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는 ‘이 사건’에 대해
한 달간 보도를 통제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대만총독이 경질되었고요
경찰서장 사임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일제를 두려움에 떨게 한 ‘사건’
이 분의 의거는 대한 독립 역사에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그런데 왜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가.
그것을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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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왕족은 일본인에게 있어서 신이었죠.
그래서 왕족을 표적으로 삼는다, 라는 것은
일제 자체를 표적으로 삼는 그런 뜻이 있었고요
일본왕족 = 일본제국
일본 육군 대장이자 일왕 히로히토의 장인
‘일본의 왕족’ 구니노미야 구니요시
대만 주둔 일본군의
전비 태세를 점검하러 대만을 방문한
구니노미야에게 날아든
‘독 묻은 단도’
오직 자신만의 결심으로 의거를 단행한
조선 청년 조명하
일제는 당시 왕족으로 노린 첫 번째 의거였기 때문에
일왕 히로히토에게도 굉장히 충격을 줬던 것입니다.
그래서 일제는 이후, 조명하 의거에 대한
한 달간의 어떤 보도도 하지 않았던 거죠.
이 충격을 어떻게 가라앉히고
독립운동의 의지를 꺾을까
상당히 왜곡된 내용을 만들어서 신문에 실었다.
조명하의 의거에 대한
일제의 ‘왜곡된’ 기록
실망한 나머지 자살을 결의하였다.
감히 대역죄를 저질렀다.
-대만일일신보 1928.6.15.
모르핀 중독자
우발적으로 위해 입혀
조선인이라고 하는 것이 고통스럽고, 장래희망도 없기 때문에
세상을 비관해 자살을 경의
-밀대일기 일제강점기 육군성 자료)
조명하 의사에 대해서 뿐만이 아닙니다.
굉장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해서도 똑같이 폄하시켰습니다.
독립운동가, 그리고 독립군을 비족(천한 민족), 테러리스트, 불령선인이다.
이봉창 의거 관련:
취업난의 초조함 때문에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을 뉘우치다
-<요리우미>신문 호외
윤봉길 의거 관련:
단순히 범행자의 광폭욕을
만족시킴에 그치는 것
-<오사카 아사히 신문> 논설
일본의 왜곡된 기록과 그 시도는
지금까지도 역사를 바로 기억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조명하가 남긴
세 장의 사진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그랬듯이
그도 자신의 행적을 ‘일제가 알아내면 안 된다’ 라는 생각 하에서
오히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이 편지를 읽으면 태워라’ 이런 식으로 계속...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하는가
기록이 없다고 해도 독립운동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계속 독립운동을 한 결과가
현재 우리의 삶이다. 라는 것을 생각할 때에
그 사람들을 기억해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 어딘가에 남아 있는 그 기록을 더 찾아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의 현재는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그날의 결과물
“대한의 젊은이여,
조국을 굳게 지켜라.
조국을 잃으면
자유와 정의, 평화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나는 삼한의 원수를 갚았노라.
죽음의 이 순간을 나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다만 조국 광복을 못 본 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은 계속 하리라.”
-순국 당시의 유언
조명하
(1905.04.08~ 1928.10.10)
호사카 유지
조명하 기억하며 기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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