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23)

법륜스님의 하루_ DNA 검사를 해보니 제가 딸의 친부가 아니었습니다. (2023.02.19.)

Buddhastudy 2023. 11. 1. 20:15

 

 

저는 제 딸과의 관계에 대한 깊고 어려운 질문을 스님께 하고 싶습니다.

최근에 딸이 전화를 해와서 DNA 검사를 했다고 하면서

제가 친부가 아니라고 합니다.

저는 얼마나 착각 속에 살았으며, 그 후 저는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제 전처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내주었으면서

그동안 제 탓을 해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수년간의 괴로움과 착각, 집착의 시간 동안 저는 그걸 몰랐습니다.

스님 가르침과 불법 덕분에 지난 며칠을 정신 줄 잡고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었다면 정신병원에 갔거나 다시 술을 찾았을 것 같습니다.

좋을 때도, 나쁠 때도, 끔찍할 때도, 최악의 순간에도 수행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화는 올라왔다가 가라앉았다가 합니다.

제 아내는 제 딸의 인생을 망쳐 놓았습니다.

제일 좋게 표현한 게 그렇습니다.

그는 제 모든 것을 깨트려 놓았고, 최소한 제 착각도 깨트려 줬으니 감사하네요.

이따금 모든 것이 명료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순간들도 있지만,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괴로워질 때는 그냥 괴로워합니다.

피하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있습니다.

죽을 것 같을 때도 있지만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이나 제 업식이 저를 계속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제게 마지막 관문처럼 느껴지네요.

질문할 준비가 잘 되어있지 않았는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스님 말씀 듣겠습니다.//

 

 

제 얼굴을 보세요. 제가 지금 웃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일이구나하고요.

질문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네요.

 

딸의 DNA가 다른 사람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너는 누구였고

그 후의 너는 누구인가?

어떤 것이 진정한 너인가?’

 

이것은 전통적인 선(, Zen)의 질문입니다.

왜 말 한마디에 사람이 정반대로 바뀝니까?

왜 말 한마디에 내 딸이 아닌 게 됩니까?

그럼 도대체 딸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래서 이것은 혼란이 아니라 탐구의 대상입니다.

딸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질문자는 그 DNA에 집착하여 사람이 달라진 겁니다.

DNA가 딸입니까?

 

질문자는 DNA가 다르다는 것을 듣고서 생각이 바뀐 것뿐입니다.

딸은 그대로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입니다.

단지 어제까지는 내 딸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바뀐 것뿐입니다.

그래서 옛날에 한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생각 일어나니 만법이 일어나고

한 생각 사라지니 만법이 사라진다.’

 

이것은 단지 생각에서 일어나는 장난입니다.

지금까지 딸이라고 생각했던 그분이 딸입니까, 딸이 아닙니까?

잠시 생각이 바뀐 것뿐입니다.

 

그러니 딸이다, 아니다를 생각하지 마세요.

누구와 관계해서 낳았든, 그게 뭐 중요합니까?

 

동물은 수컷이 누구인지 따지나요?

원래 수컷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인간 사회의 가부장제로 인해 생긴 것뿐입니다.

 

인공 수정을 해서 아이를 가지면 그 아이도 내 아이잖아요?

차이는 내 딸이라고 생각했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딸과의 문제를 풀기가 더 쉬워졌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부터 잘해준다면 예전보다 훨씬 좋아질 것입니다.

예전에는 딸이 아빠에게 기대를 많이 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제는 기대가 줄었기 때문에 질문자가 조금만 잘해줘도 좋아할 거예요.

 

딸이 아빠가 아니라고 말해도 질문자는

너는 내 딸이야!’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합니다.

‘DNA가 뭐가 중요하니? 너는 태어날 때부터 내 딸이었어!’ 하는 관점을

분명하게 갖고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통해 불법의 위대함을 체험해야 합니다.

내가 딸이라고 생각하면 딸이 되고,

내가 딸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딸이 아니게 되는 거예요.

 

괴로움은 생각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

존재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 불법의 핵심입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괴로움은 마음이 만든다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그것을 체험한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자녀는 자기 부모가

생물학적으로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릅니다.

단지 부모가 자신들이 부모라고 말하니까 부모라고 믿는 것일 뿐입니다.

생물학적으로 부모인가 아닌가하는 것은 인류학적으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DNA를 분석하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동물적으로 보는 거예요.

이 개가 진돗개 순종인가, 셰퍼드 순종인가?’ 하고 따지는 수준과 같습니다.

 

내가 부모라고 믿으면 부모이고

자식이라고 믿으면 자식입니다.

생물학적인 부모가 누구인가는 하등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딸에게

너는 태어날 때부터 내 딸이었어. 내가 너의 아빠야!’라고 분명하게 말해준다면

딸의 마음에 아빠에 대한 신뢰가 커질 것입니다.

오히려 질문자도 딸에 대한 집착이 줄어들고

딸은 아빠에 대한 기대가 줄어들기 때문에

지금 상황은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30년 전에 아내가 누구와 잤느냐 하는 것이

지금 뭐가 중요한 일입니까?

지금 그걸 생각하면서 괘씸하다고 한다면

질문자는 수행을 더 해야 합니다.

 

이렇게 인생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은 거예요.

그러니 아무 일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