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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ience Dream] 은행나무는 잎이 넓은데 왜 침엽수일까? (※반전 있음)

Buddhastudy 2021. 8. 17. 19:10

 

 

 

여러분, 가을입니다.

가을은 뭐니 뭐니 해도 남자의 계절.. 아니, 단풍의 계절이죠.

 

정열적인 붉은 단풍도 가을을 아름답게 수놓지만

은은한 노란빛깔의 은행나무도 둘째가라면 서럽죠.

 

무엇보다 은행나무는 존재 자체가 레전드라서 더 끌리기는 합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에 111111종만이 존재하는

매우~ 매우~ 진귀한 식물이기 때문이죠.

은행나무문 은행나무강 은행나무목 은행나무과 은행나무속 은행나무

이렇게 분류되는 단 하나의 종입니다.

 

27천 만 년 전, 고생대 페름기 때 지구에 등장했던 은행나무는

당시 7속에 수십 종이 있었다고 추측되나

점차 멸종하기 시작해 지금은 오직 단 1종만이 남은 거죠.

 

분류학적으로 단위 전체가 싸그리 전멸하고 한 종만 남았다는 건데

곤충, 거미 등이 속한 절지동물문을 여기에 비유하자면

모든 곤충들이 전멸하고

제왕나비 한 종만 살아남은 셈입니다.

 

그러니 지금의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는 칭호가 붙을만하죠.

그리고 은행나무는 또 다른 면에서 존재감이 빛납니다.

바로 냄새죠.

 

은행나무는 단풍이 들기 전 열매를 맺는데

이 열매들이 터졌을 때 나는 냄새란...

~ 여러분, 다 공감하시죠?

 

이 냄새의 정체는 열매 껍질에 함유된

빌로볼(Bilobol)과 은행산(ginkgoic acid) 이란 물질 때문인데요

그런데 사실 이건 엄밀히 말해 열매가 아닙니다.

 

열매는 속씨식물의 씨방이 변형된 형태를 말하는데

은행나무는 씨방이 없고, 이렇게 밑씨가 겉으로 드러난 겉씨식물이라서

열매란 명칭보다는 씨앗이나 종자 정도로 부르는 게 알맞죠.

 

아무튼 이 열매, 아니 씨앗의 겉표면(외종피)

단단한 중종피를 벗겨내면 우리가 먹는 과육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배젖이라고 하고, 이 배젖 안에~

짜잔~! 작은 씨눈이 들어 있고

이 녀석이 장차 커다란 은행나무로 자라게 되는 거죠.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이상한 점 눈치채셨나요?

그렇습니다.

은행나무는 겉씨식물이자 침엽수인데...

잎이 넓죠?

자고로~ 침엽수라고 하면

얇고 가느다란 바늘잎을 지녀야 정상 아닌가요?

 

도대체 은행나무는 침엽수임에도 불구하고

잎에 왜 활엽수처럼 넓적한 걸까요?

 

은행나무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

사실.. 은행나무 잎은 바늘잎과 비슷합니다.

이게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은행나무 잎을 결 따라 한 올 한 올 뜯어 본 적 있나요?

이 결들은 잎맥(차상맥)으로 방사상으로 뻗어 있는데

이 모양새가 마치 침엽수의 바늘잎들을 서로 붙여놓은 형태와 비슷하죠.

 

만약 활엽수라면 이렇게 평행한 잎맥이 아니라

가운데 굵은 중맥을 기준으로 사방으로 뻗은 그물맥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은행나무 잎의 진화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쉬울 텐데요.

2억 년 전 은행나무 조상들의 잎은

이렇게 가느다랗게 갈라져 있었습니다.

화석으로도 그 형태가 남아 있죠.

 

그리고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한 덩어리고 잎이 뭉쳐지는 방향으로 진화합니다.

 

누누이 말하지만, 잎이 뭉쳐진 개체만이 자연 선택돼 생존한 것이며

살아남은 단 한 종이 바로, 지금의 은행나무입니다.

이렇게 들으니, 은행나무가 정말 침엽수 같죠?

 

그러나

여기서 또 하나의 반전은

은행나무를 무작정 침엽수로만 보기에는 애매한 점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2017년 국립수목원에서는

침엽수를 주제로 국제심포지엄이 열렸는데요

당시 기조 강연에서 영국왕립식물원의 알리오스 파존 박사는

은행나무는 DNA뿐만 아니라 수정 방식도 보통의 침엽수들과는 다르다며

은행나무는 침엽수가 아니라고 주장했죠.

 

그도 그럴 것이 은행나무는

우리가 흔히 아는 소나무 같으나 침엽수(구과식물)와는

수정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바로 움직이는 정자(정충)를 이용하죠.

이 유튜버가 또 헛소리한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얘네.. 정말 헤엄치는 정자(정충)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행나무의 수정 과정을 보면 납득이 가는데요

5월 초중순, 수분 시기가 되면 은행나무 암꽃대에서는

사진처럼 밑씨가 나오고 밑씨 끝에는 밀액이라는 작은 액체가

방울 맺힌 채 꽃가루를 기다립니다.

 

이후 수나무의 꽃가루 주머니에서 날아온 꽃가루가 밀액에 안착하면

몇 개월 후에 수정이 일어나죠.

 

꽃가루는 밀액의 영양분을 흡수해 이런 가지 모양의 화분관을 만들고

화분관 안에서 정자 세포는

이렇게 나선형 섬모를 가진 정자(정충)로 성장합니다.

 

그리고 화분관이 터지면 정자는 섬모를 최대 1초에 28회씩 회전시키며

난세포를 향해 나아가고 그렇게 수정이 이뤄지죠.

 

정말 놀랍지 않나요?

여기 식물분류표를 보시면 종자식물 중 운동성 있는 정자 세포를 지닌 건

은행나무와 소철이 유일합니다.

 

물론, 이들보다 이전에 등장한 이끼식물과 양치식물의 정자는 운동성을

지니고 있죠.

반면, 겉씨식물 중 소나무가 속한 침엽수, 그리고 속씨식물은

수분이 일어난 후, 화분관이 난세포까지 자라기 때문에

정자가 운동성을 지니질 않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류표에서 알 수 있듯 은행나무의 수정 방식은

진화적으로, 포자식물과 종자식물의 중간 단계에 있는 셈인데다

침엽수와는 전혀 다르죠.

 

그리고 이미 눈치채신 분도 있겠지만

식물분류표에 침엽수와 활엽수가 없습니다.

 

엄밀히 말해 침엽수와 활엽수는 편의상 사용하는 개념으로

겉씨식물 중 방울열매(구과)를 맺은 구과식물을 침엽수라고 부를 뿐이죠.

 

사실 구과식물, 즉 침엽수 중에서는 나한송이나 아가티스처럼

잎이 넓은 녀석들도 있습니다.

, 잎의 모양만으로 침엽수와 활엽수를 구분할 수는 없죠.

 

그리고 이런 분류 기준이라면

은행나무는 구과식물문에 속해 있지 않으니 침엽수가 아닙니다.

그럼 도대체 은행나무는 침엽수란 걸까요, 활엽수란 걸까요?

 

너무나 궁금했던 저는 직접 산림청에 문의를 넣었고

공식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답은 놀랍게도 은행나무는 침엽수도, 활엽수도 아닌

그냥 은행나무로 분류해야 한다는 거였죠.

그리고 그 이유도 앞서 제가 설명한 것처럼

계통 분류학적 차이 때문이라고 답변했습니다.

 

산림청에선 1970년대 <임학개론>이란 책에서

은행나무를 침엽수로 분류한 내용이

지금까지 잘못 전달돼 내려온 것 같다고 밝혔는데요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인터넷에 게재된 은행나무를 침엽수로 분류한 내용들은

이제는 과학적으로 틀린 사실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분류 기준으로 왈가왈부하기보단

올 가을엔, 3억 년의 세월을 견뎌낸 유니크한 단일종인 은행나무를

한 번이라도 더 눈에 담아두는 게 낫지 않을까요?

 

가을날, 여러분 눈에 비친 은행나무는 어떤 모습일까요?

역하디 역한 냄새와 흔하디 흔한 가로수는 아닌

경이롭고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그런 나무로 다가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