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법문/일묵스님_윤회와죽음

13. 일묵스님_윤회와 행복한 죽음//4월 27일 방송 - 12연기(2) (12:50)

Buddhastudy 2012. 7. 8. 17:06

  출처: 유나방송

 

안녕하세요. 지난 시간에 12연기 중에서 무명 때문에 행이 일어난다. 하는 구절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는데요. 오늘은 이어서 행 때문에 식이 일어난다. 하는 이 구조에 대해서 설명을 먼저 드리겠습니다. 행이라고 하는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행과 업은 거의 같은 개념으로 이해를 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행이라고 하는 것에는 앞에서 업을 설명 드릴 때 말씀드렸듯이 네 가지 형태로 구분이 가능합니다. 첫 번째는 욕계불선행이 있습니다. 욕계 불선행은 살생, 도둑질, 그리고 삿된 음행, 그리고 거짓말, 거친 말, 이간질하는 말, 쓸데없는 말, 그리고 탐욕과 성냄, 사견 이렇게 열 가지 행위를 하는 것을 우리가 욕계 불선행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욕계 선행은 열 가지의 불선한 행을 하지를 않는 것을 욕계 선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색계 선행은 색계선정을 증득해서 색계선정의 마음을 색계선행이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요. 무색계 선행이라는 것은 무색계 선정의 마음을 무색계 선행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건 앞에서 제가 나름대로 설명을 드렸기 때문에 다시 말씀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러면 이 네 가지 업에 따라서 죽음 직전에 우리가 지었던 업 중의 하나가 나타나서 다음 생애 최초로 일어나는 그 마음을 재생연결식이라고 말한다고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앞에서 죽음 직전의 모습과 재생연결식을 설명드릴 때 자세히 설명을 드린 내용이기 때문에 여기서 다시 설명을 드리진 않겠습니다. 그래서 간단히만 말씀을 드린다면 욕계 불선업을 지으면 욕계 악처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욕계 불선행 때문에 악처에서 재생연결식이 일어난 거라고 말할 수 있겠죠. 또 욕계 선행을 지으면 인간이나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욕계 선행 때문에 인간이나 천상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업을 지으면 선처에 태어난다는 걸 말하는 거겠죠.

 

또 색계 선행. 그러니까 색계 선정에 들어서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면 다음 생에 색계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것도 마찬가지로 색계 선행 때문에 행 때문에 색계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죠. 마찬가지로 무색계 선행 때문에 무색계에 재생연결식이 일어난다. 이것을 종합해보면 행 때문에 식이 일어난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이제 첫 번째 경우고요, 이렇게 재생연결식으로 일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또 행 때문에 식이 일어난다고 할 때는 이 재생연결식은 이 생애 최초로 일어나는 식만을 이야기 하는 거구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전생에 우리가 지었던 행 때문에 업 때문에 그 결과가 나타날 수가 있는데, 초기 불교에서는 이 결과 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전오식입니다. 그래서 이 전오식이라고 하는 것은 행 때문에 전생의 업 때문에 일어나는 거라고 보는데요. 우리가 이전에 지었던 업이 이 생에서 전오식으로 다시 그 과보로써 나타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거는 어떤 식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느냐 하면 전생에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 또는 이전에 악업을 많이 지은 사람은 눈에 자꾸 거슬리는 것이 많이 보입니다. 보기 싫은 것이 눈에 많이 띄게 되고, 또 듣기 싫은 소리를 많이 듣게 되고, 냄새도 좋지 않은 냄새를 많이 맡아야 되고, 맛없는 음식을 만나게 되고, 또 몸으로는 고통이 많아지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바로 전생에 불선업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고요, 전생에 선업을 많이 지은 사람들, 예를 들면 천상이나 색계 천상, 무색계 천상, 욕계 천상에 태어난 존재들은 항상 눈에 보기 좋은 것만 보고, 보기 싫은 건 보지 않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들리고, 좋은 냄새, 좋은 맛. 그리고 몸으로 온갖 쾌락을 누리는 이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에 반해서 인간으로 태어난 존재는 때로는 즐거운 원하는 대상을 만나기도 하고 때로는 원하지 않는 대상을 만나기도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드리면 눈에 거슬리는 것을 자주 보기도 하고, 또 눈에 거슬리지 않는 아주 보기 좋은 것을 보기도 하고, 몸으로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또 때로는 몸으로 행복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느냐? 또는 이전에 어떤 업을 지었느냐에 따라서 전오식. 그러니까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이라고 하는 것이 원하는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대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행 때문에 식이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보면 재생연결식이 일어나는 것도 행 때문에 식이 일어난다 라고 말할 수 있고, 삶의 과정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만나는, 전오식을 통해서 오감을 통해서 만나는 대상이 원하는 것이냐? 또는 원하는 것이 아니냐? 이것도 우리가 지었던 이전에 지었던 그런 업의 결과로써 또는 행의 결과로써 일어나는 거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총체적으로 묶어서 행 때문에 식이 일어난다. 이렇게 말하는 거죠. 여기서 식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재생연결식이 될 수도 있고 전 오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정확히 이야기를 하자면 이건 조금 더 복잡합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 이 정도만 알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설명은 이 정도로 마치도록 하고요, 다음으로 이 식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일어난다. 이 내용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식 때문에 정신과 물질이 일어난다는 이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분들이 마음과 마음부수. 그리고 물질이라고 하는 이 내용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가 좀 필요합니다.

 

그래서 먼저 일반적으로 우리가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 속에 이 마음과 마음부수라는 개념이 사실은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음과 마음부수라는 개념이 어떤 건지 먼저 간단히 좀 살펴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은 것 같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뭔가를 인식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는데요, 사실은 이제 이 마음은 대표를 이야기하는 거고요. 실제로는 마음과 마음수부가 함께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그냥 바깥의 대상을 아는 것 자체가 마음이다.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람을 인지하거나 어떤 책, 또 뭐~ 지나가는 여러 가지 건물, , 이런 걸 인식하는 그 주체, 인식을 할 때 주도하는 그 무엇이 있는데요, 그것을 우리가 마음이라고 이야기를 하고요. 이 마음은 단지 대상을 그냥 아는 역할밖에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대상이 있다는 정도만 아는 거지, 이 대상에 대해서 요모조모를 분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이 마음의 대상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 이 마음을 도와주는 심리작용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을 도와주는 이 심리작용을 우리가 마음부수. 또는 심소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빨리어로는 마음은 짓따라고 이야기를 하고 마음부수는 째따시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통 마음이라도 할 때는 마음과 마음부수가 결합 돼 있는 개념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세속에서도 왕이 움직일 때는 항상 신하가 함께 따라갑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서 어떤 대통령이 일어나면 오마바대통령이 간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지 오마바대통령과 그의 수행원이 간다. 이렇게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오마바대통령이 간다라는 말속에 그 수행원들이 따라간다는 것은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음을 이야기할 때도 그냥 어떤 마음, 이라고만 이야기 하지, 마음과 마음부수를 함께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마음이라는 이야기 속에 이 마음부수도 항상 포함돼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 이 마음과 마음부수라고 하는 것이 이제 마음이라는 걸로 대표가 되는데, 이 마음과 마음부수의 관계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관계에 대해서 먼저 간단히 설명을 드리면 마음과 마음부수는 절대로 따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항상 마음이 일어나면 마음부수도 함께 가고,,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부수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부수는 함께 일어나고 함께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고요, 두 번째는 같은 토대를 가집니다.

 

마음이 눈을 의지해서 일어나는데 마음부수는 코를 의지해서 일어나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우리가 어떤 형상을 볼 때는 마음과 마음부수가 똑같이 눈을 토대로 해서 이 형상을 인지하는, 이렇게 된다는 거죠. 그리고 똑같은 대상을 가져야 됩니다. 대상이 달라도 그것은 다른 인식이 되기 때문에. 그래서 토대와 대상도 같아야 됩니다. 그래서 마음과 마음부수는 항상 함께 일어났다. 함께 사라지고 동일한 토대와 동일한 대상을 가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 마음과 마음부수는 분리할 수 없는 어떻게 보면 한 몸과 같은 거라고 이해를 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때 우리가 아까 비유로서 설명을 한다면 마음이 정신작용을 주도하기 때문에 마음을 왕으로 비유를 하고요. 이 왕의 작용만 가지고 마음의 작용만 가지고는 대상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에 정확히. 이 마음을 도와주는 심리작용이 필요합니다. 이 마음을 도와주는 심리작용을 뭐라고 그러냐 하면 마음부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마음 부수는 여러분들이 익히 알고 있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 질투, 인색, 후회, 해태, 혼침 뭐~ 의심, 이런 것들은 불선한 마음부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알아차림이나 또 지혜, 자비, 함께 기뻐하는 거. 이런 마음들은 선한 마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선한 마음부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마음자체는 선하거나 불선한 성질을 가지고 있지 않고, 그 마음자체는 마치 깨끗한 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검은 물감을 타느냐? 흰 물감을 타느냐? 에 따라서 이 물이 흰색이 되기도 하고 검은색이 되기도 하듯이. 마음자체는 선하다 불선하다 말할 수가 없는데, 선한 마음부수가 결합되면, 다시 말해서 알아차림이나 지혜 또 자애심, 연민, 이런 평온, 중립. 이런 것들이 결합 되면은 선한 마음이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반대로 탐욕이나 성냄 어리석음 질투 인색 후회 등등의 마음이 포함되면은 불선한 마음이 되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