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깨달음 수행 행복 자유 등의 단어는
영어로 적절한 표현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좋은 문제 제기해 주셨는데
그것은 언어 문제라기보다는 언어를 포함한 문화 문제입니다.
문화
그러니까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왔는데
그 중국 사람의 사고방식하고 인도 사람의 사고방식이 워낙 차이가 나니까
중국 사람들은 인도에서 온 불교를 뭐라고 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용어를 모른다, 단어를 모른다가 아니라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도대체 뭐냐?
왜?
그런 식으로 생각을 안 해봤기 때문에.
그래서 초기에 전법자들이 굉장히 어려웠어요.
그래서 이때 뭐냐?
격의불교라는 게 생겼는데
중국에 있는 사상 중에 그래도 불교하고 좀 비슷한 게 뭐냐하면
유교는 완전히 차이가 나고, 도교가 좀 비슷했어요. 도교가. 관점이.
그래서 불교를 설명할 때 항상 도교적인 용어와 개념을 사용해서 불교를 설명한 거요.
그러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거요.
“오, 그게 그 말이구나” 이렇게 알아듣는다.
이래서 100년 200년 300년 지난 뒤에 당나라 시대에 와서야
불교가 만방에 퍼진 뒤에 소위 말해서 처음에는 불교가 인도승려들이 중국에 와서 중국어를 배워서 주로 번역을 하고 전법을 했는데
당나라 시대에 오면서 당나라 승려가 인도에 가서 인도말을 배워서 경전을 보니까
앞에 번역한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요.
그래서 현장법사, 삼장법사에 나오잖아요. 손오공 얘기 나오는.
그때 와서 옛날에 번역한 걸 다 새로 번역한 거요.
그래서 이번에는 어떠냐?
중국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번역한 거요.
그러니까 인도사람이 번역한 게 아니고.
쉽게 얘기하면 제 법문을, 또는 불교를 한국 사람이 영어를 배워서 번역했는데
미국 사람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굉장히 어려워.
그래서 나도 가서 미국 사람한테 설명할 때 잘 못 알아들으면
내가 성경을 인용해서 설명하면
“오, 그 말이야.” 이러고 금방 알아듣는다 이 말이오.
안 그러면 서양사람 잘 아는 현대철학, 헤겔의 변증법이든지, 마르크스 사상이든지
이런 걸 이용해서 설명하거나
과학을 가지고 설명하면 어때요?
금방 알아듣는다, 이런 얘기에요.
그런데 한참 시간이 흘러서 미국에 불교가 많이 어느 정도 퍼져서
미국 사람 중에 한국에 오든지 태국으로 가든지 가서
거기서 자기들이 한국말을 배워서, 한국에 와서 정토에 와서 한국말을 배워서 스님 법문을 다 듣고 나서
자기가 이걸 미국식으로 번역하면 어떻게 번역해야 하느냐?
이렇게 가면 용어가 정확하게 좀 찾아질 수가 있다.
그전까지는 좀 어려워요.
자기는 한국에서 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의 어떤 말을 탁 하면 그게 뭔지 이미지가 탁 바로 다가오지만
그걸 번역해 놓으면 그 용어가 갖는 이미지가 한국말하고 일치하지 않는다.
마음이라는 용어를 마인드라고 번역했을 때 그게 일치하지 않는 거요.
의미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다.
그래서 이 중국에서도 인도에 마하라는 말을
중국말로 번역하면 크다고 번역이 된단 말이오.
그런데 크다라는 클 대는 상대적 큼, 내가 너보다 크다 할 때 대 자를 쓴단 말이오.
그런데 인도에서의 마하는 상대적인 크다가 아니라 절대적 큼.
그러니까 굳이 말하면 무한대라는 뜻이 된단 말이오.
이걸 대 자로 번역해 버리면 그게 의미전달이 잘 안 된다.
그러니까 인도말을 그냥 갖다 쓴 거요.
그래서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할 때
마하도 번역을 안하고 인도말을 그냥 쓰고
반야도 인도말을 그냥 쓰고
바라밀다도 인도말을 그냥 쓴단 말이오.
이걸 번역을 안 하고, 인도말을 중국식으로 그냥 읽어서 그냥 쓴다.
그 이유는 이거 중국말로 번역하면 뜻이 딱 정확지가 않다. 이런 얘기에요.
번역을 안하면 계속 해설을 해야 하잖아, 그죠?
그래서 우리가 지금 반야심경도 뭐라고 한다?
마하반야바라밀다까지는 인도말이란 말이오.
심, 핵심 되는, 이거는 번역을 했고
경, 중국말로 번역을 했지만
앞에 것은 인도말을 그냥 쓴단 말이오.
그러니까 미국 사람들도 제대로 공부하려면 빨리어를 그냥 쓰든지, 산스크리스트 말을 그냥 쓰든지
한국말을 배워서 마음하면 마음으로 그냥 써요.
태권도 배울 때 하나 둘 셋, 그냥 한국말 쓰잖아.
그런 것처럼 그냥 쓰면 되는데
그러면 다 말하는 사람만 알지, 대중화는 안되잖아요.
그러면 그 비슷한 거라도 옮겨야 알아듣는다.
그러니까 자기가 볼 때, 영어로 번역해 놓은게 좀 마음에 안 든다.
마하반야를 대지혜라고 번역해 놓으면
대지혜? 대지혜도 뭔가 좀 사람들이 큰 지혜, 이러면 좀 작아보인다.
이게 마하반야하면 이거는 깨달음, 부처님의 지혜 이런 뜻이란 말이오.
그러니까 그게 마음에 좀 안든다.
그렇게 자기가 느끼는 거요.
그렇게 정확하게 전달 안된다는 것도 사실이고,
그것이 바로 자기 생각을 너무 중심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니 번역을 하면 한 70%만 전달이 되면 잘 되는 거요.
100% 생각하면 안 돼요.
자기 말을 남편이 70%만 알아들으면
꼭 불교 아니다, 일상으로도 자기 말을 70%만 알아들으면
자기가 영어로 썼는데
영어로는 말은 100%지만 그때 담겨있는 마음은 남편이 70% 못 알아듣습니다.
자기도 남편 하는 말 영어로는 말은 다 알아듣지만
그 70% 이상은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항상 말은 해도 답답한 거요.
한국 사람하고 얘기하면 속이 시원한 거요.
그게 언어가 교체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렇게 이해하시고, 뭐 아무 특별한 문제는 없는데
자꾸 그렇게 답답해 하면 안 된다.
“아이고 그래도 그렇게 번역해서 한 70%라도 내용이 전달되니 참 다행이다.”
이렇게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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