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자1
저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참 자유롭고 행복하게 지냅니다. 아이도 학교에 잘 다니고요. 혼자 산에 가거나 운동장에 가서 쓰레기 줍는 것도 자주합니다. 처음 뵙는 할머니라도 홀로 외로이 앉아계시면 그 옆에 그냥 웃으면서 이야기 들어주고 함께 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차를 마시거나 밥을 먹는 게 무척 긴장됩니다. 배가 금방 불편해집니다.
제 아이하고 함께 먹어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랑하고는 참 좋습니다. 저 혼자서는 참 행복한데 이대로 계속 살아도 되겠습니까?//
네, 됩니다.^^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얘기 다했어요.
이대로 살아도 되느냐? 된다. 또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봐요.
네, 그렇게 해도 되요. 집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 보다 가면 운동도 되고 전화비도 적게 들고 훨씬 좋아요. 네. 또?
안 먹으면 되요. 또? 질문하려고 온 게 아니라 자기 자랑하러 왔구나. “우리 남편하고 재미있게 사는데 스님, 넌 혼자 사니까 외롭지?” 이 얘기 하려고 지금 나온 거요? 아무 문제가 없어.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지금 질문하는 거요?
안가면 되요. 안가면.
하필 고 시간에 명상해요? 딴 데 가서 하지. 같이 먹는 게 긴장되면 애기 먹는 것 옆에서 구경하면 되죠. “엄마는 안 먹나?” 그러면 “아이고, 엄마는 나중에 먹을 게 너 먼저 먹고 학교가라.” 이렇게 응대하면 되지. 별 일도 아닌 것을 갖고.
자기는 문제가 뭐냐 하면,
별 일 아닌 것을 자꾸 별일로 만드는데
거기에 문제가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한테 약간 잘 보이고 싶은
그런 무의식적 욕구가 있어.
어디서? 배에서 약간 고장이 나서 그러겠지. 무슨 호랑이 소리요? 그냥 꼬르륵 꼬르륵 좀 하겠지. 호랑이가 그렇게 우는 호랑이가 어디 있어요? 기도를 어떻게 하느냐? 절에 다녀요? 교회 다녀요? 절에. 그러면
부처님,
저는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편안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셔야 되요. 예. 네.
질문자2
가볍게 살기 파동으로 기사가 많이 나는데 그 부모들은 아픈 아이를 어떤 심정으로 키워나가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심각하지 않지만 저도 아픈 아이를 키우는 입장으로써 병원을 다닐 때마다 지칠 때도 많고 이 아이를 놓칠까봐 가슴이 먹먹할 때도 많은데 이럴 땐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요?//
아픈 아이라는 것이 어떤 상태를 말하는지요?
그럼 자기의 기본 관점은 이 아이를, 누구나 다 정상적인 건강한 아이를 갖고 싶잖습니까? 그죠? 거기에 기준을 두고, 이 아이를 그렇게 만들려고 하면
첫째 자기가 너무 힘들고,
둘째는 아이가 나중에 크면 열등의식을 갖게 되요.
자기는 뭔가 모자란 사람처럼 되는 거요.
그러니까 가장 기본관점은 이거요.
이 세상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은
피부빛깔이 희든 검든,
남자든 여자든, 신체장애든 건강한 사람이든,
종교가 무엇이든, 어떤 경험을 가졌든,
행복할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우리 아이는 아토피가 있고, 무슨 선천적 질환이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고, 뭐가 있더라도 이 아이도 뭐할 권리가 있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만약에 5년 살다가 죽으면 5년까지 행복할 권리가 있고, 10년 살다가 죽으면 10년까지 행복할 권리가 있고, 20살 까지 살다 죽으면 20살까지 행복할 권리가 있다.
20살까지 살 수 밖에 없는 신체 구조를 가지고 났을 때,
20살까지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는 게 엄마여야지,
이것을 명을 30살, 50살로 끌어올리려고 하면,
첫째 안 되죠. 엄마가 지쳐. 엄마가 지치면 애가 괴로워.
그래서 아이는 20살까지 괴롭게 살다 죽는 거요.
그러니까 여기 세상 사람이 다 다른데 똑같이 만들려면 안 돼. 이 아이의 조건에 견주어서 엄마가 대응을 해야 돼. 이 아이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이 아이도 잘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까 그것을 치료하지 못하면 치료하지 못하는 상태로 행복할 권리가 있는 거요. 장애면 장애로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요구를, 너무 엄마가 자기 욕심으로 정상아의 수준에서 요구를 하면
이 아이를 업고 평생 병원에 다녀야 되잖아. 그러면
첫째 우리 가정이 나하고 남편하고 집안이 괴로워지겠죠. 정상가정이 안 돼요.
두 번째 아이도 괴로워져.
그러니까 너무 욕심을 내면 안 된다.
이 아이가 마침 나에게 온 것을 기독교 신자라면 주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하고, 불교신자라면 인연이라고 생각해야 되요. 그게 무슨 얘기냐? 이 세상사람 다 욕심으로 살기 때문에 자기 자식이 장애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자식을 낳았노.” 이렇게 말해요? 안 해요? 그것은 뭐요? 이 장애가 나쁜 죄의 과보로 왔다고 생각하는 거요. 이 장애가 나쁜 짓을 한 죄의 과보로 온 게 아니에요.
옛날에는 딸을 낳아도, 내가 아들을 낳아야 이 집에 살 수 있는데 딸을 낳아 아들을 못 낳으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딸만 낳았나.” 이렇게 말하는 것 하고 똑같아. 옛날에는 그게 너무 당연히 들렸는데, 지금은 그런 말 하면 안 맞잖아. 딸 낳는 게 왜 죄의 과보요. 그런 것처럼 장애아를 낳는 것은 죄의 과보가 아니다.
이 아이가 다른 집에서 태어났다면
이렇게 해서 아이가 행복을 못 누릴 텐데,
나에게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너는 나의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이런 신체구조를 가지고도 뭐하게 살 수 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네가 딸인데,
네가 옛날에 딴 집에 태어났으면
딸이라고 천대받았을 텐데,
네가 나에게 인연이 되었기 때문에
너는 여자라도 어때요?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
이렇게 키워야 된다. 이 말이오.
이게 부모가 갖는 기본 관점이에요.
그러니까 이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면, 힘들게 생각하면 아이는 불효가 되는 거요. 엄마를 힘들게 하게 한 사람이기 때문에. 여러분들, 호주 사람인데 팔도 없고 다리도 없는 사람, 힐링 캠프에 나온 사람 봤어요? 우리나라 엄마 같았으면, 아이를 딱 낳았는데, 두 팔도 없고, 두 다리도 없다면 아마 통곡을 했을 거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애를 낳았나?” “아이고, 하나님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 나한테 이런 재앙을 주느냐?” 이런 팔다리 없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을 거요.
그런데 그 엄마는 바로 “하느님, 저에게 이런 좋은 선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그 아이를 키운 거요. 그러니까 그 아이는 팔이 없고 다리가 없지, 정신적으로는 항상 엄마의 사랑을 받고, 엄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그 아이는 두 팔, 두 다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로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거요. 이 두 다리 두 팔 멀쩡하게 가진 인간들이 괴로워하는데 그 사람이 그들을 위로하고 다니는 거요.
그러니까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면 그 아이는 여러 가지 세상 사람이 볼 때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그 장애 있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면, 세상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거요. “저런 아이도 행복하게 사는데, 내가 행복하게 못살 이유가 뭐가 있느냐?” 이렇게 된다 이 말이오. 제가 늙어도 혼자 살아도 행복하게 사니까 여러분들은 둘이 사는 게 행복 안하면 좀 문제잖아. 안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러니까
첫째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 되고,
두 번째 행복하게 사는 길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줘야 된다.
그것이 우리가 세상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까 그것이 무슨 장애건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고,
무엇이든 그 아이에 맞게
걷지를 못하면 걷지 못해도 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말을 못해도 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못 봐도 넌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 수준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래서 자꾸 아이를 즐거움으로, 아이에게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것을 힘들어 하지 말고, 아이를 앉고 병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하지 말고, 이것을 즐거움으로 삼으면 아이가 행복해 지고, 이것을 “이 아이가 이러지만 않았으면 내가 이 고생은 안 할 텐데.” 이러면 아이는 굉장히 정신적으로 상처를 입게 된다.
그것은 “이거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에 그런 거 아니오. 그것은 부모 심정은 어쩔 수 없지만, 그것을 내려놔야 돼. 그래서 한 3군데는 가볼 필요가 있어. 지금 다니는 병원을 불신하지 말고, 그러나 다른 데 가서 한번 체크는 해볼 필요가 있다. 이 말이오. 왜냐하면 딴 스님한테 가서 물었는데 잘 안되던 게 나한테 물어도 될 때 있고, 교회 가서 물었는데 안 되던 게 절에 와서 물었는데 될 때도 있어요? 없어요? 있잖아.
그러니까 그게 저기 가면 반드시 된다가 아니라. 사람이 그런 경우가 있단 말이오. 왜? 똑같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이 아이를 짊어지고 아이를 치료한다고 온 나라를 다 돌아다니는 것은 올바른 자세는 아니고, 지금 한 병원에 다니면서 조금 치료가 안 되다 할 때 엄마가 보면 대강 알지. 이게 치료가 안 되는 병이다. 하면 거기에 맞게 치료를 해야 되고, 가능성이 있는데 이 의사가 조금 병을 잘 모르나? 하면 다른데 가서 한두 번 체크해 보는 것은 괜찮아. 의사한테 말하지 말고.
법륜스님한테 다니다가 조금 마음에 안 들어 딴 데를 갈 때를 가고 싶을 때, 나한테 와서 “스님, 내가 딴 스님한테 가서 물어볼까요?” 이렇게 말하지 마라. 그냥 조용히 가서 물어보고, 그게 좋으면 가고 안 좋으면 돌아오면 되잖아. 아시겠어요? 꼭 절에 다니는 사람이 스님한테 와서 “스님, 불교 잘 마음에 안 드는데 가톨릭 신자 할까요?” 이런 소리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오. 기분 나쁘니까.
그러니까 우리가 가게도 이 가게 저 가게 갈 수 있어요? 없어요? 있죠. 그럴 때 이 가게 가서 “아이고 당신 집에 물건도 별로 안 좋고 비싸서 내가 저 가게 갈란다.” 이러면 안 되지. 조용히 가면 돼. 아시겠어요?
아니 그러니까 다 가지고 가지 말고, 기본적으로 아는 의사를 통해서 한번 체크를 해보고, 혹시 다른 견해가 있으면 그때는 나중에 옮겨도 되지. 그리고 또 옮겨도 괜찮아. 그거 뭐, 소비자가 왕인데, 의사선생님한테 얘기하면 돼. 의사선생님한테 “의사선생님 불신이 아니라 혹시 다른 검사를 해볼 수 있을까요?” 하고 물어도 되는데, 가능하면 그대로 진료를 놔놓고, 다른 병원에 가서 한번 기초검진만, 또 싹 다 검진하려면 몇 백만 원 드니까, 기초 검진만 해보고 의사가 “전체 다 검진이 필요하다.” 이렇게 얘기하면 저쪽 병원에 신청을 해서 받으면 되고, 기본얘기를 체크해보면 대충 보면 의사가 알아요.
그리고 가능하면 조금 경험이 있는 의사한테 물어보는 게 좋아요. 전문의한테 물어보고 거기에 대한 견해가 있어서 비슷하면 관두면 되고, 조금 다르면 한번 실험적으로 치료를 해봐도 되지. 그것은 우리가 그렇게 할 권리가 있어요. 없어요?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의사 눈치 너무 볼 필요가 없다. 정토회 다니더라도 딴 절에 한번 가고 싶으면 가도 되나? 안 되나? 가도 되고, 교회 가고 싶으면 가도 되나? 안 되나? 가도 돼. 그것을 죄지은 것처럼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 우리는 선택의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러니까 가서 한번 물어보세요. 한방에도 한번 체크를 해 보고. 양방에만 너무 의지하지 말고. 이런 것은 한방에도. 왜냐하면 이런 병은 지금 치유방법을 아직 못 찾은 병에 속하거든요. 그래서 한방 같은데도 한번 검진을 해보고. 누가 한다고 너무 믿으면 안 돼. 그래서 체크를 해보고.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오히려 권유하고 싶은 것은 엄마들이 이것을 치유하려고 너무 돌아다녀서 아이에게 도로 상처를 주기 때문에, 저는 오히려 몇 군데만 체크해보고, 그 수준에도 행복할 권리가 있어. 격려해 줘야 돼. 그러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게 중요해. 육체적으로 건강한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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