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눈앞에서 7살 아들이 죽었습니다. 다시 환생해서 올 수 있을까요? (2023.07.07.)

Buddhastudy 2023. 10. 18. 19:33

 

 

계곡에서 7살 아들을 떠나보냈습니다.

살려달라는 아들을 구하려고 물속에 들어갔지만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오랜 시간 물속에 갇혀 있던 모습과

왜 구해주지 않았냐고 꿈에 나타나서 울던 모습은

제 가슴에 각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환생할 것이라는 생각에 시험관을 시작했는데,

그때 충격 때문인지 여자로서의 기능을 거의 다 잃어버려서

다른 사람보다 힘든 과정을 겪고 있습니다.

4년째 시험관을 하고 있는데 아직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엄마다 보니 내 새끼가 다시 올까하는 기대가 버려지지 않습니다.

아이를 놓아주어야 무주고혼이 되지 않고 좋은 곳으로 간다고 해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잘 되지가 않습니다.

아이가 저에게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환생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고

자녀가 죽으면 부모의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 자식을 잃었기 때문에

그것도 직접 보는 앞에서 잃었기 때문에,

큰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자에게는 지금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계속 집착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떨치려 해도 안 떨쳐지는 거예요.

그러니 우선 병원에 가서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를 받아야 됩니다.

 

가족이 자살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경우에도

이런 충격을 받습니다.

만약 자식이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할 때

엄마가 쫓아가서 손을 잡았는데

끌어올릴 힘이 없어서 결국 자식이 떨어져서 죽었다면

그 엄마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합니다.

또 자기가 운전하는 차를 뒤로 돌리다가

자식이 그 차에 치어 죽었을 때도 큰 충격을 받습니다.

 

세월호 충격이 큰 이유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온 국민이 봤기 때문이에요.

그냥 배가 전복을 했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소식만 들었다면

고통이 덜한데,

그 과정을 국민들이 생중계로 계속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국민적인 분노가 일어났고

정치적인 소용돌이까지 겪게 된 거예요.

 

자식을 잃는 것만 해도 엄청난 충격인데

질문자는 자식이 죽어가는 과정을 본인이 어쩌지 못하는 상태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엄청난 충격을 받은 겁니다.

그래도 이렇게 질문까지 하는 것을 보면

미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에요.

 

그런 정도의 경험을 하게 되면 대부분 실성을 합니다.

혼이 나간 상태가 되는 거죠.

 

정신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질문자는 그 충격에 정신을 잃은 겁니다.

그러나 아이가 죽는 걸 확실히 본인 눈으로 봤기 때문에

아이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알고는 있어요.

그러니 아이가 환생해서

다시 내 아이로 태어날 것이라는 생각을 붙잡고 있는 겁니다.

 

물론 질문자가 건강하다면

아이를 하나 더 낳을 수는 있겠죠.

그럴 때는 첫째 아이는 잃었고, 둘째 아이를 새로 가졌다하고 말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이에요.

 

그런데 이런 충격을 받으면

둘째 아이가 첫째 아이의 환생이다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돌아가신 스님이 환생을 했다고 해서

어린아이를 선정해서 린포체라고 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해당합니다.

 

어떤 믿음을 갖느냐는 본인의 자유예요.

하나님을 믿어도 됩니까?’ 이렇게 물으면 저는

너 알아서 믿어라이렇게 얘기합니다.

 

내생이 있습니까?’ 이런 질문도 믿음에 해당하기 때문에

누가 답할 수가 없어요.

믿고 싶으면 믿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으면 됩니다.

믿음은 개인의 자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아이를 너무 그리워하다 보니

환생을 원하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의 환생이 백 퍼센트 믿어진다면

이런 질문을 안 할 겁니다.

환생을 원하지만, 안 믿어지는 구석이 있으니 이런 질문을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자신의 눈앞에서

아이가 죽은 충격 때문에 정신적으로 병이 든 것입니다.

옛말로 하면 혼이 빠졌다고 할 수 있어요.

정신을 잃어서 세상일이 아무 의미 없게 느껴지는 겁니다.

그러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종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었으면 새로운 몸을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계속 부르면 영혼이 떠나지를 못합니다.

이것을 무주고혼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라면

천국에 잘 가라하고 인사를 해야 하고

불교인이라면 얼른 극락에 가라하고 인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죽어서라도 행복하게 살 수가 있어요.

 

그리고 질문자에게 아이가 필요하다면

둘째 아이를 갖겠다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몸에 이상이 있어서 둘째 아이를 가질 수 없다면 포기해야겠지요.

 

어떻게 내가 원하는 걸 다 할 수가 있습니까?

무리해서 아이를 갖게 되면

장애아를 갖거나 뱃속에서 유산을 하게 되어서

더 큰 트라우마를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또 아이를 잃었다하면서

다시 더 큰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우선은 지금 입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질문자는 지금 정신질환 상태라는 것을 인정해야 해요.

나는 지금 아이가 죽은 충격으로 정신을 잃은 상태이다이렇게 자각하고

빨리 정신을 차려서

남편을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과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힘으로 안 되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수행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좋은 곳에 가서 행복하게 살아라. 엄마도 행복하게 살게

이런 마음으로 기도를 하는 게 좋습니다.

정신이 좀 차려졌어요?

 

...

 

질문자가 믿고 싶으면 믿어도 되고

안 믿고 싶으면 안 믿어도 돼요.

기독교는 하느님을 믿고

티베트 불교인들은 환생을 믿고

인도인들은 윤회를 믿고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은 용왕을 믿잖아요.

믿음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하는 것은 옳지 않아요.

 

가까운 사람이 죽고 난 뒤에는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천국에 갔다’, ‘극락에 갔다’, ‘다시 돌아온다

이런 생각으로 위안을 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가 형성이 된 거예요.

 

그래서 믿음에 대해서는 진위를 논하면 안 돼요.

저 사람은 저렇게 믿는구나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믿음은 맞느냐 아니냐를 따져서는 안 됩니다.

믿어지면 믿으면 되고, 안 믿어지면 안 믿으면 됩니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은 서로 다를 뿐이지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닙니다.

 

...

 

노력할 것도 없고, 놓아줄 것도 없어요.

그냥 잘 가이러면 돼요.

지금 이 자리에서 잘 가하고 말해 보세요.

오늘 못하면 1년이 지나도 못해요.

1년이나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걸 어떡하니? 잘 가라!’ 이렇게 한번 말해 봐요.

 

...

 

질문자는 여전히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 말은 잘 가라. 하지만 가지 마라이런 뜻이에요.

그러지 말고 뒤끝이 딱 올라가야 해요.

잘 가!’ 이렇게 말해 봐요.

 

...

 

또 질문자는 울먹이며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다시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것도 안 돼요.

아직도 울고 있으면 가지 말라는 얘기랑 똑같죠.

딱 끊어지는 맛이 있어야 해요.

뒤끝을 딱 올려서 말해 보세요.

 

...

 

그래요. 이렇게 하면 오늘 다 해결되었어요.

더 이상 노력할 게 없습니다.

인생은 노력할 것이 없어요, 그냥 내려놓으면 되지.

내려놓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은 놓기 싫다는 뜻입니다.

내려놓는 데 무슨 노력이 필요해요?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하는 말은

담배를 끊기 싫다는 말이에요.

그냥 담배를 안 피우면 되는데 무슨 노력을 해요?

 

남편이 있어요?

그럼 질문자가 늘 울면서 지내는 게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요?

웃고 사는 게 남편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럼, 셋이 다 물에 빠져 죽는 게 나아요?

아이는 죽었다 하더라도 나머지 두 명은 잘 사는 게 나아요?

 

...

 

잘 살아도 돼요.

아이가 보기에도 부모가 잘 사는 게 좋겠어요?

맨날 울고 있는 게 좋겠어요?

 

...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겠지만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을 어떻게 하겠어요?

이제 아이는 보내주고

질문자는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사세요.

시험관 아기를 만드는 것도 너무 무리하게 하지 마세요.

 

아이가 죽으니 이렇게 슬프구나.

자식은 괴로움의 덩어리구나.

두 번 다시 안 낳아야겠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안 될까요?

 

지금까지 저는 저 자신을 위해서 살아온 게 아니라

자식을 위해서 살았거든요.

힘들어도 시험관 아기를 포기하는 건 어려울 것 같아요.

 

그럼 1년 정도 더 울고 내년부터 웃으세요.

지금까지 울면서 지낸 세월도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수렁에 빠져서 1년 정도 더 울어도 됩니다.

 

시험관 아기를 시도하다가 장애아를 낳거나 유산해서 3년을 더 울어 보세요.

그러면 정신이 좀 차려질 겁니다.

자식이 죽었는데 웃음이 어떻게 나요?

울어야죠.

오늘부터 웃고 살 것인지, 3년 후부터 웃고 살 것인지

본인이 선택하면 됩니다.

 

웃으며 살아도 자식은 안 돌아오고

울면서 살아도 자식은 안 돌아와요.

어차피 돌아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우는 게 나을지, 웃는 게 나을지 잘 생각해 봐요.

 

오늘 제 이야기를 이해하셨으면

병원에 안 가도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내일부터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