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 그러죠.
아까 말씀드릴 때 아까 컴퓨터에 입력이 됐다고 그랬죠?
악업 선업이 인과로써…, 그랬죠?
그래서 지금 현실의 모든 사람들이 비교를 하고, 좋고 나쁘다 비교를 하고 이쁘다, 또 밉다…,
‘아이, 저건 참, 아이고 저건, 저렇게 생겼구나.’ 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 비교에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들한테 입력이 돼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수십억 마리가, 지금 세포 하나하나가 운행을 하고 있는 그 의식이
털구멍을 통해서 나고 들면서 내 마음을 유혹합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내가 자꾸 그걸 생각을 하든지, 이뻐하든지 미워하든지
거기에 자기가 충동 될 게 뭐 있습니까?
자기는 자기가 생각하고 비유해서 나가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그것을 그대로, 생각했으면 그대로 그냥 놔두고 거기에 자꾸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그런데 아까 수박을 예를 드시고, 수박이 어떤가를 보기 전에 수박을 깨보고, 수박이 이런 거라는 걸 먼저 행할 때, 이론보다 행이 더 앞선다고 말씀….)
그러니까 말입니다.
‘하얗다, 파랗다’ 생각을 말고…, ‘거기 속지 말고’ 이 소립니다.
그걸 깨뜨려 먹기 이전에 그거에 속지 않아야 그걸 먹을 수 있다는 얘깁니다.
‘파랗다, 하얗다, 붉다’ 이런 말에 속지 말라 이런 겁니다.
예를 들어서 그런 것을 이 주인공에 놔라 하는 것은,
속지 말고 ‘거기에서 나오는 거니까 내가 왜 거기에 끄달리랴.’
그러고선 거기서 하는 거니까 거기서 모든 것을 해결을 할 수 있고
내가 그렇게 거길 끄달리지 않고 속지 않는다면 그냥 수박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틀렸습니까? ㅎㅎ
이게 우리가 살아나가는 게요,
어떤 때는요, 꼬리가 꼬리를 물고 엉뚱한 생각으로 갑니다.
그래 가지고 잠을 못 잡니다, 또. ㅎㅎ
이게 참, 여러분 살아나가는 데 참,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죠. 왜냐?
나로 인해서 꼬리가 꼬리를 물고 가는 법은 없습니다.
단 하나, ‘어떡하면 쉽게 여러분들한테 말씀을 해드려서 여러분이 이해를 해서 이 도리를 알 수 있을까?’ 하는 데서 생각을 하다 보면
시도 읊어지고 어떤 때는 눈물도 흘려지고 말입니다.
아주 먼 산을 바라보고 ‘인간은 왜 먹고 살아야 해? 먹고 사는 거 때문에 모든 게, 죽이고 죽고, 쫓고 쫓기고 이러지 않나.
이런 처참한 일이 어디 있나.’ 하고선
어떤 땐 나 혼자 그럭할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랬으나 이제는 좀 다릅니다.
속지 않으면 모두 될 겁니다.
그래서 전자에 살던 자기가, 전자에 했고, 말했고, 행했고 한 것대로 입력이 돼 있는 게 지금 현실에 나오는 거니까
속지 마시라 이겁니다.
‘붉다 검다’ ‘모른다 안다’ 이런 모두에 속지 말고
자기는 자기가 모든 걸, 못하든지 하든지 지켜보고 지켜주고
자기가 하더라도 꽁지가 꽁지를 물고 밤새도록 잠 못 자지 마시고
그럴 때는
“그것도 거기서 나오는 거니 너 알아서 해라” 그러고 그냥, 그냥 탁 맡겨 놓곤
“잠 좀 재워! 니가 있다면 잠 좀 재워, 좀” 이러고선 그냥 자는 거죠, 뭐.ㅎㅎ
“네가 없다면 모르지만 네가 있는데 잠 좀 재워!” 이러고선 그냥 자는 거죠.
그러면 또 이런 게 있습니다.
저는요, 중이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12시나 1시, 즉 말하자면 중의 생활은, 스님네들의 생활은
9시에 취침 종을 치면 자고, 3시나 3시 반이면 일어나야 합니다.
3시에 일어나서 반 시간 씻고 뭐하고 하면 3시 반이 되면
그때에 도량석하고 그때서부터 예불 모시고
그러고 난 뒤에 참선하고, 참선한 뒤에는 모두 공양들 지어서…,
공양주는 공양 짓고, 채공은 반찬을 하고, 소제할 사람은 소제하고 이렇게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공양을 하고 난 뒤에 이제 모든 절차를 자기 소임 맡은 것대로 돌아가죠.
그런데 그렇게 하는데 나는, 나만은 항상, 지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스님네들도 있지만 12시 전에 잠을 못 잡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예전보다 달라졌다는 얘기죠.
어떤 때는 1시도 됩니다.
그러면서도 3시 반에 꼭 일어나야 합니다, 그거는.
‘늦게 잤다, 더디 잤다.’ 이런 게 우리한텐 거기에 씨가 먹히지 않죠.
왜냐하면 생각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내가 3시간을 잤다’ 하고 이 3시간을 잤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잠을 못 잤다는 생각을 한다면 벌써 피로가 와요.
그러나 뭐 3시간을 잤든, 10시간을 잤든 그런 건 하등 상관이 없이 거기에 끄달리지 않고 그대로
10시간이면 10시간 잔 거와 같다는 생각을 하실 때는
반드시 그건 피로가 오지 않습니다.
저도요, 어젯밤에요, 4시간밖에 안 잤는데
4시간이라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우리 소견이지
아, 제 놈들이 자건 말건 내가 왜 그걸 상관합니까?
잘 생각해 보세요.
제 놈들이 여기 지금 전부 돌아가면서 합니다.
근데 우리가 잔다 그래서 맥박이 안 뛰는 법은 없거든.
뜁니다.
그러니까 덜 잤든 더 잤든
제놈이 상황이 그렇게 돼서 그렇게 된 거를 내가 왜 그런 거 걱정을 합니까?
인생이 요렇게 몸뚱이를 가지고는 얼마나 갑니까마는
내 이 생각은 영원한 겁니다. 누구도 죽이지 못해, 누구도 간섭하지 못하고….
이것은 이 도리를 이 중심에서 이 만법의 컴퓨터가 중심으로 돼 있고 모두…,
아까 얘기한 거와 마찬가지로 모두 주동 돼 있는데
거기에서 자동적으로 나올 때
‘자력’ 이러면 그건 무한이지만
‘자석’ 하면 벌써 그건 한계가 있는 거죠?
옛날에 어떤 스님이 국사로, 나라의 국사로 유명하다고 하는 분이
아주 재세를 부리고 그냥 중들을 업신여기고 그러니까
어느 스님이 거길 왕림을 해가지고
“내가 지금 어디 있는고?” 하고 물었더랍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고?” 하고 그 국사 스님한테, 그러니까
“아니, 스님께서 그렇게 풀밭에서 애를 쓰십니까?” 그러더랍니다.
그래서 한참 있다
“또 내가 어디 있는고?” 하고 물었답니다. 그랬더니
“스님은 왜 들판이고 산이고 길도 없는 데를 그렇게 다니십니까?” 하더랍니다.
그래서 또 잠자코 있다가 한참 있다
“내가 지금 또 어디 있는고?” 하니까 깜깜한 거야.
문을 탁 닫아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캄캄하죠. 그러니까
“요 요망한 거!” 하고 주장자로 그냥 한 대 얻어걸리고선 그냥 도주를 하죠.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것도 공했고 주장자라는 이름조차도 공했으니
때릴 것도 없고 때리지 않을 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다는 건 우리가 그대로 여여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러니 거기에 모두 끄달려서 잠 못 자고 병들고…,
또 어떤 회사를 하는 것도 그래요.
그걸 망했다고 해서, 장사를 하다 망했다고 해서,
공부를 하다가 지장이 있다고 해서
그거를 낭패로 생각을 하지 말고요.
모든 건 거기에 속지 말고
그건 그것대로, 그 생각이 나오는 건 그것대로 그냥
그…, 주인공에선 모든 게 입력된 게 나오는 거지, 과거에 입력된 게 나오는 거지
지금 현실의(것이) 나오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그냥 놔두고
나 할 거를 꾸준히 해나가다가
그것이 완성됐을 때는 그것을 한번 이것이…,
우리가 위가 따로 있고 아래가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머리가 없어도 아니 되고 발이 없어도 아니 되죠?
그래서 부처님한테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며
이게 평발이라고 그랬습니다. 평손!
이거 소홀히 생각할 게 아니죠.
그러니 우리가 아래면 어떻고 위면 어떠냐.
이게 둘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다 끝마쳐서 한번 뒤집어서
우리가 양면을 다, 무(無)의 법, 유(有)의 법을 한데 합쳐서 이 세상에 내놓았을 때는
크나큰,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이지 빛을 주는 거나 한가집니다,
광력을 주는 거죠.
그러니 이 세상에 나왔다가 그러한 거 하나를 정말이지 모든 사람한테 밝고 밝은 광력의 그 길을 떼줄 때 그거는 어마어마합니다.
그걸로 인해서 연구를 백 배 이상 더 할 수 있고요.
그러니 중단하시지 마시고, 속지 마시고, 속아서 잠 못 주무시지 마시고
또 속아서 병들지 마시고, 속아서 또…,
가정이 화목하고 그래야 할 텐데
그냥 서로 으드덩으드덩 하고 껄쭉껄쭉하게 사시지 말고요.
우리 다복하게, 한 생을 즐겁게 이렇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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