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막 수술을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
시드니 브레드 퍼트는
자신이 새롭게 보게 된 세상을 이해할 수 없었고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건강이 나빠지고
결국 사망에 이른다.
‘보고 있되 보지 못하는 것’의 주인공 버질은
중년에 백내장을 제거하고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다시 시력을 잃게 되고
30년 넘게 귀머거리로 살다가
인공 와우를 이식받고
처음으로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베벌리 비더만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딱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 밖에도 시력 회복 사례 66건을 조사한 결과
그들에게는 항상 심리적 위기가 따른다는 게 밝혀졌다.
왜일까?
왜 보이지 않던 게 보이게 되었는데
기뻐하지 않고 괴로워하는 걸까?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던 리엄은
수술 후, 처음으로 눈을 뜨고 본 세상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방에서 빛과 그림자의 혼합,
길이가 다른 선들, 둥글고 네모난 사물들을 본다.
나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모자이크를 보며 깜짝깜짝 놀라지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리암과 같은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같은 얼굴을 보더라도
그 얼굴에 표정이 바뀌면 같은 얼굴로 인지하지 못하고
땅바닥을 보면
어디까지가 중요하지 않은 선이고
어떤 선부터가 낭떠러지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쉽게 이 복잡한 세상을 본다.
우리가 이 복잡한 세상을 간단하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우리가 세상을 [맥락]으로 보기 때문이다.
맥락으로 세상을 보기 때문에 단순한 선이 계단으로 보이고
단순한 직사각형이 횡단보도로 보여 길을 건널 수 있지만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이 색깔들이 같은 색인 걸 보지 못하고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이 두 선이 같은 길이인 걸 보지 못하고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이 콜라겐이 검정색인 걸 볼 볼 수 없고
맥락으로 보기 때문에 이 원형 모양이 돌고 있지 않다는 걸 볼 수 없다.
정말 이상하게도
아무리 그 맥락을 떼고 있는 그대로 보고 싶어도
우리는 그걸 할 수 없다.
심지어 우린 오목한 얼굴조차 볼 수 없다.
지금까지 본 그림자는 색을 어둡게 만들었고
지금까지 본 콜라캔은 전부 빨간색이었으며
지금까지 저런 모양은 다 돌고 있었고,
지금까지 본 얼굴은 전부 볼록했기 때문에
맥락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우리는
오목한 얼굴을 볼 볼 수 없다.
그 맥락을 없애려고 한다면
그건 나를 없애려고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하지만 선천적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들은
시각적인 걸 해석하는 뇌가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런 착시 현상에 속지 않는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는 건 나일까?
아니면 성인이 되어 시력을 회복한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일까?
뇌과학자 수잔 배리는
자신의 아들과 함께 해변가를 산책했던 일화를 말한다.
“아름다운 바닷가를 산책하는 동안
새와 나무를 감상하며 아이에게 말을 걸었지만
아이는 들은 채 만 채였고
되려 전봇대를 가리키며
전봇대에 달린 전깃줄과 변압기 작동 원리를
신나게 설명해 줬습니다.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나무들이
아이에게는 배경 소음에 불과했고
아이가 그토록 매혹적이라 생각한 전깃줄이
나에게는 배경 소음일 뿐이었습니다.”
둘은 같은 길을 걷고 있었지만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게 아니었다.
천문학자는 하늘을 볼 때 일반인과 다른 것을 볼 것이다.
해양생물학자는 바다를 볼 때 또 다른 것을 볼 것이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경기장을 지나갈 때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책길을 걸을 때
모두 다른 것을 볼 것이다.
우리는 같은 세상에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두 다른 세상에 각자의 세계를 살고 있다.
내가 보는 세상은 세상이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보여준다.
나에게 보이는 이 세상은
세상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 무엇으로 보이는가?
이 그림에서는 얼굴도 볼 수 있고 꽃병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절대 얼굴과 꽃병을 동시에 볼 수 없다.
관점을 바꿔 경계선을 꽃병에 배정하면
꽃병이 보이고
또다시 관점을 바꿔 경계선을 얼굴에 배정하면
얼굴이 보이지만
절대 두 개를 동시에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관점 없이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에게 시각을 되찾아주는 것은
외과 의사의 일이 아니라
교육자의 일이다.”
시력을 회복한 선천적 시각장애인들은
수년이 걸려도 보통 사람들처럼 세상을 보지 못한다.
무언가를 배워야지만 알 수 있는 세상은
과연 진짜로 존재하는 세상일까?
우리의 뇌에는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5단계가 있다.
V1은 1차 시각 피질로 선을 인식한다.
그러고 나면
2차 시각 피질, V2에서는 윤곽과 패턴을 처리하고
V3에서 물체의 모양을 처리하고
V4에서 색상을 입히고
V5에서 움직임을 처리한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이 모든 걸 알아듣는
그러니까 [보는자]는 없다.
이 세상을 보는자는 뇌에 있지 않다.
이 세상을 보는자,
그러니까 [맥락을 만드는 자]는 학습된다.
이 세상을 보는 맥락이 없다면
이 세상을 해석하는 관점이 없다면
보고 있어도 보고 있지 않은
듣고 있어도 듣고 있지 않은
해석할 수 없기에 기억할 수 없는
살고 있지만 살고 있지 않은
없는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대의 세상이 없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대가 이 그림을 꽃병으로 볼지
아니면 얼굴로 볼지 선택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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