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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선과 깨달음, 사슴 뿔이 안 보이면

Buddhastudy 2025. 2. 18. 20:11

 

 

대사가 낙보를 찾아가 묻기를

거품 하나가 일기 전에 어떻게 그 수맥을 찾겠습니까?”

배를 옮기려면 물의 형세를 알아야 하고

돛을 올리려면 파도를 판단해야 한다.”

 

대사가 수긍치 못하고 발룡에게 가서 물으니

배를 옮긴다 하면 물을 알지 못하는 것이오,

돛을 올린다 하면 근원을 미혹하는 것이다.”

 

전후 배경을 잘 모르면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선문답에는 꽤 많습니다.

고사성어나 선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실 그런 내용은 전달하기도 쉽지 않은데요.

 

앞의 낙보는 수맥을 찾기 위해 배를 옮기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물의 형세와 바람과 파도를 알아봐야 한다고 한 것이죠.

물의 근원을 찾으려면

꽤 진중하고도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뒤의 반룡은

수맥의 기원을 찾는데, 배는 왜 옮기는지 모르겠고

바람과 파도를 따지면

수맥은 커녕이고, 찾고자 하는 길을 잃은 거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대비가 뚜렷하면

말하는 뜻을 알아듣기가 어렵지는 않습니다.

 

모래더미 속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찾으려면

일단 눈으로 보고 찾고

때로는 파헤쳐 보기도 해야 하지만

반짝거리는 것이 모래더미 그 자체라는 것을 알면

파헤칠 일이 없습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산을 돌고 옵니다.”

그 산이 머무를 만하던가?”

머무를 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도성안이 온통 그대에게 점령을 당하겠구나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구나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으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화상과의 사이에 산이 막힐 것입니다.”

 

동산 양개와 제자인 운거 도응은

황벽 희운과 임지 의현의 못지않은

스승과 제자의 케미를 보여주는 많은 사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선문답도 그중 하나이죠.

 

동산이 나중에 말합니다.

이 사람은 나중에 천만 사람이 붙들어도 잡지 못하리라.”

 

그런데 겉으로 보면 도웅은 계속 주저하는 듯 보입니다.

온 도성이 너에게 점령당하겠다 해도,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하고

들어갈 길을 얻었다고 말해주니, 길도 없다고 합니다.

무슨 곡절이 있는 걸까요?

마지막 문답이 해제입니다.

길이 없으면

너와 내가 서로의 역할에 맞추어 이러고 있을 수가 없지 않느냐는 스승의 질문에

도응은 당신과 나 사이에 전혀 거리가 없다고 합니다.

.

 

그렇습니다.

스승이 높이니 자신을 낮추고

스승이 밀어내니 잡아당겨 간격을 없애버립니다.

위와 아래가 전혀 없는 대범함인데

스승의 뺨을 가격하는 임제와도 비교됩니다.

이런 자세는 아무래도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이 자가 뭘 먹었길래 위 아래로 보이는 것이 없나?” 하는 상태인데

그마저도 교만한 난동이 아니라

당연한 평상의 수준입니다.

 

뭐 하나?”

장을 담급니다.”

소금을 꽤나 쓰는구나.”

도응이 소금을 한 조각 더 넣으며 말했다.

저으면 녹습니다.”

뭔 맛을 낸다고 그러나

장이 묻은 손가락을 맛본 도응이 말했다.

딱 됐습니다.”

 

이 선문답의 뉘앙스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어에는 우리 말과 같은 존대어가 거의 없습니다.

한자가 뜻글자이다 보니

발음과 성운 말고는 뒤에 뭐가 붙지 않죠.

 

대화 속에서 꼭 높임말을 써야 할 때는 호칭을 씁니다.

사부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우리 말처럼 스승님의 자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문답을 보면

더욱 절절한 경우가 있는데 바로 도응의 경우입니다.

 

개천을 건너려다 동산이 도응에게 묻습니다.

물이 얼마나 깊으냐?”

젖지 않을 정도다.”

너는 참으로 거칠구나.”

그러면 스승은 어떠한가?”

마르지 않는다.”

 

비록 사적으로는 스승과 제자이지만

진리에 있어서는 한 치의 간극도 없습니다.

선의 정신입니다.

 

길이 있다면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펼쳐지고 연락선이 오가야 한다.

안 그런가, 사부?”

 

달마가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자가 뒷날 띠풀로 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호쾌한 선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한 도응을 가리켜

뼈를 깎아내는 선이라는 뜻의

괄골선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

 

신라의 운주가 물었다.

제불도 말하지 못한 것은 누가 말해줍니까?”

도옹이 말했다.

내가 말해준다.”

죄불도 말하지 않은 것을 화상께서는 어째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좌불은 내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화상께서 그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군왕일지라도 상관없이 20방을 때려주었을 것이다.”

 

운거 도응 화상에게 맞으면

맷집이 괜찮은 저도 꽤 아플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학인의 경입니까?”

말하고 행동하는 거기에 분명하다.”

알지 못하겠습니다.”

자네는 평소에 무슨 경을 외는가?”

유마경을 읽고 있습니다.”

나는 유마경 외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고

유마경을 맬 줄 아는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은 것이다.”

 

선문답 중에 대답을 해주는데도 모르겠다고 하는 것도 드물지만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까지 해주는 일이 많지 않은데

도응 스님의 사례에서는 그런 일이 자주 나옵니다.

 

뼈를 깎아내는 것은 때로 참 부드럽기도 합니다.

발자취만을 잘 찾을 줄 아는 좋은 사냥개가 갑자기

발을 땅에 대지 않고 나뭇가지에 뿔을 걸고 있는 영양을 만나면

그 자취뿐만이 아니라 낌새조차 느끼지 못한다.”

한 승려가 물었다.

영양이 불을 걸고 있을 때는 어떠합니까?”

“6곱하기 636이다.”

모르겠습니다.”

자취가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교의 발자국을 따르다가 사슴뿔이 안 보이면

선의 가지를 흔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