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스님/즉문즉설(2017)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308회] 부모님께 참회 드리고 싶어요

Buddhastudy 2017. 8. 3. 20:20

  

 

질문자1

 

제가 보시다시피 머리가 되게 짧거든요 그래서 남자로 오해를 많이 받아요. 사실 여성입니다 이러다보니까 치마를 입어라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해라 소리를 듣는데 남들의 시선 때문에 제 스타일을 포기하기는 싫거든요. 그러려면 남들의 시선을 감수해라하는데 시선을 감수하기가 좀 많이 힘든 게 여자 화장실을 들어갈 때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데 괜히 눈치가 보여요.//

 

 

그러면 여기다 여자라고 명찰을 달고 다니면 되지. 그거 뭐 어렵다고 그래. ‘여자입니다.’ 이렇게 명찰을 달고 다니면 되잖아. 밖에서는 난 남자 여자 구분 안주고 싶다면 그냥 다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명찰 딱, 뽑으면 되잖아. 약간 지혜가 있어야지. 자기가 그렇게 머리 짧게 하고 옷도 남자처럼 입고 바지입고 이렇게 들어가니까 딴 사람이 볼 때, “왜 여자가 남자가 왜 여자화장실 왔나.”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그럴 때는 여기다가 저는 여자입니다.’이렇게 써 붙이면 되지. 화장실 갈 때만 살짝 꺼내서 꽂아 들어가면 되지.

 

, 스타일을 바꾸든지, 남이 봐도 여자처럼 보이도록 하든지, 안 그러면 남자 화장실을 아예 사용하든지, 남자화장실에 서서 누는 게 아니잖아. 안에 들어가 버리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있나? 대변보러 간 줄 알지. 그러든지, 안 그러면 여자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여자 목욕탕에 가거나 할 때는 살짝 요렇게 표시를 해서 여자입니데이~’ 이렇게 하고 들어가면 되지. 또 물어볼 거 있으면 물어봐.

 

 

질문자2

저는 45살 아이를 키우는 6년차 주부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약간의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연년생 아이 두 명을 낳고 키우며 산후우울증처럼 또 우울증이 나았습니다 그러면서 친정 부모님에 대한 원망을 많이 가지게 되었는데요. 제가 잠시 어리석었음을 느끼고 지금은 법문을 듣고 불교공부도 하며 부모님께 다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저를 낳아주신 것까지 감사하다는 생각은 잘 안 들고 있습니다.

 

사지 육신이 멀쩡히 낳아주신 것은 감사합니다만 세상에 태어난 것까지 감사하다는 생각은 잘 안 듭니다. 스님 법문 중에서 원래 원해서 태어난 사람이 없고 주어진 인생을 그저 성실히 살면 된다는 말씀을 듣고 우울하고 삶이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내려놓게 되었으나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를 감사히 여기지도 못하면서 제가 의도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두 명이나 낳게 되어서 아이들에게도 미안합니다. 제가 부모님께 참회기도를 드리고 싶은데 지혜로운 기도문을 주시면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데 참회기도를 해요? 어머니를 때렸어요? 뭐 잘못했는데 참회를 해요?

어떻게 못되게 했는데?

지가 먼저 화를 냈으니 나도 내는데 뭐 어때? 괜찮아.

 

지금 자기 자식 키우면서 자기가 산후우울증도 겪었다고 이렇게 말했잖아. 엄마도 자기 낳고 남편이 뭐라고 뭐라고 그러고 제대로 안 도와주고 인생살이가 힘들고 그랬을까? 안 되었을까 그래서 그래. 그래서 자기가 그런 엄마의 업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도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갖고, 자기가 우울증 가진 상태로 애를 키우면 애들도 또 어린 시절에 우울증이 오고 또 결혼하면 자기처럼 어려움을 겪고 그래요. 달리 방법이 없어. 이것은.

 

덜어보려면 자기가 자기도 지금 자기 컨트롤이 자기 맘대로 안 되잖아요. 이러면 애들한테 나쁘다는 거 알아도 잘 안 되잖아. 그러듯이 엄마도 자기를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엄마도 자기 자란 환경, 자기 처한 현실이 그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해? 엄마도. 엄마가 자라기를 어릴 때 할머니 할아버지하고 싸운데서 자라서 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우울증이 있는데, 거기다 또 남편이 뭐라고 뭐라고 하고, 마음에 안 들게 하니까 엄마도 그런데 뭐.

 

엄마가 자기 괴롭히려고 전화 한 거 아니오. 자기도 힘들어서 하소연 할 데가 없으니까 이웃집에 딸이 있으니까 전화해서 자기 인생 하소연 하는 거란 말이오. 그런데 딸년이라는 것도 악을 쓰고 덤비니까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엄마한테 야단맞지 남편한테 야단맞지 내가 낳아서 키운 딸한테도 야단맞지. 어머니 인생이 얼마나 피곤하겠어. 그러니까 어머니가 나를 괴롭히려고 그런 게 아니라, 어머니도 사는 게 힘들어서 그렇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뭐라고 하면 네네 알았어요. 어머니, 네네 알았어요. 어머니, 네네 알았어요. 어머니이렇게만 해주면 되요.

 

자기보고 해결해 달라는 거 아니야. 자기가 가서 아버지를 어떻게 해결하겠어. 그냥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혼자 있으니 속 터져 죽을 것 같고 그래서 딸한테 전화해서 하소연하니까 아이고 어머니 그랬어요. 그랬어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렇게만 하면 돼. 그거 뭐 어려운데. 그러면 그게 자꾸 귀에 들어오면 귀에다가 음악 틀어놓고, 그냥 알았어요. 알았어요. 알았어요.” 이러면 된단 말이오.

 

아니 이거 어쩔 수 없어요. 왜냐하면 지나가는 말로 들어야 되는데 듣다보면 그게 안 되잖아. 그럴 때 내가 자꾸 경계에 끌려들어 갈 때는 음악을 틀어놓고 귀에다 꽂고 그렇게 끄덕끄덕하면서 네네 네네, 네네, 아 그랬군요. 그랬군요.” 이래도 되요. 이 세상에 남편도 부모도 자식도 내 답답한 거 얘기하면 들어줘요? 안 들어줘요? 다 듣기 싫어해. 그래서 돈 주고 할 수 밖에 없는 거요. 돈 받고 들으니까 그거는 듣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잖아. 이렇게.

 

그러니까 자기는 엄마한테 돈 받고 그럴 수는 없고, 엄마한테 어떻게 돈을 받아요. 그러니 자기가 엄마가 전화 오면 자기가 정신과 의사라고 생각하세요. 알았어요? “엄마가 어디 전화할 데가 없으면 나한테 전화하겠나. 아이고 쯧쯧쯧. 내 낳아서 키운다고 고생했는데 내가 딴 것은 못해주더라도 엄마 얘기나 좀 들어줘야지.” 이렇게. 바쁠 땐 일해가면서 전화 들고 어어 그래그래. 엄마 엄마, 알았다. 알았다.” 이러면서 들으면 되요. 설거지 하면서도 듣고.

 

니 뭐하노?” “, 아니야. 그릇이 떨어져서.” 이러면서. 아무 문제가 없어. 엄마는 하소연 하는 게 목적이지 해결해 달라는 게 아니에요. 내가 엄마 말에 빠지면 해결해줘야 될 거 같은 부담이 드는 거요. 해결은 안 해도 돼. 뒤치다꺼리 안 해도 돼. 그냥 들어만 주면 되는 거요. 그렇게 못한 것을 참회한다면 참회해야 되고, 자기가 엄마한테 잘못한 것은 없어요.

 

절이 그렇게 하고 싶으면 해도 돼. 얼마나 재미있냐하면요, 꼭 하루 너 하루 300배 해라.” “500배 해라.” 이러면 이제 아이고 기도문 받았다이러고. 왜 헛고생 하려고 그래? 하면 육체적으로도 좋고, 정신적으로 절은 좋은 거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그러나 자기가 어머니한테 특별히 잘못한 게 없는데, 잘못한 게 없는데 자꾸 참회기도하면 좋다니까 자꾸 잘못했다 그려러니까 절하다가도 성질나는 거요. “내가 뭐 잘못 했노?” 이런 게 속에 있잖아. 딱 보니 자기 잘못했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어. 그런데 어디 가서 들으니까 참회기도하면 좋다니까 나한테 지금 참회하겠다고 그러는데, 그렇게 공부하면 안 돼.

 

그러니까 자기는 참회가 이런 거요. “아이고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면 나한테 전화해서 저러시겠노. 아이고 자기도 시집가서 평생을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 남자하고 한번 살아봐라 얼마나 힘드는지. 그러니까 엄마도 악심이 나서 그런 거거든. 그러니까 남편이 들어주면 좋지만, 남편도 남편한테 물어보면 잔소리하는 여자하고 평생살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요? 다 서로가 그래. 그러니까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가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뭐 밖에 없다? 들어주는 거 그거 하나 밖에 없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낳아서 키워줬으니 그거 하나는 해 줘야지. 언제든지 전화 오면 하고, 오는 게 뭐하면 자기가 먼저 전화를 해. “엄마 할 얘기 없어?” 이것을 성경, 교회 다녔어요? 교회 다녀. 그래, 어릴 때 교회 좀 다녀야지. 교회 다니면서 이런 말 알아?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들어봤어요? 제대로 안다녔구나. 5리를 가자면 10기를 가주라. 그것을 달라면 속옷까지 벗어주라.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대주라. 3가지가 다 똑같은 비유요.

 

그게 뭐냐? 어떤 상황에 처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이 상황에 처했는데, 그럼 내가 종속적이라는 거야. 그럴 때 이것을 내가 주인으로 전환시키는 방법이오. 내가 주인이 되어버려야 돼. 이것을 불교용어로는 수처작주라고 그래. 어떤 곳에 처하든 내가 주인이 되는 거요. 그것을 성경 용어로는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라.’ 누가 5리 가자 해서 따라가면 그 사람이 주고 내가 종이에요. 그런데 “10리가 줄게.” 이러면 누가 주인이다? 내가 주인이다.

 

그러니까 엄마가 전화 와서 듣기 싫은데 억지로 들으면 내가 엄마한테 매여 있는 종인데, 내가 전화해서 엄마 뭐 없어? 들어 줄 얘기 없어?” 이러면 내가 주인이 되는 거요. 자기가 좀 적극적으로 해야 되요. 수처작주라는 용어를 외운다고 불교를 아는 게 아니에요. 이 성경구절을 외운다고 신앙이 깊은 게 아니고 그것을 내가 삶속에서 항상 어떤 상황이든 내가 주인으로 딱 전환을 해야 되는 거요.

 

그러니까 아까 장애인 아이가 있다. 그러면 아이고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면 평생 종노릇해야 되요. 그런데 아이고 다른 집에 태어났으면 내가 사랑 못 받았겠지. 나한테 태어나니 정말 다행이다. 나하고 인연인가보다. 주여 감사합니다. 은총을 주셔서.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이 아이를 키우는 게 행복할 수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게 잘 안 되지. 그래서 공부하는 거요.

 

그러니까 어머니 얘기를 그래도 엄마한테 야단맞고 쟤 엄마한테 야단맞고 자기 엄마한테 사랑 못 받아도 자기 낳은 자식한테 하소연 할 권리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거라도 있어야 엄마도 살지 어떻게 살겠어? 생각해 봐라. 눈물 안 나나? 눈물이 안 나는구나. 나는 눈물 나는데. 듣기만 해도. “아이고 얼마나 답답하면 나한테 얘기해라. 나한테 얘기해라. 다 들어줄게. 나한테 나한테.” 이렇게 좀 마음을 내봐라. 그게 참회다 이 말이오.

 

그런 마음을 내면 자기가 우울증에 안 빠지는데 자기가 우울증에 빠지면 자식도 우울증에 빠져요. 우울증상이 있으면 빨리 병원에 가서 약 먹고, 특히 애기 키우는 엄마는 굉장히 필요합니다. 그러면 엄마가 우울증 되면 애기는 바로 전이가 됩니다. 그러니까 바로 치료를 해야 돼. 우울증은 치료를 안 하면 병이 깊어지지만, 치료하면 현상유지는 돼요. 자꾸 완치이런 말 하지 말고.

 

자기가 곧 태생에 엄마로부터 받은 거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항상 그렇게 돼. 그럴 때는 약을 먹고 또 괜찮아서 안 먹을 때 비상약을 갖고 있다가 심리가 약간 불안하면 바로 약을 먹고 이러면 돼. .

 

즐거웠습니까? . 다시 한 번 정리를 하면요, 불교라고 하는 것은 용어가 불_부처를 말해요. 부처라는 말은 깨달은 이라는 뜻이오. 교는 가르침이오. 깨달은이의 가르침이다. 이런 뜻이에요. 그럼 깨달은이가 왜 가르침을 폈을까? 그거는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해주려고 가르침을 편 거요. 그러니까 이 가르침의 목표는 깨달은이에게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깨달은 이에게 충성하는 게 불교의 목적이 아니라, 깨닫지 못한 이를 깨닫게 해주는 게 불교의 원래 목적이다. 그럼 깨달으면 어떻게 되느냐? 뭘 깨닫느냐? 무지, 무지를 깨닫는 거요.

 

그럼 무지라는 것은 깜깜한 밤과 같아 아무것도 보이는 게 없는데, 깨달음이라는 것은 마치 불을 켠 것과 같아서 훤히 보이기 때문에 우리들의 번뇌나 괴로움이나 이런 게 사라진다. 그런데 또 완전히 사라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어쨌든 지금보다는 좋아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정말 어려워서 어려운 게 아니라 어떤 생각을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어려운 거요. 그것을 집착이라고 그래요. 집착을 놓으면 되는데, “집착을 놔라 하면 또 “‘놔라하는 게 또 안 놔진다.”고 나한테 와서 또 하소연을 해.

 

그러니까 그거는 뭐냐? ‘놔라하는데 또 집착을 한 거요. “놓아라하면 놓아야 되는데, 놓으라는 상을 짓는다. 이런 얘기에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도 누구나 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태어난 조건, 살아온 환경과 관계없이 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 여러분들이 행복해야 되요. 남편이 죽어서 불행하다 이런 말하면 안 돼요. 남편이 죽은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고, 자식이 죽은 사람도 행복할 수가 있고, 교통사고 나서 장애가 생겨도 행복할 수가 있어요.

 

그럼 왜 행복하지 못하냐?

옛날 생각하기 때문에.

두 다리 안 다쳤을 때를 자꾸 집착하기 때문에

현재 한 다리 다친 거에 대한 열등의식과

또 그에 대한 원망이 있기 때문에 불행한 거요.

 

한 다리가 부러졌으면

, 그래도 한 다리가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고, 그래도 안 죽고 살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장애상태로

얼굴에 미소를 머금을 수가 있다.

이거 누가 주는 거 아니에요.

내가 내 인생을 이렇게 만들어 나가는 거요.

그래서 하나 따라해 보세요. 마지막으로.

부처님의 말씀이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따라 읽기는 읽어도

다른 사람이 만드는 거지.

니가 술을 처먹어서, 네가 바람을 피워서,

네가 공부를 안 해서 내가 괴롭다.” 이렇게 생각하잖아.

다 다른 사람이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때문에 우린 영원히 행복할 수가 없어.

 

그러니 내가 긍정적 사고, 살아있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이것을 긍정적 사고라고 그러고,

그 자식만 안 그랬으면 내 다리가 안 부러졌는데.” 이것을 부정적 사고라 그래.

부정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번뇌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긍정적 사고를 하면 누구나 다 행복해질 수가 있다.

 

남자든 여자든, 기독교 다니든, 절에 다니든 이것은 상관없어요.

자기 믿음이 불교든 기독교든 그것은 여러분이 알아서 하세요.

신앙에 자유가 있으니까.

 

그러나 우리는 누구나 다 행복할 수가 있다.

이것을 불교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은 다 부처의 성품을 가지고 있다. 이런 얘기요.

불성이 있다. 이런 얘기요.

그러니 자신의 소중한 권리를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행복할 권리를요.