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MTHATch

[IAMTHATch] 영적인 진보의 의미

Buddhastudy 2025. 2. 17. 19:04

 

 

살아있는 다른 피조물에게는

자기에 대한 무지가 본성이지만

인간에게는 악덕이다

-보이티우스

 

데이비드 호킨스의 <나의 눈><호모 스피리투스>

영적 지식의 매우 기본적인 내용들에 해당합니다.

다른 책들은 인터넷을 통해 참고하는 수준으로 활용해도 상관없지만

이 두 권의 책은

제가 추천하지 않고 강권하는 사실상의 필독서입니다.

 

하지만 과감하게 필독서라고 해놓고 좀 주저대는 것은

제가 과거에 이 책들을

도저히 읽을 수 없었던 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글자 한 문장을 이어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이유를 알지만

당시에는 왜 내가 이 책을 읽기가 힘든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 책들을 중고 서점에 내다 팔았습니다.

잊어버리고 싶었죠.

 

수년이 흐르고 저는 다시 이 책들을 구입해 읽었습니다.

제가 영적으로 조금 진보했다고 평가를 받았던 후였는데

저는 책에 있는 내용들이

마치 군대 시절에 읽었던 매뉴얼처럼 느껴졌습니다.

전투 메뉴얼 말입니다.

 

영적 진보를 위한 이해와 행동, 교범에 해당하는 내용들이

이 책에 수록되어 있어서

참고 정도가 아니라 이해해야 합니다.

 

막바로 진입하기가 껄끄럽게 여겨지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를 전혀 몰랐거나

누가 하는 이야기로 스치며 들어봤던 분들이

그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런 분들을 위한 입문서 비슷한 것이 최근에 한국에 출판되었는데

이 책을 활용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책 이름은 <의식 지도 해설>입니다.

책 소개는 이 정도로 그치겠습니다.

협찬받은 것은 전혀 없습니다.

 

우리는 IAT 채널의 처음부터

데이비드 호킨스를 인용해 의식수준을 이야기했습니다.

우리가 그리고 싶은 것이 깨달음을 향한 지도였던 만큼

매우 중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호모 스피리투스>에서는 의식수준이

삶 속에서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데이비드 오킨스가 직접 답합니다.

오늘은 이 내용으로

영적인 진보의 의미에 대해 탐구해 보겠습니다.

 

 

의식수준의 효과가 갖는 함축이 온전히 이해될 때

그렇다는 것이 명백해집니다.

 

태어날 때 이미 측정 가능하고, 식별 가능한 의식수준이 현존한다는

압도적으로 놀라운 사실부터 살펴봅시다.

어떤 일도 우연히 생기는 법이 없는 우주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조사하고 설명하다 보면

흔히 카르마로 불리는 [의식 진화]라는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연구에 이르게 됩니다.

 

호킨스은 의식수준이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 한 실체의 과거라고 말하면서

그 효용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의식수준은 사람의 세계관, 세계에 대한 경험을 결정하고

의식수준은 또한 선택지, 선택 반응과 관련되는데

사람의 반응은 태도, 결정, 직업적 흥미, 인생 목표 속에 반영되지,

의식수준은 또한 사람의 세계관은 물론

심리적 기질과 정서, 신체 건강 및 영적 건강, 생활 양식에 대해서도 본질적입니다.

 

물론 이 정도 예상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평범한 사람들의 사회적 삶에도

이른바 수준이라는 것이 있고, 지능 수준, 지식 수준, 경험 수준 등으로

물질적 생활이나 정신적 삶의 층위를 구분하는

학문적 이론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수준 단계 범주를 빼고

이론을 전개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입니다.

 

호킨스의 의식수준이 특징적인 점은

그것을 영적인 초점으로 끌고 오는 부분입니다.

호킨스는 의식수준의 영적 초점에 대해 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의식수준은

영적 앎의 능력과 신에 대한 관점

즉 신을 초월적 내재적으로 보는지

혹은 둘 다로 보는지와도 상관이 있습니다.

 

이런 영적 초점은 영성에 대한 수용 범위로 확장됩니다.

그것은 또한 타고난 책임감, 자존감, 성격, 동일시들에도 영향을 미치고

뒤따르는 심리적 경향이

그다음에 어떤 정신적 내용을 수용하거나 거부할 것인지

억압하거나 합리화할 것인지

타인에게 투사하거나 자기를 향해 돌릴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만약 호킨스의 말이 맞다면

그래서 삶의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의식수준의 진화에 달려 있다면

생존을 제외한 모든 삶의 목표는

의식수준을 발전시키는 것에 맞춰야 한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의식수준의 진화를 위한 노력이

그 어떤 노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우리가 매우 익숙한 패러다임

즉 노력과 성취, 투자와 수익 같은 개념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호킨스의 의식수준이라는 것이

물론 이런 패러다임을 포함하긴 하지만

좀 다른 부분은

삶의 전반적인 맥락과 내용 속으로

통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고 깨우치고 하는 것을 넘어서

의식수준은 결국

에고에 대한 태도와 에고의 지배적 강도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진보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습니다.

 

만약 스쳐 지나가는 모든 순간에

자신을 그 순간에 온전히 내맡기려는 완전한 자발성이 있다면

사람은 갑자기 눈 깜짝할 사이에

에고를 초월할 수 있고 각성을 향한 길이 열리는데

그 속에서 참나로서의 신의 빛은

모든 존재와 실상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영적 진보에 대한 접근 방식은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도착할 어디가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진짜 영적 가르침은

에고를 초월하도록 안내하고

진실이 드러나도록 모든 허상을 없애버립니다.

 

그 작업은 인간 에고 구조 속에 내재된

일반적인 인간의 실패를 극복하고 초월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무슨 결정을 가졌든 그것은 개인적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당신의 결점만이 아니라

사실상 인간 에고 자체의 문제입니다.

 

에고 자체는 개인적이지 않습니다.

문제는 에고 자체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인간 존재가 됨으로써 물려받는 것입니다.

에고가 스스로를 어떻게 세부적으로 표현하는지가

과거 카르마에 따라 다릅니다.

에고에게 초점을 맞출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면

에고는 침묵에 들지요.

 

에고는 현존의 침묵으로 대체되는데

이렇듯 돌연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나와

나의 것에 관한 이야기의 매력을 포기할 때

깨달음은 자연스럽게 일어나죠.

 

데이비드 호킨스는

엄격한 영적 수행이 정확하게 뒤따른다면

(에고)는 죽을까요?”라는 인터뷰의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서 장례식을 치러야 할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상에는 내가 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것은 줄곧 환상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참나가 앎 속으로 태어나는데

이것은 태어나지 않은 것, 즉 의식과 존재의 근원입니다.”

 

결국 의식수준이라는 것은

참나에 접근한 수준을 말하는 것이고

도구적으로는 영적인 이해와

실제 생활에서 나를 내려놓는 수행의 지표를 보여줍니다.

 

도구적인 것을 떠나 상징적인 것을 대비해 보면

각각의 의식수준은

내가 사라지고 참나가 드러난 정도를 의미합니다.

이런 상대성의 극적인 전환이 의식수준

200으로 상징되는 포스와 파워의 교차 지점입니다.

 

호킨슨은 영적 실상에 대해 사람들이 모른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발언입니다.

거의 모든 깨달음 전통에서 그저 모를 뿐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 죄이다.

무지가 번뇌의 이유이다.

인간의 무지는 선천적 무지와 후천적 무지로 나뉜다는 등의 설명은

모두 이것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왜 그런 걸까요?

왜 무지한 것일까요?

 

무지에 대해 호킨스는 의식수준과 카르마를 말합니다.

자신의 타고난 의식수준이나 카르마로 귀결된 선택들은

보통의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카르마 같은 설명은

무지와 같은 일정한 어려움을 보다 이해할 만하고

따라서 수용하기 쉽게 만들어 준다는 면에서

위로가 되는 점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의례, 이번 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과거에 타인에게 저질러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과거에 남을 향한 이기심이나 잔인함 같은 성질이 있었다면

그것은 이번 생에 자신을 향해 돌아올 수 있습니다.

 

카르마에 대한 앎이 없다면

사람들은 부정과 자기 연면에 이르거나

혹은 순환자나 피해자의 역할에 탐닉할 수도 있죠.

이런 부정적 삶의 패턴을 간파할 때

간절한 기도와 용서를 통해 그것을 해소할 수 있습니다.

 

호킨스는 카르마 연구가 영적 진보와 이해를

상당히 뒷받침하는 치유적 노력이라고 합니다.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식수준, 카르마 같은 선천적 요소들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진지한 이해와 수용의 태도로

의식수준에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영적 지식들이 이런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호모 스피리투스>에 나와 있는

영적인 진보의 의미에 대해

저자의 글을 인용하고 해설하는 방식으로 알아봤습니다.

영적 지식 이해는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