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공부 1

[지혜별숲] 무한성을 알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까? [낭독26회]

Buddhastudy 2023. 8. 17. 18:55

 

 

레스터 레븐슨의 [세도나 마음혁명] 함께 하겠습니다.

 

레스터 레븐슨은 세도나 메서드의 창시자이자 세계적인 영적 스승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발견한 것은 바로 모든 내적 한계들을 놓아버리는 릴리싱 테크닉이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궁극의 도구를 갖게 된 그는

완전한 건강과 심오한 내적 평화를 가지게 됩니다.

그 후 레스터 레븐슨은 애리조나주 세도나에 정착해 명상센터를 짓고,

사람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방법과 명상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도나 메서드인데요.

 

세도나 메서드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의식혁명]으로 유명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 역시 그의 수많은 제자들 중 한 명이라고 합니다.

내용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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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는 모든 사람이 대답해야만 하는 궁극의 질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 마지막 질문으로 시작하지 않는가?

만일 당신이 그렇게 시작할 수 있다면

이것은 정말 너무나 좋고, 모든 것이 다 잘될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

나는 누구인가?”를 붙들고 늘어질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느낌들과 생각들에 묶여 그것으로 살고 있으며 그것들을 놓아버릴 수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방법들과 도움들이 필요하다.

 

동양의 다른 주된 방법들은 즈냐나 요가, 라자 또는 끼리야 요가, 박티 요가 그리고 까르마 요가라고 하는 것들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각각의 길은 다른 모든 길을 포함한다.

오직 다른 점이 있다면 개개의 길은 다른 길에 비해 그 길을 더 강조하고 있다는 것뿐이다.

 

지적인 사람은 지성과 지혜의 길인 즈냐나의 길을 따르고

헌신적 사람은 신을 향한 사랑과 헌신의 길인 박티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또한 인류에 공헌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까르마 요가를 하는 것도 좋다.

어떤 길이든 마음의 고요함으로 인도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원래 우리 자신이었던 그 무한한 존재를 보게 된다.

 

위의 모든 방법들은

마음을 고요히 하기 위한 것들인데, 왜 마음 자체로 곧장 가지 않는가?

그것이 더 직접적이고 실용적이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만일 마음을 조사한다면

그것이 단순히 모든 의식적 혹은 잠재의식적 생각들의 총체라는 것,

그리고 어떤 특정한 일에 대한 과거의 모든 생각들은 느낌으로 집약됨을 알게 될 것이다.

 

느낌은 이제 생각들을 일으키는 동기가 된다.

만일 우리의 생각들이 느낌들에 의해 일어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생각들을 일으키는 느낌들을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 마음은 고요해질 것이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그 자리에 드러나는 것은 원래 우리였던 무한한 존재이고

이것은 실로 자명한 일이다.

 

간단하다. 그렇지 않은가?

느낌을 흘려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구라도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도나 메서드.

, 이제 눈에 드러난 이 세상에 대해 살펴보자.

 

사실상 세상은 우리가 정신적으로 창조한 상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외부의 어떤 것이 아니다.

진실의 측면으로 보면 그것은 우리 안에, 즉 우리의 마음 안에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우주 전체를 우리가 창조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먼저 우리가 마음이라는 것을 창조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면 마음이 세상을 상상해낸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의식적, 무의식적 생각들과 느낌들로 구성된, 우리의 마음과 마음속의 세상을 창조했다.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세세한 것들은,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가 창조한 것이다.

 

우리에게는 정신적으로 시간이라는 개념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것이 창조가 일어나는 과정을 더욱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생각하고 그 생각의 결과는 한참 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 하나의 창조자는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

 

신이 창조자인가?

맞다. 그것은 바로 당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이다!

 

당신이 마음을 장치해놓고 그 마음을 통해 창조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우리의 느낌과 생각에 의해 발생함을 발견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며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발생하는 모든 것은, 첫째 우리의 생각 속에서 먼저 창조된다.

당신이 당신의 문젯거리를 창조했다는 것을 발견하면,

당신은 이제 당신이 갈망하는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이제 당신은 오직 좋은 것들만 창조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이제 무엇이든 창조할 수 있음을 발견한 후에도

당신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그 이유는 당신이 당신 자신을 무한한 존재성, 단일성으로부터 분리시켰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직 무한한 존재성이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인식하면서 비로소 완전히 만족한다.

 

그러므로 거기 어떤 문젯거리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들은 오직 당신이 생각 속에서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들을 놓아버리는 순간, 그것들은 그냥 없는 것이 된다.

만일 당신이 자신은 그렇게 안 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당신이 그것들을 여전히 붙들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그 문제에 여전히 매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마음에 붙들고 있음을 말하고

그것에 의해 그 문젯거리는 계속 유지된다.

그러므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 그것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문제를 보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것을 보라.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이 원하는 것만 본다면,

그것이 당신이 가지게 될 모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원하지도 않는 것을 붙들고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적극적이고 행복한 삶을 원한다면,

부정적인 것들을 버리고 그 자리에 긍정적인 것을 놓아라.

 

이것은 머리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마음을 넘어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버리기 위해 마음을 사용할 수 있다.

그렇게 마음이 버려지면서 마음은 점점 더 고요해지고, 그로써 마음 너머를 볼 수 있다.

 

만일 이 주제가 지식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는 책만 읽으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런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다.

마음 너머에 있는 진자아를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마음을 흘려버리기 위해 하나의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 위에 관찰하는 마음을 두어라.

그러면 당신은 마음 너머에 있는 진자아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이것을 경험해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마음 너머에 도달하여 거기서 그것을 인지함으로써 그것을 진짜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그때 당신은 안다.

그리고 당신은 알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고 나면 비로소 당신은 모든 것을 아는, 전지의 영역에서 직관적으로 행동한다.

 

가장 높은 상태는 단순히 존재함이다.

그렇게 우리가 단순히 존재하고, 그저 일 때,

우리는 우리의 무한함을, 그리고 우리가 전체임을 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만족하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상태가 된다.

이 상태는 결코 아무것도 없음의 상태가 아니다.

이것은 권태로움이 아니다.

이것은 전체성이며 모든 것이다.

영원으로 이어지는 총체적 만족이다.

당신은 결코 당신의 개별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는 느낌은 결코,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확장된다.

당신이, 당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함에 따라 발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곧 이며, 당신이 곧 나이고,

거기 그렇게 오직 큰 하나가 있음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은 늘 그랬듯이 지금도 거룩하고 무한한 존재, 그 하나다.

당신은 이미 무한의 존재성이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하는 모든 일 이외에 다른 어떤 것들 속에서 찾는 그 행복이다.

당신은 이제까지 그래왔고 지금도 그렇다.

모든 방법과 기법들은 바로 당신을 그렇게 만들기 위해 고안된 것들이다.

 

이것은 레스터가 자주 말하곤 했던

내 안에서 자명하게 드러나는 일인 것이다.

레스터는 자주 이렇게 물었다.

무한의 존재가 자신의 무한성을 알기 위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하단 말인가?”

 

시간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은 이미 당신이 찾는 그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훈련해 나감에 따라,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이 이해를 숙고하라.

만일 슬픔 없는 행복을 추구한다면, 아래의 연습 과정은 이미 당신 자체인, 그 무한의 행복을 발견하도록 도울 것이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리라고 믿는 사람들, 장소들, 사물들, 상황들 그리고 성취 대상들의 목록을 만들어라.

그리고 목록에 있는 것들을 아래의 방법으로 점검하라.

 

나는 이것을 통해 행복을 원하는 그 원함을 놓아버릴 수 있는가?

또 하나, 지금 - 그 원함이 없는 상태로서의 - 현재 그대로의 나를 행복으로 인정하고 거기에서 만족할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그런 가치의 행복이 바로 당신이다.’라는 것을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신을 그 가능성에 열어놓으라는 뜻이다.

 

또한 각 항목에 대해 위와 같은 질문으로 점검하라.

당신의 목록에 쓴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은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가지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단순히 그것을 가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과

당신이 그것을 가졌든 가지지 않았든 행복은 거기 있다는 것,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해 나가면

당신은 당신이 가진 모든 것 속에서,

당신이 처한 모든 상황 속에서, 당신이 하는 모든 일 속에서,

당신의 자연적 본성으로서의 행복을 더욱더 많이 누릴 것이다.

 

고맙습니다.

레스터 레븐슨의 [세도나 마음혁명] 이었습니다.

오늘도 고요하시고 현존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