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도라고 하지 마시고
정진한다고 그러세요.
기도라는 말은 빼시고 언제나 정진한다.
“정진은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하는 거를 하시고
관한다, 정진한다, 이걸로 들어갑시다.
용어를 바꿉시다.
기도라는 건 타의에 하는 것을 기도라고 하는 겁니다.
..
그건 요렇게 표현합시다.
한 사람이 하루에 몇 사람을 만납니까?
그전에 얘기했죠.
아들을 만나고 어머니를 만나고 할 땐 다 생각이 달라지고 행이 달라지고 말이 달라져.
그렇게 달라서 나투어서 돌아갈 뿐이지
한 사람이 백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겁니다.
한 사람이 열 사람을 만나고
한 사람이 열 가지 일을 하고 그러는데
그 한 사람이 한 가지 어떠한 일을 할 때
즉, 집안일을 하더라도 치(우)고 닦고 밥하고 뭐 빨래하고 이럴 때
빨래할 때 내가 빨래했다고 하겠습니까,
밥을 할 때 내가 했다고 하겠습니까?
하도 여러 가지를 하니까.
여러 가지를 하면서 돌아가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그것은 관세음을 불러도 결국은 자기가 불렀고
또 용왕님을 찾았어도 자기가 불렀고….
그건 이름이지, 자기의 마음이 간절하게 자기가 찾았으니까 자기 찾은 그놈이 바로…,
그 이름이 아니라 그놈이라고, 찾은 그놈.
그놈이 바로 자기를 부처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부처는 열 가지의, 백 가지의 이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왜 노래들 있잖아요.
일체제불의 마음은 뭐라 그랬죠?
내 한마음이다 그랬죠.
일체제불의 마음은 내 한마음이다.
그래서 유생무생이 다, 부처 중생을 따로따로 두는 게 아니라
내가 있기 때문에 남한테 맞기도 하는 거니까
내가 있기 때문에 남한테 좋은 소리도 듣는 겁니다.
그러니까 나 빼놓고는 없죠.
그러니까 모든 게 나로 인해서 일체 만법이 생긴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노래를 우리가 부를 때도 한번 생각해 보고 부르세요.
그래서 항상 그러지 않습니까?
관세음보살이니 뭐 산신이니 신중당이니 칠성이니 용왕이니 이렇게 쭈욱
약사보살이니 무슨 이렇게 해 놓는 거
여러분들이 한 사람의 한마음이 모두 있는 건데
이름이 각각 있다고 그래서 그 이름이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자깁니다.
눈 달린 데 코 있고, 코 있는 데 입 있고, 입 있는 데 귀 있고 요렇게 이름만 다 각각 있었다 뿐이지
거기 붙고 거기 붙고 거기 붙고 거기 붙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줄 아세요.
그걸 각각 찾고 각각 생각했다가는 절대 그것은 금물입니다.
공부하는 데 지장 있고 또 진리도 그러하거니와….
그러니까 지금 이 법당의 부처님께서도
이 형상은 여러분의 몸이요
부처님의 마음은 여러분들의 마음이요.
그러니 나도 바로 여러분들의 마음이요
내 육신은 여러분들과 같은 육신이요
둘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 높고 낮음도 없고
그러면서도 아주 높고 낮음이 없는 그 가운데
거기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여여하게 새록새록이 묘법이 나온다 이겁니다.
그만하면 됐습니까?
(이렇게 주장자 심봉을 믿고 계속 모든 것을 놓는 그것이 여여하게 될 때가 있고
주위 세속에 자꾸만 이렇게 여러 가지 끄달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잘 안될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이때 어떻게 하면 그것을 끊이지 않고 어떤 감정의 물결이 인다든가 우리의 습으로 인한 그러한 반응을 딱 해 가지고 물결을 확 일으키고 나면
그것이 주장자를 믿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잘 놓아지지가 않고
또 놓아지지가 않으면 주장자가 잘 잡히지가 않고
이러한 경우에 어떻게 하면 그것을 빨리 잡고 빨리 놓을 수 있는지
그거를 우선 저는 큰스님의 도움 말씀을 듣고 싶고요,
우리가 이렇게 초심자 입장에서 그냥 어떠한 뚜렷한 의정 없이
그대로 심봉을 믿고 심봉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과 철저한 놓는 그것만 계속한다면
우리가 바라는 경지에까지 갈 수 있는지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심봉과 마음 내는 것과 몸과 이것이 삼위일체다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언젠가의 법문에서.
심봉과 마음 내는 것이 같은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신지
그것을 좀 분명히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지금 말을 안 하고 있어도 마음은 있겠죠?
그런데 마음을 내는 것과 마음을 내기 이전과 그것이 둘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러나 배울 때는 항상 이전과 지금 현실의 마음 내는 것이 있습니다.
모든 게 마음 낼 때에 중간에서 마음을 내야,
마음을 내려고 해서 내는 게 아니라
마음이 저절로 스스로 나오면서 이 몸을 아프면 이끌어 가지고 가고
스스로 누가 말 없어도.
그리고
“내가 이거 공부를 한다” 하고 또 위로는
“심봉이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을 주인공이라고 그냥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마는
여러 사람들의 그릇에 따라서 이렇게도 말했고 저렇게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물결이 스쳐 간다고 해서 뒤집힐 일 없습니다.
그 심봉이 주인공이라면
주인공이라는 건 왜 주인공이라고 이름 지었느냐 하면
‘어떤 거 하나 걷어잡을 게 없다.
착을 둘 게 없고 거기에 끄달릴 게 없다.’ 해서
그러면서도 아주 그 여여하게 역력한 것은
지금 우리 생활하고 돌아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하다가 놓다가 뭐 물긷는 것처럼…,
바람이 일고 그런다고 하는데 만약에 속이 상해서 와락 소릴 질렀다고 합시다.
그것도 바로 그대로 놓은 겁니다.
그냥 한순간 뛰어넘어라 이겁니다.
한순간 뛰어넘어야지 그것을 붙들고
“‘아이구! 또 놓치고선 또 악을 썼구나.” 이런다면…,
그럼 사람이 뭐 말도 못하고 뭐 악도 못 쓰나?
악을 쓰되 쓰지 말고,
쓰지 않되 써라 이거야. ㅎㅎ
여러분, 이것이 그냥 악 쓴 것도 놓은 거고 악 안 쓴 것도 놓은 겁니다.
왜 자꾸 걸립니까?
그렇게 걸려 가지고야 은산철벽을 어떻게 뚫고 넘어?
그리고 또 지금 시대의 지금 사람이
옛날 같으면 은산철벽을 뚫는다고 온통 야단이고
그냥 뭐 여기도 걸리고 저기도 걸리지마는
지금 사람이 얼마나 잘 머리가 돌아가는데
거기 걸리고, 또 뭔가 의정을 내고….
의정 내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나를 찾아 가지고
찾을 게 없는 걸 찾아 가지고
정말 진짜 보임하고 돌아갈 때
체험을 하고 돌아갈 때
참 미지수의 그 문제가 거론됐을 때
“아, 이게 뭔가” “야, 이게 뭔가” 하고 아주 대의정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이게 뭔가” 하고 들어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뭔가’ 하는 것도 놓는 것이요,
‘이거 붙들지 않고 하루종일 일을 하고 또 놓쳤구나.’ 하는 것도 놓은 겁니다.
놓쳤다고 하는 것도 놓은 거고
붙들고 있다 하는 것도 놓은 거니까
다 놓으십시오.
그러니까 내가 책을 읽어서 잘 안다고 해서 뻣뻣이 굴지 말고
항상 녹신녹신하게, 겸손하게 순응하고,
자기 마음이 자기 마음한테 순응하라 이거야.
자기가 자길 모르면
항상 순응 못하면
항상 남한테도 순응을 못해.
그리고 부처도 자기한테 발견을 못 해.
항상 놓고 뻣뻣하니
부처가 나올 수가 있나?
흙이 딴딴하게 굳어보라고
싹이 나오나!
물을 녹녹하게 칠해야
그것이 싹이 호봇하게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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