말하면
‘의’에 놀아나고 있단 말이야.
왜냐하면 전오식 중에 ‘의’만 약화되거나 떨어지면
안이비설신, 요 5개에는
가만히 있으면 그대로 살아 있지만
지나도 뭘 했는지 아무 기억이 없어요.
그냥 여여하게 있는 거야.
시공간이 뚝 떨어져 있어.
이 ‘의’가 ‘생각’이 작동하기 때문에
시공간도 나오고
여러 가지 분별도 자꾸 나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러니까 정견하는 법
전오식으로 그냥 있으면서
이 ‘있음’을 자각하면 돼요.
물론 초보 초보들은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다가 정신이 돌아와서
“아, 내가 생각에 너무 빠졌구나” 이런 정견부터 시작을 해야 돼요.
초보는 그럴 수밖에 없지.
그런데 계속 그 짓만 하고 있으면
영원히 초보야. 아시겠죠?
“내가 어떤 감각에 빠졌구나”
“내가 어떤 뭐 소리에 따라 갔구나”
이런 걸 초보는 분별로서 알 수밖에 없지.
그러나 그런 초보 정견 말고, 진짜 고급 정견이 되면은
지금 이와 같이 전오식으로 그냥
‘존재하는 이 자리’를 자각하고 있는 게 정견이다, 이 말입니다.
왜냐하면 정견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무엇이 무엇을 본다’ 이렇게 정리하지 마세요.
‘견’ 그 자체가
스스로 독로하고 있으면 그게 정입니다, 그게 정견이야.
‘견’하는 이 자체가
그대로 이미 앎 그 자체고
그 자체가 홀로 있으면 그게 이미 정견이라고, 알겠죠?
그게 점점 앞에 구름들이 사라지면
그리고 진짜 정월 보름처럼 뚜렷해지면
저절로 깨달음이 와요.
이게 내어 맡김의 공부야
저절로 이 자리에 확 드러나.
근데 오늘도 제가 사이트에 써놨지만
생각으로 아는 게 아니고
[생각에서 깨어나는 게, 깨달음]이란 말이에요.
그게 정견이야. 아시겠죠?
근데 생각으로 자꾸 알려고 들어.
경전을, 8만대장경을 100번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깨닫지 못해요.
왜 ?
생각으로 알려고 드니까.
그러니까 그런 글을 읽고 생각하는 데에서 깨달음이 있는 게 아니고
이 생각에서 깨어나야 돼요.
그게 정견이에요.
생각에서 깨어난다는 게 뭔가?
생각의 실체가 뭐예요? 여러분 잘 봐요.
의식 활동일 뿐이야.
그리고 내용물이 없어.
내가 있다고 붙잡으니까 있는 거지.
여러분 잘 생각해 봐요.
여러분의 생각을 하루에 5만 가지 다 합니다.
이 생각 저 생각 다 해요. 그죠?
근데 하루만 지나면
어제 내가 무슨 생각했는지 기억나는 사람 손 들어봐.
아마 한 가지 나오면 다행일 거야.
어제 생각 기억나시는 분?
다 생각나는 거 기억 다 기억하시는 분 있어요? 없죠?
그게 뭘 의미하는 거야?
생각이 다 본래 공하다는 걸 의미하는 거예요.
안 그래요?
평생 그 수많은 생각, 몇 가지 했어요.
그게 선문답 중에 있어.
“너 평생 생각 몇 번이나 했니?”
여러분, 몇 번이나 한 것 같아요.
하루에 100개씩만 했다고 그래도
평생 몇 만 일을 살았는데, 몇 백만 생각을 했잖아요.
다 어디로 갔어요?
본래 공하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근데 지금도 지가
생각이 왜 여러분을 지배하고, 붙들고, 여러분을 꼼짝 못하게 하느냐 하면
자기가 그런 에너지를 생각에 부여하는 거야.
“내가 옳다.”
그리고 그 생각을 나라고 동일시해.
그래서 그 생각이 법이 되는 거예요.
생각이 나를 지배하는 법이 된다고.
그래서 법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생각의 본질은
이미 공하다, 이 말이여.
왜 담배 연기를 붙잡고서 아우성을 치냐고
이미 공한 것을.
'피올라마음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올라 정견) 일상에서 깨닫기 10 -마음공부란 항상 지금여기에서 그냥 꾸준히 지어갈 뿐 (0) | 2025.01.08 |
---|---|
[현대선63] 깨닫지 못하는 이유 / 피올라 현대선 10강 "내어맡김의 공부" 6회 (0) | 2025.01.06 |
[현대선62] 정견과 생각의 차이 / 피올라 현대선 10강 "내어맡김의 공부" 5회 (0) | 2024.12.31 |
[현대선61] 안이비설신의라는 살아있음 / 피올라 현대선 10강 "내어맡김의 공부" 4회 (0) | 2024.12.30 |
[현대선60] 세상은 3차원 매트릭스다 / 피올라 현대선 10강 "내어맡김의 공부" 3회 (0) | 2024.1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