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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THATch] 선과 깨달음, 켄 윌버의 전초오류

Buddhastudy 2025. 2. 26. 19:20

 

 

저도 선과 깨달음 동영상에

캔 윌버의 전초오류를 이야기할 거라란 생각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게 되는군요.

 

전초오류란 쉽게 말해서

아직 그 수준이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

그 수준에 도달한 것처럼 보여서

겉으로만 보면 다 아는 듯 보이는 착각현상을 말합니다.

 

 

어떤 유생이 생불이라고 존경을 받던 조주를 찾아왔다.

이 유생은 조주가 손에 쥔 주장자가 갖고 싶었다.

스님, 부처님은 중생이 원하는 것은 뭐든 다 들어주신다면서요?”

그렇지

유생은 조주의 말이 끝나자 주장자를 달라고 졸라댔다.

조주는 정색을 하며 말했다.

군자는 자고로 남의 물건을 탐하지 않는다.”

저는 군자가 아닌데요.”

나도 부처가 아니다.”

 

전초오류가 일어나는 이유는

이른바 전 개인, 전이성적 수준의 의식과

초 개인, 초이성적 의식 수준이

둘 다 이성적이지 않다는 점에서는 같기 때문입니다.

 

선문답은 이성과 합리를 넘어서 있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이성과 합리에 도달하지 못한 수준에서도

말도 안 되는 짓을 흉내내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무쇠 소는 사자의 표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말을 이성의 기준으로 말하면

당연히 쇠로 만든 소에게는 사자를 겁낼 생명과 의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말의 뜻을 넘어서 추상할 수도 있습니다.

깨어 있는 의식 수준까지 가서 보면

무쇠 소와 사자와 표호와 두려움이

모두 한 줄기 가지입니다.

 

문제는 저 이야기를 말의 취지 아래에서 섬기는 것입니다.

비슷한 말과 뜻을 유추하기는 쉽습니다.

말 만드는 재미도 있습니다.

이걸 상사선, 문자선이라고 하죠.

 

더 큰 문제는

자기가 그러는 줄도 모른다는 겁니다.

어린아이가 동화의 세계를 사실이라고 믿는 것처럼

다 큰 어른이 말과 글의 세계를 진짜라고 믿는 겁니다.

 

 

도가 무엇입니까?”

똥 막대기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로 그대다.”

어떻게 깨닫습니까?”

밥그릇에 손잡이가 없는 것이 번거로운가?”

 

더더욱 큰 문제는

도가 곧 똥 막대기이고, 바로 나라는 이 은유를

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가진 추상성 덕분에

우리는 안 보고도 안다고 확신합니다.

 

있지도 않은 손잡이를 잡고 밥을 먹습니다.

그리고 손잡이 덕분에

편안하게 식사도 하고 설거지도 합니다.

그 바람에 손잡이가 달린 밥그릇이

현상계에서는 생겨나긴 했지만요.

 

선의 종지는 최상승선

즉 비이원의 그곳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방편은 명언종자

언어의 허위를 드러내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에서

겉으로는 말이 비틀리고 뒤집히는 모습을 봅니다.

 

 

청정법신이란 어떤 겁니까?”

양초밭의 울타리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으면 됩니까?”

황금털 사자

 

그 바람에 일어나는 혼란은

좋은 쪽으로는 이성적 분별을 정지시켜

성품을 직지할 기회를 얻게 합니다.

반대로는 부활을 돋우거나 거부감을 일으킵니다.

 

여기서 이런 혼란이 아니라

선문답을 안다는 착각으로 빠지는 경우가

바로 전초오류로 들어가는 상황입니다.

 

자기 스스로 만든 이상한 나라에서

마음대로 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견문각지 비일일,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이 다르지 않으니

산하부재경중관, 거울의 빛은 산과 강은 거울에 없도다.

상천월락야장반, 서리 낀 하늘에 달은 지고 밤도 깊었는데

수공징담조영한, 막힌 물에 드리운 그림자, 뉘라서 함께 밤을 지새랴.

 

그렇게 선수행마저 꿈결 바라보듯 바라만 보는 것이 되고 나면

깨달음은 기약이 없습니다.

 

공부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지만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일부러 만든 것이 선입니다.

일부러 만든 선마저 경계가 되어 버리면

방편으로 쓸 만한 것이 없게 됩니다.

 

어눌한 공부에는

선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왜 칼끝을 걷는다고 하겠습니까?

 

 

추위와 더위가 닥칠 때는 어찌 피합니까?”

어째서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곳으로 가지 않나?”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곳이 어디입니까?”

추우면 너를 얼려 죽이고, 더우면 너를 쪄 죽이지.”

 

선은 생각을 없애고 지우는 곳이 아니라

생각과 각성의 경계를 지우는 방법입니다.

경계가 풀어지면

원래 있던 성품을 발견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동산의 대답처럼 춥든 덥든 죽으면 됩니다.

다시 경계를 만들지 않는 한 그렇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자기 수준으로 끌어내려 해석하지 않는 한

선은 좋은 방편입니다.

끌어내려 해석하면

선이 곧바로 경계가 없는 무간지옥입니다.

 

 

우주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합니다만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조주가 대답했다.

나는 청주에 있을 때 베 적삼 하나를 만들었는데

그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

 

4킬로그램짜리 배우시면 꽤 무겁게 느껴집니다만

조주 스님은 재주가 좋아

온 우주를 몽땅 말아 넣을 수 있는 모양입니다.

이런 건 배워야 하는 게 맞습니다.

 

저도 말아 먹는 재주는 있는데

냉면 한 그릇은 10초가 걸리지 않습니다.

다만 반달이 뜨면

이가 시려서 육수를 들이키는 것은 반나절이 걸립니다.

 

 

그물을 꿰뚫은 금빛 잉어는 무엇으로 먹이를 삼습니까?”

그대가 그물에서 벗어나면 말해주지

“1500이나 거느린 큰스님이 말귀도 못 알아듣습니까?”

다 늙어서 절집 일을 하려니 많이 바쁘다네.”

 

 

마른 어항 안에서 쉴 새 없이 입 벌려 말하는 인어는

매일 자주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