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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상식 세계사] 북마케도니아 10분 완벽 정리

Buddhastudy 2022. 12. 7. 18:57

 

 

 

1. 소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Северна Македонија)

약칭 북마케도니아는 동유럽 발칸반도 한 가운데 있는 내륙국으로

수도는 스코페(Skopje)입니다.

 

북마케도니아의 국기는 1995년에 제정되었습니다.

빨간 바탕에 8개의 금빛 햇살을 지닌 태양이 중앙에 있고

대각선, 수평, 수직으로 뻗은 8줄기의 햇살은

가장자리로 갈수록 두꺼워집니다.

금색의 태양문양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의 황금관에서 유래했습니다.

1992년 처음 제정된 국기는

원래 16줄기의 햇살을 가진 금색태양이 그려져 있었으나

그리스의 반발로 인해 현재의 국기형태로 수정하였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북쪽으로 세르비아와 코소보, 동쪽으로 불가리아,

남쪽으로 그리스,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의 국토면적은 약 25,000km²

세계 147위이며, 이는 대한민국 면적의 25% 수준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약 208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인구수로 세계 147위이며, 충청남도의 인구와 비슷합니다.

 

북마케도니아의 1년 총 GDP

2019년 기준 약 127억달러로 세계 132위이며

1인당 GDP는 약 6000달러로 세계 92위입니다.

 

북마케도니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며

이외에도 알바니아어, 터키어 등이 함께 쓰입니다.

 

주민은 약 65%가 북마케도니아계이며

25%가 알바니아계, 4% 가량이 터키계입니다.

 

북마케도니아의 종교는 마케도니아 정교회가 65%,

그 외 수니파 이슬람교가 30% 가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2. 역사

널리 알려진 대로 마케도니아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으로 유명한 그리스 반도 최북방에 있던 고대왕국이었습니다.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현재 북마케도니아에 속하는 지역을 정복하였고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더 넓은 제국으로 영토를 확장시켰습니다.

 

그 후 로마제국 시기를 거쳐 6세기 무렵

슬라브인이 남하하여 정착하면서

이 지역 주민들과 동화되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이 몰락한 이후 9세기에는

보리스 1세가 통치하던 불가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는데

그 시기 동안 슬라브족은 기독교를 받아들입니다.

 

1018, 힘을 되찾은 비잔틴제국이 발칸반도에서 불가리아 세력을 몰아내고

다시 북마케도니아 지역의 통치권을 회복하였으나

12세기 다시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이후로 북마케도니아는 불가리아와 세르비아 왕국의 지배를 받다가

1355년 오스만투르크에 정복되는데요.

그 후로 발칸반도는 약 500년 가까이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습니다.

 

18세기 말, 민족해방운동의 분위기를 타고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그리스,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불가리아가 차례로 독립했습니다.

 

1912년과 13, 그리스-세르비아-불가리아가 연합하여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한 1,2차 발칸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결과로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오던 발칸반도 대부분은

그리스, 세르비아, 불가리아가 나눠 가지고, 알바니아는 독립했습니다.

 

오늘날 북마케도니아의 영토는

당시 남부 세르비아로 명명되었다가

1차 대전 이후에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연합왕국으로 편입됩니다.

 

1929년 연합왕국은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마케도니아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 내의 마케도니아 공화국이 되었습니다.

 

1991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가

유고연방을 탈퇴하고 독립을 선언하면서 유고연방은 붕괴수순을 밟았고

북마케도니아 역시 국민투표에서 95%의 찬성을 얻어

유고슬라비아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1990년대 초,

유고슬라비아 내전 와중에도 평화를 유지한 편이었으나

그리스와의 첨예한 갈등에 휘말려야 했습니다.

 

그리스는 자국이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에 대한 역사적 정통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북마케도니아의 독립에 강력히 반발하였고

이에 1994년 양국은 대립하는 양상까지 보였습니다.

 

이에 미국과 유럽 각국이 이 문제에 개입하여

결국 1995년 마케도니아는

구유고슬라비아 마케도니아 공화국(FYROM)으로 국명을 개칭하였는데요.

하지만 이후로도 국명에 대한 원활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고

2018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국명을 정하기로 잠정합의했다가

1년 뒤인 2019년 공식적으로 국호를 북마케도니아로 변경하였습니다.

 

 

3. 정치 & 경제

북마케도니아는 의원내각제를 가미한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5년 임기로

국민의 직접선거에 의해 선출됩니다.

 

북마케도니아의 의회는 단원제로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됩니다.

주요 정당으로는 사회민주당, 민주번영당, 자유당 등이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엔과 더불어 유럽평의회 회원국으로

그리스와의 국명 문제로 인해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의 가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20192월 공식적으로 국명을 북마케도니아로 정하면서 NATO에 가입했고

EU 가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2001, 서부지역의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알바니아계 주민들과 정부 간의 갈등으로 인해

대규모 소요사태가 일어났는데요.

정부가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차지권을 인정하는 대신

알바니아인들은 분리요구를 포기하고

북마케도니아 체제를 인정하기로 합의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유고연방 붕괴 이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특히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IMF, IBRD와 같은 국제기구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1인당 GDP가 약 6000달러인 북마케도니아는

전 국토의 40% 가량이 산림이고

특별하게 발전한 산업분야도 없는 편입니다.

 

북마케도니아의 주요 수출품은 의류와 와인입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북마케도니아는 이탈리아, 프랑스에도 뒤지지 않는

고급와인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북마케도니아의 와인은 2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온화한 기후와 높은 지형 덕분에

질 좋은 포도를 생산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수많은 포도재배지와 양조장을 볼 수 있습니다.

 

 

4. 자연환경 & 문화

북마케도니아는 북쪽으로는 세르비아

동쪽으로는 불가리아, 남쪽으로는 그리스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내륙국입니다.

 

그리스에서 발칸반도를 통해 동서유럽과 중부 유럽을 잇고

불가리아를 통해 동방을 잇는 무역거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의 영토는

거대 왕국이었던 마케도니아 왕국의 일부 지역에 불과합니다.

영토의 대부분이 디나르알프스산맥과 로도피산맥을 중심으로 한

해발고도 2,500m에 이르는 높은 산지와

고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알바니아와의 국경 부근에 있는 코라브산은

2,764m로 북마케도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북마케도니아는 큰 수원지가 1000곳에 넘습니다.

바르다르 강을 비롯하여 츠른 드린 강, 모라바 강 등은

대부분 에게해와 흑해의 분지로 흘러갑니다.

 

그리스와 접한 남쪽 국경 부근에는 3곳의 큰 호수가 있는데

그 중 오흐리드호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입니다.

이 지역은 지진활동도 활발해서

1963년 수도 스코페에서 일어난 큰 지진으로

100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북마케도니아에는

바니슈테, 반야 반스코와 같은

9곳의 유명한 온천 휴양지가 있기도 합니다.

 

북마케도니아는 지중해성 기후에서 대륙성 기후로 바뀌는 위치에 있습니다.

여름은 고온건조하고, 겨울은 약간 춥습니다.

큰 강이 흐르는 유역에 위치한 지역은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를 보이지만

산지에서 나타나는 산악기후는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이 내립니다.

 

북마케도니아의 문화에서는 미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특히 이웃국인 세르비아와 함께 중세미술이 크게 발달했는데요.

수도 스코페와 오흐리드의 교회는 비잔틴 미술의 보고로

특히 오흐리드의 성소피아교회의 벽화

파란 천사는 최고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유명한 유적으로는

1466년 건설된 다우드 파샤(Daud Pasha) 목욕탕과

아름답게 장식된 스베티 스파스(Sveti Spas) 교회

그리고 지진으로 깨진 돔이 있는 무스타파 파샤 모스크 등이 있습니다.

 

북마케도니아는 민족무용의 중심지이기도 한데

동부 산악지대의 코미타스가 유명합니다.

가장 유명하고 대중적인 민족무용은

남성들로만 이루어진 무용단이 추는 테스코토(teskoto)

커다란 관악기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데

매우 느리게 시작하여 갑작스럽게 빨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북마케도니아는 온화한 기후 덕에

다양한 채소와 허브, 과일을 활용한 요리가 많습니다.

채소와 과일을 한데 모아 만든 쇼프스카를 주식으로 먹으며

포도주와 마스티카라고 하는 술을 즐겨 마신다고 합니다.

 

다른 주식으로는 북마케도니아의 전통음식으로

구운 콩에 고기를 얹어 먹는 타브셰-그라브셰가 있으며

후식으로는 튀김 반죽에 시럽을 넣어 만든

투룸바나 복숭아, 딸기와 같은 과일을 설탕에 절였다 먹는 과일 컴포트 등을 먹습니다.

 

 

 

5. 인물

북마케도니아 출신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평생 동안 빈민과 병자, 고아와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신한 종교인인 테레사 수녀가 있습니다.

 

테레사 수녀의 본명은 알바니아어로 아녜저 곤제 보야지우로

1910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북마케도니아의 스코페에서

가톨릭교를 믿던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적부터 몸이 약했으나 우등생이었고

가톨릭 성당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해나갔던 그녀는

1928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그 당시 영국령이었던 인도제국으로 떠나 수녀 수련을 받습니다.

 

1937년부터 테레사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고

1950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정식으로 인도 공화국이 출범하자

인도로 귀화한 후에 가톨릭계열의 선교단체인

사랑의 선교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후로 어린이 보호시설을 추가로 개설하였고

1968년에는 한센병 환자들을 돕는 평화의 마을을 만들었는데요.

이렇게 아프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펼친 사회활동으로

테레사 수녀는 197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고

인도에서 가장 높은 시민훈장인 바라트 라트나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인도뿐 아니라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평화와 나눔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1997, 87세의 나이로 인도 캘커타에서 선종하였고

선종 6년 뒤인 200310, 교황 바오로 2세에 의해

캘커타의 복녀 테레사로 시복되었습니다.

 

하지만 테레사 수녀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도 존재합니다.

대표적으로는 진보적인 신학자들에 대해 반대적 입장과

캘커타 민중들의 계급투쟁을 방해했다는 점을 들어

부자들의 성녀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아이티의 독재자인 프랑수아 뒤발리에와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하는 등

정치적 무지에서 비롯된 사회적 물의를 빚는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