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어디 가서 또 듣고 온 얘기 스님한테, 자성 부처한테 놓든지 안 놓든지 그건 자기들 알아서 하라고 그래. 그런데 그건 스님이 그런 얘기도 안 했는데 스님한테 그걸 물으면 어떡해? 어떤 사람은 하느님 믿고 복 받는다는데, 스님은 복 받습니까? 이리 물으면 내가 뭐라고 그래? 그건 그들의 신앙이고 그들의 이론인데, 그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야 될 거 아니오. 그 사람한테 들은 얘기를 나한테 물으면 내가 뭐라고 해야 돼?
불교라는 이름을 붙인 스펙트럼이 ‘갓 바위 가서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 들어 준다.’ 이것도 불교요? 불교 아니요? 불교고. ‘니 욕심 많으면 죽어서 돼지 된다.’ 이것도 불교고. ‘부처 만나면 부처 죽이고 조사만나면 조사 죽여라.’ 이것도 불교고, 지금 말한 것도 불교고. 다 불교라고 이름을 붙여서 하는데, 그 스펙트럼이 이쪽에서 이쪽이 불교 기독교 스펙트럼보다 더 넓다니까. 그런데 불교의 핵심이다. 이런 말 쓰면 안 돼.
예. 그러니까 남의 얘기하지 말고, 자기 고민이 뭔지를 얘기해 봐. 뭐 한다고? 소규모? 예. 왜 스트레스를 받는데? 하면 되잖아. 그러면 내가 이 세상에 그런 게 한두 가지요? 나는 너 좋다는데 상대는 나 싫다는 사람도 있고, 나는 싸게 사고 싶은데 파는 사람이 안 팔겠다는 것도 있고, 내가 비싸게 팔겠다는데 상대는 또 싸게 사겠다고 우기는 사람도 있고. 늘 있는 일인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에요? 그런 거 있는 거를 적절하게 해결하라고 자기한테 월급을 주니까 자기는 그냥 하면 되는 거지.
나는 반품하는 사람이면 반품하는 일을 하는 거고, 그 사람은 반품 많이 받으면 손해요? 손해 아니오. 자꾸 적게 받으려고 하는 건 그 사람의 일이고. 그러니까 이런 일이 있지. 그런 게 없으면 자기한테 직업이 없지. 그건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인데 그걸 공짜로 먹으려 하잖아. 화를 내면 지만 손해지 뭐. 안 하게 되려면 나는 반품시키는 게 내 일이고, 상대는 안 받는 게 자기 일이니까, 그 사람 일을 이해하면 내가 화는 안 나지.
아이 이해되는 거 하고 반품 안 시키는 거 하고 별개지. 그 사람 처지는 이해되지마는 나는 반품시키는 게 내 일이니까 나는 하면 되지. 그 말은 이해 안 되고 반품시키려고 하면 화나면서 일을 하고, 이해되고 반품시키는 일을 하면 화 안 나고 일을 하게 되는 차이밖에 없지 뭐. 그러면 자기가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안 됐다. 그럼 받아들여야지 어떡할 거요? 다른 길이 있어? 그럼 안 받아들이면 다른 길이 있어? 저분 사위가 돌아가셨는데 스님이 잘됐다. 이렇게 말했어. 그 말은 받아들여라. 이 말 아니오. 안 받아들이면 다른 길이 있느냐니까. 있으면 하라니까. 그렇게.
그길 밖에 없으니까 그 길을 가라는 거요. 다른 길이 없잖아. 열심히 했는데 안됐다. 그럼 다른 길이 뭐 있노? 한번 얘기해 봐요. 있으면. 공상만 있지. 공상만. 됐으면 좋겠다 하는 공상만 있지. 망상만 있지. 실지로는 다른 길이 없잖아. 안되면 그만이지. 그러면 그 돼야 된다고 하면 한 번 더 해보면 되는 거지. 그 외에 다른 길이 뭐가 있어? 안 그러면 포기하든지. 다시 하든지. 포기하면 월급 못 받으니까 다시 할 수밖에 없지. 또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 또 안 되면 또 하면 되지 뭐. 말처럼 안 되지 않습니까? 그래, 말처럼 안 되니까 수행하지. 말처럼 되면 뭣 때문에 수행하겠어? 그러니까 연습이지.
이치는 ‘그렇다.’ 알았으면 이치대로 연습을 해야지. 연습에 무슨 좋은 방법이 있나? 연습이 제일 좋은 방법이지. 연습이 안 되면 ‘왜 안 됐지?’ 하고 ‘어~ 요래 볼까?’ 또 해보고. ‘왜 안 될까? 요래 해 볼까?’ 또 하고. 그게 연습이지. 연습에는 왕도가 없어. 연습은 꾸준히 하는 게 연습이오. 꾸준히 하는 거요. 언제까지. 될 때까지. 몇 번 하면 됩니까? 그런 말은 물을 필요가 없어. 어떤 것은 백번해서 되는 것도 있고, 어떤 것은 한 번 해서 되는 것도 있고, 어떤 거는 만 번 해도 안 되는 거도 있고.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그럼 포기하는 거고, 그래도 하고 싶은데요. 그럼만 한 번 해보는 거고.
그게 삶이오. 뭐 다른 무슨 뭐 뾰족한 수가 있다. 이래 생각하지 말지? 뾰족한 수 있으면 나한테 좀 가르쳐주고. 불교적인 수행을 하는데 왜 스트레스를 받아? 안되면 또 하면 되는데. 자기가 스트레스받지. 왜 스트레스를 받아. 자기가 스트레스받는 거지. 그 사람이 자기 스트레스 줄려고 한 건 아니잖아. 자기가 받는 거지. 자기문제를 딱~ 즉시 해서 이치를 딱 보고. ‘오~ 맞아. 그러네. 이래 봐야 나만 손해네. 어~ 이건 일어나는 늘상 일어는 일 아니냐?’ 이렇게 딱 이치를 알았으면 그게 부처님 법이요.
불교라는 용어를 쓰든 안 쓰든, 뭐다? 부처님 가르침을 뭐라고 한다? 법. 진리. 진리가 뭐에요? 이치. 원리. 원리에 맞는 게 불법이오. 원리에 안 맞는 거는 불법이 아니오. 상식적인 게 불법이오. 비상식적인 것은 불법이 아니오. 이름이 불법이라고 붙인다고 불법이 아니고. 그런데 이치를 알면 이치대로 하면 되는데, 실제로는 이치대로 안 일어나고 몰상식하게 항상 무지상태로 이게 일어나니까. 그래서 아까 뭐에요? 정신을 차려라, 깨어있어라. 놓치면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연습해라. 자~ 오늘 여기까지 하고 다음 시간에 또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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