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n. Pomnyun's Answer to "How to Develop Discipline to Learn Korean”
Selection from a Dharma Q&A session at Busan City Hall, Busan (June 15, 2019)
Questioner : Before moving to Korea, and while living in Korea, I’ve had the chance to work with children in the slums of Manila, children starving in Guatemala, and refugees in Thailand.
And working with all these organizations in this sort of conditions, they helped me realize how lucky I am and how grateful I am for my life.
And even though I have a deep desire to want to help more, my question is how do I develop more discipline, I think more disciplined to do things that are not easy, I guess.
For example, I want to learn Korean. I want to speak it naturally. And so I’m looking to develop my discipline to work more. It’s my first question.
제목 :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단련하는 법//
우선 한국말에 대해서 먼저 말씀드릴게요.
인간의 정신작용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알아야 됩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만약에 컴퓨터를 구입했을 때 거기에 아무런 자료를 깔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거기다가 인도사람은 인디아 프로그램을 깔고, 영어는 영어 깔고, 한국 사람은 코리안 깔고 이러잖아요.
이렇게 기본 바탕이 깔리는 시기가 3살까지입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심리가 형성되는, 자아의 심리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가 안정되도록 해줘야 됩니다.
엄마아빠가 싸운다든지, 엄마가 심리가 불안하다든지 하면 아이가 심리불안이 형성됩니다.
지금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질환이 많이 발생하는 것은 사회가 복잡한 것도 있지마는
3살 전에 심리가 형성될 때, 가정에서 심리불안이 가장 큰 요인입니다.
옛날에는 엄마, 또는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 전적으로 희생적 자세를 가졌는데
지금은 자기의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사랑이 옛날보다 오히려 약합니다.
이때 형성된 것은 우리의 의식 세계, 무의식이 되어서 자동으로 반응합니다.
만약에 자기가 한국에 태어나서 3살 때까지 자랐습니다.
그 이후에 미국에 가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영어를 배웠습니다.
한국말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만약에 당신이 나이가 들어서 한국에 청년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한국에 조금만 살면 한국말을 금방 배우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 무의식세계에 바탕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말하면요, 타잔과 같은 것입니다.
타잔은 4살 때까지 사람 속에서 살다가 그래서 숲속에서 잃어버렸습니다.
짐승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데리고 왔을 때 그는 사람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인도에 다른 예가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가 죽고, 두 여자아이가 늑대우리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12~13살이 되었을 때 사람에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세계에 돌아와서 아무리 훈련을 시켜도 사람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인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왜 그러냐하면 바탕이 중요합니다.
그 다음에 4살부터 어린 시절, 10살까지, 12살 초등학교까지는 흉내를 자주 잘냅니다.
뭐든지 따라 배웁니다.
그러니까 5살짜리 애하고 엄마하고 미국에 만약에 가서 산다면
엄마가 대학을 나와서 영어를 좀 할 줄 알고, 애기는 하나도 못해요.
그런데 2년만 지나면 애기가 훨씬 잘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따라 배우기 때문에.
엄마는 기억을 할래야 기억이 잘 안됩니다.
이런 성격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자기가 나이가 들어서 한국에 와 있기 때문에, 잘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가 지금 불가능한 것을 추구합니다.
그냥 ‘노력하면 올해보다는 내년이 낫다’ 이렇게 생각해야 되요.
만약에 한국 사람처럼 자기가 잘 한다면 그럼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바보잖아요.
그러니까 자기가 어릴 때 여기서 자라지 않은 것에 대해서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욕심을 내고 있다는 거예요.
노력하면 조금 더 나아집니다.
그러나 한국 사람처럼은 잘 안됩니다.
혀가 그렇게 잘 안됩니다. ㅎㅎㅎ
네. 그러니까 욕심내지마라 이게 요점이에요.
다만 할 뿐이다.
그러나 포기는 하지 마라.
노력할 뿐이다.
생물에게는 2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가 자기 생명을 자기가 보호하려는 성질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생존할 수가 있습니다.
두 번째 자기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첫 번째 것을 우리가 생존보존의 본능이라고 그러고요
두 번째 것을 종족보존의 본능이라고 그래요.
그런데 이게 있어야 그 종이 지구상에서 지속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린 새끼는 스스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것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부모는 보호해야 합니다.
그것을 보호하는 동안은 부모는 자기 생명보다 새끼의 생명을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내가 ‘부모’라고 한국말로해서 그런데, 그런데 이것은 그냥 ‘어미’ ‘어미의 본능’이다.
이것은 여러분이 자연에서 관찰해보면 다 알 수 있습니다.
만약에 큰 닭이 있는데 제가 가까이 가면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새끼를 품고 있을 때는 제가 가면 도망가지 않고, 이렇게 덤빕니다.
그런데 새끼가 어느 정도 커서 그래서 자기가 모이를 쪼을 수 있게 자립적인 구조가 되면 새끼를 내가 잡아가도 어미는 관계를 하지 않습니다.
제가 왜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냐하면
사람이 뭐냐? 사람의 길이 뭐냐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보호해야 합니다.
부모가 없으면 어떻게 하느냐?
그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해야 됩니다.
내가 낳았나, 안 낳았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다른 말로 하면 어른이 아이를 보살펴야 합니다.
배부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픈 사람을 보살펴야 합니다.
배운 사람이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길이다.
그래서 한문글자로는 인도(人道)라고 합니다. 인. 사람 인. 사람이 가는 길
그래서 우리가 배고픈 사람을 돕는 것을 인도주의라고 하는 거예요.
거기에는 어떤 청치적인 것도 고려하면 안 됩니다.
거기는 종교도 고려하면 안 됩니다.
그 어떤 것도 고려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아프리카 사람이든, 그것이 다른 나라 사람이든, 그것이 무슬림이든
우리는 그것을 도와야 한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거는 내 아이가 아니니까 돌보지 않아도 된다.
저건 다른 나라 아이니까 돌보지 않아도 된다.
저건 종교가 다르니까 나하고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의 길이 아닙니다.
그거는 어떤 이념에 사로잡힌 인간의 잘못된 길입니다.
이것이 20세기에 들어와서 19세기, 20세기 말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겨우 자각하게 된 거에요.
그러나 붓다는 2500년 전에 이미 이 길을 안내했습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 길을 안내 했구요.
그러나 우리 보통사람들은 이제 와서야 ‘아, 이게 사람이 가야할 길이다’ 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 거에요.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북한에 지금 식량이 부족합니다.
지금 굶주리고 있습니다.
여기는 지금 식량이 남고 있습니다.
음식쓰레기가 엄청나게 많습니다.
창고에는 지금 쌀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지금 동물용 사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원하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 나쁜 놈들 주냐?
왜 핵무기 만드는데 주냐?
이렇게 묻는 사람은 사람의 길을 포기한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길이 아니라는 거예요.
왜 이렇게 되느냐?
이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얘기하듯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면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어렵다는 것이 어느 정도냐 하는 문제에요.
한국에도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도 다 해당이 되느냐?
그렇지는 않습니다.
여기에는 정말 식량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
간단한 질병에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
아이들이 초등하교 교육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
즉, 기본적인 생존도 위협받는 사람에게는 조건없이 지원해야 합니다.
그 이상은 개인이나 나라의 문제입니다.
그것은 의무는 아니고 선택입니다.
하면 좋지만 반드시 해야 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이 생존에 관계되는 것은 의무입니다.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계가 있습니다.
나는 돕고 싶지만, 만약에 내가 돈이 부족하다, 그러면 내가 원하는 만큼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내가 괴롭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돕지 못하기 때문에 괴로운가.
이것은 욕심입니다.
내 능력을 초월해서 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때 세상을 원망하지 말고 나를 봐야 합니다.
비록 그것이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욕심을 내면 괴롭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나의 심리를 편안하게 하고
나는 더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즉, 괴로워할 시간에
한 명이라도 더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거예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괴로워만 한다면
이것은 감정낭비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편안한 가운데
꾸준히 좋은 일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
내가 자전거를 탄다고 합시다.
처음에는 잘 타지지 않고 넘어집니다.
넘어지면 괴롭습니다.
그럴 때 이 괴로움은 어디서 오는가?
이것은 욕심에서 옵니다.
왜냐하면 이 자전거를 타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자기는 많은 연습을 안 하고, 조금 하고 타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욕심이
자전거에서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욕심을 부리기 때문에 온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괴로움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도 넘어지면 계속 다치거나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여기 높은 곳에 물이 있고, 낮은 곳으로 물을 옮기려고 합시다.
여기에 파이프로 물을 빨아서 이렇게 놓으면 내려갑니다.
그런데 이 수면에 있는 물이 반 이상 올라 오도록은 빨아야 됩니다.
그 이후에 자동으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물이 수면이 여기 있는데, 절반만큼만 빨고빨고 해서는 자동으로 내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많이 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 분기점을 넘기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냥불을 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살살살살 문지르면 불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300번 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게 탁 하면 불이 납니다.
횟수만 갖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 이치에 맞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안 될 때는 2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직 연습이 부족하다.
그러면 더 해야 됩니다.
방법이 잘못됐다.
방법을 바꿔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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