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4)

[즉문즉설] 제586회 공적인 자리에서 벗어나,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소극적입니다.

Buddhastudy 2014. 3. 26. 21:42

출처 YouTube

 

 

. 지금 그걸 요구하는 게 좀 욕심이에요. 내가 보기에 다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수준의 고민이에요. 그러니까 본인만 갖고 있는 특별한 고민이 아니고. 이 보편적인 인간은 영향 받는 존재이거든요. 그래서 사람들이 있으면 사람들을 의식해서 좀 뭐든지 하게 되고, 사람들이 없으면 의식을 안 하게 되면 좀 소극적이 되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요. 아주 특별한 사람만 그렇지 않는 경우도 있죠.

 

그러니까 현재의 상태가 특별히 본인에게 문제는 안 된다. 그런데 그걸 본인이 좀 더 극복을 해 복고 싶다. 하는 것이 있으면 극복을 하면 되는데, 극복이 안 되는 자기에 대해서 약간의 실망한다든지 하는 거는 이미 벌써 욕심을 부린다, 이런 얘기요. 자기를 너무 변화시키고 발전시키려고 하는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한 자기에 대한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거다. 그래서 일단 욕심을 버리셔야 돼요. 그래서 스님한테 상담하니까 다 들으시더니 지극히 정상적이다. 그러니까 생긴 대로 살아라. 이렇게 얘기하더라. 이게 첫째에요.

 

두 번째는 지금의 상태대로 만약에 간다면 지치게 된다. 사회운동에 대해서. 왜냐하면 그냥 자체내부에서의 일어나는 이 에너지라기보다는 이런 주어진 조건 때문에 에너지를 가지고 가서 큰소리도 치고, 힘도 내고, 이러기 때문에. 이게 가면 갭이 점점 커지면서 내가 지치게 되고 자꾸 이게 뭐랄까? 내면하고 바깥이 자꾸 겉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어느 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생겨요.

 

하다 그만둬버리는 사람이 생기지 않습니까? 바깥만 보고 사람들이 잘 모르거든요. 속에 지쳐있다는 거요. 지쳐있기 때문에 그걸 감당을 못하면, 지쳐있으면 이게 어떠냐하면, 바깥으로 경계에 부딪히면 더 세게 나옵니다. 더 과격하게 나오고, 더 적극적으로 하는 거 같고. 그럼 또 그 반작용으로 혼자 있으면 또 더 힘들어하고, 그래서 이것의 개입을 좁혀야 되요. 지금의 이제까지 본인이 이걸 좀 무겁게 해 나가면, 언젠가 지쳐나가 떨어지면, 그 참 사람들 보기에도 무책임하지 않습니까? 그죠?

 

그러니까 이런 문제가 생기면 주위사람에게, 개인이 혼자 사는 사람은 괜찮은데. 사회적인 어떤 리더십을 갖고 있는 사람이 그래버리면 주위에 있는 사람에게 실망을 줘요? 안줘요? 주죠. 그 다음에 두 번째는 또 자기도 자기 어떤 자존심이나 이런 게 굉장히 상하게 된단 말이오. 그럼 이 상처를 치료하려면 몇 년이 걸려야 되요. 그러니까 자기 내면의 소리를 억압하고 바깥으로 하지 말고, 자기 내면의 소리,

 

그건 진짜 네가 어떠냐? 난 사실 세상에 이렇게 어쩌구저쩌구 해도 혼자 있을 땐 세상에 아무 관심 없고, 그냥 맛있는 거나 먹고, 잠이나 좀 자고, 소박하게 농사나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거 사실 힘들다. 언제까지 해야 되나? 그래도 또 형편이 되면 안할 수 없고.” 만약 이런 건지. 이걸 자기 내면을 좀 봐야 된단 말이에요. 깨달음 장을 하셨어요? 처음 오십니까? 그러면 아무리 일이 바쁘시더라도 문경에 가서 깨달음 장을 먼저 해서 자기 성찰을 먼저 해야 되요. 나에게 어떤 무지가 있는지. 전도 몽상이 있는지를 먼저 점검해야 된다.

 

점검을 해도 절반은 치유가 되고, 그 다음에 이런 경우에는 나눔의 장에서 자기 속에 정말 무의식의 세계, 내면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이렇게 자기가 알아야 되요. 그런데 혼자선 자기를 들여다본다고 알아지는 게 아니거든요. 공상만 하게 되니까. 그럼 마음나누기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속에 있는 진짜 얘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현실에 있는 자기를 자기가 수용하고 받아들여야 되요. 가공한 자기에 착각하고 살면 안 된단 말이오.

 

현실의 자기를 들어내고, 그거를 인정하고, 그거에 토대를 해서 한발 한발 나아가야 내가 주장하는 것과 내 실천이 언행이 일치 한다, 이러잖아요. 그 다음에 이론과 마음이 실천이 일치하는 그 완전 일치는 안 되죠. 누구나 다. 그 갭을 줄일 수가 있게 된다. 이거요. 심리적으로는 이 분리현상이 도덕적으로 그 사람 거짓말 하는가, 예를 들면 여자가 굉장히 노출을 많이 한다. 심리학 보면 그래요. 노출 아주 과감하게 하다. 그럼 사람들이 저 사람이 여자가 성을 굉장히 밝힌다. 이렇게 되잖아요. 그런 사람은 조사를 해보면, 불감증일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거요. 그럼 예를 들면 이런 식이라는 거요.

 

일부러 막~ 음담패설을 많이 하는 사람치고 실제로 바람피우는 사람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옛날부터 뭐라고 그래요? 얌전한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 이런 얘기 있잖아요. 그런 얘기하면 아~ 부끄러워하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면 진짜 다 하고 있어요. 이게 인간 의식 구조의 복잡성이에요. 그래서 인간의 의식구조가 이렇게 아주 여러 가지 분열도 일어나고 복잡하기 때문에, 이거를 우리가 정확하게 이해해야 되요. 그래서 사람이 의사전달을 하는데, 말이 물론 가장 중요하죠.

 

그런데 여러분들 일단 말을 해보면 어떤 사람, 어떤 사람한테는 꼭 좋은데도 그 사람한테는 말을 삐딱하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없어요? 자기도 모르게 삐딱하게. 꼭 좋아도 픽~ 이러고. 그런데 실제로 돌아와서 보면 안 그런데. 이렇게 늘 이중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에 대해서 자기에 대해서도 남에 대해서도 조금 더 이렇게 진중하게 살펴야 됩니다.

 

그러니 아무리 바쁘더라도 깨달음 장을 먼저 해서 자기가 미혹 돼 있는, 자기가 자기를 잘 모르거든요. 미혹돼 있는 부분을 먼저 부수는 게 필요하다. 그리고 다음에 나눔의 장에 가서 진짜 자기의 까르마가 뭔지, 자기 밑 마음이 뭔지를 파악을 해서 거기로부터 출발해야 마치 두 발을 땅에 디딘 거 같아요. 지금은 공중에 붕 뜬 거 같거든. 그래야 어떤 일을 할 때 착 가라앉아가지고 할 수가 있다, 이런 얘기요. 이런 과정을 한번 거쳐보면 좋겠네.

 

누구나 다 수행을 해야죠. 그러나 이제 이런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스님이나, 신부나, 목사나, 아님 사회운동을 하거나, 또는 회사는 좀 덜해요. 어쨌든 사회 리더. 도덕적으로 남 앞에서 주장하는 사람 있잖아요. 이런 사람들은 수행을 좀 많이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그런 얘기하잖아요. 사람들한테. 남에게 인생을 이래 살아야 된다. 저래 살아야 된다는 얘기는 가능하면 안하면 좋다.

 

그러면 그것이 다 부메랑이 돼서 누구한테 돌아옵니까? 나한테 돌아와요. 아시겠습니까? 항상 니는?’ 사람들이 이렇게 얘기하잖아. 그래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를 많이 줘요. 그래서 말이 앞서는 거를 항상 좀 줄이는 게 좋아요. 그런데 이제 그걸 그냥 그렇다고 말 안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성찰을 통해서 이 갭을 줄여야, 안정감 있게 나아갈 수가 있다. 힘 있게 나아갈 수 있다. 이래 말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은 또 그 사람들이 수행을 더해야 되는데, 수행을 안 해요. 그다음에 결혼한 사람이 혼자 사람보다 수행을 더 해야 되고, 자녀를 낳을 사람의 엄마는 아버지보다도 열배로 더, 남편보다 열배로 더, 처녀보다도 열배로 더, 수행을 해야 된다. 왜냐하면 이것은 거의 유전처럼 엄마의 심리가 자녀의 심리에게 전이되기 때문에. 그래서 스님이 항상 이런 얘기하다가 여자가 애 문제 얘기하면서 엄마 같지 않은 얘기하면 스님이 열을 올리잖아. 그죠? 스님 목청 올라갈 때 그때밖에 없잖아.

 

엄마가 엄마 같지 않게 하면 스님이 뭐라 그런단 말이야. 스님이 야단을 막 치잖아요. 왜냐하면 무책임하기 때문에. 그러면 애기를 안 낳아야 되거든. 우리가 부부는 쌍방 간에 선택을 한단 말이오. 그리고 부모를 여러분들이 은혜를 안 갚아도 괜찮아요. 그거는. 사실은. 은혜를 갚으면 좋지만, 안 갚는다 해서 크게 죄 안 됩니다. 이유는? 그건 부모가 나를 일방적으로 선택했지, 내가 부모를 선택한 게 아니니까 내가 책임을 안 져도 된다. 이 얘기요. 부부는 서로 책임을 지면되는데, 자식은 내가 일방적으로 선택했고, 상대는 그냥 내 선택에 의해서 끌려온 거란 말이오.

 

그러기 때문에 무한책임을 져야 돼. 그런데 요즘 여성들이 엄마가 되어놓고, 책임을 안 지려고 한단 말이오. 애기가 뭐, 신체가 장애가 있거나, 애기가 문제가 있으면 도망가려고 자꾸 한단 말이오. 남한테 맡기고. 내가 죽어서라도 애를 살려야 되겠다. 이렇게 안하고. 그래서 그 책임분야에 따라 달라요. 그래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일수록 수행을 더 많이 해야 됩니다. 고고한 무슨 수행자가 되라.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다스려야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가 자기 힘에 못 이겨 가지고 일을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세상을 위해서라고 이렇게 오도하기가 굉장히 쉽다. 자기분노를 못 이겨서 세상에 저질러 놓고, 세상을 위해서 그랬다. 이렇게 할 때, 대중설득력이 자꾸 떨어집니다. 그러면 운동권이 극단으로 치우치죠. 운동을 하다보면 대중을 이루면 어때요? 자꾸 극단으로 가서 끝에 가면 테러로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역사 속으로 운동을 해서 지도자가 된 사람, 모택동이든, 호치민이든, 그렇지 않으면 간디든 이런 사람 보면 어때요?

 

그것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않습니까? 내면이 안정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밀고나가서 대중의 신뢰를 받는 거란 말이오. 그래서 다 그런 사람들은 무슨 불교를 몰라도 수행을 하는 거라, 마음공부를. 그런데 혁명하는 사람 중에 감정기복이 심하고,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하고 이런 사람들은 사실은 파괴를 하는 혁명은 하는데, 건설은 못해요. 그래서 건설의 이후가 얼마못가서 무너지죠. 대중적 지지를 잃게 된다는 거요. 그리고 이성을 잃게 되고. 자꾸. 그래서 수행을 꾸준히 해 나가셔야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